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호치민시여! 영원하여라

김창집 2007. 1. 28. 00:18

--- 탐문회 캄보디아, 베트남 답사기(완)

 

 

                                    * 호치민시 한 복판에 서 있는 노틀담 성당

 

▲ 호치민시 심장에 솟은 노틀담 성당

 

 새롭게 시작하는 호치민시. 한 때 패배의 땅으로 10여 년 간 방치되었던 이곳은 도이모이 정책 이후, 새로운 투자지역으로 부상하면서 오늘의 베트남을 실제적으로 먹여 살리는 황금의 땅으로 변해간다. 우리가 탄 차는 예부터 사이공의 중심부로 알려진 동커이(Dong Khoi)거리에 멈췄다. 월남시절에는 대통령 관저가 되었고, 지금은 주석이 가끔 머문다는 주석궁과 가운데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노틀담 성당이 있는 곳이다.

 

 노틀담 성당은 동커이 거리 북쪽 끝에 중앙 우체국과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1877년에서 1883년까지 7년이 걸려 지어진 건물이다. 프랑스 식민통치의 상징물이 된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철탑은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래도 식민지 시절 남겨놓은 호치민시의 프랑스 건물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점령지 월남에 파견된 관리들은 이곳에 근무하면서도 현지에서 미사를 올리며 자신들의 상징을 영역 표시처럼 자랑스럽게 세워두고 싶었을 것이다.

 

 안에는 베트남식이 가미되어 침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나 지금은 베트남인 신도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기도를 올린다.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한치도 타협하지 않았던 공산국가의 한복판에서 총보다 무서운 문화의 힘을 느끼게 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성당은 정면에 40m 높이의 두개의 첨탑이 솟아있다. 여행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프랑스의 노틀담에 온 기분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 맞은 편 혁명의 동상이 양쪽에 서 있는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은 중앙우체국이다. 프랑스 통치시대인 1886∼1891년 5년여에 걸쳐 설립된 중앙우체국은 정문입구 위에 큼지막한 시계가 달려 있다. 들어가 안을 보니 천장이 높아 더욱 웅장하게 보이며, 집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우체국이다. 우편 업무뿐만 아니라 국제전화, 팩스, 전보, 탤렉스가 가능하고 공중전화 카드와 시내 지도도 구입할 수 있고 기념 우표도 판매하고 있다.

 

 

                                  *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중앙우체국  

 

 

                                                   * 성당 앞에서 바나나 파는 여인

 

 

                                        * 전쟁기념 박물관 탱크에서 전쟁놀이를

 

▲ 전쟁으로 점철된 나라

 

 메콩델타를 포함한 아름답고 기름진 땅을 가진 베트남의 역사를 돌아보면, 고대에서 현대까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지만 우리는 바다가 3면으로 둘러싸여 옛날에는 북쪽으로 성을 쌓아 대충 막을 수 있었지만, 같은 인도지나 반도 안에는 여러 종족이 존재했기 때문에 먹고 먹히는 싸움이 벌어졌고, 그렇게 국력이 소진되다 보니 힘을 기를 수 없어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서구 열강의 발굽에서 오래 신음하는가 하면, 냉전 체제의 산물로 동족끼리 싸움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메콩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라오스, 태국 국경선을 이루다 캄보디아를 지나 베트남을 통해 남중국해로 장장 4,350km를 흐른다. 그 끝에 위치한 메콩델타(삼각주)는 호치민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정도 거리인데, 미토라는 조그만 도시를 갖고 있다. 인도지나 반도의 산을 깎고 캄보디아 평원의 비옥한 흙을 날라다 쌓아놓아서 그런지 곡창지대를 이루며, 바다에 면해 있어 강과 바다의 싱싱한 수산물이 많이 난다.

 

 오늘날 세계인이 투자가 집중되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 베트남. 곡창지대인데다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엄청나게 긴 바다를 갖고 있어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한다. 북쪽에 세계자연 유산인 하롱베이 같은 보물이 있는가 하면, 내가 경험한 바로 북위 17도인 다낭서부터 나트랑을 거쳐 남쪽 휴양지 붕타우까지 우리나라 동해처럼 백사장의 연속이었다. 바다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연안에는 사우디를 능가하는 대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전쟁박물관은 월남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 현대전에 사용되던 못쓰는 무기를 야외에 전시하고 안에는 사진이 많지만 그런 대로 볼만하다. 미군이 양민을 집단 학살하는 장면, 베트콩을 고문하고 목을 자르는 장면 등을 다양하게 전시하여 미군의 잔인성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려고 애썼다. 고엽제로 인한 피해를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여러 기형아들의 사진과 모태 속에서 사산된 처참한 시신을 포르말린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 그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라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노천에서 조개와 국물을 파는 할머니가 있어 남주 한 잔으로 눈을 씻었다.

 

 

                                    * 할머니에게서 조개와 국물, 그리고 남주 한 잔

 

 

                                                 * 과일전의 열대 과일들

 

 

                                           * 해질녘의 호치민 동상 실루엣 

 

▲ 호치민시에서 만난 호치민

 

 밑둥을 허옇게 칠해 나무 그늘이 우중충했던 풀밭은 이제 꽃을 가꾸어 곱게 단장해 놓았다. 오가며 보았던 유엔군 동상은 치워지고 새로 꾸민 화단 머리에 어린이를 안은 호치민 동상이 앉아 있다. 호치민(胡志明, 1890∼1969)은 중부 베트남 게친주(州)에서 농민 출신 문인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1년 프랑스선(船)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가 구엔아이 퀙(阮愛國)이란 이름으로 식민지 해방운동을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회의에 베트남 대표로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1920년 프랑스사회당 투르대회에서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지지파에 가담하고, 프랑스 공산당 창립과 함께 그 당원이 되었다. 이듬해 공산당의 지원으로 프랑스식민지 인민연맹을 결성하고, 기관지 '르 파리아'를 편집, 발행하였다. 1924년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 출석, 동방부(東方部) 상임위원이 되었고, 이어서 코민테른으로부터 중국 남부 및 타이로 파견되어, 조국의 주변에서 혁명운동을 계속하였다. 

 

 1930년 코민테른에 의하여 권한을 부여받고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립하여 활동하다가 이듬해 홍콩의 영국 관헌에게 체포되었으나, 석방 후 일단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가, 1941년 베트남에 잠입, 인도차이나공산당을 중심으로 베트민(베트남독립동맹회)을 결성, 독립 총봉기(總蜂起)를 목표로 세력을 키웠다. 1942∼1943년 중국국민당에 체포, 투옥 당할 무렵부터 호치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동시에 총봉기를 지도하여, 구엔[阮]왕조로부터 정권을 탈취(8월 혁명),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1946년 퐁텐블로회의가 결렬되자 프랑스에 대한 항전(抗戰)을 직접 지휘, 1954년 디엔비엔푸의 승리로써 독립을 지켰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주석(대통령) 재임 중 심장병으로 급사하였다. 
 

 

                                              * 사이공강의 야경 - 간판들

 

 

                                                * 사이공강에 떠 있는 유람선

 

▲ 사이공 강 유람선의 만찬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여행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사이공 유람선에서의 만찬이다.

한밤중에 공항으로 가서 출국 수속을 받고 01:00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시간이 넉넉하기에 크루즈를 타고 선상 디너쇼를 벌이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배를 타는 곳에 일행을 내려주며 6시까지 집합하라고 하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일행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쇼핑을 하거나 재래시장을 구경했다.

 

 과일과 해산물과 채소가 대부분인 야시장에 불이 환히 켜지면서 테이프나 CD를 파는 곳을 보았는데 우리나라의 이름난 배우와 가수 사진이 많이 걸려 있다. 시장을 구경한 일행은 시간이 되자 약속된 장소로 돌아와 유람선에 올랐다. 사이공강 하류, 바다 같기도 하고 호수 같이 잔잔한 강물 위에 떠 있다. 요즘 동남아 여행에는 이런 선상 식당이 많다. 홍콩에서, 태국에서, 그리고 지난 번 왔을 때도 이곳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메콩강은 캄보디아 남동부 품다웅 가까이에서 발원하여 남쪽과 남남동쪽으로 약 225㎞를 흐르면서 타이닌 주(州)와 송베 주를 통과하고, 동쪽의 호치민시를 둘러싸며 간라이 만 만두(灣頭)의 하구와 메콩 강 삼각주 외곽을 형성한다. 이곳에서 아래로 16㎞ 떨어진 곳에 석유항 나베가 있다. 강어귀에서 72㎞ 떨어져 있지만 이 항구는 동남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다. 흘수(吃水)가 9m 이상인 배도 항해할 수 있다.

 

 3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맨 위가 갑판으로 테이블 몇 개를 놓고 한가하게 야경을 즐기는 곳이고, 2층은 몇 개로 칸을 가른 식당, 1층은 통째로 극장 식당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 일행은 무대 가까운 곳에 자리잡았다. 나는 맥주 두어 잔 마시고 맹숭맹숭하게 앉아 있는 술꾼을 위해 이곳 베트남산 중 쌀로 빚은 40도의 술 3병을 사서 돌렸고, 덩달아 여행사 사장도 2병 사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내국인이 반이고, 한국인은 우리 36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 관광객으로 보였다. 우리는 노래방 마이크를 독점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신나 무대 가득

몰려와 춤을 춘다. 나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야경을 즐기면서 이번 여행을 정리했다. 노래 소

리에 밤은 더 깊어만 간다. (끝)

 

 

                                            * 사이공강의 밤은 깊어만 가고

 

 

                                      * 돌아오는 중 기내에서 본 구름 위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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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1년 동안 미뤄왔던 여행기를 허겁지겁 정리하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개운하다. 탐문회지에 싣기로 해서 쓰는 글이기에 형식을 갖추려 했으나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고 허겁지겁 써서 감동이 하나도 없다. 사진으로 대신하기 바라며, 이번 2월에 있을 오사카-나라-교토 답사기를 기대하기 바란다. 어떻든 지난 답사를 정리하고 숙제를 끝내고 떠나는 이번 답사가 가뿐하게 되었다. 후련하다.     

 

♬ 경음악 - La Pioggia 등 15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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