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가깝고도 먼 나라 (4)

김창집 2004. 8. 17. 17:25

* 도쿄 제주상고동문회 초청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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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묵었던 곳과 비슷한 경로(조선일보에서 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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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잤던 호텔 방에서 보이는 센소지

 

▲ 아사쿠사의 중심 센소지(淺草寺)

 

 7월 29일. 일본에 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다. 어젯밤 나가지 않고 비교적 일찍 잤기 때문에 오늘은 이곳 아사쿠사와 역사를 같이하는 사찰인 센소지에 가 보기로 했다. 창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절을 바라보며 밝기를 기다려 방 파트너 박 선생님과 같이 길을 나섰다. 호텔에서 길을 건너 약 200m 거리에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길은 사방으로 통하고 경내가 아주 넓으며 나무가 많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공원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마쓰리를 비롯하여 1년 내내 많은 행사가 열린다고 했다. 

 

 일본의 절은 우리의 절과 다르다. 일본의 절은 고유의 전통 신앙과 같이 존재하며 어느 절이나 신사(神社)가 있다. 일본 도쿄 다이토구(臺東區)의 아사쿠사에 있는 사찰 센소지는 아사쿠사 칸논지(淺草觀音寺)라고도 하며, 일본의 몇 안 되는 고사찰의 하나이다. 628년 어부 형제가 바다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아사쿠사 칸논지란 명칭도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유래한 것이다. 도쿄의 대표적인 사찰로, 24개 지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40∼50명의 승려가 거주한다.

 

 입구는 가미나리몬[雷門]으로, 오른쪽에는 풍신(風神), 왼쪽에는 뇌신(雷神)을 모셨는데, 두 신 모두 풍년과 태평연월(太平烟月)을 주관하는 신이다. 가미나리몬을 지나면 돌로 된 길 양쪽에 민속품을 비롯해 각종 기념품을 파는 점포들이 늘어서 있고, 이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산문(山門)에 해당하는 호조몬[寶藏門]이 있다. 문을 지나 왼쪽의 5층탑을 거치면 드디어 대웅전인 본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은 가파른 지붕이 특히 아름다우며, 관음당 중앙의 본존이 안치된 궁전은 일본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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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꾸사의 상징 카미나리몬(雷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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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오층탑과 불경 안치탑

 

▲ 경내에 여러 가지 작품과 기념비도 있어

 

 우리의 일주문이나 금강문, 그런 구조와는 달리 이 절은 열린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도쿄에서 열리는 마쯔리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여리는 모양이다. 남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아사꾸사의 상징이라는 카미나리몬(雷門)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호조문으로 들어갔다. 절 한 구석에서 쭈그리고 잤던 한 영감이 보따리를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간다. 우리 절 같으면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올 시간인데도 절 안은 고요하고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본존인 관세음보살은 33년에 한 번 있는 경축개장이나 기념행사가 있을 때만 임시로 열 뿐 일반인은 참배할 수 없다고 하는데 법복도 입지 않은 60대쯤 되어 보이는 분이 들어간다. 금당을 지나 북서쪽 신사가 자리한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며 높고 기운차 보이는 오층탑을 바라본다. 들어오는 문 쪽으로 향을 피우는 향로도 아니고 탑도 아닌 조그만 집, 향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그 이름난 곳이다. 한쪽에는 보살상이 아닌 현대 조각 같은 모자상을 모셔 놓았다.

 

 남쪽으로 걸어가는데, 사바세계에서 악귀들에 고통을 받는 것을 형상화한 조각품이 세워져 있었다. 안내서에는 이 사찰의 수장고에는 불서(佛書), 불화(佛畵), 불구(佛具), 부적그림, 일기 등 250여 점의 유적이 보관되어 있는데, 특별전 외에는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쪽 구석에는 과거 이곳이 영화를 비롯한 공연 예술의 시발점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기념비들이 있다. 주위에는 극장들을 비롯해서, 온천탕, 기념품점과 유흥가들이 꽉 들이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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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에 있는 모자지장이라는 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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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에 있는 사바세계의 인간 군상 

 

▲ 개교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게이까(京華)상고

 

 1인당 1,800엔 하는 호텔 양식 뷔페로 아침 식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오늘은 드디어 학교 시찰의 날. 차에는 우리가 가는 학교가 있는 문경구청(文京區廳)에 근무하는 동문 한 분이 타고 계셨다. 문경구청은 세계에서 가장 대학이 많은 지역인데 17개나 된다고 하며 그런 까닭으로 상주 인구는 17만 명인데, 낮 유동 인구는 35만을 웃돈다는 설명이다.

 

 간선도로로 접어들어 조금 달렸는데, 바로 도로 옆에 바짝 붙여 지은 빌딩 같은 건물이 게이까 학원의 학교 교실들이라고 한다. 들어가는 오른편 벽에 이 사립학교 설립자의 뜻을 밝힌 구절을 크게 붙여 놓았다. 이른 바 맹자(孟子)의 인생3락(人生三樂) 중 세 번째인 '得天下英才而敎育之(득천하영재이교육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한다'라는 내용이고 왼쪽 법인 사무실로 들어가는 곳에는 설립자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게이까 상고는 도쿄에서 유일한 사립 상고로 개교 100년을 넘긴 유서 깊은 학교였다. 우리 나라에서처럼 실업계, 특히 상업계 고등학교가 인기를 잃으면서 하나둘 학과를 개편하고 교명을 바꿀 때도 처음 시작한 학교가 상고여서 그냥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학교법인 경화학원 내에 남자중학교, 여자중학교, 남자 인문계 고등학교, 여자 인문계 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게이까 상고만 남녀공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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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서 본 '得天下英才而敎育之(득천하영재이교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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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에 막 붙어 있는 학교 건물

 

▲ 오직 100%의 진로 확보를 위해서

 

 학교는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교무부장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이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또, 제주 출신 학원 이사 한 분과 얼마 전에 제주를 다녀갔다는 문경구의회 의원도 나와 계셨다. 나눠 준 학교 안내 책제목이 'only one 100%'여서 얼마나 진로 지도를 위해 힘쓰고 있나 하는 것을 단적으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서로의 소개와 인사말을 나누고 알고 싶은 내용을 우리 선생님이 묻고 담당자가 대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고 10년 전부터 인기가 없어진 상업계 고교를 운영하려면 교과 편제도 바꿀 수밖에 없어서 독특하게 짰다고 한다. 1학년은 공통으로 운영하고 2∼3학년은 진학반을 따로 운영한다. 1학년 과목 중 특이한 것은 음악과 서도(書道)를 선택하여 병행 수업하는 것과 부기를 4단위, 토요 강좌 2시간 정도였다. 그리고, 2∼3학년 수업 중 색다른 것은 실업과목이나 인문계 과목을 선택해서 이수한다는 것 정도이다. 입학 정원은 5학급 150명 모집을 하고도 학교 형편에 따라 운영할 수 있으므로 1997년부터 197명, 217명, 244명, 209명, 231명, 219명을 받아들였고, 작년부터는 1학급 늘어 228명, 금년에는 243명이 입학했다.
 
 작년과 재작년의 진로 상황은 금년과 비슷한데 올해는 12.4%의 취직 희망자 전원이 취업했고, 44.9%의 대학과 8.2%의 진학 희망자 중 92.8%가 진학했으며, 나머지 30.4%의 전문학교 진학 희망자는 100% 진학해서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4.1%만 낭인(浪人)이 되었다고 분류되어 있다. 또, 검정취득 목표를 학년 학기별로 정해놓고 부기, 정보처리, 영어, 한자, 비서 기능 등 필요에 따라 2급과 1급을 취득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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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중인 교육위원과 이사, 그 옆이 동문회 고인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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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중에 나와서 연습 중인 밴드부 학생들

 

▲ 정보화 교실 우리보다 뒤져


 

 지금은 3:1의 경쟁률을 보이지만 중간엔 학생 모집에 애를 먹은 것 같았고, 공립보다 사립이 수업료도 3배정도 비싸지만 학교의 인기 정도에 따라 선호한다고 하며, 이곳에도 멀리 오끼나와나 관서지방의 오사카(大阪)에서 온 학생도 있다고 한다. 유독 젊은 선생님들이 많아서 물어보았더니, 월급은 공립보다 많은데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열심히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다른 곳으로 진출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운동부는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며 비전공 선생님이 모두 한 가지씩 맡아 지도하고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교실을 돌아보러 가는데 마침 방학을 맞아 스스로 나와서 악기 연주 연습하는 학생이 보였고, 체육관에서는 농구 게임이 한창이다. 워낙 땅값이 비싼 곳이라 좁은 운동장에서 축구, 야구, 테니스 등을 번갈아 연습하고, 체육관에서도 농구, 배구, 유도 등을 번갈아 연습하고 있다. 교무실은 좀 번잡한 느낌이 들었는데 노트북을 하나씩 지급 받아 모든 자료나 서류를 출력하여 빽빽하게 꽂아놓고 있었다. 교실엔 아직 컴퓨터나 큰 모니터 하나 없었다. 청소는 업체에 맡겨 한단다.    

 

 정보처리실은 2곳으로 모니터를 두 개씩 놓아 한 쪽은 선생님이 제시하는 내용을 비추고, 그것을 보며 다른 한 쪽에서 연습한다고 한다. 제1실에는 최신형 컴퓨터로 48대, 제2실에는 금년 4월에 바꿨다고 하는 LCD 모니터로 되어있었다. 특이한 것은 멀리 산에다 교사(校舍)를 지어놓고 5월에 신입생들을 합숙시키며 집단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과 1월에 경화제(京華祭)라 하여 학원내 모든 학교들이 모여 연합 축제를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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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 중 학교에서 합숙하며 시합 중인 운동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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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복잡한 교무실 선생님들의 책상

 

▲ 동경 한국 학교의 사정

 

 신주쿠(新宿)에 자리한 한국학교를 찾았을 때는 소나기가 내렸다. 교정으로 들어가 알림판을 본 순간, 한글로 쓰인 주간 행사 계획표가 꼭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 타국 생활 끝에 이곳에 들르는 우리 동포들도 같은 감정일 것이다. 현관으로 들어선 순간 세종대왕의 흉상(胸像)과 벽에 붙여놓은 대학 합격자 명단이 눈에 들어온다. 외국인 학교 특례 입학 제도에 힘입은 바 크지만 연고대를 비롯한 서울과 지방 대학에 골고루 입학했으며, 와세다 같은 일본내 대학에도 제법 많이 들어갔다. 아래 부기(附記)한 것을 보니, 한국의 지방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대부분 의예과, 한의과, 치과, 약학과라고 되어 있다.

 

 교육 목표를 '세계화의 주역이 될 쓸모 있고 존경받는 한국인 육성'으로 정하고 '나라를 사랑하자' '힘써 배우자'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교훈 아래 갑조학교로 일본 정부에 등록된 이 학교에서 여자 교감 선생님이 우리를 맞아 성실하게 설명해주었다. 이어서 작년에 정년 퇴임하고 지금은 학교 상임이사로 계신 제주 출신 한 분이 나와 학교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자신은 이 학교 1회로 졸업해서 동경대를 나왔는데, 모교 선생님의 권유로 1966년부터 지금까지 이 학교를 지켜왔다 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무렵 2세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뜻 있는 인사들이 모여 1954년 초, 중등부를 개교해 다음 해 동경도의 인가를 받았고, 1956년에는 고등부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는데, 1962년에 이르러서야 본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지금 학교 운영비는 1년에 4억엔 정도 드는데, 수업료로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 중 21%가 정부 보조, 2.6%는 동경도에서, 나머지 2.8%는 민단에서 지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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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 한국학교의 산 증인인 제주 출신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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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 한국학교의 컴퓨터실

 

▲ 욘사마의 영향으로 한국어 강좌 인기

 

 학교 운영은 초등부와 중, 고등부로 나누는데 고등부의 경우 교장과 8명의 교사는 본국 정부에서 파견 나오며, 20명의 현지 강사와 초중고에 20명의 영어 원어민 교사를 쓰고, 재단에서는 교감과 13명의 교사, 1명의 교의(校醫), 6명의 사무직원으로 운영한다. 초등학교는 대체로 본국의 7차 교육과정을 따르나 현지 사정을 고려 매학년 주당 4시간씩의 일본어, 또 영어통합학습으로 1∼2학년 주당 12시간, 3학년 11시간, 4학년 6시간, 그리고 5∼6학년은 7시간 수업한다. 방과후 보충수업은 한국어 기초 3시간, 일본어 기초 3시간, 그리고 한자와 일어 검정 대비반과 영어 특별 학습을 받는다.

 

 중등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는데, 주당 일본어 4시간, 영어와 영어 듣기를 주당 2시간씩하고 1학년 때 영문법 2시간, 2∼3학년 영어쓰기 2시간, 그리고 전학년 영어회화 4시간씩 해서 영어를 강화한 점이 다르다. 고등부는 각 학년 한국반과 일본반으로 나누고, 또 2∼3학년에는 문과와 이과로 나누었다. 영어는 토익과 토풀 시간까지 주당 10시간씩 편성되었다. 학생수를 보면 1970년대까지는 민단 아이들만 770명 정도였으나 이후 점점 줄어들었으며, 1985년을 전후해서 50%가 본국에서 들어오는 주재원이나 파견 상사의 자녀들이다.

 

 지금은 1년에 고등부가 60∼80명 정도 졸업한다는데, 본국의 교단 선진화 계획에 따라 랜망을 구축하여 전교실 인터넷 접속, 컴퓨터 대형 멀티비전, VCR, OHP, DVD, 실물화상기 등을 갖추었다. 토요학교에는 동포 자녀 가운데서 소학생과 중학생 300명을 모집하여 국어를 비롯하여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매주 화, 금요일 저녁에 2시간씩 '동경 코리안 아카데미(민족대학)'를 운영하여 성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요즘 욘사마('겨울 연가'의 배용준을 높여 부르는 말)의 영향으로 한국어 강좌가 붐을 이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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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등학생들의 꿈 동경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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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학생 운동사에서 가장 과격한 역사의 증인 야스다 강당

 

▲ 도쿄 대학과 우에노 공원

 

 점심은 우에노(上野) 공원 쪽에서 먹기로 되어 있어 그 쪽으로 가는 길에 잠시 도쿄대(東京大)에 들렀다. 정문을 들어서니 먼저 양옆으로 들이찬 오래된 은행나무와 옛 건물이 대학의 역사를 말해준다. 1877년 동경제국대학으로 문을 연 이 대학은 일본 고교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지금은 일본 최고의 종합대학답게 널찍한 캠퍼스 안에 농학부, 공학부, 법학부, 문학부, 이학부, 교육부, 경제학부, 약학부, 의학대학 등이 자리잡았다. 시간이 없어 많이 둘러보지는 못하고 기념 촬영 정도하고 나오며, 우리 같은 정문을 나왔으니 도쿄대학 동문이라고 우스개를 해본다.

 

 정문에서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다가 도쿄대학이 상징인 아까몬(赤門)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비가 와서 차를 세우지 않고 그냥 가는데, 차창 너머로 사진을 찍어본다. 이 문은 아이러니 하게도 토꾸가와 바꾸후의 11대 쇼군(將軍)인 토꾸가와 이에나리(德川家齊)의 21번째 딸이 시집갈 때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는데, 그는 일본 역사상 최대의 정력가로 40명의 첩과 56명의 자녀 그리고 900여 명의 궁녀를 거느렸다 한다.

 

 간단한 일식 뷔페로 점심을 끝낸 우리는 2시간의 자유시간을 얻어 쇼핑도 할 겸 상가를 둘러보았다. 한 곳에 마트가 있어 들어가 보았지만 물건이 조악하게 보여 사지 않고 전자 상가에서 인터넷 메일 검색을 끝내고 음료수를 사들고 우에노 공원으로 갔다. 소나기를 피하고 올라갔는데, 유카타 차림으로 거만하게 서 있는 동상이 있어 김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메이지유신의 핵심 인물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사이코 아카모리(西鄕隆盛) 동상이라 한다. 기분이 묘해져 왕인 박사비가 있다는 데도 돌아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연꽃에서 자비(慈悲)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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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노 공원에 서 있는 정한론의 사이코 아카모리(西鄕隆盛)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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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노 공원 넓은 못 속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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