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가을의 길목에서

김창집 2002. 9. 1. 07:56

빈네오름 답사기

 

▲ 통통히 알이 밴 억새, 가을을 준비하고

바리메 정상에서 입가심한 것 때문에 12시가 다 되었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 조그만 오름을 하나 더 오르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정해진 오름이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산5-2번지 화전마을에 있는 빈네오름. 표고가 658.6m, 비고 93m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오름이다. 오름 정상에 박혀 있는 바위가 쪽진 머리에 빈네('비녀'의 제주방언)를 꽂은 모습으로 보인다는 데서 붙여졌다는데, 한자로는 '비녀 채(釵)'자나 '비녀 잠(簪)'자를 써서 '채악(釵岳)', '잠악(簪握)' 등으로 표기해 놓은 문헌들이 보인다. 바리메 정상에서 우리가 갈 빈네오름을 바라보니 남서쪽 벌판에 나직이 엎드려 있다. 까맣게 보이는 것은 소나무가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서부관광도로에서 새별오름을 지나 오른쪽으로 빠진 후 화전마을로 가는 굴다리를 지나자 나인브릿지 골프장 입구 표지판이 서 있다. 들어가는 길에는 알이 통통히 밴 억새들이 길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서귀포에서 일을 마치고 합류하겠다는 회원을 기다리며 잠시 쉬는 동안에 길섶에 있는 억새 심을 하나 뽑아 껍질을 벗기니 하얀 이삭이 드러난다. 연한 속살은 입에 넣자마자 미묘한 향이 느껴지며 달콤하게 넘어간다. 이 억새 삘기는 어렸을 적 많이도 먹었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 곡식이 이삭을 부풀리기 시작할 무렵 들판을 누빌 때면 심심풀이 땅콩을 먹듯 양손 가득히 빼들고 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렇게 억새도 서서히 가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험난한 길과 산악지대를
달리며
흘린 땀방울만큼의 성취감과
젊음을 다시 만끽하며
푸릇푸릇한 소녀의 뺨을
스쳐 가는
바람을 바라보며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산림도로를 지나
비포장 길을 달려
아스팔트길로 들어서면
모텔에서는 불빛이 흘러나오고
요란한 음악 소리가 귀를 때리면
당신은
땀과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채
턱까지 차 오르는 호흡을 내쉬며
험난한 먼지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지 않는가

---홍천안 「억새풀 속을 달리다 보면은」일부


▲ 이 세상에 길이 없는 곳은 없다

억새 틈에는 물레나물이 노랗게 피어나고 고들빼기도 겅중하게 대를 세워 우리를 맞는다. 옛날 4. 3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화전마을에는 다시 복원된 집들이 몇 채 서 있고, 옛 화전분교 터를 알려주기나 하듯 조꽃과 원추리, 무궁화, 샤프란, 칸나 등이 길섶을 지키는데, 곰취나물과 양하도 자라고 있었다. 한 토종닭집 입구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에 보이는 빈네오름을 바라보며, 북쪽으로 난 목장 정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꽃며느리밥풀꽃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과거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보이는 넓은 풀밭이 나타난다. 노란꽃 무더기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금불초꽃 무더기다. 벌판을 가로 질러 오는데 커다란 말똥버섯(큰갓버섯)이 우산 마냥 여기저기 피었다.

오른 쪽으로 빈네오름을 바라보며 소나무 길을 걸어 조금 더 들어가니, 조그만 벌판이 나타나고 무덤 하나에는 온통 제주조릿대로 덮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름 비탈에는 심은 지 10년 정도 되었을 법한 소나무 가지가 얽히고섥힌 채로 우리를 맞는다. 이런 곳을 오르는 것은 이외로 쉽지가 않다.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가지가 얽혀 있을 뿐더러 그렇지 않은 곳도 찔레나무나 청미래덩굴 같은 가시넝쿨이 괴롭힌다. 다행히 작년에 벌초를 위해 뚫어놓았던 길이 있어 그 곳을 의지해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안 가 제주조릿대가 우거진 무덤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다시 길을 찾아보았더니, 역시 산등성이를 향해 길이 나 있다. 말이 길이지 뚫은 지 1년이 지나 있어 나뭇가지가 자라고 가시가 엉켜 있어 나아가기 힘들다. 다시 무덤이 하나 나타나고 또 숲으로 길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번엔 전정가위를 이용해 가시를 자르며 나아간다. 오르고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떻든 위로 올라가면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올랐는데, 결국 등성이가 나타난다. 우리 인생길을 닮았다. 한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가다보면 너무 힘이 들고 목표점 자체가 불분명해질 때처럼... 그럴 때 포기 않고 처음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다 보면 목표점에 이르는 수가 있다.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등성이 너머 잡목림에 이르자 모두 지쳐 앉아서 쉬기로 했다. 진작에 오름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덤빈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 신중하게 대하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였다가 커다란 재앙을 만나는 것을 종종 보았다. 사람을 대할 때의 자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하찮게 생각되드라도 업신여기다가는 큰 코 다친다. 남쪽으로 길을 뚫고 오르다 보면 정상에 이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전정가위를 들고 앞장섰다. 오로지 한 곳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안해진다.

길 아닌 길로 들어선다
들어서서야 안다
끈끈이주걱 안에 한 순간에 갇혔다는 것을
숲은 만지는 것마다
더듬이로 출렁거리며 사람의 촉수를 밀어낸다
제 더듬이만이 그곳에선 길이다
감추어진 산이 소롯이 제 몸을 열어 보인다
발 밑이 허방처럼 황홀하다
자잘하게 밟혀오는 길이 까놓은 산 새끼들
여름애기눈꽃 각시둥굴레 며느리밥풀꽃 좀쥐오줌꽃 애기똥풀들
저마다 방언 하나씩 물고 와 미로를 밝힌다
세상을 밝히는 건 언제나 가장 작은 것이다
갈갈이 몸을 찢어버린 길이 매듭을 잇고 간다
산이 앞서 가지 않으면 사람의 산은 몽유일 때가 많다
위를 보고 오르는 일이란
끝없이 등을 굽혀야 하는 겸허한 사유
중심을 비워두어야 차 오르는 빽빽한 대나무 허공처럼
길을 잃어야 자유로운.

--- 정영주 '산에선 길을 잃어야 자유롭다' 전문


▲ 자연이 우리들에게 내린 교훈

시간이 녹녹했으면 동쪽 비탈 숲 속 벼랑진 곳에 가서 일본군의 파놓은 땅굴을 보고 올 건데 비스듬히 그냥 위로 오른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연합군에 쫓기게 된 일본군이 남양군도와 오키나와를 버리고 제주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 이른 바 결7호 작전을 준비했던 흔적이다. 제주도의 해안 절벽과 주요 오름에는 이때 도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파놓은 굴과 군사시설이 널려 있다. 그런데 이곳까지 와서 파놓다니…. 당시 이곳까지 동원되어 강제 노역하던 사람들의 고달픈 모습이 떠오른다.

무작정 나무 그늘로 갈 필요는 없는 것. 정상이 가까워져 있어 아무래도 이젠 나무가 없는 등성이로 나가야만 했다. 음지와 양지 사이는 언제나 가시넝쿨이 엉켜 자란다.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데는 언제나 시련이 뒤따르는 법이다. 가시에 찔리면서 가지를 잘라 밖으로 나왔으나 억새와 뒤섞인 가시넝쿨은 정상에 이르는 길을 고난의 연속으로 만든다. 남봉 정상에는 10m 정도의 암반이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눈앞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나인브릿지 골프장이 이어져 있다. 숙소와 관리사들을 많이도 지어놓았다. 때마침 차에 남아 있는 회원으로부터 배고파 죽겠다는 전화가 왔다. 시계를 바라보니 시간이 꽤나 흘렀다. 때문에 절벽 아래에 있는 일제 유산인 방만한 크기의 동굴을 보지 못하고 내려 와야만 했다.

어렵게 다시 가시나무를 헤쳐 서쪽 그늘로 내려왔으나 삼나무와 소나무 심은 곳에 이르러 다시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래도 나뭇가지를 자르며 천천히 전진하다보니, 가끔 마의 덩굴이 보인다. 마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같이 해온 간식거리 겸 건강식품이다. 서동요에 나오는 맛둥이는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얻기 위해 마를 구워 서라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근거 없는 노래를 퍼뜨려 결국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 때는 감자도 고구마도 없던 시절이어서 간식거리가 쉽지 않은 때였으니까. 기록을 살펴보면 감자는 남아메리카 토착민 사이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오다가 서양과 동양으로 전래되었는데, 우리 나라에는 1820년대에 들어왔고, 고구마는 영조 39년(1763)에 통신사 조엄에 의해 쓰시마섬에서 들여왔다.

어렵사리 올라갈 때 거쳐갔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뚫고 나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3시간 이상을 허비하여 돌아와 보니, 점심때가 지난 지 오래었다. 이번 산행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아무리 낮은 오름이라도 준비를 철저히 해서 지형을 잘 살펴 올라야 한다는 것과 자연을 업신여기면 커다란 시련을 준다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따끔거린다. [2002. 8. 18.]

동반자 : 강부언 변신규 부두홍 양영태 고순여 고제량(6명)

<사진> 위는 금불초꽃, 가운데는 꽃며느리밥풀꽃, 아래는 '오름 나들이' 양영태 씨가 찍은 빈네오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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