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늦게 타는 시오름의 단풍

김창집 2006. 11. 13. 11:54

 

 

어제는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데리고

서귀포에 있는 표고 757.8m, 비고 118m의 시오름에 올랐습니다.


시골 고등학교여서 동창이라고 해봐야 3학년 때

남학생 3개 분단, 여학생 1개 분단이어서 4~50명 정도밖에 안됩니다.


지금 시골에 사는 동창생들 중 밀감이나 야채 농사를 하는 녀석들은

바빠서 못 오고, 멀리 사는 놈들도 당연히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6인승 봉고차에 꽉 차는 16명이 모여

숲길을 걸으며 옛날을 회상했습니다.


동창생 대부분이 이순(耳順)을 오르내리는 나이어서 단풍을 닮아갑니다.

터널을 이룬 단풍보다 상록수 사이로 보이는 한 떨기 단풍이

더 곱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게 타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단풍.

 

 

♣ 단풍의 계절 - 이남일


물소리가

이리도 내 가슴을 울리는 것은

내가 흙이었을 때

내 핏줄을 타고 흐르던

감미로운 고동소리였을까.


저 하늘빛도

저리 곱게 들뜨는 걸 보면

내가 물이었을 때

내 안에 숨겨둔

태양의 선물이었을 게야.


들꽃 향기도

햇빛에 타오르는 단풍도 그 때

내 심장에서 꺼낸 열정이었을까.

강물에 불기둥을 세우고

저리도 세상을 달구는 걸 보면


새벽 찬 서리에

단풍이 스러져 눕고 나면

지난밤 꿈은

흰 구름으로 다시 태어나려나

빈 가지의 침묵은

그렇게 또 누군가를 기다리겠지.

 

 

♣ 단풍나무 - 홍경애


가슴으로

토해낸 수채화는

메어지는

이념을 불태워

아름답게 승화되고


서시처럼

잠잠한 마음


끝도 없는

원색행렬은 

찬란한 광야에

미래를 펼쳐나간다.

 

 

♣ 단풍나무 - 김경윤


입이 없어도 잎을 흔들어 운다

이제 청춘의 시절은 가고

비바람 치던 하늘도 맑게 개어

강물이 시리게 푸르른 날에

붉은 마음 가슴에 넘치는 슬픔

화사하게 꽃처럼 세상에 내걸어 달고

소리도 없이 찬란하게 운다

모두가 땅을 향해 사는 동안

온몸을 세워 하늘을 받쳐 든 너는

입이 없어도 잎을 흔들어 운다

붉은 깃발을 가슴에 매달고

젊은 날의 추억으로 눈시울 붉히는

슬픈 시인처럼.


 

♣ 단풍나무 - 안도현


둘러봐도, 팔짱 끼고 세상은 끄덕 없는데

나 혼자 왜 이렇게 이마가 뜨거워지는가

나는 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서

마치 몸살 끝에 돋는 한기(寒氣)처럼 서서

어쩌자고 빨갛게 달아오르는가

너 앞에서, 나는 타오르고 싶은가

너를 닮고 싶다고

고백하다가 확, 불이 붙어 불기둥이 되고 싶은가

가을날 후미진 골짜기마다 살타는 냄새 맑게 풀어놓고

서러운 뼈만 남고 싶은가

너 앞에서는 왜 순정파가 되지 못하여 안달복달인가

나는 왜 세상에 갇혀 자책의 눈물 뒤집어쓰고 있는가

너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왜 네가 되고 싶은가

 

 

♣ 단풍 - 복효근


저 길도 없는 숲으로

남녀 여남 들어간 뒤

산은 뜨거워 못 견디겠는 것이다


골짜기 물에 실려

불꽃은 떠내려오고

불티는 날리고


안 봐도 안다

불붙은 것이다

산은,

 

 

♬ 추억 - 이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