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황사 속에서 찾은 봄∵∴∵∴∵∴∵∴

김창집 2002. 12. 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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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리·어오름·이돈이·물메 답사기∵∴∵∴

△짙은 황사 속의 서영아리오름
오늘은 짙은 황사 현상 때문에 시계가 확 트인 시원스런 산행은 안되겠다고, 어디 가면 좋을까 의논 끝에 주변을 조망하는 것보다 오름 자체가 아기자기한 곳을 가기로 했다. 그래 몇 번 가보았던 영아리오름을 이번에는 핀크스 골프장이 아닌, 동쪽으로 올라가 보자는 나의 제의에 모두 흔쾌히 찬성한다. 산천단-산록도로-제2횡단도로-산록도로-서부산업도로를 타고 괴오름을 지나 왼쪽 화전마을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로 가면 왼쪽으로 폭낭오름 오른쪽으로 왕이메가 나오는 사잇길이다.
화전마을인 '솔도'를 지나고 보니, 골프장을 만들어 놓고 통로를 넓히노라 길을 마구 파헤쳐 놓았다. 고르지 못한 길을 어렵게 오르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정 사장 차의 연통이 터지고 말았다. 차를 세우고 그곳에 탔던 분들을 모두 짚차에 옮겨 태우고 달린다. 골프장을 조성하느라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잘도 올라 간다. 마구 파헤쳐지고 깎인 오름과 쌓아놓은 모래, 웅덩이의 모습의 모습이 꼭 그랜드캐년 분위기라고 나 원장이 한 마디 거든다.
길을 마구 파헤쳐 놓아 길 따라 가지 못하고 이돈이오름 곁에 차를 세운 뒤, 눈앞에 보이는 영아리를 향해 벌판을 가로질러 간다. 조그만 내를 건너는데 달래를 발견했다. 몇 뿌리를 캐었는데 봄 향기가 가득 묻어난다. 쉽게 오름 옆길에 접근하여 시계 방향으로 가다가 나무 그늘 아래 복수초 군락지 발견했다. 가시덤불 아래 복수초가 노란 꽃잎을 수줍게 펼치고 있다. 모처럼 핀 꽃을 감상하고 조금 더 가서 통로를 찾아 나무 밑으로 난 길로 들어갔다. 오른쪽 옛무덤 비석은 지명을 '龍臥岳(용와악)'이라고 새겨놓았다. '용이 누워 있다'는 뜻'보다는 신령스럽다는 뜻의 '영아리'를 표기하기 위함은 아닌지? 오 박사의 책을 찾아보아야겠다.

△지난 여름 타래란 대신 피어 있는 우리 민들레
작년 여름 왔을 때는 이곳이 온통 타래란 군락지였었다. 동산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무덤에서 남근석처럼 생긴 정주목이 씩씩하게 서 있는 무덤으로 이동하여 오래된 묘를 살폈다. 산과 주변엔 키 작은 재래종 민들레가 고개를 쳐들고 방싯 웃으며 수줍게 피어 있다. 정말 잎은 녹아들 듯한데 꽃은 선명하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다년초로 양지에서 자라는데, 원줄기가 없고 잎이 뭉쳐나며 옆으로 퍼진다. 잎은 도피침상 선형이고 길이 5.5∼15cm, 나비 l.2∼5.5cm로 무잎처럼 깊게 갈라졌다. 갈래 조각은 4∼5쌍이고 약간의 털과 더불어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열매에 흰털이 나 있어 열매를 멀리 운반한다.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한다. 한방에서는 꽃피기 전의 전초(全草)와 뿌리를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하며 발한(發汗)·해열(解熱)·건위(健胃)·이뇨(利尿)·강장의 효능이 있어 인후염·기관지염·림프절염 등의 치료에 이용한다. 민간에서는 최유제(催乳劑)로 사용한다. 요즘 서양 민들레인 개민들레가 산을 덮을 기세인데 이곳은 우리 민들레가 굳건히 뿌리를내리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서쪽으로 뻗은 봉우리 정상에 올랐다. 황사 현상 때문에 뿌연게 기분이 썩 상쾌하지 못하다. 무덤이 있는 곳에서 남쪽을 바라본다. 멀리로 소병악·대병악·무악이 희끄무레 보이고 가까이 마복이가 정답다. 황사 현상(黃砂現象)은 'yellow sand phenomenon'라고 하는데, 주로 몽골이나 중국 북부의 황토지대에서 강한 바람에 의하여 고공으로 올라간 많은 미세한 모래 먼지가 대기 중에 넓게 퍼져 온 하늘을 덮고 떠다니다가 상층의 편서풍에 의해서 한반도 부근까지 운반되어 서서히 하강하는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3∼5월에 나타난다. 특히 발달한 저기압이 몽골이나 화베이[華北]지방에서 둥베이[東北:滿洲] 북부로 이동할 때 한랭전선이 통과하고 난 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때 태양은 뚜렷하게 빛을 잃어 심하면 황갈색으로 보이고, 시정이 1∼2 km로 악화되며, 노출된 지면이나 지물에 흙먼지가 쌓이기도 한다. 황사현상은 눈병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황사입자의 크기는 0.25∼0.5 mm의 것이 많고 더 작은 것도 있다. 주성분은 석영·장석이고 이 밖에 운모·자철석을 포함하는 것도 있다.
오래된 이곳 무덤엔 무엇에 의해 옮겨졌는지 제주조릿대와 복수초가 보인다. 무슨 영문인지 조릿대를 산담 옆으로 비스듬히 남겨 놓고 벌초했다. 사진을 찍고 신령스런 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다가 바위 밑에 굴을 보았다. 비올 때 2∼3명 정도 피할 수 있겠다. 내가 이름 붙인 대화의 돌을 지나 잔디밭을 찾아 따뜻한 곳에 둘러앉아 새참(구 박사의 말)을 먹었다.

△언제나 즐거운 간식 시간
구 박사 사모님이 싸준 유부 초밥이 단연 인기다. 우리들이 가끔은 김밥 말아 달라고 해서 신세를 지지만 실력이 그만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다음은 아강발(족발)이다. 강 사장이 추렴한 도새기 네 발을 몽땅 가져다가 어젯밤 12시까지 딸렸다니(삶았다니) 그 정성이 가상하다. 누가 맛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옆에 앉은 김 선생님이 먹엄직이 뜯어먹는다. 여인이 음식을 맛나게 먹는 것은 보기만 하여도 즐겁다.
고개를 들어 동남쪽을 바라보니 어오름이 나즈막이 누워 있다. 오라고 청하는 모습이어서 막바로 동쪽으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동쪽 등성이를 돌아 내려간다. 고랑을 따라 내려가는데 나무에 매달아 놓은 표지들이 너무 툴하다. 다시 입구로 나와 옛길을 따라 어오름으로 간다. 처음은 입구를 못 찾아 헤맸으나 얼마 없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나지막이 누워있는 등성이에는 산자고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의 주제 꽃은 산자고로 해야 할 것 같다. 별같은 모습이 정말 야무지다. 거기서 이돈이오름 쪽을 보니 굴삭기가 작업하는 곳으로 웬 거대한 집채가 보인다. 초가집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양옥집 같기도 한 이 정체 불명의 구조물을 보고 각각의 해석을 내려본다.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정 사장의 얘기. 그림을 그려도 저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없다고 할 정도니, 나중에 크게 실망했겠지. 북동쪽으로 내리니 곧 길이 발견되었다. 샛길이 공사장으로 그대로 뚫려 있다.
다시 온 길로 내려오다 집채의 정체를 밝히다. 흙무더기를 사방으로 깎다보니 그런 거였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이런 착각을 자주 하며 사는 건 아닌지. 이런 착각 때문에 세상을 살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계곡에서 달래를 한줌 더 캐고 원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이돈이오름을 오른다.

△봄 향기를 싸아하게 전해준 점심 시간의 달래
이돈이오름은 표고 663m지만, 비고는 70여m 밖에 안돼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북쪽으로 뻗어 있는 저쪽 등성이에는 가지 못하고 이쪽 소나무 등성이에서 서성거리는데 이름 모를 꽃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잎사귀는 아직 나지 않았는데 벌써 꽃이 세 송이 피어 있는 아주 앙증맞은 꽃이다. 흰 바탕인데 자줏빛이 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솜나물 꽃이다. 고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1년에 두 번 피는 꽃이라 한다. 어렵사리 골프장 건설 현장을 돌아 나와 왕이메 입구에 다다라 점심 먹을 곳을 의논하는데 길섶에 남산제비꽃이 무더기무더기 핀 것이 보인다. 이른봄에 만나서인지 너무 청초하고 예쁘다.
한림으로 곧바로 내려와 중국집에서 삼선 짬뽕을 시켰다. 백간 두 병이 곁들여진 양장피 요리는 꾸냥의 말대로 질과 양에서 띵호와였다. 주방에서 달래를 잘 손질해 줘 새콤한 봄향기와 같이 먹어서 더 맛이 있는 건 아닌지. 삼선 짬뽕도 수준급이다.

△수산봉에 남몰래 찾아온 봄
제주시로 오다가 수산봉(물메)에 들렸다. 일주도로로 집을 오가며 바라보는 이 수산봉은 '물메'라는 고운 우리말 이름을 가졌다. 하기야 나에게는 인연이 있어 수차 오간 곳이다. 저수량이 많지 않지만 넓게 펼쳐진 물은 언제 보아도 시원스럽다. 오름 남쪽에는 진주 강씨 수산파 입도조 무덤이 넓게 자리해 있다. 그 무덤 맞은 편 저수지 쪽으로는 수산 곰솔이 위용을 자랑한다. 제주도 지방기념물 제8호인 이 곰솔은 나무의 생김새가 특이하기 때문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곰솔의 크기는 높이 10m, 둘레 4m나 되는 거목으로 지상 2m 높이에서부터 4개의 큰 가지가 나와 사방으로 뻗쳐 있다. 특히 남쪽 가지는 저수지로 뿌리보다 50cm 더 아래로 드리워져 운치를 더한다. 곰솔은 해송을 말한다.
무덤 위로 난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춘화 명품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정상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부대로 가는 도로가 보인다. 밭을 가로지르는데 캐다 남은 감자 옆으로 봄쑥이 많이 자라 있다. 포장길을 따라 내려오며 봄꽃을 찾다보니, 절간에 이르게 되었다. 대원정사 원천사(법화종)였다. 경내로 들어가 절을 돌아보고 내려와 제방으로 향한다. 아! 있다. 분명히 벚나무 작은 가지가 굵은 줄기에서 덧니처럼 내 보내 꼭 세 송이를 요술부리듯 피웠다.
동서로 길게 뻗은 저수지 둑엔 벌써 봄이 찾아와 화사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보라색 들무꽃이 무더기를 이루어 봄바람에 손짓한다. 모두들 모처럼 맞은 봄의 자취를 찍느라 야단이다. 수로를 따라 쑥을 한줌 캐고 내려왔다. 이렇게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살짝 다가와 있었다.

*사실은 회원이 늘지 않아 탈퇴하려고 인사까지 했는데, 운영자가 한 사람이기 때문에 탈퇴가 안 된다고 해서 회원을 한 사람씩이라도 늘리며, 계속해서 싣기로 했습니다. 주위분들에게 알려서 회원들을 모집해 주십시오.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