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천단 곰솔과 이약동(李約東) 목사
전날 숙직 근무를 했던 총무가 늦는 바람에, 먼저 출발한 차는 산천단(山川壇)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산천단은 길이 옆으로 비껴 나는 바람에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쉬 들르지 못하는 곳이어서 작년에 시민 답사 팀을 이끌고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처음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 오는 사람은 5∼6백년 된 곰솔 여덟 그루의 위용에 압도되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여기는 한라산에 제를 올리는 제단(祭壇)이 있어서 이 나무들은 바로 신단수(神檀樹)가 되는 셈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제를 올리는 것으로 '한라문화제'를 시작한다.
뒤로 해발 412.8m의 소산오름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이곳 산천단은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선시대 제주에 부임한 목사는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를 올리게 돼 있었는데, 길이 잘 정비되고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과는 달리 산길이 험하고 멀어서 이곳에 제단을 묻고 제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소산오름의 전설은 이곳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잘 대변한다. 고려 예종 때 송나라 호종단이 와서 제주에 명산의 모든 혈(穴 : 풍수지리에서 용맥이 모인 자리)을 잘라 버리고 떠나던 날 밤, 그를 피해 갑자기 솟아났다는…….
이곳에 있는 곰솔 8그루는 높이 19∼23m, 둘레 3∼6m, 나이 5∼6백년으로 우리 나라 곰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곰솔은 소나무과로서 해송 또는 흑송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는 경기도에서 강원도 명주군까지 해변에 분포되어 있으며, 껍질은 흑갈색으로 겨울순이 흰 것이 소나무와 다르다. 제주의 수산 곰솔을 비롯해서 전국에 이름난 천연기념물이 많다. 이곳에다 신단을 모신 것은 1470년(성종1) 이약동 목사이다. 그 때까지 한라산에서 어렵사리 제를 지내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제단을 설치하고 산신제를 지내게 한 것이다.
이약동(李約東) 목사는 청백리로 이름난 분이다. 그는 목사 재직시 부하 벼슬아치들의 부정을 단속하고, 민폐를 없애며 공물(貢物)의 수량을 감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어느 고을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자신의 손에 관물인 말채찍을 들고 있는 것을 깨닫고 돌아가 성루 위에 걸어놓고 온 일이라든가, 귀임 하던 중 배가 파선의 위기에 이르자 누군가가 하늘을 속인 노여움이라 단정하고 배 안을 살펴 몰래 부하들이 넣어둔 갑옷을 찾아내어 강물에 던져버린 투갑연(投甲淵) 일화는 유명하다. 삼홍비리로 시끄러운 요즘, 다시 한 번 새겨볼 만한 일이 아닐까?
(짚신나물과 잠자리)
▲ 궤펜이오름(孤片岳)엔 '산림보호' 철탑이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푸르름이다. 나무란 나무는 모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 초록빛 색소를 뽑아내어 찬란한 태양의 세례를 받고 있다. 잠시 나무 아래로 눈을 돌리니, 산수국이 저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 여름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다. 산수국만이 아니었다. 봄의 전령사 박새도 꽃잎을 접고 씨주머니를 더욱 부풀리고 있다. 제1횡단도로를 통해 오라 골프장을 지나고, 개오리오름, 성진이오름을 지나 성판악 입구까지 내달렸다. 그곳에는 월드컵이 열리는 5∼6월 두 달 동안 한라산 정상을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등산객의 차량으로 가득 차 있다. 자칫 한라산이 훼손될까봐 두렵다.
차를 돌려 다시 500m쯤 내려오다 오른쪽 길이 나 있는 곳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고 숲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표고 재배장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임도(林道)다.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가끔 하늘이 보이는 곳에는 찔레나무가 한창 꽃을 피워 숲에 사는 온갖 벌레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이윽고 한라산 국립공원 팻말이 보인다. 그러니까 입구로부터 이곳까지는 공원에 포함되고 밖으로는 포함 안 되는 셈이다. 이곳이나 저곳이 무엇이 다른가? 우리 일상에서도 이렇듯 금 긋는 일로 말미암아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우콩 꽃)
20여 분쯤 걸었을까? 표고 재배장이 보이는 관리사 마당에 닿았다. 요즘 교통이 좋아져서 집에서 드나드는 바람에 관리사는 많이 헐고 낡았다. 마당 옆에 심어 놓은 양하와 머위는 아직도 연해서 뜯어먹을 만하다. 마당 가운데 서너 그루의 참빗살나무가 있는데 가을에 와보면 장관을 이룬다. 잎은 차차 붉은 빛으로 물들면서 떨어져 버리고, 나무 가득 달린 열매가 잘 익은 속살을 터트려 가을 햇빛 속에서 황홀하게 타오른다. 잠시 그 나무 그늘에 앉아서 숲 사이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궤펜이오름을 바라본다.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산137-1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해발 791.2m, 비고 167m, 둘레 2,633m의 궤펜이오름은 두 개의 작은 오름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봉우리마다 산상의 원형 화구를 가지고 등성이로 이어지는데, 동쪽 것이 주봉(主峰)이고 가운데가 샛궤펜이, 서쪽의 것을 서궤펜이라 따로 부른다. 주봉은 사면이 꽤 가파르면서 북동사면 아래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는 높이와 폭을 가진 용암굴이 있다. 제주어에서 '궤'는 '바위굴', '펜'은 '패인'인 걸로 보아 '바위굴이 패여 있는 오름'이란 이름의 어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마당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 계곡을 건너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비스듬히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길 따라 오름엘 오른다. 초피나무의 진한 향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한창 물이 올라 짙어진 이 잎사귀는 제주도의 명물 자리돔 물회에 넣으면 그만이다. 등성이를 따라 정상에 올랐더니 그곳에는 커다란 철탑 두 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정도면 오름 속 깊숙이 쇠기둥이 박혔을 터, 이곳에 이걸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아프다. 이것은 제주시의 전파를 받아 동남쪽 성산읍과 표선면, 남원읍에 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저희들도 멋쩍었는지 바탕에 초록색을 칠하고 흰 페인트로 '산림보호'라고 써놓았다.
(으아리꽃)
▲ 이양하의 '나무'를 꿈꾼 넙거리오름[廣街岳, 광가악]
모여 앉아 맥주로 목을 축인 일행은 철탑 주변에서 멍석딸기를 몇 알씩 따서 입에 넣고 시큼 달콤한 맛을 즐기며 산을 내려온다. 두릅나무는 이제 그 싹을 크게 키워버려 인간 탐욕의 손길을 벗어났고, 들판의 것보다 높게 자라 아예 손이 닿질 않는다. 이따금씩 늦게 핀 천남성이 고개 숙여 나그네를 반긴다. 내려오다 뜬금 없는 자동차의 바퀴를 발견했다. 이 깊은 숲 속에 웬 자동차인가 싶어 사방을 둘러보니, 서어나무가 일정한 크기로 잘려 있는 것이 아닌가? 표고 재배사 앞에 벌채 허가 간판이 보이더니, 표고 재배에 쓰려고 베어놓은 것이다.
표고 재배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는 참나무와 서어나무인데, 이들은 섞여 자란다. 그런데 참나무가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마구 베기만 했지 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한라산의 표고 재배장은 거의 황폐해 버렸다. 좋다고 잘라 이용하기만 했지 다음을 생각해서 심지 않은 결과가 빚어놓은 뻔한 결과인 것이다. 다 자란 나무를 골라 베어버리고 엉뚱한 삼나무만 마구 심지말고 수입 중 일부를 투자해서 참나무 묘목을 길러 심을 생각은 왜 못했을까? 그 전에 이곳으로 들어오다가 중국에서 수입해 쌓아놓은 참나무를 보면서 씁쓸해 했던 기억이 머리를 쳤다.
(더덕꽃)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산137-1번지 일대에 자리한 넙거리오름은 궤펜이오름보다 훨씬 서쪽에 위치해 있어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오다가 중간쯤에서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810m에 달하지만 원래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비고는 100m밖에 안 되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오름은 2개의 말굽형 화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화구는 오름 서쪽 사면으로 이어져 이따금씩 제1횡단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린다. 큰 말굽형 화구는 동북향으로 벌어지고, 작은 말굽형 화구는 서향으로 터져 있다고는 하나 나무가 우거져 있어 도저히 확인을 못하겠다.
음식을 먹고 식곤증이 도는지, 모두들 나무 아래에 벌렁 자빠져 큰 대자로 눕는다. 나도 어젯밤 여러 번 깨어 어머님 시중을 들어 졸린 바람에 머리를 붙이자마자 잠에 빠진다. 꿈속에서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있었다. 이양하 선생의 수필 '나무'의 영향인 듯 하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意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輪廻說)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누구가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빨리 내려가서 월드컵 경기를 보잔다.
(2002년 6월 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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