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 결혼식 – 김세형
외로운 이 밤
내가 Day Dream의 “tears”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까닭은,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네 눈물이 그리워서이다.
내 눈물을 병에 담아 네게 보낸다.
네 눈물을 내 눈물이 담긴 병에 담아
내게 보내 줄 수 있겠니?
아직 날 위한 눈물이 남아 있다면.
♧ 들고 나며 들고 나며 - 나영애
우굴우굴 생명을 품은 개펄
질퍽한 펄 속에 아기들이 자랐지
들고 나는 바다가 있어
아기 씨를 품을 수 있었지
개펄이 사랑을 잃었던가
그렁그렁한 물을 잃었고 말라 갔지
더는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었다네
생기를 잃은 개펄
어느 날
번쩍 허공을 가르는 번개가 피고
천둥이 둥둥 지축을 흔들더니
말라 굳어진 개펄에
출렁출렁 바다가 오고
어루만지며 또 만져 주었다네
축축하게 풀리기 시작했다네
들고 나며 들고 나며
♧ 등뼈 - 서량
-앙리 마티스의 그림, ‘벌거벗은 여인’에게 (1949)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
굵은 선
봄바람 여름바람, 더더욱 부드러운
맨살 맨가죽으로
단단히 가려 놓은 기본원칙
자세를 굽히면 좀 돌출하는구나
앞뒤 가릴 것 없이
오른쪽 왼쪽이 뒤범벅이 되는 중
우리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고개를 돌리는 중에
♧ 살구가 제 목소리 갖기까지 - 이윤정
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열매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럴 때 마다 그늘은 이가 곱다
시고 떫은 바람이 가지를 섞을 때마다
돋아나는 잎들이 울타리를 치고 어린 살구를 불러들인다
울타리 밖 주변엔 침 흘리는 입들이 조잘거리고
어디서 신맛을 데려오는지 들뜬 균형들이 익어간다
홀수들은 떨어지고 짝수들은 달콤하게 익어갈까
잘 배열된 열매사이로
날아다니는 무게들이 몰려들고 있다
가지 끝까지 걸어 나가
난간의 맛으로 익어가는 살구 알 깔깔대는 소리
저 작은 몸에는 분명
몸을 뒤트는 광대가 살고 있을 것 같다
소곤거리는 균형을 담고 있는 소리
수많은 발자국을 갖고 어느 쪽으로도 넘치지 않는 향기로 매달려 있다
바람을 따라 울타리를 밖으로 뛰어가는 살구냄새
한 알의 살구가 노란 허공을 내려놓으며 속 보여 줄 때
신 맛의 시간을 맛 볼 수 있다
그 때 까르르 살구의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간다
♧ 바다 – 조성례
촛불을 켜자 어둠이 쓸려 내려가면서
방에는 바다가 들어와 앉는다
소리 없는 불빛은 출렁이면서
하얀 포말을 만든다
작은 흔들림에도
밀려왔다 밀려가고
먼 바다 등대처럼 촛불도 함께 떨리고 있다
바다는 날를 삼키고
나는 와인을 삼키며
나와 너 바다의 삼각함수를 생각한다
마음이 서성일 때마다 그리는 그곳
가끔은 파도의 소리를 끌어다 듣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곳에서의 바람
순간 바다는 멍한 귀울림 속에 들고
파도 소리 끊긴 그곳엔
나도 없다
*월간 『우리詩』 6월호(통권 42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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