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단편] 삶과 죽음 사이 (1)

김창집 2006. 9. 25. 23:59

 

   * 1년이 안되어서 그런지 너무나 고운 잔디가 가득 찬 주인공 어머님 묘소 

 

 이 소설은 '제주작가' 2004년 상반기호(6월 15일자 발행)에 실었던 졸작(拙作)으로 사실상 돌아가신 어머님을 염두에 두고 돌아가시기 전 옆에서 쓴 글이다. 언젠가 기구한 운명의 선친(先親)과 자친(慈親)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정하던 중 원고 독촉에 밀려 잠시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썼다. 이것말고도 여러 편의 소설을 여기 싣지 못하는 것은 제주방언인 '아래아(·)'가 들어가는 글자가 인터넷에 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아래아(·)'가 들어가는 글자는 주로 '어/오'음으로 고쳐 썼음을 알려 둔다.

 

 여기 나오는 사진은 지난 6월 10일 제주시 곽지 향우회 주최로 열렸던 고향 마을 어른들을 위한 잔치에 나온 분들이 노는 모습이다. 초상권 관계로 욕할지 모르지만 걱정 근심을 잠시 잊고 몰두하는 모습이 너무나 순수했고, 이 글의 주인공인 나의 어머니와 모두 같이 오랫동안 살았던 분들이어서 그 정도는 용서해 주리라 믿는다. 어머님의 동서, 친척, 시누이, 동네 친구들도 계시다. 이제 모친께서 세상을 뜨신 지 1주기를 한 달 남겨 놓고 여기 싣는다.

     

 

 

   1.

 

 김(金成建) 선생은 타이완 답사에 책임자로 가게 되면서 심각한 고민을 했다. 문제는 몇 년간 모셔온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일이 꼬이게 되려니까 맞벌이로 직장에 나가던 그의 아내마저 수술을 하게 되었고 또 며칠간 입원해야 할 처지였다. 김 선생은 모임의 총무이사 자리에 있으면서 행사를 기획, 진행, 해설까지 담당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어 이번에 같이 가게 된 70여명의 회원들을 생각하면 안 갈 수도 없는 형편이고, 이래저래 곤혹(困惑)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여든을 넘기면서 차츰 원기가 떨어져 누워 있는 시간이 많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남자와 같이 억척스런 성격을 지닌 그녀는 날개 부러뜨린 새 마냥 파닥거리다 정신을 잃고 까무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내 중풍으로 이어져 왼쪽 팔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혼자 돌아눕기도 힘들어 기저귀까지 차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연히 간병인(看病人)이 필요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일부터 기저귀를 가는 일, 때맞춰 밥을 떠 먹이고 필요할 때 물이나 간식을 드리는 일까지 계속 옆에 붙어 있진 못하더라도 두어 시간에 한번쯤은 보아주어야 한다. 생각다 못한 김 선생은 이번 답사기간에 어머니를 둘째 동생에게 잠시 맡기기로 하였다. 그의 동생 부부는 조그만 사업을 하기 때문에 옆에서 계속 돌봐주지는 못하지만 며칠 동안은 시간을 내어 자주 집에 들리면 되지 않겠느냐 하며 선선히 대답했다.

 

 사실 옛날 대가족제도 아래서는 장남이 모든 것을 물려받고 집안을 다스렸기 때문에 부모를 모시는 게 당연시되었지만 핵가족화가 된 요즘에는 재산이나 제사 같은 것도 똑 같이 나누는데, 둘째 아들네 집에 가서 며칠간 못 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의견을 낸 것은 그의 아내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그의 아내도 자신의 수술은 잘 아는 병이기 때문에 위층에 사는 딸과 사위가 있어 괜찮다고 그렇게 하기를 종용했다.

 

 

 김 선생은 출국 하루 전, 딸과 같이 어머니를 동생 집으로 모셨다. 옛날 어느 효자는 자리를 옮기려고 어머니를 안았다가 너무 가벼워진 것을 알고 밤새 통곡했다는데, 김 선생의 어머니는 몸무게가 별로 나가진 않았지만 한쪽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얇은 이불에 싼 채로 안아 옮기는데도 무척 힘들었다. 눕혀서 가야 하기 때문에 세피아 승용차 뒷좌석이 짧아 차가 움직이는 동안 매우 불편해했고, 다시 아파트 3층까지 오르는데는 그의 재수 씨까지 동원해서야 겨우 옮길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옮긴 후 자리에 편히 눕혀 물을 마시게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족은놈아(작은아들을 편하게 부르는 말)! 이거 어디고?"를 반복한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는 하나 바뀐 환경을 육감적으로 느끼는지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긴 작년에도 이곳에서 한 달을 견뎠다. 그래도 그 때는 흐릿하지만 어느 정도 물체의 윤곽은 식별할 수 있었고, 목소리를 듣고 손자 녀석들의 이름이나 친지들의 목소리를 단박에 알아내어 손을 잡고 안부를 물을 정도로 큰 걱정은 없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실명 상태인 데다가 귀도 안 들려 의사소통이 힘들어 김 선생은 재수 씨에게 간호 요령을 메모해 주면서 참고하도록 했다. 동생이 일터에서 안 돌아왔기 때문에 재수 씨는 불안해하며 이것저것 자꾸 캐물었고, 졸지에 부탁하는 처지가 된 김 선생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하듯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잘 아시다시피 어머님의 몸 상태를 살펴보면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으며, 눈은 밤낮을 모를 정도로 나쁩니다. 불을 켜도 잘 몰라요. 귀도 큰 소리만 들을 수 있지 구분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이젠 누워 꼼짝도 못합니까?"

 

 

 "예. 그렇게 밤낮 누워만 있기 때문에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어 못 견딜 때는 어렵사리 왼쪽으로 한 바퀴 도는 경우가 있는데, 요 밖으로 밀려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주 살펴야 합니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울 때도 간혹 있고. 그러다가 이불이나 요를 놓쳐 옆에 사람이 없으면 찬데서 지내게 되니까 밤에도 자주 들여다봐야 합니다."

 

 "식사는 잘 하시나요?" 
 "밥은 잘 잡수시나 국은 맵지 않은 것으로 마련하여 국물에 적셔 먹여야 합니다. 특히 배추 된장국을 즐기며 하루 두 번 드시는데 간식 때문에 식사의 양은 적습니다. 간식은 점심때나 밤에 드시는데, 저기 사온 것 같은 종류의 부드러운 빵 하나를 먹을 만큼의 크기로 잘라 사발에 넣은 다음 손이 닿는 곳에 놓아 손으로 만지게 해주면 일삼아 스스로 드십니다."

 "사탕은 어떤 것을 잘 드시나요?"
 "사탕은 저기 제가 사온 거 같은 좀 큰 것을 드시는데 심심할 때나 달라고 원할 때 하나씩 드리세요. 과일은 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귤을 좋아하시는데 큰 것은 1회에 반쪽, 작은 것은 1개를 한 갑씩 먹이거나 껍질을 벗겨 갑을 떼어낸 후 사발에 넣어 드리면 스스로 드십니다. 그리고, 요즘은 특히 물을 자주 마시는데 보리차를 컵에 넣어 머리맡에 두었다가 물 달라고 할 때 빨대를 물려 들이면 됩니다."

 

 "기저귀는 하루에 몇 번 갑니까?"
 "요즘은 물을 자주 마셔서 소변도 잦으며, 대변은 한 3일 만에 한번씩 나옵니다. 여기 이 기저귀는 큰 것 속에 저 작은 것을 넣어 채우는데, 붙이는 부분은 비닐에 닿게 해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저귀를 갈 때는 다른 곳에 안 붙게 하나하나 떼면서 원래 붙였던 자리에 접어 두었다가 다시 사용하면 오래 쓸 수 있습니다."

 

 

 "소변을 보았을 때 기저귀 갈아 달라고 하십니까?"
 "소변을 보았을 때는 보통 '오줌 허여 도라(해 달라)!' 또는 '오줌 뉘와 도라(뉘게 해 달라)!'라고 말하는데 이 때는 작은 것으로 갈아주며, 냄새 안 나게 물수건이나 저 물티슈로 젖었던 부분을 닦아줘야 합니다. 또, 말을 않더라도 당분간 자리를 비웠을 때는 오는 즉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합니다."

 

 "큰 기저귀는 얼마 만에 갑니까?"
 "큰 기저귀는 망가지거나 옆으로 많이 젖어 냄새가 날 경우에 가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요즘 10개 들이 1통에 6,100원이나 가기 때문에 기저귀 값도 수월치 않습니다."   

 "약을 드리거나 특별히 해드려야 할 건 없습니까?" 
 "오래 누워 있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 대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물러 드리고, 가끔 몸이 결려 '베개 잘 허여도라!'하는데, 이 때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하고, 머리를 들어 베개를 돌려 눕히면 됩니다. 특별히 약을 드시는 건 없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없거나 위독할 때는 큰엄마에게 연락하고…." 

 

 

 김 선생은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는지 아니면 옮기면서 지쳤는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며칠 동안 못 볼 것을 생각하며 찬찬히 바라보다가 시체나 다름없는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돈다. 매일 같은 방에서 뒹굴 때는 몰랐는데 너무도 야위어 있었다.  

 

 처음으로 들여다 본 사람은 양 볼이 쑥 들어간 데다가 검버섯이 덕지덕지 핀 얼굴을 보면 섬뜩하게 놀란다. 수척하고 핏기 없는 안색으로 봐서는 며칠 못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옆에서 오랫동안 대하다 보니, 그런 대로 익숙해져 버렸던 것 같다. 김 선생은 가끔 자신이 반포보은(反哺報恩) 하듯 까마귀가 되어 수시로 밖으로 들락거리며 먹이를 구해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 김영임 - 회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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