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캄보디아 민속촌을 떠나며

김창집 2007. 1. 25. 11:41

--- 탐문회 캄보디아 답사기

 

 

             * 천년전에 만든 저수지. 톤레삽 호수가 넘칠 때 흘러내리는 물을 저장하도록 했다. 

 

 

                              * 그곳에서 팔고 있는 열대 과일의 하나인 망고스틴 

 

 

                                                        * 삼파록(타마린) 

 

 

                                            * 삼파록, 귤과 오른쪽 망고 

 

▲ 천년 된 저수지, 바라이 뜩들라

 

 점심 후 우리가 찾은 곳은 서 바라이(West Baray)로 알려진 '바라이 뜩들라'였다. '맑은 물의 바라이(저수지)'란 뜻이란다. 동 바라이보다 후대인 수리야바르만 1세 때 건립된 것으로 면적 면에서도 훨씬 크다. 넓이도 훨씬 커 무려 8km×2.2km나 되며 비록 저수지 동편 절반 정도가 침적토로 매몰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푸른 물이 넘실대는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곳에도 동 바라이와 마찬가지로 저수지 한 가운데에 서 메본이란 신전이 있었다. 

 

 지금도 배를 빌려 타고 서 메본으로 진입할 수 있는데 폐허로 변해 있다. 건기에는 늪을 힘들게 건너야 갈 수 있다고 한다. 한글로 된 안내판이 서있고 주변엔 과일과 먹거리, 기념품 같은 것을 팔고 있다. 서 바라이도 일몰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며 배를 빌려 타고 신전을 향하면서 옛 바라이의 풍경을 음미할 수 있다. 이만한 인공 저수지 축조는 오늘날에도 대단한 사업인데 1천 년 전에 이러한 공사를 해냈다는 것이 놀랍다. 

 

 당시에는 수도 바켕에서부터 서 바라이 동편 둑까지 도로가 연결되고 왕실 전용 선착장과 양식장의 흔적까지 있는 걸 보아 서 바라이는 왕을 비롯해서 수도 시민들의 피서지로 애용된 듯하다. 그 전통을 이어 현 국왕 시하누크가 1970년 망명하기 전까지 시엠립을 찾는 귀빈들의 휴양지로 사용했고 지금도 시엠립 주민들은 물론 저수지 인근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로 사랑 받는다고 한다. 

 

 대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무시는 분도 계시다. 어디서 잡아다 먹은 건지 조개껍질들이 널려 있다. 일행들은 디저트 삼아 과일을 늘어놓고 파는 좌대 앞에서 열대과일 맛을 보았다. 열대 과일의 공주라는 람부탄에서 우툴두툴한 두리안, 감을 닮은 망고스틴까지…. 옆에는 생전 처음 보는 고기 구운 것을 늘어놓았다. 내국인인 듯 술에 곁들여 잘도 먹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주 싼 기념품과 옷, 모자 선물 고르노라 야단들이다.

 

 

                          * 그곳에서 팔고 있는 바퀴벌레 볶음(종류는 조금 틀리다)

 

 

 

                                               * 그곳에서 팔고 있는 구운 고기들 

 

▲ 캄보디아 민속촌으로 가면서

 

 오늘 월남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저수지를 떠나 마지막 코스인 민속촌으로 향하였다. 캄보디아 민속촌(Cambodian culture village)은 11개의 특별한 민속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전통 가옥과 캄보디아의 풍물, 다양한 마을의 형태와 독특한 전통춤과 음악, 공연 관람이 행해지는 곳이었다. 그 중에도 크메르 유적에서 보았던 여러 부조에서 나온 전설 속의 조각에서 뽑아 만든 상들을 여기저기 배치한 점도 이채롭다. 

 

 현재 캄보디아의 인구 종족은 총인구 약 1,100만 명 중 90%가 토착 크메르인이고, 소수민족으로 참족, 크메르 리우(고산족), 중국계, 베트남인 등이 있다. 캄보디아 여인들은 '사롱'이라는 큰 천으로 만든 옷을 평상시 집에서 입으며, 머리에는 '끄로마'라는 천을 두르며, 남자들은 '사롱솟'이라는 옷을 입는다. 대부분의 인구가 이 나라의 제일 큰 도시인 프놈펜과 바탐방 주변의 시골에 살고 있다. 

 

 챰족은 힌두의 챰파족의 후예들로 과거에 안남의 중부지역 이남을 차지하고 살던 민족인데, 지금 베트남 중부지역의 나짱에 가면, 그 유적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15세기에 북 베트남족에 의해 밀려나 이곳으로 와서 정착하였다. 이들은 지금 캄보디아의 강 연안에 많이 살며 이슬람 문화를 계승하고 주로 어업을 하며 살고 있다. 

 

 폴 포트 시대에는 많은 학대를 받았다. 요즈음도 이들은 크메르인들이 싫어하여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많다. 크메르인들은 베트남인들을 멸시하는 말로 '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베트남인들은 프놈펜 외곽지역에 많이 살며 '바삭'강변에 집단 수상촌을 만들어 살기도 한다. 캄보디아인들 중에는 조상이 베트남인인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그들은 캄보디아인이라 해도 순수 크메르족들은 이들을 베트남인이라 부른다.

 

 

 

 

                                * 캄보디아 민속촌의 여러 모양의 집들 

 

▲ 캄보디아 민속촌의 결혼식 장면

 

 캄보디아에서는 90% 이상이 크메르족이어서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에 바탕을 둔 배타심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은 관광을 하는 외국인들이 주의해야 할 점으로 현지인을 구박하다가 총을 맞거나 폭행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민간인 뿐 아니라 경찰이나 군인들도 외국인에 대해 우호적이 아님을 명심하고 특히 야간에는 시비를 삼가야 한다.

 

 '크메루 리우' 또는 크메르 고산족들은 주로 북동쪽 지역인 '라타나끼리', '몬돌끼리', '쁘리야 비히르', '스뚱뜨랭' 성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약 10여만 명으로 추산하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무려 33가지나 된다. 그들은 주로 작은 집단부락을 형성하여 화전 등으로 고산지 영농을 하며 살고 있다. 그 종족들의 이름은 '브롭', '크랭', '땀뿌안', '브라오', '자라이', '라데', '퀴', '몽' 및 '스띵'족들이 있으며 '에데'족은 두뇌가 뛰어나 지도층이 많다.

 

 캄보디아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질병과 무주택과 실업자 등이다. 추정으로 20만명이 넘는 고아들이 전국적으로 있으며 많은 고아들이 도시에서 걸인생활을 하고 있다. 론 놀 정권 당시 캄보디아에서 태권도 교관을 지낸 한국인 지미 림씨는 현재 약 450명의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사회복지는 아예 없는 상황이니, 가난한 사람들은 구걸밖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건기인 12월과 5월 사이에는 결혼식과 잔치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우기에는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 주로 벼농사 품팔이를 나간다. 요즈음에는 하객들의 방문을 위하여 주로 주말에 결혼식을 많이 한다. 점쟁이가 길일을 점쳐 주기도 하며, 주로 중매 결혼이 많고, 순결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남자는 보통 18∼23세 사이, 여자는 15∼20세에 결혼을 많이 한다. 중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은 특별한 결혼 시즌이 없다. 남방 국가들의 사람들이 조혼을 하는 이유는 일찍 늙는데다가 평균 수명이 짧은 것도 이유이며, 또 빨리 독립하여 노동력과 생활력을 갖추는데도 이유가 있다.

 

 

 

 

                   * 전통 결혼식 절차 장면들, 가운데 장인 장모가 지켜봄, 뒤풀이 모습  

 

▲ 캄보디아 민속촌을 나오면서

 

 전통적인 크메르 인사는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솝소바이!'라고 한다. 상대가 지위가 높을수록 합장한 손이 가슴에서부터 이마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니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이 뜻은 '예'라고 하는 말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이나 정확한 대답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답의 진위성을 파악하여야 하나 윽박지르면 안 된다. 

 

 크메르 사람들은 잘 웃으며, 특히 남녀간에는 아주 친근하게 대하는데 이것이 외국인에게도 같은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경우에도 고맙다는 말보다는 웃음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으니, 오해가 없어야 한다. 챰족은 이슬람교를 많이 믿으므로 다른 풍습이 많은데, 그 중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교육 캄보디아에서는 예전에는 주로 절에서 공부하였다. 이 뜻은 남자들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다는 해석이 된다. 프랑스가 통치를 하는 동안 크메르식 교육에 기초를 두고 일부 서양식 기본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상은 '캄보디아정보센타(http://www.info-cambodia.com)에서 뽑아온 내용임.

 

 넓은 대지 위에 엄청난 규모로 조성해놓은 민속촌은 기념품 가게를 통해 드나들게 되어 있었다. 분수에서부터 여기서 불쑥 저기서도 불쑥 하고 심심찮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조각상이라든가 나무와 꽃 건물 등을 찍느라 바삐 돌아다니다가 시간에 맞춰 결혼식의 제반절차를 보여주는 민속촌 공연장으로 가서 사진 찍는 것을 핑계로 앞자리에 들어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즐겼다.

 

 양가에서 결혼 허락을 받는 장면서부터 약혼식, 결혼식 날 신부집에 가서 행해지는 절차, 결혼식, 결혼식 후 노는 장면까지 사회 겸 해설자가 나와 익살을 섞어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특히 관객 중에서 장인과 장모 역을 담당할 사람을 뽑아내어 공연에 참가하게 하여 눈치를 보면서 따라하다가 실수하는 장면에서 많이 웃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하였다. 지금은 비록 못살지라도 과거에는 화려하게 차린 옷이라든가 예물 교환, 성대한 잔치 등 귀족풍의 결혼식 장면이었다.

 

 

 

                               * 캄보디아 민속촌에서 공연되는 여러 가지 민속쇼 모습 

 

▲ 캄보디아를 떠나면서

 

 공연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20분 정도 남았다. 하나라도 더 돌아보려고 반쯤 돌고 나오는데 그곳에도 민속 쇼를 하고 있다. 우리 같으면 민속마을 초가집 같은 초막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코끼리 쇼 등을 구경하고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가보니 모두들 흐뭇한 얼굴이다. 흠이라면 넉넉한 시간을 주어 천천히 다 구경하지 못한 것 정도….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미련이 남아야 다시 올 기회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앙코르와트' 하면 우리는 크메르 왕조가 남긴 모든 유적을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복원해 일반에게 공개하는 유적의 대표일 뿐, 아직도 복원이 안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지 못한 유적들도 많고 밀림 속에 하다 못해 냇물 속에 조성된 유적들도 다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 중에서 서너 곳, 빙산의 일각을 보았을 뿐이다.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었던 앙코르매직 버스 홈에 가면 다음과 같은 곳에 대해서도 소개해 놓고 있다. --끄롤 꼬, 메본(동), 반띠아이 쓰레이, 쁘레아 빨리라이, 끌리앙, 메본(서), 쁘놈꿀렌(끄발스피언), 삐미아나까스, 닉 뽀안, 바꽁, 쁘놈 끄롬, 쓰라 쓰렝, 따께오, 바라이(동,서, 기타), 쁘놈 바껭, 앙코르와트, 따쁘롬, 바이욘, 쁘라쌋 끄라반, 앙코르 톰, 따쏨, 바푸온, 쁘라쌋 쑤오르 쁘랏, 챠우 쎄이 떼보다, 롤레이, 박세이 챰끄롱, 쁘레아 깐, 테라스(문둥이왕), 롤루스 그룹, 반띠아이 끄데이, 쁘레아 꼬, 테라스(코끼리), 반띠아이 쌈레, 쁘레아 룹, 톰마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이곳에 찾아와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대표적인 유적 몇 개를 골라 돌아보며 심취하고 싶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고, 그것이 오늘에 어떤 의미를 주며,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지금 이곳 캄보디아는 우리가 1960년대부터 했던 새마을 운동을 본보기로 삼아 정신개혁 운동을 벌이려 하고 있다. 거리는 깨끗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손을 벌리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루 빨리 잠에서 깨어나 옛 크메르의 명성이 되살아나기를 빌어본다.    

 

 

 

 

                   * 캄보디아 민속촌 곳곳에 세워놓은압살라 무희를 응용한 조각들

 

♬ Norman Candier - Kleine Thaummusik(작은 소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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