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댓불 - 양시연
내일 비가 오려는지 노을이 참 곱다
이런 날 포구는 참았던 말 문 트이고
견디지 못한 그리움 심장마저 붉어진다
처음 나가는 배가 켜고 끝에 오는 배가 끈다는
자구내포구 저 도댓불,
왜 꺼져 있는 걸까
어쩌면 오래전부터 고기잡이 안 나갔나 봐
파도도 기웃대다 스을쩍 그냥 가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한 갯메꽃
노을빛 따라 올라가 제 몸 살라 불 켠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 있기는 있는 걸까
도댓꽃 보려나
위리안치 내 사랑
이 가을 끝물쯤에는 저 불마저 끄고 싶다
♧ 군산 고모 – 김미영
여태껏 흰 빨래는 널어보지 못했다
경암선 철길 따라 다닥다닥 들어선 집
기차도 여기선 슬쩍 신음 한번 하고 간다
‘가수 된다’ ‘가수 된다’
집 밖으로 나돌더니
어느 네온 불빛에 정분이 났나 보다
이따금 생선 내에도 헛구역질할 때 있다
쇠말뚝 돌고 돌 듯 돌고 도는 군산 언저리
먼발치서 등교하는 그 모습만 훔쳐본다
어느새 저렇게 자라 장가간다는 저 녀석
“식장엔 오지 마세요” 툭 내뱉는 외마디
초기 암 진단에도 울부짖던 고모가
‘고맙다’ ‘고맙다’ 하며 끌고 가는 저녁놀
♧ 우수리 - 김현진
어머닌 사과 한 알 사각사각 깎더니만
반 잘라 “네 오빠 줘라”
또 반 잘라 “네 조카 줘라”
나머지 사분의 일 쪽 “니들 나눠 먹어라”
햐! 이것 봐라 그러니까 그게 그런 거로군
장남은 생의 절반,
장손은 또 그의 절반
니들은 나머지란다 우수리 같은 딸들 넷
♧ 돌담 너머 – 강경아
산방산 구름 쓰면 비 온다는 속설 있다
아침녘 발을 돋워 돌담 위로 보는 산
어머닌 산방산 보며 하루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다리 건너 고구마 캐러 가는 날
저 산이 구름 썼는지 보고 오란 어머니
한마디 일기예보에 술렁대는 아침 시간
그렇다면 오늘은 산방산에 구름 썼겠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창문이 날 가둬놓고
갈수록 그리운 땅에 안부를 물어본다
♧ 허천 올레 - 고순심
먼올레로 왐신가
신장 짚은 소곱이서 시상 베꼇더레 걸어 나완
술 ᄒᆞᆫ 잔에 흥창거리는 늦인 낮후제 누렁ᄒᆞᆫ 구두
진진ᄒᆞᆫ ᄌᆞ냑해 자울락거리는 올레 끗뎅인 멀멍도 가차운디
오랜만이 ᄆᆞ실 탓에 웬착으로 ᄒᆞᆫ 발짝 ᄂᆞ단착으로 ᄒᆞᆫ 발짝
이레착저레착 걸어가는 ᄉᆞ랑 기려운 누렝이에 눈공ᄌᆞ가 으슬랑으슬랑
새 신을 신엉 퀴어 보게 폴짝
담돌을 ᄂᆞᆯ아 올르는 ᄎᆞᆷ생이 데멩이가
하늘ᄁᆞ장 가는 이와기
ᄎᆞᆷ생일 ᄎᆞᆽ아가단 강셍이 펀찍ᄒᆞᆫ 하늘더레 죾어대는
게춤 ᄇᆞ뜨는 소리
ᄀᆞᆮ 죽어도 술탓은 아니엥 ᄒᆞ멍 그노무 신 따문이엥 신 따문이엥만
새 신을 신엉 퀴어보게 철퍼덕
푸더지는 누렁이에 설룬 눈빗은
어정어정 지나가는 ᄇᆞᆯ고롱ᄒᆞᆫ ᄌᆞ냑해
구두에 맞인 발이 싯기는 ᄒᆞᆫ 건가
이 시상 왓단 가긴 ᄒᆞ여신가
피어본 적이 엇인 젭시꽃 ᄇᆞᆯ고롱ᄒᆞ게 지는
ᄌᆞ냑해 질질 ᄆᆞᆼ케멍 허천바레는 올레질
아버지 먼 올레로 들어왐신디사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 (황금알,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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