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가깝고도 먼 나라 (3)

김창집 2004. 8. 14. 12:47

* 도쿄 제주상고동문회 초청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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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꾜를 빠져 나가면서 본 건물과 '도꾜타워'(왼쪽)

 

▲ 후지산으로 가는 길

 

 7월 28일 수요일.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10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후지산엘 가려면 그만큼 서둘러야만 했다. 7시에 출발한다기에 차에 올라보니, 몇 분의 동문께서 벌써 와 있었다. 오늘은 관광 코스이기 때문에 같이 돌아다니며 대화도 나누고 친목도 도모할 생각으로 일부러 하던 일도 쉬면서 온 것이다. 버스는 45인승이어서 얼마든지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족을 데리고 온 동문도 있었다.


 동문들은 성의를 다하여 준비한 맥주를 비롯해서 일본소주, 우유, 콜라, 소다, 물, 녹차 등을 차의 냉장고가 철철 넘치도록 집어넣고 남은 것이 식을까봐 차가 출발하자마자 선생님들에게 권하기 시작했다. 예순이 넘은 분들이 달리는 차에서 이렇게 가지고 다니며 권하는 것이 멋 적어 보여 대신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그 분들이 성심(誠心)으로 하는 일이기에 고맙다고 그냥 대접만 받았다.


 생각해보면, 이분들은 어려운 가운데 우리 선생님들을 이렇게 모시고 후지산을 구경시켜 드리는 일이 평생 동안 가장 뜻 있는 일로 여길 분도 계시겠고, 서럽고 어려운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드러내 놓고 명분 있게 치르는 흐뭇한 행사가 아니던가? 이분들 중에는 학업도 못 마친 채 도중에 온 분도 있고, 학업을 마치자마자 돈을 벌어 번듯하게 사람 구실 한 번 해보자고 독한 마음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온 분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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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산으로 가는 도중 들렀던 휴게소

 

△ 아노, 내 얘기 들어보소

 

 차는 중요지점을 거치는 고속화도로를 돌아 서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속도를 낸다. 오는 도중에 도쿄타워도 보았고, 셀 수 없이 많은 빌딩과 아파트도 보았다. 건물마다 특색이 있고, 빈곳에는 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수종(樹種)은 우리 나라 가로수와 별로 다르지 않게 은행나무, 느티나무, 녹나무, 소귀나무 등이 보이는데, 화단에 심어놓은 철쭉 종류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많이 죽었다.


 거리는 비교적 깨끗한 편인데, 청소를 하면 함부로 버리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아파트는 비교적 작은 평수로 이루어졌고, 베란다에 유리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변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나중에 갔을 때 가이드에게 들은 바로는 지진이 났을 때 탈출하려면 불편해서 그렇다고 했다. 보통 시속 80∼100km로 달리는 창가에서 본 농촌은 우리와 크게 다른 바는 없었지만 조그맣게 잘 가꾸어놓은 정원이 간간이 보이고, 산에 삼나무가 쑥쑥 잘 자란 것이 조금은 달랐다.


 선생님들에게 음료수 나눠주기를 마친 10회 동문 모씨가 드디어 마이크를 잡았다. 학교 다니며 사귄 사범학교 출신 애인이 선생님이 된 것에 비해 너무 자신이 초라해 당당히 돈을 벌고 가 결혼을 신청하려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돈이란 게 쉽게 벌리는 게 아니어서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검소하게 사는데, 고향에 가보니 너무 낭비가 심하더라고 후배들에게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우리말로 선생님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힘든지 '에! 에!' 하는 식이 '아노! 아노!'를 연발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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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 지점에서 만난 후지산과 스치는 구름

 

▲ 후지산(富士山), 일본의 한 얼굴
 
 후지산은 벚꽃과 함께 일본 엽서를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일본의 상징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산이다.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의 경계에 위치하며 약 1만년 전 이즈반도의 지각 변동으로 혼슈와 부딪치면서 융기해 생긴 것이라 한다. 높이는 3,776m로 동쪽으로는 보소반도가, 서쪽으로는 제팬 알프스가, 남쪽으로는 이즈반도가 보인다. 정상에는 지름 약 800m, 깊이 200m의 분화구가 있으며 1,300여 종의 식물과 130여종 이상의 조류가 서식한다.


 개산(開山)은 매년 7월 1일, 폐산(閉山)은 8월 31일. 산이 열리면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휴가 시즌이 맞물려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몰려든다. 1707년 후지산이 폭발했을 당시에는 100km나 떨어진 도쿄까지 화산재가 날아갔다고 한다. 후지산의 아름다운 모습은 산 위에서보다 밑에서 보는 것이 낫다. 4월 4일∼6월 30일, 9월 1일∼11월 23일 사이에는 산에 오르진 못하고 정상이 보이는 지정된 곳까지 버스만 운행한다.


 동문들 중 후지산을 제대로 오른 분은 한 분도 없었다. 바쁜 일정을 쪼개 준비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 100km 정도 차를 몰고 달려와서 10시간 동안 등정은 못 하더라도 실컷 바라보고 돌아가는 코스인데, 맘먹으면 얼마든지 올 수 있지만 경제적인 여유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못 왔던 것이리라.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렀다. 시내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여기서 다 모인 것 같았다. 마침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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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에서 잡은 후지산의 모습

 

△ 눈 대신 구름을 머리에 인 후지산

 

 후지산 사진을 보면 보통은 3776m의 그 봉우리에 허연 눈을 인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7부 능선 위가 풀과 나무도 없이 대부분 검은 화산재로 뒤덮여 있어 특징이 없거니와 1년의 반 이상을 눈에 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 꼭대기에 눈을 벗겨 버리면 어딘가 허전할 것이다. 분화구에서 빨간 불꽃이라도 솟아오르기 전에는. '후지'란 이름은 '불'을 뜻하는 아이누어 '후찌'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후지산은 오지랖이 넓어서 하코네와 더불어 하나의 국립공원을 이루는데, 다섯 개의 호수와 수천 개의 온천 숙박시설, 놀이동산, 20여 개 골프장, 헤아릴 수 없는 기업체와 자치단체의 연수시설, 개인 별장이 들어서 있으나, 일본 특유의 질서 정연함 때문에 결코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후지산은 높이의 등고선을 10등분하여 합목(合目)이란 단위를 쓰는데, 그 절반의 높이인 5합목까지만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다.


 드디어 후지산에 입구에서 통행료를 내고 등반로를 달린다. 주변에 삼나무 우거진 길을 지나고 낙엽송과 잡목림이 빽빽이 들어선 곳을 넘어설 때만 해도 나무에 가려 산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었다. 재수 좋아야 1년에 몇 번 그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러다 못 보는 게 아닌가 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자신과 같이 가면 분명히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없어 우리 눈앞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눈 대신 구름을 이긴 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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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초롱꽃

 

△ 후지산을 지키는 사람들

 

 내려가는 차들이 한편으로 쭉 늘어선 곳에서 버스에 올라 일행을 기다린다. 같이 온 가족 중에서 약속된 시간을 모르고 아직 안 온 분이 있기 때문에 후지산을 바라보며 만들어간 자료도 번갈아 보았다. 그 중에 동아일보 조헌주 기자가 쓴 기사의 일부를 다음에 옮겨 본다. …일본의 경제 성장이 가속되던 1950년 중반부터 1970년까지 이곳도 심한 개발의 열풍을 앓았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목조 주택을 선호하는 데다 2차대전과 패전 후 철강 부족으로 목재를 남벌하는 바람에 국토가 급속히 황폐화된다. 


 193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지산 일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이 일대에는 양질의 식수와 공업용수 공급이 쉬워 제지, 전자업체 등이 마구 들어섰다. 일본의 '산 살리기'는 1950년 '국토녹화추진위원회'가 결성돼 대대적인 식목 운동이 벌어지면서 본격화됐다. 녹화 사업 못지 않게 보존 활동도 강화됐다. 1975년에는 후지산 국립공원 지역이 훨씬 넓게 늘어나 하코네 일대가 포함됐다. 이 때 일본이 내건 산림보존의 개념은 '언제까지나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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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의를 다지고 막 출발하려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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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합목 전망대에서 보는 후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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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합목 휴게소에 있는 어악신사(御岳神社)


 

 '후지산에 자연 숲을 만드는 모임'을 비롯해 지금 일본의 산림관련 민간 단체는 581개에 이른다. 이중 60%가 최근 5년 사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산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임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교수가 주도하는 단체는 '어린이 나무 박사'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휴일에 산을 찾아 대자연의 정취를 느끼도록 해주고 나아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숲 속을 거닐며 나무 이름을 한 가지 알아 맞추면 10급, 2개 알아 맞추면 9급, 이런 식으로 해 11개를 알면 초단 자격을 주는 식이다.


 시민단체와 행정기관이 함께 만든 '후지산 헌장', '후지산을 지키기 위한 10가지 약속' 등은 일본인이 얼마나 후지산을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쓰레기 갖고 되돌아가기, 동물 포획이나 식물 채취 않기는 물론 공원 주차장에서 공회전을 시키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이렇게 후지산 일대를 지키려는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무료지만 앞으로는 입산료를 부과하자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파크 볼런티어', '어린이 레인저', '자연공원 지도원' 등 후지산을 지키려는 각종 민간 자원봉사대의 활동은 눈부시다. 해마다 연인원 1억 명이 찾는 일본 최대의 국민휴양관광지인 후지산 일대가 환경파괴로 신음하지 않고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각계 각층의 애정과 노력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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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꼬네로 가는 도중에 들렀던 어느 음식점 앞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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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식당의 상차림. 솥 안에 있는 것은 야채밥

 

▲ 하코네[箱根]로 가는 길

 

 후지산을 본 기분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먹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약 문화가 발달된 일본에서는 이를 어기면 큰일난다고 해서 일단 먹어두기로 했다. 조그만 마을 어귀 휴게소에 있는 2층 식당에서 소박한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의 음식이 거스르지 않는 것은 농촌에서 직접 생산한 싱싱한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와 농가를 돌아보는데, 밭작물도 거의 같고 꽃도 비슷하다. 외래종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이 일제 때 우리 나라에 퍼뜨린 것도 많다.


 해마다 2천만 명이 몰린다는 하꼬네는 후지산과 마주한 전형적인 복합화산지대로 깊은 산과 호수, 계곡, 고원(高原)에 둘러싸여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중심부인 교또(京都)와 에도(江戶)를 연결하는 중심부이고, 지금은 도꾜와 교또, 오사카를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남쪽으로 지나고 있어, 좋은 관광지로 개발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약효를 가진 양질의 온천이 곳곳에 널려 있어 숙박시설까지 빈틈없다.


 하꼬네에는 등산열차, 로프웨이, 유람선과 같은 온갖 교통시설을 비롯해서 미술관, 공원, 성곽, 신사, 전망대, 자료관, 캠핑장, 골프장 등 모든 관광시설을 다 갖춘 곳이다. 우리는 우선 로프웨이(케이블카)로 내려가 유람선을 탈 계획으로 산길을 꾸불꾸불 돌아 소운잔(早雲山)역으로 올라갔다. 주중이고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인다. 여기서 총연장 4,035m의 로프를 타고 최고 130m의 높이를 건너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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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운잔역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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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겐다이에서 출발하는 해적선처럼 꾸민 유람선

 

▲ 로프웨이와 해적선처럼 꾸민 유람선

 

 좁은 케이블 카 속에 6∼7명씩 타니, 너무 덥다. 슬금슬금 동산을 오르고는 다음부터 내리막이다. 아래는 오와꾸다니(大涌谷)라고 화산의 여진이 남아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골짜기다. 저 아래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진흙 구덩이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열린 창으로 유황 냄새가 풍기고, 부근에는 나무도 풀도 자라지 않았다. 온천을 여기서 끌어가는지 쇠파이프가 어지러이 묻혀 있다. 


 마주 오는 케이블카에 탔던 소녀에게 손을 흔들자 부끄러운 듯 같이 손을 흔든다. 20분 정도 탔을까? 케이블카는 아시호수의 북쪽 끝이면서 유람선 선착장인 도겐다이(桃源台)에 도착했다. 해적선 흉내를 낸 유람선이 다가오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30대 부부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데, 10살 전후의 아이가 한국말을 한다. 방학을 맞아 친척집을 근거로 왔다는데, 배에 타서 자세히 살피니 반은 한국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말이 섞여 쓰여진 간판을 보면서 이제 일본 관광객이 반은 우리 나라 사람이 차지하는구나 여겨졌다. 사실 비행기 삯이나 물건값이 비싸서 그렇지 교포와의 인연이라든가 사업이나 기타 여러 가지 관계로 쉽게 올 수 있는 곳이다.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도꾜로 오는 동안 모두 한 마디씩 소감을 말하기도 하고, 그 동안의 설움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달랬다. 이어진 노래방에서는 그간의 사연을 나누느라 밤 깊은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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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속에 세워 놓은 해적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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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내린 뒤 기념 촬영

 

♬ Manhattans 'Kiss And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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