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 충북-제주 문화예술교류 행사 참가기
▲ 교류를 통한 정체성 찾기
충북과 제주.
육지로 에워싸인 땅과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만남.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오가는 이색적인 교류가 이루어진 지 네 번째로 치르는 행사.
예정보다 늦은 시각에 충북 민예총 소속 문화 예술인 50여명이 제주로 건너왔다.
제5호 태풍 라마순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가로질러 간 7월6일(토요일).
청주 공항의 비구름 때문에 아침 비행기 뜨는 시간은 자꾸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예정된 행사 때문에 잔치를 준비한 제주 민예총 회원들은 노심초사,
공항에서 비행기 뜨기만을 기다리는 마음 들뜬 충북 회원들은 더 불안했으리라.
제주 쪽도 날씨가 고르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 태풍의 여파로 비를 뿌린다.
'바람, 자연, 삶의 공동체'를 주제로 양쪽 공연이 예정된 제주시 해변공연장에선
도저히 공연이 무리일 것 같아 문예회관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기기로 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충북 쪽 '도종환 민예총 지회장의 인사말'의 일부.
"제주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 거리도 그렇고 심리적 거리도 많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주와 충북은 단순히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바다가 전혀 없는 내륙이라는 이질적 특성의 상호 보완이라는 이유로 의기투합하여 만남을 시작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질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두 지역의 만남은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변방, 소외와 단절이라는 역사적 특징을 공유한 지역의 만남이라는 동류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립으로부터 싹터온 자긍심과 고집, 푸대접받고 천대받으면서 형성된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아이덴티티, 늘 먼 발치에 서서 문화권력과 사람과 조직이 왁자지껄하게 움직이는 서울을 바라보며 키워온 토종의식, 그런 공통분모가 두 지역을 가깝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발 디디고 선 이곳이 가장 치열하게 몸을 던지며 살아야 할 곳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 서 있으며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일인가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의 내용에 있어서도 두 지역은 함께 하는 것도 많습니다. 다만 이런 만남의 기쁨도 소중하지만 자주 만나다 보면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게 사람이어서 우리가 왜 만나는가 하는 점을 늘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교류가 계속되는 동안 그것이 생산적인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 지역의 민속, 언어, 지리, 생태, 역사 등 문화 외적인 부문의 학술 교류까지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강을 낳고 바람을 길러
1시간 전에야 겨우 비행기가 도착하여 제주 국제공항에서 민예총 4층 강당으로 바로 자리를 옮겨 예정된 '충북 - 제주 문화예술 세미나'를 무난히 치를 수 있었다. "충북 - 제주 문화예술 교류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를 갖고 2시부터 김수열 제주민예총 부지회장의 사회로 시작, 박경훈 제주민예총 부지회장과 도종환 충북 민예총 지회장의 기조 발제가 있었고, 양쪽 4사람씩의 지정 토론이 있었다. 어렵게 오가며 만나는 것이니 만큼 양쪽의 문화적 특성을 비교 연구하여 두 지역의 문화발전 방향을 모색하자는 결론이었다.
세미나를 끝낸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문로를 걸어 나와 중앙로를 거쳐 세종 갤러리로 갔다. 세 번을 오가는 동안 이미 친해진 회원들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즐거워 한다. 세종 갤러리에는 7월1일부터 미술 교류 행사인 "풍토 - 바람 땅, 구름 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용은 제주의 자연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가 바라보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통해 들려주는 충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3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 전시되어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벌써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어 그곳에 마련된 조촐한 자리에서 공동시집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제주작가회의(회장 고정국)와 충북작가회의(회장 허장무)가 공동으로 만든 시집 <강을 낳고 바람을 길러>는 교류 첫해에 출간한 <잠들지 않는 섬, 깨어 있는 산>에 이어 두 번째다. 재작년엔 공동 소설집을, 작년에는 공동 희곡집을 낸 바 있다. 이날 펴낸 작품집은 2002년 '산의 해'를 맞아 섬과 내륙의 역사와 산천을 노래한 시 120여 편을 담은 것이다. 음악 반주에 시 낭송을 들으며 마시는 막걸리가 유난히 맛이 있었다.
그곳을 나온 일행은 삼성혈과 제주 민속자연사 박물관 앞을 지나 신산공원을 거쳐 '바람, 자연, 삶의 공동체'를 주제로 공연이 펼쳐지는 문예회관 소극장으로 갔다. 먼저 제주민예총 민요패 '소리왓'의 민요극 '우리 할망넨 영 살았수다' 공연이 있었고, 충북민예총의 풍물굿패 '씨알누리'의 풍물 공연 '무속 사물과 바라춤', 노래모임 '민들레의 노래'의 '먼길', '사랑', '아버지', '선화와 영애의 이중창' 열창에 이어 저항의 의미를 담은 록밴드 'JOE'의 '세상 속엔', '존재', '미인', '세상만사' 등의 연주는 일반 가요에 조금 식상한 나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 52년 묵은 원혼의 한(恨) 달래준 4. 3 기행
그 놈의 정(情)이 문제였다. 지난 밤 탑동 수산 회센타에서 저녁 식사 겸 뒤풀이를 마련해 정을 확인하며 마시기 시작한 술로 제주시를 반 바퀴 돌며 날밤을 세운 회원들 때문에 7일(일요일) 9시 반에 출발해야 할 '내륙 사람들과 함께 찾는 1948년 4. 3 문화 역사 기행'을 1시간 늦게 만들었다. 어쩌다 2대의 버스 중 선도차의 안내를 담당하게 된 나는 대부분의 충북 회원들을 위해 바다를 좀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생각은 지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바다 빛을 칙칙하게 만들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10시에 출발한 앞차에서 나는 뒷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천천히 달리게 하면서 주로 제주의 자연을 소개했다. 자연히 바다와 오름, 그리고 차창 너머 피어 있는 들꽃들이 주제가 되었다. 밭작물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 그쪽으로도 이야기가 오갔다. 제주시 외곽지에는 참깨, 콩, 녹두, 신엄리 주변에서는 수박과 참외, 애월에서는 참취가 많이 보였고, 한림을 지나면서부터는 한창 노랗게 피어 있는 손바닥선인장이 인기였다. 그리고, 대정읍 해안지대에서는 태풍 라마순이 할퀴고 지나가 해수(海水) 때문에 온통 시들어버린 곡식을 바라보며 모두 가슴 아파했다.
처음 머문 곳은 수월봉이었다. 1시간을 차에서 보낸 충북지역 회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해안 풍경에 취해 돌아올 줄을 모른다. 5시 비행기표를 예약해 4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모든 설명을 하기로 하고 잠시나마 마음껏 바다를 즐기게 내버려두었다. 안개가 아쉬웠지만 맑은 공기와 바닷바람은 이들을 한껏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예정되었던 알뜨르 비행장과 백조일손 학살터인 섯알오름, 그리고 송악산 오르는 일은 취소되고, 오늘 주 행사인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바로 백조일손지지로 갔다.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예비검속으로 검거되어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한 132구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놓은 곳이다. 6. 25가 일어나자 당시 이승만 정부는 무고한 양민들과 보도연맹원, 4. 3 당시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람 등 다수를 '예비검속'이란 명분으로 검거 대량학살을 감행한다. 그 중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시신들은 몇 해가 지나도록 수습하지 못하게 해서 시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돼버렸다. 뒤에 후손들이 모여 대충 뼈를 맞추었으나 누구의 시신인지 알 수 없어 조상은 132분인데 후손들은 모든 무덤을 조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상징적으로 붙인 이름이 백조일손이다.
'52년 동안 묵힌 한(恨), 편히 보내주시옵소서.’ 이날 참가한 예술인 100여 명은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냈다. 이 행사는 처음으로 타 지역민이 주관해 치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행사는 충북 민예총 김순영 시인의 조시 낭독과 풍물굿패 '씨알누리'의 위령 풍물굿, 춤패 '너울'의 살풀이춤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49재'의 뜻을 살려 원혼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토우(土偶)' 49개를 묘역 한쪽에 묻는 의식을 통해 50여 년 동안 풀지 못한 원혼의 넋을 달랬다. 토우를 제작한 충북민예총의 김만수 씨는 "뼈가 뒤엉켜 있던 원혼 132명의 팔과 다리를 다시 찾아내 따로따로 묻어주는 해원(解寃)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이 날 위령제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조정배 백조일손유족회장과 충북, 제주 민예총 지회장이 삼헌관이 되어 진행되었는데, 조 회장은 "억울하게 희생된 이후 귀양풀이를 못했는데, 조상에 대한 해원의 뜻을 갖는 이처럼 뜻 있는 위령 행사는 과거엔 없었다"며 고마워했다. 위령제를 마친 일행은 산방산이 내다뵈는 사계리 수눌음식당에서 해물탕과 청주에서 공수된 대추술로 점심을 들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래도 그냥 갈 수 있느냐는 눈치여서 이웃한 화순해수욕장에서 30여분간 바다 구경을 시켰다. 바다를 보자마자 못 참은 장문석 시인을 비롯한 충북의 몇몇 회원이 옷을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 충북 시인 김순영 씨가 '제주작가' 홈페이지에 보내온 글
<조시(弔詩)> * 헝크러진 바람이여
---백조일손영령 위령제에 부쳐/ 김순영(들레)
오름에는 들꽃들의 재잘거림만 있습니다
그 향기 맡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배반의 역사 가득 담은 산담 구멍구멍마다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것도 모른 채
눈치 없는 바람만 즐겁습니다
-일백 할아버지가
한 날, 한 시에,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었으니
한 자손이 되었다-는 것을 모슬포(못살포)
앞 바다 파도들이 날마다 전하는 소리를
우리는 아프게 듣고 있습니다
불순분자라니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니요
백조일손(百祖一孫)은 모슬포에만 있습니다
엊저녁 서러움에 취한 방파제처럼
흰 옷 입은 지서 급사가 산담 허문 것을 지켜보셨나요
흰 옷 입고 국화꽃 한 송이 거두었다고 당신의 손자가
고막이 터지도록 얻어맞는 소리를 들으셨나요
그것이 서러워 철커덕 철커덕 방아쇠 소리 들으셨나요
송악산 섯알오름 구비마다 당신의 피맺힌 울음소리 들리구요
우리는 당신의 흔적으로 붉게 피어난
'피뿌리풀꽃' 한 아름 슬프게 안고 있습니다.
자손들이여!
포효하는 역사여!
모슬포 파도소리를 거두어라
오름으로 흘러내린 녹슨 피를 거두어라
통곡하는 섬나라에 고요히 잠들어라
누덕누덕 기워진 억울함이여!
헝크러진 바람이여!
* * *
추신 : 제주 민예총 식구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공항을 떠나오면서 아쉽고 행복한 마음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늘 높이 떠올라 내려다보는 제주는
환상의 섬이었습니다.
멀리 한라산이 구름으로 치마를 두르고
언뜻 언뜻 달려오는 반듯한 도로와
아직도 공항 앞마당에서 손을 흔들고 서 계실
제주민예총 식구들 얼굴이 보이는 듯도 하더이다.
겨우 하룻밤 거했는데 일주일은 지난 듯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제주 식구들의 아낌없는 사랑이었습니다.
- 얼마 살지 않았지만 -
난생 처음 타 보는 비행기와
난생 처음 흐림 위에 맑게 갠 하늘을 보았고
난생 처음 산담을 보았고
난생 처음 길거리 선인장도 보았고
난생 처음 옥빛 바다를 보았고
난생 처음 푸짐한 접대를 받았고
난생 처음 게웃젓도 맛보았고
난생 처음 제주방언을 실컷 들을 수 있었고
난생 처음 정말 행복하다는 느낌은
무엇으로 살까?
무엇과 바꿀까?
정말정말 행복했습니다.
빨리빨리 제주도로 이사 갈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세요.
---샬롬!/들레
<사진> 위는 자구내에서 수월봉을 바라본 것이고, 아래는 김만수 씨가 전시회에 출품한 토우 사진인데, 백조일손지지에 묻은 것과 비슷한 이미지다.


▲ 교류를 통한 정체성 찾기
충북과 제주.
육지로 에워싸인 땅과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만남.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오가는 이색적인 교류가 이루어진 지 네 번째로 치르는 행사.
예정보다 늦은 시각에 충북 민예총 소속 문화 예술인 50여명이 제주로 건너왔다.
제5호 태풍 라마순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가로질러 간 7월6일(토요일).
청주 공항의 비구름 때문에 아침 비행기 뜨는 시간은 자꾸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예정된 행사 때문에 잔치를 준비한 제주 민예총 회원들은 노심초사,
공항에서 비행기 뜨기만을 기다리는 마음 들뜬 충북 회원들은 더 불안했으리라.
제주 쪽도 날씨가 고르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 태풍의 여파로 비를 뿌린다.
'바람, 자연, 삶의 공동체'를 주제로 양쪽 공연이 예정된 제주시 해변공연장에선
도저히 공연이 무리일 것 같아 문예회관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기기로 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충북 쪽 '도종환 민예총 지회장의 인사말'의 일부.
"제주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 거리도 그렇고 심리적 거리도 많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주와 충북은 단순히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바다가 전혀 없는 내륙이라는 이질적 특성의 상호 보완이라는 이유로 의기투합하여 만남을 시작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질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두 지역의 만남은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변방, 소외와 단절이라는 역사적 특징을 공유한 지역의 만남이라는 동류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립으로부터 싹터온 자긍심과 고집, 푸대접받고 천대받으면서 형성된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아이덴티티, 늘 먼 발치에 서서 문화권력과 사람과 조직이 왁자지껄하게 움직이는 서울을 바라보며 키워온 토종의식, 그런 공통분모가 두 지역을 가깝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발 디디고 선 이곳이 가장 치열하게 몸을 던지며 살아야 할 곳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 서 있으며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일인가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의 내용에 있어서도 두 지역은 함께 하는 것도 많습니다. 다만 이런 만남의 기쁨도 소중하지만 자주 만나다 보면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게 사람이어서 우리가 왜 만나는가 하는 점을 늘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교류가 계속되는 동안 그것이 생산적인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 지역의 민속, 언어, 지리, 생태, 역사 등 문화 외적인 부문의 학술 교류까지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강을 낳고 바람을 길러
1시간 전에야 겨우 비행기가 도착하여 제주 국제공항에서 민예총 4층 강당으로 바로 자리를 옮겨 예정된 '충북 - 제주 문화예술 세미나'를 무난히 치를 수 있었다. "충북 - 제주 문화예술 교류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를 갖고 2시부터 김수열 제주민예총 부지회장의 사회로 시작, 박경훈 제주민예총 부지회장과 도종환 충북 민예총 지회장의 기조 발제가 있었고, 양쪽 4사람씩의 지정 토론이 있었다. 어렵게 오가며 만나는 것이니 만큼 양쪽의 문화적 특성을 비교 연구하여 두 지역의 문화발전 방향을 모색하자는 결론이었다.
세미나를 끝낸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문로를 걸어 나와 중앙로를 거쳐 세종 갤러리로 갔다. 세 번을 오가는 동안 이미 친해진 회원들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즐거워 한다. 세종 갤러리에는 7월1일부터 미술 교류 행사인 "풍토 - 바람 땅, 구름 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용은 제주의 자연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가 바라보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통해 들려주는 충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3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 전시되어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벌써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어 그곳에 마련된 조촐한 자리에서 공동시집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제주작가회의(회장 고정국)와 충북작가회의(회장 허장무)가 공동으로 만든 시집 <강을 낳고 바람을 길러>는 교류 첫해에 출간한 <잠들지 않는 섬, 깨어 있는 산>에 이어 두 번째다. 재작년엔 공동 소설집을, 작년에는 공동 희곡집을 낸 바 있다. 이날 펴낸 작품집은 2002년 '산의 해'를 맞아 섬과 내륙의 역사와 산천을 노래한 시 120여 편을 담은 것이다. 음악 반주에 시 낭송을 들으며 마시는 막걸리가 유난히 맛이 있었다.
그곳을 나온 일행은 삼성혈과 제주 민속자연사 박물관 앞을 지나 신산공원을 거쳐 '바람, 자연, 삶의 공동체'를 주제로 공연이 펼쳐지는 문예회관 소극장으로 갔다. 먼저 제주민예총 민요패 '소리왓'의 민요극 '우리 할망넨 영 살았수다' 공연이 있었고, 충북민예총의 풍물굿패 '씨알누리'의 풍물 공연 '무속 사물과 바라춤', 노래모임 '민들레의 노래'의 '먼길', '사랑', '아버지', '선화와 영애의 이중창' 열창에 이어 저항의 의미를 담은 록밴드 'JOE'의 '세상 속엔', '존재', '미인', '세상만사' 등의 연주는 일반 가요에 조금 식상한 나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 52년 묵은 원혼의 한(恨) 달래준 4. 3 기행
그 놈의 정(情)이 문제였다. 지난 밤 탑동 수산 회센타에서 저녁 식사 겸 뒤풀이를 마련해 정을 확인하며 마시기 시작한 술로 제주시를 반 바퀴 돌며 날밤을 세운 회원들 때문에 7일(일요일) 9시 반에 출발해야 할 '내륙 사람들과 함께 찾는 1948년 4. 3 문화 역사 기행'을 1시간 늦게 만들었다. 어쩌다 2대의 버스 중 선도차의 안내를 담당하게 된 나는 대부분의 충북 회원들을 위해 바다를 좀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생각은 지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바다 빛을 칙칙하게 만들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10시에 출발한 앞차에서 나는 뒷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천천히 달리게 하면서 주로 제주의 자연을 소개했다. 자연히 바다와 오름, 그리고 차창 너머 피어 있는 들꽃들이 주제가 되었다. 밭작물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 그쪽으로도 이야기가 오갔다. 제주시 외곽지에는 참깨, 콩, 녹두, 신엄리 주변에서는 수박과 참외, 애월에서는 참취가 많이 보였고, 한림을 지나면서부터는 한창 노랗게 피어 있는 손바닥선인장이 인기였다. 그리고, 대정읍 해안지대에서는 태풍 라마순이 할퀴고 지나가 해수(海水) 때문에 온통 시들어버린 곡식을 바라보며 모두 가슴 아파했다.
처음 머문 곳은 수월봉이었다. 1시간을 차에서 보낸 충북지역 회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해안 풍경에 취해 돌아올 줄을 모른다. 5시 비행기표를 예약해 4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모든 설명을 하기로 하고 잠시나마 마음껏 바다를 즐기게 내버려두었다. 안개가 아쉬웠지만 맑은 공기와 바닷바람은 이들을 한껏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예정되었던 알뜨르 비행장과 백조일손 학살터인 섯알오름, 그리고 송악산 오르는 일은 취소되고, 오늘 주 행사인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바로 백조일손지지로 갔다.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예비검속으로 검거되어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한 132구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놓은 곳이다. 6. 25가 일어나자 당시 이승만 정부는 무고한 양민들과 보도연맹원, 4. 3 당시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람 등 다수를 '예비검속'이란 명분으로 검거 대량학살을 감행한다. 그 중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시신들은 몇 해가 지나도록 수습하지 못하게 해서 시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돼버렸다. 뒤에 후손들이 모여 대충 뼈를 맞추었으나 누구의 시신인지 알 수 없어 조상은 132분인데 후손들은 모든 무덤을 조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상징적으로 붙인 이름이 백조일손이다.
'52년 동안 묵힌 한(恨), 편히 보내주시옵소서.’ 이날 참가한 예술인 100여 명은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냈다. 이 행사는 처음으로 타 지역민이 주관해 치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행사는 충북 민예총 김순영 시인의 조시 낭독과 풍물굿패 '씨알누리'의 위령 풍물굿, 춤패 '너울'의 살풀이춤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49재'의 뜻을 살려 원혼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토우(土偶)' 49개를 묘역 한쪽에 묻는 의식을 통해 50여 년 동안 풀지 못한 원혼의 넋을 달랬다. 토우를 제작한 충북민예총의 김만수 씨는 "뼈가 뒤엉켜 있던 원혼 132명의 팔과 다리를 다시 찾아내 따로따로 묻어주는 해원(解寃)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이 날 위령제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조정배 백조일손유족회장과 충북, 제주 민예총 지회장이 삼헌관이 되어 진행되었는데, 조 회장은 "억울하게 희생된 이후 귀양풀이를 못했는데, 조상에 대한 해원의 뜻을 갖는 이처럼 뜻 있는 위령 행사는 과거엔 없었다"며 고마워했다. 위령제를 마친 일행은 산방산이 내다뵈는 사계리 수눌음식당에서 해물탕과 청주에서 공수된 대추술로 점심을 들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래도 그냥 갈 수 있느냐는 눈치여서 이웃한 화순해수욕장에서 30여분간 바다 구경을 시켰다. 바다를 보자마자 못 참은 장문석 시인을 비롯한 충북의 몇몇 회원이 옷을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 충북 시인 김순영 씨가 '제주작가' 홈페이지에 보내온 글
<조시(弔詩)> * 헝크러진 바람이여
---백조일손영령 위령제에 부쳐/ 김순영(들레)
오름에는 들꽃들의 재잘거림만 있습니다
그 향기 맡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배반의 역사 가득 담은 산담 구멍구멍마다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것도 모른 채
눈치 없는 바람만 즐겁습니다
-일백 할아버지가
한 날, 한 시에,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었으니
한 자손이 되었다-는 것을 모슬포(못살포)
앞 바다 파도들이 날마다 전하는 소리를
우리는 아프게 듣고 있습니다
불순분자라니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니요
백조일손(百祖一孫)은 모슬포에만 있습니다
엊저녁 서러움에 취한 방파제처럼
흰 옷 입은 지서 급사가 산담 허문 것을 지켜보셨나요
흰 옷 입고 국화꽃 한 송이 거두었다고 당신의 손자가
고막이 터지도록 얻어맞는 소리를 들으셨나요
그것이 서러워 철커덕 철커덕 방아쇠 소리 들으셨나요
송악산 섯알오름 구비마다 당신의 피맺힌 울음소리 들리구요
우리는 당신의 흔적으로 붉게 피어난
'피뿌리풀꽃' 한 아름 슬프게 안고 있습니다.
자손들이여!
포효하는 역사여!
모슬포 파도소리를 거두어라
오름으로 흘러내린 녹슨 피를 거두어라
통곡하는 섬나라에 고요히 잠들어라
누덕누덕 기워진 억울함이여!
헝크러진 바람이여!
* * *
추신 : 제주 민예총 식구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공항을 떠나오면서 아쉽고 행복한 마음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늘 높이 떠올라 내려다보는 제주는
환상의 섬이었습니다.
멀리 한라산이 구름으로 치마를 두르고
언뜻 언뜻 달려오는 반듯한 도로와
아직도 공항 앞마당에서 손을 흔들고 서 계실
제주민예총 식구들 얼굴이 보이는 듯도 하더이다.
겨우 하룻밤 거했는데 일주일은 지난 듯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제주 식구들의 아낌없는 사랑이었습니다.
- 얼마 살지 않았지만 -
난생 처음 타 보는 비행기와
난생 처음 흐림 위에 맑게 갠 하늘을 보았고
난생 처음 산담을 보았고
난생 처음 길거리 선인장도 보았고
난생 처음 옥빛 바다를 보았고
난생 처음 푸짐한 접대를 받았고
난생 처음 게웃젓도 맛보았고
난생 처음 제주방언을 실컷 들을 수 있었고
난생 처음 정말 행복하다는 느낌은
무엇으로 살까?
무엇과 바꿀까?
정말정말 행복했습니다.
빨리빨리 제주도로 이사 갈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세요.
---샬롬!/들레
<사진> 위는 자구내에서 수월봉을 바라본 것이고, 아래는 김만수 씨가 전시회에 출품한 토우 사진인데, 백조일손지지에 묻은 것과 비슷한 이미지다.
'향토문화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눌음의 지혜 (0) | 2002.08.14 |
---|---|
제주의 미륵을 찾아서 (0) | 2002.08.05 |
새에 관한 명상 (4) 뻐꾸기 (0) | 2002.05.28 |
새에 관한 명상(冥想) (2) 제비 (0) | 2002.05.25 |
새에 관한 명상(冥想)(1) 멧비둘기 (0) | 2002.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