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1)

김창집 2023. 4. 28. 07:38

 

시인의 말

 

 

앞을 향해

숨차게 달려오던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다시 걸어갈 길올

생각합니다

 

함께

옷깃을 여미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병실에서 출근하는 여자

 

 

낮에는 큰 딸이 엄마 곁을 지킨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소꿉놀이하듯 소곤소곤

조용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엄마 생전에 나도

저런 시간이 있었던가?

 

저녁에는 막내딸이

바늘에 실 가듯 달려온다

 

조용히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생글생글

직장생활로 피곤할 만도 한데

하루도 빠짐없이

병실에서 출근하는 여자

 

따스한 햇귀 같은 효녀 꽃이

날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병실

 

 

 

허공에 쓰는 편지

 

 

시설에서 왔다는 병실에서 만난

여인

날마다 허공에

편지를 쓴다

 

해독할 수 없는 문장을

꼭꼭 새기느라

손톱으로 얼굴에 생채기를 내어

야속한 간병인

엄지장갑을 끼워버렸다

 

붙일 수 없는

가슴 깊이 숨겨둔

못다 한 말

뭉뚝한 손으로

헛손질한다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명 순 이

 

아니, 할머니 이름

명 순 이

 

그녀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

자기 이름보다도 더 소중한

이름

 

명순이를 향한

못다 한 말

허공에 꾹꾹 눌러쓴다

  

 

 

부메랑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철썩!

야무지게 뒤통수를 후려친다

때린 아내와

얼떨결에 눈이 마주쳤다

휠체어에 앉아

상모 같은 콧줄과 링거를 달고

어안이 벙벙한 놀란 남편

우린 서로 무안해

고개를 숙였다

 

지난날

엄마들이 수다에서

농담으로 들었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당신 나이 들면 두고 봐

 

말이 씨가 되어

먼 시간을 돌고

돌아온

부메랑

 

 

 

에밀레종 소리

 

 

아침을 깨우는 수탉같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각시야

각시야

단잠을 깨운다

 

날마다 한밤중이 되면

애타게 각시를 부른다

남자 병실에서 들려오는

에밀레종 소리

 

각시는 어디를 갔기에

저토록 애타게 부를까

그리움 같은

참회의 목소리로

 

각시야

각시야

간절한 기도 소리 같은

남자의 절규

 

 

          *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한그루, 2023)에서

          * 그림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박물관 암각화에서 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