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2)

김창집 2023. 6. 19. 08:01

 

 

눈물 결혼식 김세형

 

 

외로운 이 밤

 

내가 Day Dream“tears”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까닭은,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네 눈물이 그리워서이다.

 

내 눈물을 병에 담아 네게 보낸다.

 

네 눈물을 내 눈물이 담긴 병에 담아

내게 보내 줄 수 있겠니?

 

아직 날 위한 눈물이 남아 있다면.

 

 

 

 

들고 나며 들고 나며 - 나영애

 

 

우굴우굴 생명을 품은 개펄

질퍽한 펄 속에 아기들이 자랐지

들고 나는 바다가 있어

아기 씨를 품을 수 있었지

 

개펄이 사랑을 잃었던가

그렁그렁한 물을 잃었고 말라 갔지

더는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었다네

생기를 잃은 개펄

 

어느 날

번쩍 허공을 가르는 번개가 피고

천둥이 둥둥 지축을 흔들더니

말라 굳어진 개펄에

 

출렁출렁 바다가 오고

어루만지며 또 만져 주었다네

축축하게 풀리기 시작했다네

들고 나며 들고 나며

 

 

 

 

등뼈 - 서량

    -앙리 마티스의 그림, ‘벌거벗은 여인에게 (1949)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

굵은 선

봄바람 여름바람, 더더욱 부드러운

맨살 맨가죽으로

단단히 가려 놓은 기본원칙

자세를 굽히면 좀 돌출하는구나

앞뒤 가릴 것 없이

오른쪽 왼쪽이 뒤범벅이 되는 중

우리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고개를 돌리는 중에

 

 

 

 

살구가 제 목소리 갖기까지 - 이윤정

 

 

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열매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럴 때 마다 그늘은 이가 곱다

시고 떫은 바람이 가지를 섞을 때마다

돋아나는 잎들이 울타리를 치고 어린 살구를 불러들인다

 

울타리 밖 주변엔 침 흘리는 입들이 조잘거리고

어디서 신맛을 데려오는지 들뜬 균형들이 익어간다

홀수들은 떨어지고 짝수들은 달콤하게 익어갈까

잘 배열된 열매사이로

날아다니는 무게들이 몰려들고 있다

 

가지 끝까지 걸어 나가

난간의 맛으로 익어가는 살구 알 깔깔대는 소리

저 작은 몸에는 분명

몸을 뒤트는 광대가 살고 있을 것 같다

 

소곤거리는 균형을 담고 있는 소리

수많은 발자국을 갖고 어느 쪽으로도 넘치지 않는 향기로 매달려 있다

 

바람을 따라 울타리를 밖으로 뛰어가는 살구냄새

한 알의 살구가 노란 허공을 내려놓으며 속 보여 줄 때

신 맛의 시간을 맛 볼 수 있다

 

그 때 까르르 살구의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간다

 

 

 

 

바다 조성례

 

 

촛불을 켜자 어둠이 쓸려 내려가면서

방에는 바다가 들어와 앉는다

소리 없는 불빛은 출렁이면서

하얀 포말을 만든다

작은 흔들림에도

밀려왔다 밀려가고

먼 바다 등대처럼 촛불도 함께 떨리고 있다

 

바다는 날를 삼키고

나는 와인을 삼키며

나와 너 바다의 삼각함수를 생각한다

마음이 서성일 때마다 그리는 그곳

가끔은 파도의 소리를 끌어다 듣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곳에서의 바람

순간 바다는 멍한 귀울림 속에 들고

파도 소리 끊긴 그곳엔

나도 없다

 

 

                         *월간 우리6월호(통권 4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