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새에 관한 명상(冥想)(1) 멧비둘기

김창집 2002. 5. 25. 07:59
' ♡♥ 멧비둘기, 그 사랑의 추억

` "꾹-꾹-꽈-꽈--. 꾹-꾹-꽈-꽈--."
` 아침 별도봉 산책로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멧비둘기 울음소리--. 오늘처럼 안개 자욱한 날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발을 멈추고 소리나는 곳을 가만히 응시한다. 보인다. 회자색 바탕에 목 양쪽으로 회청색의 굵은 무늬. 흑갈색 날개깃과 꽁지깃. 참으로 우울한 빛깔이다. 가슴과 목을 한껏 부풀리고 고개를 조금 내밀어 다시 울기 시작한다. 원래 사전에는 산비둘기라 하지 않고, 멧비둘기로 나온다. 선인들은 이 비둘기 소리를 그냥 '꾹꾹'이라는 의성어로 표현하였는데, 어떤 사전에는 "데데 뽀-뽀-, 데데 뽀- 뽀-."적혀 있다.
` "꾹-꾹-꽈-꽈--. 꾹-꾹-꽈-꽈--." 가만히 보니, 짝을 부르는 눈치다. 눈이 좋기로 이름난 비둘기과인 이 놈들도 역시 짝이 떨어져 있거나 이렇게 안개가 낀 날이면 어쩔 수가 없구나. 이심전심 뜻이 서로 통하기 전에는…. 문제는 집이 없어서였다. 집이 있었다면 이렇게 수고롭게 부르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저 부르는 놈이 암놈인지 수놈인지 구별이 서질 않는다. 대부분의 새는 수놈이 화려한 치장을 한다. 그러나 이놈들은 그렇지 못하다.

` 쟝 콕토를 몹시 좋아하던 소녀가 있었다. 쟝 콕토 특유의 소녀 취향 짧은 시편들이 그녀를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그 중에도 '산비둘기'는 그녀가 제일 아끼던 시였다. "산비둘기 두 마리가 / 서로 사랑을 했답니다. / ……………………… / 그러나, 그 다음은 / 말할 수 없지요."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둘만의 사랑, 그리고 말없음표로 이어지는 그들의 사연, 그런데 그 결과를 말할 수 없다는 걸 보면서 꼭 행복한 것 같지만은 않아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 처음에 나는 멧비둘기 울음소리를 무적(霧笛)으로 여기고 있었다. 안개 자욱한 아침이면 어디선지 힘차게 울려오는 소리…. 그런데 무적은 뱃고동소리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서부터 의심을 품고 살피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문득 가까이서 들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안전 항해를 위한 멧비둘기의 무적이다. 그들이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안개가 낀 날이면, 어김없이 주고받는 사인이었던 것이다.
` 사실 난 시에 나오는 멧비둘기가 무척 아름다울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었다. 그 아기자기한 사랑을 나누는 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름다운 멧비둘기를 꿈꿨다. 그런데,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새의 모습은 나를 적이 실망시켰다. 왜 하필 저런 칙칙한 색이어야 하는가? 게다가 암수 서로 같은 둥우리에서 지내지도 않는 것 같았다. 쟝 콕토를 좋아하던 소녀는 멧비둘기처럼 날아가 버렸다.

` 작년 여름이었다. 교실 사이에 자리한 학생부 교무실에서 우연찮게 멧비둘기 둥우리를 발견하였다. 2층 남쪽 편에 위치하면서, 왼쪽 교실 부분이 북쪽으로 조금 물러난 곳이어서 동쪽으로 난 창 아래 향나무에다 둥지를 틀었다. 북풍과 서풍은 바로 막을 수 있는데 사람들의 눈에 잘 띨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한낱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내가 다른 선생님에게 그곳을 가리켰지만 쉽게 찾는 분이 없었다. 그제야 멧비둘기의 몸 빛깔이 왜 그런 색이어야 하는가를 알았다. 보호색이었다. 나같이 이것저것 꼼꼼히 살피는 사람의 눈에나 보이는.
`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둥지를 보니, 마른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두른 엉성한 둥지 안에는 동그란 알 두 개가 몸을 비비고 있었다. 만지면 몹시 따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갈 수가 없었다. 아니 만져서는 안된다. 그래 충동을 참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 다음부터 학생부 교무실 복도를 거쳐 수업을 오갈 때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고, 들여다 볼 때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르는 멧비둘기가 자리를 지켜 알을 품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그 질긴 모성애를 자랑이나 하는 듯이 후줄그레하게 젖은 깃을 털 생각도 않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 밤새 태풍이 몰아친 날 아침이었다. 나는 걱정이 되어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학교에 도착하여 가보니, 나뭇가지가 하나 잘려져 나갔는데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버티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도 보이질 않고 죽은 듯이 있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기미를 느꼈는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기에 내가 머쓱해져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새끼를 위한 절실한 몸부림이었다.
` 며칠 후 자리를 비웠기에 바라보았더니 털이 하나도 없는 새빨간 새끼 두 마리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바짝 엎드려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어미 새가 날아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입 속에서 암죽 같은 것을 토해 하늘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새끼 두 마리에게 번갈아 먹여준다. 젖이 없는 새여서 콩이나 식물성 먹이를 뱃속에서 반은 소화시켜 먹이는 것이리라. 새끼들은 이런 어미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 다시 밤새 태풍이 불었다. 이번엔 나무가 꺾어지고 간판이 날고 창문이 들썩거린다. 나는 집에서 그 새끼들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일어나자마자 학교로 갔다. 새집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이곳 저곳 화단 풀밭을 뒤졌다. 발 앞에서 무언가가 주억거렸다. 깜짝 놀라 뱀인 줄 알고 물러서 보았더니, 두 새끼를 품은 어미새가 가까이 다가서는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내밀고 쪼아대는 것이었다.
` 나는 이들을 옮겨 피신시키려고 꽃바구니를 들고 옆에 가서 주억거렸다. 그러나, 어미 멧비둘기는 이러한 나를 향해 푸다닥거리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식들을 보호하려는 이 거룩한 본능에 손을 들고 말았다. 누가 이 커다랗고 거무튀튀하게 생긴 이 새를 밉다고 하겠는가. 이는 알을 품으면서 철저히 자신을 감춰 종족 보존을 하기 위한 보호색이 아닌가. 그 후 이들 세 모자(母子)는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 그 후 나는 그 일을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학생부 교무실에 갔다가 문득 그 나무를 쳐다봤더니, 거의 크기가 같은 멧비둘기 세 마리가 앉아 있었다.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 날 그 헌신적인 모성애를 방패로 태풍을 이겨낸 자랑스런 새끼 두 마리가 위풍도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너무도 흐뭇했다. 그 기쁨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동전을 바꿔다 학생부 선생님들에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 돌렸다. 국어 시간 30분을 모성애 얘기로 할애했음은 물론이다.
' 근래 들어 신문 사회면에서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 버린 매정한 부모의 기사를 보면서 다시금 분노를 느낀다. 자기만 살려고-, 이 새보다도 못한…….

' ♧♣ 사진은 멧비둘기 알과 다 자란 새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