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1)

김창집 2023. 6. 17. 00:05

 

 

다시 법정사지에서 강상돈

 

 

고지천을 가로질러 한참을 올라갔지

법정악 허리춤에 흔적만 남은 돌담

지치고 힘든 세월을 에워싸고 있었다

 

법정사란 이름도 샘물 있어 불렀다지

그 물로 밥 짓던 솥 검붉게 녹이 슨 채

외진 곳 틈바구니에서 속울음을 토해낸다

 

승려도 신자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죽음으로 맞선 곳, 맨 몸으로 맞선 곳

왜경들 총격 앞에서 피할 겨를 없었다

 

이곳에선 바람조차 흐느끼지 않는다

봄볕에 취한 신록이 절룩거리며 가고

그날*을 증언 하는가 까마귀소리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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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이 일어난 1918107

 

 

 

 

법정사에 핀 동백꽃이여 강태훈

 

 

법정사에도

4월의 동백은

피를 토하듯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19189월 법정사에서는

민족혼이 투철한

스님들의 주도하에

항일의 주민 봉기대가 일어섰다

 

거사 전 스님 세 명은

변함없는 결의를 다지고자

산천단에서 의형제를 맺었으며

법정사에 모여 성공을 위한

100일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

 

스님 등 서른다섯 명이

금방 칠백여 명으로 불어나고

도순 하원 강정으로

그리고 중문에 이르러

성난 백성들은 주재소를 불태우고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사전 훈련이 없는

의기만 투합한 농민들은

서귀포에서 출동한

정예의 일본 기마대 앞에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저편

무오 항일 구국의 불씨는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으니

 

! 장하도다

제주 섬에서 밝힌

항일의 불길이

요원의 들불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닌가

 

이때 생겨난 말이 있다

*조선이 배라면 제주는 닻이라고 했는데

섬 제주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리라

법정사 항일 사건은

제주의 자랑스러운 항일구국운동이었다

 

벌써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후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43은 우리에게 너무나 잊을 수 없는

뼈아픈 큰 비운의 사건이었다

 

화해와 평화 그리고 아직도

진실 규명과 상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저 붉은 동백꽃은 떨어져서도

언제나 다시 피어난 것처럼 신선한 꽃이다

 

법정사의 붉은 동백꽃도 번영과 풍요,

평화와 구국의 상징 꽃으로 피고 또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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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사의 항일운동은 김연일 스님을 비롯 방동하 스님, 강창규 스님 등이 주도하였다.

 

 

 

 

무오항쟁법정사지 김대봉

 

 

삼일절보다

한 발 앞선

 

무오항쟁 시월절기

 

그 절 찾아

나섰는데

 

길도 없고

절도 없네

 

축대만

남은 사지에

 

녹슨 무쇠 솥

 

 

 

 

제주법정사 항일운동 발원지

     법정사지 앞에서 - 김용길

 

 

무상하다고 세월을 탓하랴

한 세기 건너 저편

한라산 구름발 흩어져 내리더니

흔적의 흙 한 줌

바람에 날린다

 

부처님 숲속 길

무릎걸음 올라와서

여기 법정사 옛터

하늘 지르던 소리들

화산땅 깊이 뿌리 내린 곳

 

한 서린 항일투쟁의 역사

가슴에서 되살아나고

그 영혼의 바람소리 들으며

양손 모두우고 고개 숙이면

숲과 숲 사이

새들이 운다

나뭇가지마다 울음방울 매달고

 

 

 

 

법정사지 까마귀 오영호

 

 

법정악

둘레길 따라

해발 680m

무너진 돌 축대 위에

깨진 무쇠 솥 하나

무오년*

그날** 핏빛으로

덩그라니 앉아 있다

 

강정 도순 돌아

선봉대 깃발 따라

달려 나온 4백여 명

왜놈들 다 꺼져라

함성에

중문 경찰 지소

힘없이 무너질 때

 

달려온 기마 순사

탕 탕 탕 총소리에

산산이 조각나버린 항쟁의 깃발 안고

잡혀가

감옥살이 고문에

죽고 산 66

 

36년 핍박에도 즈믄년 나이테 돌아

혼 깃든 소나무들 절대로 잊지 말자고

온종일

우듬지에 앉아

울고 있는 까마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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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107

 

 

                                     *혜향문학2023년 상반기(통권 제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