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3년 봄호의 시

김창집 2023. 4. 26. 00:11

 

개 ᄀᆞᆺ디서 - 강덕환

   -진아영 할머니는 월령 바닷가에 살았었지요

 

 

이시나 어시나

하나 족으나

돌 트멍 베르쌍

촐레ᄀᆞ심 봉가보젠

갯ᄀᆞᆺ디 나왕 젓엄주만

대구덕은

ᄀᆞ득이지 못ᄒᆞ곡

손만 바싹 실릅다

 

 

 

저 궁극의 해원을 보자 - 김경훈

    ㅡ구좌 연두망 43해원상생제에 부쳐

 

 

이 바람 속에 언뜻 함성이 들리거든

그날의 빛나는 바다를 보자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빗창으로 나섰던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자

 

이 빗속에 얼핏 울음이 들리거든

그날의 어둔 밤하늘을 보자

꺼이 꺼이 속울음 울며 형장으로 끌려가던

그들의 슬픈 뒷모습을 보자

 

이 땅 위에 문득 온기가 느껴지거든

구름을 밀어내는 바람 속에서

어둠을 물리치는 햇살 속에서

망사리 가득 웃음 머금고

날혼들을 어루만지는 그들을 보자

서로 눈물 거두고 어우르는 그들을 보자

 

이 하늘 아래

그 모든 날들 속에

그 모든 대지와 언어와 사람들 속에

온통 넘실대는 치유의 춤사위를 보자

아픈 몸 풀어내는 저 궁극의 해원을 보자

 

 

 

호랑가시나무 김광렬

 

 

처음에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바보 같게도

호랑이 발톱 같은 식물을 떠올렸는데

 

웬걸, 스스로 제 몸에 가시 박은 채

스스로를 찌르며

늘 자신을 경계하는 호랑가시나무

 

밖으로도 뾰족한 가시를 내민 뜻은

 

남을 아프게 하면 언젠가는 결국

자신도 아프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일침(一針)인 듯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 깊이만큼

뜨겁고 서늘하게 남을 사랑할 것

허나,

나는 남을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있는 밤이면

마음의 가시가 시퍼렇게 돋아나면서

무섭게 나를 찔러대는 모양이다

 

 

 

정방폭포 1 김규중

 

 

그것은 혐오

 

소리가 나지만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야 하는 것

 

소남머리 전분공장에 떠다니는 향기들

부둣가 단추공장에 굴러다니는 눈망울들

 

M1 화약 냄새로

폭포의 핏빛 물방울로

그믐달처럼 여위어가던 밤

 

빨갱이섬폭도자식연좌제위패철폐사상검증

 

70여 년을 지났지만

추모공원은 외진 곳으로 밀리고 밀리며

자리를 잡지 못하여 떠돌고

 

 

 

내 앞의 바다 김병택

 

 

언제부턴가, 내 앞의 바다는 조금씩

잔잔한 모습의 외관을 버리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자주 불어오는 바람이

스산한 마음의 빈틈에 머무를 때는

어김없이 오랫동안 마구 출렁거렸다

 

구석으로 밀려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거친 숨 몰아내는 한 마리 짐승으로,

땅을 뚫는 기계로 보일 때도 있었다

 

물론 태풍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 광경들이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른다

 

뒤뜰에 서 있는 무성한 아무들 때문에

포착하지 못한 바다는 정말로 없었을까

 

안개로 뒤덮인 날의 발길 잃은 저녁이나

햇살이 골고루 뿌려진 날의 아침에는

어딘가에 숨어 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일부러 정신을 세우고 힘들어 나섰다면

찾아낼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

 

바닷물이 머리 위로 외롭게 치솟거나

폭포처럼 가슴 바닥으로 낙하하는

길고 긴 어두움의 시간이 전혀 아닌데도

 

나는 내 앞의 바다를 못 본 지가 오래다

 

 

                  *계간 제주작가2023년 봄호(통권 8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