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인지 '올레집 사람들'의 시(6)

김창집 2023. 6. 11. 00:09

 

 

도댓불 - 양시연

 

 

내일 비가 오려는지 노을이 참 곱다

이런 날 포구는 참았던 말 문 트이고

견디지 못한 그리움 심장마저 붉어진다

 

처음 나가는 배가 켜고 끝에 오는 배가 끈다는

자구내포구 저 도댓불,

왜 꺼져 있는 걸까

어쩌면 오래전부터 고기잡이 안 나갔나 봐

 

파도도 기웃대다 스을쩍 그냥 가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한 갯메꽃

노을빛 따라 올라가 제 몸 살라 불 켠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 있기는 있는 걸까

도댓꽃 보려나

위리안치 내 사랑

이 가을 끝물쯤에는 저 불마저 끄고 싶다

 

 

 

군산 고모 김미영

 

 

여태껏 흰 빨래는 널어보지 못했다

경암선 철길 따라 다닥다닥 들어선 집

기차도 여기선 슬쩍 신음 한번 하고 간다

 

가수 된다’ ‘가수 된다

집 밖으로 나돌더니

어느 네온 불빛에 정분이 났나 보다

이따금 생선 내에도 헛구역질할 때 있다

 

쇠말뚝 돌고 돌 듯 돌고 도는 군산 언저리

먼발치서 등교하는 그 모습만 훔쳐본다

어느새 저렇게 자라 장가간다는 저 녀석

 

식장엔 오지 마세요툭 내뱉는 외마디

초기 암 진단에도 울부짖던 고모가

고맙다’ ‘고맙다하며 끌고 가는 저녁놀

 

 

 

 

우수리 - 김현진

 

 

어머닌 사과 한 알 사각사각 깎더니만

반 잘라 네 오빠 줘라

또 반 잘라 네 조카 줘라

나머지 사분의 일 쪽 니들 나눠 먹어라

 

! 이것 봐라 그러니까 그게 그런 거로군

장남은 생의 절반,

장손은 또 그의 절반

니들은 나머지란다 우수리 같은 딸들 넷

 

 

 

 

돌담 너머 강경아

 

 

산방산 구름 쓰면 비 온다는 속설 있다

아침녘 발을 돋워 돌담 위로 보는 산

어머닌 산방산 보며 하루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다리 건너 고구마 캐러 가는 날

저 산이 구름 썼는지 보고 오란 어머니

한마디 일기예보에 술렁대는 아침 시간

 

그렇다면 오늘은 산방산에 구름 썼겠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창문이 날 가둬놓고

갈수록 그리운 땅에 안부를 물어본다

 

 

 

 

허천 올레 - 고순심

 

 

먼올레로 왐신가

신장 짚은 소곱이서 시상 베꼇더레 걸어 나완

술 ᄒᆞᆫ 잔에 흥창거리는 늦인 낮후제 누렁ᄒᆞᆫ 구두

 

진진ᄒᆞᆫ ᄌᆞ냑해 자울락거리는 올레 끗뎅인 멀멍도 가차운디

오랜만이 ᄆᆞ실 탓에 웬착으로 ᄒᆞᆫ 발짝 ᄂᆞ단착으로 ᄒᆞᆫ 발짝

이레착저레착 걸어가는 ᄉᆞ랑 기려운 누렝이에 눈공ᄌᆞ가 으슬랑으슬랑

 

새 신을 신엉 퀴어 보게 폴짝

담돌을 ᄂᆞᆯ아 올르는 ᄎᆞᆷ생이 데멩이가

하늘ᄁᆞ장 가는 이와기

 

ᄎᆞᆷ생일 ᄎᆞᆽ아가단 강셍이 펀찍ᄒᆞᆫ 하늘더레 죾어대는

게춤 ᄇᆞ뜨는 소리

ᄀᆞᆮ 죽어도 술탓은 아니엥 ᄒᆞ멍 그노무 신 따문이엥 신 따문이엥만

 

새 신을 신엉 퀴어보게 철퍼덕

푸더지는 누렁이에 설룬 눈빗은

어정어정 지나가는 ᄇᆞᆯ고롱ᄒᆞᆫ ᄌᆞ냑해

구두에 맞인 발이 싯기는 ᄒᆞᆫ 건가

이 시상 왓단 가긴 ᄒᆞ여신가

 

피어본 적이 엇인 젭시꽃 ᄇᆞᆯ고롱ᄒᆞ게 지는

ᄌᆞ냑해 질질 ᄆᆞᆼ케멍 허천바레는 올레질

아버지 먼 올레로 들어왐신디사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황금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