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15일 일요일. 흐리고 비
▲남해 금산 보리암 대신 오른 보리악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
한라산 제1횡단도로.
다시 누가 충성스럽게 이름을 붙였을까
5·16도로로.
장마 속 푹푹 찌는 날씨
산천단(山泉壇) 곰솔 곁에서 돌아서네.
여기서부터 한라산이야.
그래 목사들 이곳에서 한라산신제를 지냈지.
성판악 입구를 지나면서 내리막길
는개 지며 어둑어둑
아직도 더러 남아 있는 산딸나무 꽃잎
나비처럼 내려앉고,
가을·겨울·봄 3계절
낙엽수 아래서 빛을 발하던
대극과의 상록활엽 소교목 굴거리
이제 녹음 아래로 숨네.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고
그렇게 서너 번을 꾸불거린 뒤
드디어 다다른 숲 터널
양쪽 나무들이 얼려 춤추고
논고교(論古橋) 지나 오른쪽
누렇게 퇴색해 기울어진 시멘트 구조물 옆
옛 표고밭길로 들어가
우거진 숲 터널 한두 번은 터진 하늘바라기.
가끔은 철이 지난 산수국 도깨비꽃의 환영을 받으며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서어나무 우거진 길을 가다보면
단풍나무 저도 이 숲의 주인이라고
고사리 손바닥을 쥐었다 펴네.
그래, 너에게는 찬란한 가을이 있지.
낙엽교목 하나둘 그 수의(囚衣)를 벗어버릴 즈음
너는 하늘이 내려준 그 찬란한 원색의 의상을 입고
하늘의 별인 양 반짝이며 혼자 잔치를 벌일 것이다.
누가 길을 막아 놓았나.
제법 뿌리 튼실한 때죽나무 한 그루 넘어져
옆에 종처럼 대롱대롱 열매를 매단 채 서 있는
다른 성한 나무들의 위로를 받으며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숲 속에서 삼림욕하며,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
남은 가족들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한 시간 나마를 걸어 다다른 해발 740m 정상은
우거진 나무와 구름으로 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오름에 있는 삼각점 표지석도 없이
다만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걸어놓은 노란 비닐 입힌 헝겊 조각에
이곳은 취사가 금지된 지역이라고
이곳에서 희귀식물을 채취하거나 야생동물을 포획하면 처벌받는다고 했네.
재작년, 사람을 부셔버릴 듯한 기세로 압도하던
엉또폭포의 위압감에서 벗어나고자 비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았을 때
놀란 가슴을 어루만져주던 자주빛 고운 여름새우란
오늘은 자취도 찾아볼 길 없다. 내 컴퓨터 배경 화면에만 남아….
붉어지려는 눈시울 애써 감추고 서둘러
안개 나뭇잎에 모여 떨어지는 물방울에 옷 젖는 줄도 모른 채
냇물 찰랑거리는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
내 이름 붙인 '보리폭포'의 가는 물줄기를 멀리서 바라보며,
호수는 아니라도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나 나옴직한
붉은 화산재 드러나는 이끼 낀 층암절벽을 사이에 두고
예정대로라면 오늘 남해 금산 '보리암'에나 가 합장하고 있을 시간에
무슨 인연으로 '보리악' 깊숙한 곳에 앉아 물소리를 들을까.
△'현주하오름'이라고 해야 될지, 범섬 가득한 방에서
공천포에서 소라물회랑 한치물회로 점심을 마치고
오후에 오를 오름을 고르는데 영 신통치 않아
'오늘랑 시인 현주하 선생님 댁에 가서 차나 한 잔 얻어 마시지'
하며 나선 길, 눈코 틀 새 없이 내리는 빗줄기.
인연이 되려고 그런지 비를 피해 들어가 앉자마자
빨래를 한 양동이 들고 달려온 돌할망 현주하 선생님.
범섬이 둥둥 떠다니는 이 방이 좋아 찾은 작가들에게
집을 뺏기고 당신은 영실 어느 절 방이나 빌어 피신하는….
고두심이 와서 잤다 가고,
한영애가 친정처럼 드나드는
따스한 정(情)과 진짜 멋을 아는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이
제집인 양 날아드는 창작의 산실.
송수권 선생이 시집에 평을 쓰면서
'설문대할망'의 현신일 것 같다던
아직도 처녀적 고운 빛이 남아 있는
범섬이라는 커다란 수석(壽石)의 진짜 주인.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곳을 찾는 분이 주인이고
당신은 나그네시라고 굳이 토를 다시며
마광수가 그렇게 순진하게 화장실 청소를 잘 하더라는 에피소드쯤 넉넉히 간직한 채
버림으로서 자유를 누리는 아직도 향기로운 여자 현주하
'겹겹이 주름이 늘고/생의 실타래 거어즘 풀려 간다.
거짓된 몸짓 고쳐 잡을 때/그리움을 풀꽃 속에 감추고//
다시 수직으로 서 보자//
마지막 남은 잎새/상큼 털어 내고
다 버린 마음으로/하늘을 볼 수만 있다면
씨앗 하나 성성히 키우며/낙엽 모아 불태울 수만 있다면
나 또한 흙이 되어 거름 될 수만 있다면.'이라고 노래한
『다시 올 삶을 위하여』의 전문처럼 사는 여자.
예고 없이 날아든 손[客]이 들고 들어온 음식
신문지 펼쳐 만든 교자상 위에 엉겁결에 모아 만든 곡차(穀茶) 상차림.
상가에서 얻어온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
산에서 남긴 된장과 배추 잎에 부엌에서 내온 고추와 마늘이 합세
한 상 그득히 차려 놓고 선물 받은 2홉 소주병에 담긴 영지술 선뜻 내놓아
손들의 배낭과 차 트렁크에 비밀스레 감춰 둔
비우다 굽에만 남은 양주병까지 모두 끌어내어 톡톡 털어
드디어 말의 성찬을 끌어내었네.
수석에 미쳐 돌아다니던 '돌할망' 시절의 얘기부터 시작하여
50대에 배낭 매고 태국, 인도 다녀온 얘기
술이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색깔 있는 얘기까지
8시가 넘어 날이 어두어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되는 말말말….
사람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설문대할망 전설 같은 훈훈함으로
리바이벌 해서 아주 색다른 맛이 난다는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을 틀더니.
당신이 먼저 구성진 가락을 연출하여
곽 사장의 '엽전 열닷냥'이나 김 원장의 '떠나가는 배'를 끌어낸다.
흥겨운 한 마당 잔치가 끝나 정갈히 따라낸 차를 마시고
수박과 참외로 다시 후식을 하면서까지
바다 물결에 일렁이는 방, 창 가득히 넘쳐나는 범섬을 바라보며
진득한 삶의 묻어나는 향기로운 자리 '현주하오름' 등정은 그렇게 끝났다.
<사진> 위의 것은 '여름새우란꽃'이고, 아래 사진은 '범섬'입니다.


▲남해 금산 보리암 대신 오른 보리악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
한라산 제1횡단도로.
다시 누가 충성스럽게 이름을 붙였을까
5·16도로로.
장마 속 푹푹 찌는 날씨
산천단(山泉壇) 곰솔 곁에서 돌아서네.
여기서부터 한라산이야.
그래 목사들 이곳에서 한라산신제를 지냈지.
성판악 입구를 지나면서 내리막길
는개 지며 어둑어둑
아직도 더러 남아 있는 산딸나무 꽃잎
나비처럼 내려앉고,
가을·겨울·봄 3계절
낙엽수 아래서 빛을 발하던
대극과의 상록활엽 소교목 굴거리
이제 녹음 아래로 숨네.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고
그렇게 서너 번을 꾸불거린 뒤
드디어 다다른 숲 터널
양쪽 나무들이 얼려 춤추고
논고교(論古橋) 지나 오른쪽
누렇게 퇴색해 기울어진 시멘트 구조물 옆
옛 표고밭길로 들어가
우거진 숲 터널 한두 번은 터진 하늘바라기.
가끔은 철이 지난 산수국 도깨비꽃의 환영을 받으며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서어나무 우거진 길을 가다보면
단풍나무 저도 이 숲의 주인이라고
고사리 손바닥을 쥐었다 펴네.
그래, 너에게는 찬란한 가을이 있지.
낙엽교목 하나둘 그 수의(囚衣)를 벗어버릴 즈음
너는 하늘이 내려준 그 찬란한 원색의 의상을 입고
하늘의 별인 양 반짝이며 혼자 잔치를 벌일 것이다.
누가 길을 막아 놓았나.
제법 뿌리 튼실한 때죽나무 한 그루 넘어져
옆에 종처럼 대롱대롱 열매를 매단 채 서 있는
다른 성한 나무들의 위로를 받으며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숲 속에서 삼림욕하며,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
남은 가족들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한 시간 나마를 걸어 다다른 해발 740m 정상은
우거진 나무와 구름으로 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오름에 있는 삼각점 표지석도 없이
다만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걸어놓은 노란 비닐 입힌 헝겊 조각에
이곳은 취사가 금지된 지역이라고
이곳에서 희귀식물을 채취하거나 야생동물을 포획하면 처벌받는다고 했네.
재작년, 사람을 부셔버릴 듯한 기세로 압도하던
엉또폭포의 위압감에서 벗어나고자 비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았을 때
놀란 가슴을 어루만져주던 자주빛 고운 여름새우란
오늘은 자취도 찾아볼 길 없다. 내 컴퓨터 배경 화면에만 남아….
붉어지려는 눈시울 애써 감추고 서둘러
안개 나뭇잎에 모여 떨어지는 물방울에 옷 젖는 줄도 모른 채
냇물 찰랑거리는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
내 이름 붙인 '보리폭포'의 가는 물줄기를 멀리서 바라보며,
호수는 아니라도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나 나옴직한
붉은 화산재 드러나는 이끼 낀 층암절벽을 사이에 두고
예정대로라면 오늘 남해 금산 '보리암'에나 가 합장하고 있을 시간에
무슨 인연으로 '보리악' 깊숙한 곳에 앉아 물소리를 들을까.
△'현주하오름'이라고 해야 될지, 범섬 가득한 방에서
공천포에서 소라물회랑 한치물회로 점심을 마치고
오후에 오를 오름을 고르는데 영 신통치 않아
'오늘랑 시인 현주하 선생님 댁에 가서 차나 한 잔 얻어 마시지'
하며 나선 길, 눈코 틀 새 없이 내리는 빗줄기.
인연이 되려고 그런지 비를 피해 들어가 앉자마자
빨래를 한 양동이 들고 달려온 돌할망 현주하 선생님.
범섬이 둥둥 떠다니는 이 방이 좋아 찾은 작가들에게
집을 뺏기고 당신은 영실 어느 절 방이나 빌어 피신하는….
고두심이 와서 잤다 가고,
한영애가 친정처럼 드나드는
따스한 정(情)과 진짜 멋을 아는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이
제집인 양 날아드는 창작의 산실.
송수권 선생이 시집에 평을 쓰면서
'설문대할망'의 현신일 것 같다던
아직도 처녀적 고운 빛이 남아 있는
범섬이라는 커다란 수석(壽石)의 진짜 주인.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곳을 찾는 분이 주인이고
당신은 나그네시라고 굳이 토를 다시며
마광수가 그렇게 순진하게 화장실 청소를 잘 하더라는 에피소드쯤 넉넉히 간직한 채
버림으로서 자유를 누리는 아직도 향기로운 여자 현주하
'겹겹이 주름이 늘고/생의 실타래 거어즘 풀려 간다.
거짓된 몸짓 고쳐 잡을 때/그리움을 풀꽃 속에 감추고//
다시 수직으로 서 보자//
마지막 남은 잎새/상큼 털어 내고
다 버린 마음으로/하늘을 볼 수만 있다면
씨앗 하나 성성히 키우며/낙엽 모아 불태울 수만 있다면
나 또한 흙이 되어 거름 될 수만 있다면.'이라고 노래한
『다시 올 삶을 위하여』의 전문처럼 사는 여자.
예고 없이 날아든 손[客]이 들고 들어온 음식
신문지 펼쳐 만든 교자상 위에 엉겁결에 모아 만든 곡차(穀茶) 상차림.
상가에서 얻어온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
산에서 남긴 된장과 배추 잎에 부엌에서 내온 고추와 마늘이 합세
한 상 그득히 차려 놓고 선물 받은 2홉 소주병에 담긴 영지술 선뜻 내놓아
손들의 배낭과 차 트렁크에 비밀스레 감춰 둔
비우다 굽에만 남은 양주병까지 모두 끌어내어 톡톡 털어
드디어 말의 성찬을 끌어내었네.
수석에 미쳐 돌아다니던 '돌할망' 시절의 얘기부터 시작하여
50대에 배낭 매고 태국, 인도 다녀온 얘기
술이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색깔 있는 얘기까지
8시가 넘어 날이 어두어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되는 말말말….
사람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설문대할망 전설 같은 훈훈함으로
리바이벌 해서 아주 색다른 맛이 난다는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을 틀더니.
당신이 먼저 구성진 가락을 연출하여
곽 사장의 '엽전 열닷냥'이나 김 원장의 '떠나가는 배'를 끌어낸다.
흥겨운 한 마당 잔치가 끝나 정갈히 따라낸 차를 마시고
수박과 참외로 다시 후식을 하면서까지
바다 물결에 일렁이는 방, 창 가득히 넘쳐나는 범섬을 바라보며
진득한 삶의 묻어나는 향기로운 자리 '현주하오름' 등정은 그렇게 끝났다.
<사진> 위의 것은 '여름새우란꽃'이고, 아래 사진은 '범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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