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1)

김창집 2023. 6. 13. 00:56

 

 

할미꽃 정순영

 

 

가난한 손녀 집 사립에 쓰러져서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하얀 털옷 할미의

용서하는 이른 봄 적갈색 아픔을

 

아는가?

 

깊은 한의 사무치는 사랑으로

세상의 몹쓸 것을 내어 쫓는

할미의

선한 눈에 고인 하늘빛 슬픔을

 

 

 

 

지근거리 사랑 김동호

 

 

至近지근거리에서

밉지 않게 지근대는

아이가 있었단다

---- 콧대 높은

그 노처녀 결국

그 아이에게 시집갔단다

치매 아니신데도

치매 할머니처럼

이 이야기하고 하고

또 하시는 우리 할머니

당신 이야기 같다

 

 

 

 

휘파람 밥 권순자

 

 

이팝나무가 휘파람 불면

구름이 가지마다 꽃밥을 단다

환한 밥들이 그릇마다 넘치고

배고픈 기억이 출렁인다

 

와락

꽃들이 휘어잡는 새벽 열정

설레는 주문은 이미 도착한다

 

필수품이 도착할 때마다

눈멀고 귀먹은

다정한 번뇌

좌절과 허탈이 밀려난다

 

어머니 소망이 소복이 빚어져

자식들 입안으로 굴러드는 집

 

하늘에서도 어머니

5월 흰밥 지으신다

 

 

 

 

오른쪽 팔 서 량

   -마티스 그림 앉아 있는 여자에게(1936)

 

 

옅은 선 짙은 선 둘 다

무슨 내막이 있다 굵거나 가늘거나

귀를 덮은 건 옆머리가 눈빛과 매치되는 중

상박근上膊筋의 근력을 오른쪽이 도맡는다

투명하게 일그러지는 당신의 눈 코 입!

 

 

 

 

꽃의 비등점 이상호

 

 

그녀의 얼굴에선 향기가 달아올랐다

바깥쪽에서 시작해 안쪽까지 모든 곳으로

4월이 꼬불쳐 놓은 무수한 속 샘들이

 

우듬지가 봉긋봉긋 하루하루 달라지게

폭발하듯 직선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등뼈가 예민해진 날 꽃송이의 해가 겹친다

 

입술에서 와 와 와 겹소리가 예언처럼

정오를 지나 계시록 끝까지 데워지면

연둣빛 바깥으로만 끓어 오른 저 비등점

 

 

                        * 월간 우리6월호(통권 4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