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북촌 돌하르방 공원 (2)

김창집 2006. 1. 27. 14:12

 

 

* 가슴에서 나온 사랑의 물을 안은 돌하르방

 

▲ 돌하르방의 기능

 

 돌하르방의 기능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수호신적(守護神的) 기능, 주술 종교(呪術宗敎)적 기능, 위치 표지(位置標識) 및 금표적(禁標的) 기능 등으로 추정한다. 1992년에 제주시에서 출간한 『제주시의 문화유적』에는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하고 있다. '돌하르방은 석상이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서 아이들 가운데 회자(膾炙)되던 명칭으로 오늘날 제주의 민속적 상징처럼 되어있으나, 이에 대한 논의는 가끔 혼란을 빚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몽고의 '훈촐로'가 돌하르방과 비슷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제민일보의 몽고지역 답사보고서가 있다. 거기에 보면 13∼14세기 몽고의 방목지였던 제주도와 몽고의 '다리강가'는 화산 폭발로 돌이 많은 지역이며 목마장이라는 점, '하르방'의 어원이 몽고어 '하라(=망보다, 파수보다)'와 '바라칸(=신, 왕)'의 합성어로 '하르방'이 '수호신'의 성격을 갖는다는 데 관심을 집중하여 '돌하르방'이 몽고 지배시대의 '훈촐로'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 힘을 과시하며 폼 잡고 서 있는 돌하르방

 

 그런데 '하르방'은 할아버지의 제주 방언일 뿐이며, '돌하르방'이란 호칭도 '옹중석(翁仲石)' '장군석(將軍石)'이 할아버지와 비슷하여 붙여진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하르방을 구태어 몽고의 '하라바라칸'의 영향이라고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육지부의 목장승, 돌장승과의 관련, 방사탑 거욱대와의 관련, 제주도 무속신앙에서의 문신신앙(門神信仰)과의 관련, 복신미륵과 같은 미륵 석상과의 관련등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명칭에서 볼 때, '벅수'는 육지부에서 '장승'을 일컫는 말이며,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을 '벅수'라고 하니 장승과 돌하르방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벅수는 '박수', 즉 '남무(男無)', '수장(首長)', '우두머리'를 뜻하며, 이를 주술적 의미로 해석하면 '돌하르방'이 성을 지키며 사귀를 쫓는 기능이 드러난다. 우석(偶石)은 '돌장승'을 뜻하는데, 여기에 '목'을 더하여 우석목(偶石木)이라 하면, 원래는 장승은 나무로 깎아 세우는 것이나 돌로 만들게 되면서 '돌로 된 장승'을 뜻하게 된다. 

 

 

* 방사탑 을 등지고 서있는 돌하르방. 탑 위에도 석상이 있다.

 

 무석(武石)은 수문장 역을 하는 장군석을 뜻하니, 무석목(武石木)이라 한 것은 '돌로 만든 장승'으로 '수문장 구실을 하는 수호신격을 호칭하는 말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돌하르방'은 목사의 지시에 따라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성의 성문 앞에 세워졌고, 관아를 지키는 수문장 구실을 하여, 관아의 권위를 상징할 뿐이라면,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장승과는 의미가 많이 변질되어 오로지 제주 '돌하르방'의 특성만을 갖게 된 것이라 하겠다.

 

 '거욱대' 또는 '극대'는 마을의 경계에 세워지지만, 마을의 허한 곳으로부터의 잡귀의 침입을 막고, 사를 쫓는 방액의 역할을 하는 수호신적 성격을 갖는다. '거욱대'는 방사의 구실을 하는 '우석(偶石)'으로 '돌하르방'이라고 불려진다. 제주도 지명에 '극대왓'이란 곳이 흔한데, 이 곳은 원래 나무를 깎아 '거욱대'를 만들어 세웠던 곳이며, 나중에는 돌 된 장승(하르방)을 세우게 되었고, 지금도 대정읍 인성리, 성산읍 신흥리, 제주시 영평하동에 남아 있다. 돌로 만든 거욱대 '돌하르방'이 오히려 육지의 석장승에 가깝다.

 

 

* 위 방사탑 앞에 서 있는 돌하르방의 뒷모습

 

 '돌하르방'은 수문장 구실을 하는 문신(門神)이기 때문에 제주도의 문신신앙에서 정주목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아 제주인들이 만들어 낸 제주 특유의 문신(門神), 경내 수호신(境內守護神)으로 보기도 한다. '돌하르방'이 육지부의 돌장승의 수입이라 보아도, 육지부 돌장승과는 다른 제주 특유의 정서가 있다.

 

 영조 30년 목사 김몽규가 창건하였다는 돌하르방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설령 돌하르방이 육지에서 온 목사가 육지부의 석장승류의 석상을 삼문 밖에 세우게 했다 하더라도, 외형상의 장승이지, '돌하르방'이 가지는 주술적 신앙적인 면은 도민의 정서와 사상 속에 흐르는 신앙관에 의한 것일 것이다.

 

 

* 손을 모아 "야호!"를 외치는 돌하르방

 

 현지 주민들이 돌하르방에 대한 생각들을 보면, '문직이 노릇을 한다.', '수위나 방어의 노릇을 한다.', '묘소의 동자석과 기능이 같다.', '거오기(방사탑)를 촌락 동산에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사(防邪)의 기능을 한다.', '수호신격이다.', '주현청 소재지의 존엄성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사기(邪氣)를 방지하고 축출하기 위한 것이다.', '악병(惡病)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전란이 생기지 않도록 이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 속에 '돌하르방'의 주술 종교적 기능, 수호신적 기능, 위치 표지 및 금표적 기능이 다 들어 있으며, 육지부의 장승이나 거욱대의 변형으로 제주도 특유의 종교와 문화를 표현한 석상을 축조해 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이 쪽 저 쪽 등 지고 서 있는 돌하르방

 

△ 돌하르방의 모양

 

 한 때 돌하르방의 모양에 대해 이스터섬이 속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환태평양 문화권(해양 아시아 문화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라고 주장한 분도 있었다. 서양문화 중심론자들의 한계에 의한 당연한 귀결로 모아이 석상을 예로 들었다. 그 형태의 유사성과 더불어 지리적 거리, 아울러 고대의 거대한 문화권의 증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며 돌하르방을 만든 사람들이 현존하며 아직도 돌하르방을 만들고 또 민속신앙 속에 그 의미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두 석상의 유사성을 말한 것을 보면, 한 손은 가슴 약간 아래쪽, 다른 한 손은 아랫배에 놓여 있는 석상의 손의 자세, 부처 같은 귀의 모양, 눈과 코의 연결선, 모자의 형태, 그리고 석상 밑의 단의 모습이다. 돌하르방에는 석상과 일체형으로 단의 경계선을 그리고 있고 모아이 석상을 분리된 모습으로 단을 두고 있는데, 돌하르방은 더러 단순화시킨 것으로 보고 있으나 모든 주장은 추리로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 드럼 치는 돌하르방

 

 현실적으로 제주목의 돌하르방은 평균 신장이 189cm로 가장 크며, 옮기면서 없어져버렸을 가능성이 있으나 몇 개의 기단석에는 O형, ㄱ형 홈이 있으며 비뚤어지게 쓴 감투, 훤칠한 이마에 퉁방울 눈, 그리고 자루병같이 큼직하게 표현된 코와 쳐든 얼굴 등에서 호방한 무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고르지 않은 어깨는 생동감을 주며, 양손은 가슴과 배 위에 가지런히 얹혀있거나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이렇듯 강직하면서 온유하며 덕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굴의 기상이 돋보이고 있는 돌하르방들의 다양한 표정에서 척박한 삶 속에서도 고운 심성을 갖고 강인하게 삶을 개척하며 살아 온 제주인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으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주 고유의 향토색을 지닌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 자연석 옆에 세워놓은 동자석

 

▲ 정의현과 대정현의 돌하르방

 

 정의현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은 141cm이며 제주목 돌하르방보다 크기가 작은데 그 이유는 목과 현의 관등차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무리 눈짐작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당시에도 충분히 자로 재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때의 기술 수준이라면 모양을 보고 가서 만든다면 크기도 비슷하고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성읍민속마을에 복원된 성문 앞에 서 있는 정의현의 돌하르방들은 달걀형의 얼굴에 코를 과장하여 크게 부각했으며, 대부분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 있어 날카롭고 매서운 인상을 하고 있으나, 가슴 중앙에 교차시킨 두 손은 손목과 손가락이 너무 작아 어린아이 손 같아 보이며, 일부 동자석에서 발견되는 조각 수법과 유사함을 보인다. 또한, 배 부위에 상하로 위치한 손의 모습으로 인해 단정하게 정리된 인상을 풍긴다. 

 

 

* 더러 남아 있는 받침대 위에 세운 돌하르방(제주목)

 

 대정현성의 돌하르방 역시 관등차 때문이라면 제주목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정의현과 달리 대정현의 것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이 석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모자의 형태는 제주 남박(나무 바가지)을 뒤집어 쓴 형이며, 특히 이중으로 양각된 타원형의 눈망울을 꼭 옛 제주의 해녀들이 사용하던 수경을 끼고 있는 듯한 표현이다. 

 

 또한, 돌하르방 몇몇에서는 복식의 다른 느낌을 준다. 올린 팔이 경우 꼭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사람처럼 가슴까지 올라온 것들과 목도리를 두른 것 같기도 하고 흡사 신부(神父)의 제복처럼 깃을 단 것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귀의 모양은 활처럼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인 형상에서 우러나는 느낌은 소박하고 친밀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만들다 만 것을 그냥 보존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 샘에 복원한 보물 제1187호 불탑사오층석탑

 

△ 돌하르방 공원의 성격

 

 이 공원을 만들기 위해 모인 다섯 사람들은 단순히 옛 돌하르방의 원형을 복사하는데 그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통(傳統)이란 것의 속성은 단순의 옛것을 물려받아 답습(踏襲)하는데 있지 않고, 그 속에 시대정신을 불어넣으며 더 좋게 더 멋지게 창조하는데 있다. 이 젊은이들이 하려는 것도 그런 일일 것이다. 그들이 만든 안내서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이 더욱 그를 뒷받침해준다.  

 

『정착한지 5년이란 시간 동안…… 그리고 오늘』

 

이곳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작업은
도내외에 흩어져 있는 지방민속자료 2호인 각양각색 돌하르방 원기(48기)를
1 : 1로 재현 설치 완료하였으며,
돌하르방의 학술적, 미학적 가치는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정립해 나가고 있다.

 

 

* 오카리나를 불고 있는 돌하르방

 

또한 시대의 반영을 통한
새롭게 재해석되는 창작돌하르방을 제작 설치함으로서
귀중한 향토문화유산인 돌하르방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단절된 과거를 잇는 가교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돌하르방공원에서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당면한 어려움은 지속되지만 흘리는 땀에 수고를 믿으며
우리들 유년 기억 속에 사라진 제주의 건강한 원시성(原時性)을 찾아내고 싶고
향후에는 갤러리 및 문화센터를 공개하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원으로 성장하길 소망하며…….

 

▲ 공원 홈페이지 주소  http://www.dolharbangpark.com/ 

 

 

* 올 때 선물로 받은 1호짜리 판화 복수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