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바다엔 봄이 가득하더이다(1)

김창집 2006. 4. 4. 08:17

 -- 탐라문화보존회 서귀포 해안 답사기(2006. 3. 26.)

 

 

*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바다로 걸어가는 답사반원들

 

 

♧ 인생길 같이 가는 친구들과(에필로그)  

 

 3월 첫 답사 길이어서 따뜻한 남쪽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3월말이라고 하지만 걸핏하면 찬바람이 불거나 비를 뿌리기 일쑤인 점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었다. 10여 년 동안 한여름과 겨울을 빼고 한 달에 한번씩 이어진 답사지만 아직도 제주도 어딘가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 간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정말 제주도에 볼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제주 사람들은 복을 받고 태어났다는 얘기도 된다. 하긴 2월에 캄보디아에 가서 앙코르와트를 보고 온 뒤 한달만에 하는 여행이어서 그 때 같이 갔던 42명의 회원들은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다. 모집 인원이 입금한 분만 90명이 되어 45명 정원인 대형 버스에 재무와  나는 안내석에 타야 할 형편이다. 이번에도 신청도 안하고 오신 분들이 있어 설득해 돌려보냈다. 이럴 때 더 받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


 

 

* 하예동 해변의 한적한 풍경

 

 출발해서 시내를 지날 때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知人)끼리 인사하고 대화하도록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차량이 두 대이기 때문에 2호차에는 새별오름 주차장에서 갈아타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의 일정과 답사 내용을 알려주었다. 장소가 야외이면서 인원이 많아 자료를 잘 만들어준 다음 차안에서만 미리 안내해주면 되는 것이다. 특히 걸으면서 하는 답사는 너무 길어서 산만하고 현장에 다른 사람들(특히 어린 학생들)이 있을 때는 얘기하는 측이나 듣는 측이 쑥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 답사의 계획부터 안내까지 맡고 있으면서도 모임의 회원이기도 하니, 다른 사람이 회를 먹어도 같이 먹고 술을 먹어도 같이 먹는 편안한 여행이어서 더욱 좋다. 모두 어른들 -- 그 중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톡톡 튀는 젊은 아가씨까지 있어 더욱 재미가 있다. 막걸리 회사와 관련된 분도 있어 올 때마다 한 상자 들고 오면, 나는 그것을 나누어 지고 올라가 오름 정상에서 술판을 벌여 즐기기도 하는 허물없는 평생 여행 친구들이다.  

 

 

* 공터만 있으면 유채를 심어 놓아 꽃이 만개했다.

 

♧ 따뜻한 남쪽 바닷가 - 무르익는 봄

 

 시내를 한참 벗어나서 서부 관광도로 광령으로 빠지는 길목에서부터 건강 달리기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제주시에서 주최하고 MBC가 주관하는 행사로 보이는데 직장마다 자기 회사의 이름이 새겨진 운동복을 입고 뛰는 사람도 있고 벌써 지쳐 걷는 사람까지 죽 이어진 행렬이 재미있어 창밖을 내다보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 사람을 발견했는지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모두들 봄나들이 나선 기분에서 들떠서 하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안내를 위해 새별오름에서 2호차로 갈아탔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땐 어른 아이 구별이 없다. 이렇게 집을 떠나는 일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아침에 날씨가 흐릴 것이라는 얘기와는 달리 하예동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말갛게 개어 있었고, 천천히 걸어서 3시간 걸린다는 말도 아랑곳 않고 벌써 주위에 핀 유채꽃과 새파란 바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 갯무꽃 너머로 보이는 하예동 해변의 풍경

 

 게다가 연보라와 하얀 색으로 빛나는 갯무꽃까지 얼려 피니 더욱 장관이다. 길섶에는 어렸을 적에 보고 한 동안 만나지 못했던 등대풀과 자주괴불주머니 같은 것들이 있어 옛적 봄길을 추억하는지 잊어버린 이름을 나에게 물으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즐겁게 얘기꽃을 피우며 걷는다. 기암괴석과 안온한 바다, 얼기설기 이어지는 밭담, 그 깊섶에 핀 민들레, 양지꽃, 염주괴불주머니, 갯무꽃, 복사꽃, 게다가 빈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유채꽃까지 온통 꽃밭이다.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 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 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 박재삼 '봄 바다에서 1'
 

 

* 원형이 그런 대로 남아 있는 예래동 환해장성


 

♧ 예래동에 남아 있는 환해장성
 
 환해장성(環海長城)은 고려시대부터 쌓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이어 제주도의 해안선을 따라 쌓아 놓은 성벽이다. 당시 대마도 등지를 본거지로 삼고 여러 무인도에 거점을 확보한 해적들은 심심하면 해안가 마을에 쳐들어와 부녀자를 납치 폭행하는가 하면 가축을 잡아가고, 식량을 노략질했다. 황금 어장을 침범하여 황폐화시키는 일도 잦았다. 

 

 이를 막고자 그들이 상륙하기 쉬운 곳을 골라 성벽을 쌓고 몸을 숨긴 채 이들을 막아내기 위한 시설이다. 1998년 1월 7일 제주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된 이 성벽은 4. 3 당시 마을을 둘러 성을 쌓기 위하여, 또 허술한 밭담을 보완하기 위하여, 아니면 근래 해안도로를 만들며 많이 헐어버렸기 때문에 많이 훼손되어 제 모습대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물다. 그나마 이곳은 짧지맘 제법 원형이 남아 있다.  


 

 

* 예래동 해안선의 모습

 

 그 중에 북촌환해장성이 가장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 있고, 온평, 신산, 행원, 그리고 이곳 예례동에 부족하지만 그런 대로 남아 있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 고장성(古長城)조에 의하면 "연해 환축(環築)하여 둘레가 300여 리라.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진도에서 반하니 왕은 시랑(侍郞) 고여림 등을 탐라에 파견하여 영병 1,000명으로 이를 대비하여 장성을 구축하였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탐라기년'에는 "6월에 영국 선박이 우도(牛島)에 정박하여 섬에 작은 흰 기를 세우고 섬 연안 수심을 1개월 동안이나 측량하면서 돌을 모아 회(灰)를 칠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다. 이때 권직(權稷) 목사는 크게 놀라 마병(馬兵)과 총수(銃手)를 총동원하여 만일의 변에 대비하였고, 그 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수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새로 단장해놓은 아담한 하예동 포구

 

♧ 예래동 농촌 체험마을

 

 농림부가 지난 2002년부터 지정한 76개 녹색 농촌 체험마을들은 도시 관광객들에게 농촌의 풍요로움과 깨끗함을 선사하는 곳이다. 유명 관광지의 호텔, 콘도 수준의 숙박시설과 놀이시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깨끗하고 아담한 그리고 인심이 좋은 소박한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있어 나름대로의 즐겁고 추억이 남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이곳 예래동은 빼어난 해안 절경을 만끽하며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인데, 중문관광단지 인근에 위치하며 해안가의 논짓물은 바닷물과 민물(용천수)이 만나면서 여름철 피서객을 유혹하는 색다른 명소이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논짓물 담수욕장의 매력은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그래서인지 여름철이면 시민과 가족관광객이 즐겨 찾는 여름철 휴양지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주변 해변에서 각종 조개류 채취와 낚시도 즐길 수 있어 체험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한창 만개한 유채꽃(중문관광단지 안에서는 유채꽃 큰 잔치가 베풀어지고) 

 

 예래마을은 서귀포 시내 중심에서 서쪽으로 17㎞ 떨어져 있으며 가까이 천제연폭포, 중문해수욕장, 여미지 식물원 등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제주관광의 중심지인 중문관광단지 바로 옆에 있다. 전체 가구 중 83.8%가 농가이며, 이 중 대부분은 감귤농사를 짓고, 아름다운 해안 전경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이다. 마을 청년들이 중심이 돼 생태 자원을 지켜 온 덕분에 다양한 야생화와 우거진 숲을 볼 수 있다.   

 

 보통 7월말부터 8월초에 제주도와 서귀포시의 후원아래 예래동 주민자치 위원회가 개최하는 '한여름 예래 논짓물 해변축제'가 열리고 있어, 이에 때를 맞추면 맨손으로 넙치잡기, 갯바위 낚시대회, 선상낚시체험, 행운의 보말 잡기 등을 즐길 수 있다. 축제가 아니라도 조용히 해변을 거닐며 맑은 공기와 갯내음을 맡다 보면 고향의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갯깍 주상절리대 중 터진굴

♧ 색달동 갯깍 주상절리대

 

 당초에 하예동 포구에서 해안길을 걸어 논짓물을 거쳐 색달동 갯깍 주상절리대를 지나 조른모살 주상절리대를 거쳐 바로 하얏트 호텔로 이어지는 약 6km의 거리를 천천히 걸어 답사를 하며 가기로 하고 앞장서 걷는 어른들에게 천천히 가자고 부탁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펄떡펄떡 뛰듯이 내쳐 걷는다. 그러다보니 실상 환해장성이나 주상절리대에서도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하지만 대부분이 제주에서 나서 자랐고, 여러 번 답사에 참가했으며 자세한 자료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제일 뒤에 가는 분들을 따라 안내하고 사진 찍으며 여유롭게 갈 수 있었다.

 

 반딧불이 보호지역이라는 간판을 보며 다리를 건너면 크고 작은 돌이 널려 있고 병풍처럼 거대한 주상절리 절벽이 이어진다. 아찔하도록 높은 절벽을 쳐다보며 30여m 이르렀을 때 커다란 굴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터진 굴(窟)'이다. 양쪽으로 트여 있다고 붙은 이름이다. 그 조금 위에는 해식동굴로 이루어진 바위그늘집자리가 있다. 이곳이 바로 '다람쥐굴'인데 적갈색 무문토기편들이 출토된 색달동 해식동굴 유적이다. 이 일대는 주상절리 단애의 형성과정 중에 일어났던 해수면 변동과 구조운동, 신생대 제4기의 빙하성 해수면 변동을 살피는데 중요한 학술자원이다.

 

 

* 터진굴 맞은편 풍경

 

♧ 주상절리란 무엇인가

 

 주상절리(柱狀節理, pillar-shaped joint)는 '기둥 모양으로 생긴 바위와 길쭉하게 그어진 금'을 말한다. 높은 곳에 있는 화산에서 솟아난 엄청난 양의 용암은 지면을 빠른 속도로 흘러 바닷물과 만나면 급격히 온도가 떨어져 수축(收縮)하게 되는데, 그 때 생기는 틈이다. 그것이 육각형 같은 다각형(多角形)이 되는 이유는 물과 만난 마그마의 표면은 급속도로 식어서 굳는 반면 내부의 마그마는 외부의 온도 하강으로 굳어진 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천천히 굳어지면서 수직방향으로 갈라져 기둥 형태의 모양을 나타내게 되는데, 온도가 낮아지면 마그마 성분이 수축 작용을 하게 되어 이때 힘의 균형을 이루며 거의 정육각형의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 

 

 주상절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갈라지는 편상절리도 있고, 모양에 따라 방상절리, 불규칙 절리, 풍화절리, 층상절리도 있다. 처음 생성된 암석에서는 이들 틈이 잘 보이지 않으나 풍화를 받으면 틈에 따라 풍화가 먼저 진행되므로 오랜 시일이 지나면 굵은 틈이 나타나게 된다. 이곳 바닷가는 자주 태풍이 지나는 길목으로 풍화작용의 폭이 크다.

   

 

* 떨어져나간 부분이 보이는 주상절리

 

 이런 절리는 주로 화산암 암맥이나 용암, 용결응회암에서 보이는데, 제주도에는 한라산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해안에는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으며, 유명한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가 이런 지형에 형성된 폭포이다. 바로 제주도 돌의 대표적인 것이 현무암인데 바로 이 바위가 화산암에 속한다.

 

 경북 포항 달전리에 가면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작년에 지정된 주상절리가 있는데, 문화재청의 발표 자료에는 그 규모가 높이 20m, 폭 1백m이며 약 2백만 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 한다. 제주인 경우 그 유명한 대포동 지삿개 주상절리가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뿐, 이 색달 해안 주상절리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풋풋한 곳이다.

 

 

*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를 거꾸로 매달아놓은 것 같다.

 

♧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
    
 작년에 국비 1억 8천만 원과 지방비 1억 8천만을 들여 진입이 어려웠던 해안을 정비하고 해안도로와 산책로를 만들어 접근이 쉬워진 색달 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는 최대 높이 40m, 폭 약 1km에 달하는데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와 함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이곳 갯깍 동쪽은 해식동굴이 발달되어 있으며, 시원한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더욱 빛난다.
 

하이아트로 진입할 수 있는 조른모살 해수욕장의 병풍바위 주상절리대는 만물상을 닮은 천혜의 절경으로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된다. 높이 약 40m에 폭은 약 200m에 이르며, 수직절리의 발달에 따른 수평결절과 주상절리의 침식에 따른 기암의 발달이 특징적이다. 아직 두 곳을 잇는 통로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거친 바윗길을 걸으면 얼마든지 오갈 수 있다.

 

 제주의 지질학을 연구하고 있는 강순석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주상절리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연회색의 하와이아이트성 용암으로 갯깍지역은 비현정질이며 하얏트호텔 앞으로 갈수록 큰 장석 반정을 많이 포함하는 용암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용암은 과거 중문조면암군으로 분류했던 용암으로 서귀포 하와이아이트에 직접 대비되며, 서귀포 하와이아이트의 절대 연대치가 41∼55만 년 전이므로 이 지역의 용암도 그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조른모살 주상절리대 바닷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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