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새잎 – 임정현
어디서 삼동을 견디었을까
저 맑은 연둣빛 얼굴
새순의 옹알이 바람과
바람 빗방울 띠뜨르르
가지 위에 새잎 눈 뜨는 날
색색의 빛깔들
해에게서 나와
지상의 열락이 시작되었다
♧ 여행의 맛 – 김수연
온밤을 달려가면 기꺼이 맞이하는
발가벗은 선바위 꼭대기에 비추던
아침 해
황홀히 퍼져
금빛의 출렁거림
밤과 낮이 바뀌고 마주한 뜨거움이
하루를 안아 품고 서서히 빠져들어
백룡담
푸른 물속은
경이로움 차고 넘쳐
액체 같은 햇살이 수면 위를 휘저을 때
저 바람 파고들어 시리게 흔들리며
태화강
십리 대밭이
용암정을 기웃댄다
♧ 휴양지에선 ‘숲 멍’을 - 우형숙
숙제하듯 밥을 먹고 창문을 활짝 연다
오늘도 여지없이 수런대는 녹색물결
그렇지 침묵의 햇살도 숲 속에선 저리 웃지
따뜻한 차 한 잔에 녹아드는 바쁜 숨결
공중에 매달리는 푸릇한 향기 따라
멍하니 사그라진다 어설픈 빗장 풀고
설움이 휘감았던 매콤한 기억들도
몽롱해진 동공 속에 일렁이다 사라진다
쉼표가 수북해진 나, 자꾸만 웃고 싶다.
♧ 봄, 피라미 떼 - 이승현
깃처럼 보드라운 봄 숨결 한 움큼을
쥐었다 펼치면 여울물 소리가 난다
겨우내 찌든 땟국물 쏴아! 씻어 내리며…
가슴 섶 물고기가 물보라 일으키는
알 수 없는 떨림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의젓한 앞산마저도 휘둘리며 돋는 열꽃
툭, 버는 꽃잎 하나 수면을 살짝 치면
연초록 하늘가에 그만큼 번지는 꽃물
화르르, 그 산빛 쫓아 몸 트는 피라미 떼
♧ 동백꽃 - 이제우
필 때는 향기까지
반올림해 피어나서
질 때는 느낌표를
내리 긋고 땅을 친다
꽃술에 사레가 걸린
봄 햇살도 못 풀고
허공에 몸을 그어
불을 당겨 지른 꽃빛
볼거리를 앓아내며
불어 올린 꽃봉마다
겨울의 어깨 너머로
술래처럼 엿본다.
* 계간 『산림문학』 2023년 봄호(통권4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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