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가깝고도 먼 나라 (1)

김창집 2004. 8. 2. 19:52

* 도쿄 제주상고동문회 초청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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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아래 구름 사이로 보이는 제주도

 

▲ 세 번째 일본으로 떠나면서

 

 7월 26일 18:20. 비행기가 10일간 계속된 섭씨 30도의 더위를 떨쳐버리듯 가벼이 제주공항을 뒤로하며 힘차게 솟아오른다. 마음은 비행기 아래 떠오른 구름처럼 마냥 부풀어 간다. 세 번째 맞는 일본행. 처음은 친지 방문 차 오사카에, 두 번째는 답사 차 큐슈에, 이번에 기대되는 도쿄 행이다.

 

 그러나 기대만큼 마음은 가볍지 못하다. 이 나이가 되어서 남의 힘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그렇거니와 재일 동포 동문의 초청이어서 더욱 부담이 된다. 그들이 누구인가? 가난으로 굶기를 밥먹듯이 하던 시절, 돈을 벌어 성공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일본행 배를 탄 사람들이다. 지금은 동포의 지위가 어느 정도 올라섰지만 당시 갖은 핍박 속에 막노동하면서 일어선 분들이다.

 

 하지만 일단 그런 마음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 분들의 순수한 취지와 따뜻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들이 고향과 후배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주어진 시간에 부지런히 보고 깨달아 학생들에게 전하는 것만이 그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고 우리 31명은 다짐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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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꾸사의 센소지(절)에서 본 우리가 묵었던 호텔

 

▲ 아사꾸사에서 받은 환영

 

 저녁 8시 30분. 비행기는 어김없이 도쿄 나리타공항에 안착했다. 215만㎡ 면적에 112대가 동시에 머무를 수 있다는 계류장을 거치는 동안, 머물러 있는 세계 각국의 비행기와 그 규모에 주눅이 든다. 도쿄 시내와는 6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극동의 마지막 국제공항이어서 아메리카로 가는 가교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공항에는 김세방 회장과 4박5일 동안 이번 연수를 진두 지휘할 부회장 고찬호 동문(5회)이 나와 반갑게 맞는다. 여객 터미널을 나서는 순간 "훅--" 하고 아스팔트의 열기가 몰려온다. 오기 전 섭씨 40도를 기록했다는 살인적인 도쿄의 더위를 마음으로 대비한 터라 용감하게 셔틀버스에 올랐다.  

 

 별로 밀리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4일 동안 묵을 '아사꾸사 뷰 호텔'까지는 2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래서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호텔 옆 '김해원(金海苑)'에는 우리를 맞기 위해 명예동문회장이며, 지금은 재일한국동경지부단장인 이시향 씨(2회)를 비롯한 70세 전후의 동문들이 나와 손을 덥석 움켜쥐며 반가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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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집이나 가게 앞에 걸어놓은 등

 

▲ 동문들에게 배우는 삶

 

 '김해옥'은 주로 한인(韓人)들이 고향을 찾듯이 드나드는 음식점으로 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소주를 팔고 있었다. 분위기를 돋우노라 고추와 마늘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곡식들이 장식품으로 걸려 있고, 훈민정음을 비롯한 용비어천가·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등을 복사해서 만든 벽지로 도배했다.

 

 동문들은 자리를 돌며 일일이 악수하고 나서 술을 권한다. 그분들의 거친 손마디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정(情)보다, 얼마나 힘든 젊음을 이곳에서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신들보다도 어린 선생님들에게 오랫동안 잊었던 스승을 대하듯 몸에 밴 겸손으로 대하는 걸 보면서 모골(毛骨)이 송연해진다. 그리고, 이곳이 아무리 동포가 경영하는 음식점이라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환율을 따지며 마시면 술맛이 없다고, 기분 좋게 취하는 것이 싸게 먹는 방법이라는 음주 철학을 깨우쳐준다.  

 

 이분들의 바람은 한결같이 후배들을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뿐이었다. 그들 중에는 재학 중에 넘어와 졸업을 못한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교 사랑은 너무도 뜨거워, 혜택은 다 받았음에도 모교를 사랑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돌아가면 이 분들처럼 조건 없이 모교와 직장을 사랑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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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묵었던 호텔 로비 가운데 모셔놓은 상징물

 

▲ 아사쿠사의 밤은 깊어 가고

 

 우에노와 함께 도꼬의 서민가를 대표하는 아사꾸사(淺草)는 센소지(淺草寺)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유서 깊은 지역이다. 에도(江戶) 시대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유곽(遊廓)이 들어서서 일대 유흥가로 자리매김 했으며, 1973년에는 센소지를 중심으로 한 공원화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오락 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당시 일본 연예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곳으로 속속 모여들면서 극장가는 번창을 거듭했고, 1903년에는 일본 최초의 영화관이 세워지기도 했다. 이후 수십 년간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아사꾸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점차 쇠퇴해지기 시작한다. 다음날 아침 센소지에 가보니,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희극인의 비(碑)'라든지, '서예가의 비'들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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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상징물 옆에 나란히 세워놓은 이곳 축제 때 썼던 가마

 

환영회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졸업시킨 오상조 군(34회)이 나타났다. 장난이 매우 심했던 이 녀석은 제일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손을 덥석 쥔다. 내미는 명함에는 한국식품유통회사 대표로 되어 있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 온 동문들과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났지만 거래를 하다 선배를 알고 동문 모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자정이 훨씬 지나 호텔로 돌아오면서 보니, 호텔 로비 가운데는 이곳 지역 축제 때 사용했던 가마와 커다란 인형이 수호신인 양 자리잡았고, 그 옆으로 컴퓨터가 놓여 있다. 100엔 짜리 동전을 코인처럼 놓으면, 10분 동안 사용할 수가 있어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한글이 지원되지 않아 메일을 보내거나 답글을 올릴 수는 없었다. 메일을 정리하고 칼럼을 둘러본 후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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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神社) 입구에 세워 놓는 도리이(鳥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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