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메모리로 처음 찍은 해오라비난
▲ 일본에 가면 일본 술 마셔봐야
음식, 그 중 술에는 그 나라 또는 그 민족의 정서(情緖)와 성정(性情), 풍속(風俗), 산물(産物), 전통(傳統) 등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래서 외국에 가면 그 나라 특유의 술도 마셔봐야 하고 술집 분위기도 느껴 봐야 한다. 2년 전 이곳 큐슈를 답사하면서 자칭 술꾼(?)들은 일본에 가면 마실만한 술이 없고, 또 비싸서 술집은 엄두도 못 낸다고 지레 겁을 먹고 플라스틱 병에 담긴 휴대용 소주 몇 박스를 가지고 가서 실컷 마시고도 남아 공항까지 와서 처분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열흘 전 도쿄 동문들이 초청으로 갈 때는 어떻게 될지 몰라 휴대용 소주 180ml 5병을 가방에 넣고 갔다. 그러나, 동문들은 첫날 늦게 도착한 우리들을 환영하면서 한식당으로 데려가 맥주와 진로소주로 대접했다. 안주는 삼겹살과 김치 등 우리 음식이었다. 다음 날은 시내 관광 후 온천욕을 끝내고 일본 전통식당에서 유카타를 입은 채 해산물로 된 저녁을 먹으며 일본 소주를 마셨다. 일본 소주는 과거 공고병이라는 900ml 들이 병에 담겨 있는데, 25도여서 일본 사람들은 독하다고 물을 타서 마신다.
* 역에서 나와 덴만구로 가는 곳에 세워놓은 탑
셋째 날은 후지산과 하코네를 가게 되었다. 이 때 같이 동행하게 된 동문들이 캔맥주와 일본 소주를 아이스박스가 철철 넘치도록 실어 하루종일 마시고, 다녀와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라오케---중간에 주인 마담 아주머니가 장고 치며 노래 부르고, 우리 나라 아가씨들이 한복 입고 서비스를 하는 곳에서 맥주와 일본 소주를 마셨다. 넷째 날은 불고기집을 하는 동창회장 댁에서 역시 맥주와 진로소주에 돼지 내장과 전골을 먹다 보니, 가져간 소주는 그냥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기대는 없었지만 일부러 술을 준비 안 했다. 물론 단체로 작은 소주 팩을 한 상자 갖고 갔지만 나 자신은 현지 조달을 목표로 했다. 첫날 저녁에 삼겹살과 맥주를 마시고 늦도록 축제 구경을 하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 그냥 호텔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숙소가 저번 왔을 때 잤던 겐카이 로얄호텔이기에 술꾼들에게 알려 여기서 술을 좀 사 가지고 가야 한다고 알리고는 900엔 주고 일본 소주 1병을 샀다. 지난번에는 호텔을 나와 술집이나 가게를 찾았으나 산 속에 온천이 발견되어 지은 호텔이기 때문에 주위에 인가가 없어 낭패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신사 입구에 세워놓는 문, 도리이
이번이 네 번째 일본 방문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술 이력이 붙었다. 일본에서 술을 마시고프면 우선 저녁을 마치고 소화를 시킬 겸 밖으로 일행과 산책을 나와 슈퍼 문 닫기 전에 생맥주나 일본소주 또는 정종이나 안주를 사서, 호텔 방으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바닷가나 공원을 찾아 담소하며 마시는 게 싸고 좋다. 지금은 우리 나라에도 멸균한 생맥주 큰 병을 팔지만 일본에서는 여러 종류의 용량과 재활용할 수 있는 멋진 병을 만들어 맥주회사마다 경쟁적으로 팔고 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라오케나 카페에 갔을 때는 가기 전에 돈을 얼마씩 모아 기본만 시키고 그네들처럼 조금씩 홀짝이면서 분위기를 느끼고 나온다. 아줌마가 운영하는 선술집에 가서도 우리처럼 이것저것 시켜서 마음껏 마셨다가는 낭패를 본다. 그저 먹고픈 한 가지 안주를 작은 그릇에 시켜 따끈하게 데운 정종 한 잔 가지고 천천히 마시며 일본인들의 술 마시는 양상을 곁눈질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벳부 카메이노 호텔에서는 가이드에게 가라오케 방 하나를 빌려 달래서 기본만 시킨 후, 가지고 간 술들을 전부 가져다 노래를 부르고 실컷 회포를 풀며 단합대회를 가졌다.
* 정문 바로 앞에 세워놓은 석등
▲ 다자이후로 가는 길
기타큐슈 여름 마쓰리 둘째 날의 행사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후에 여러 기관 단체에서 나와 춤을 추며 행진하는 '백만인의 무용'과 불꽃놀이를 제외하면, 전통차 마시기나 요트 경주, 그림 그리기 대회 같은 부대행사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곳 한 군데를 둘러보고 벳부로 가기로 했다. 그 곳은 후쿠오카의 대표적 관광지인 다자이후의 덴만구(天滿宮)였다.
그곳은 2년 전에 왔을 때도 부산공항을 거쳐 돌아가는 팀들이 시간이 남아 들른 곳으로, 지금은 한적한 옛 도시에 불과하지만 다자이후(太宰府)에는 1400년 경 야마또(大和) 조정의 큐슈 총독부가 들어선 정치, 경제, 외교를 총괄하는 행정수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덴만구와 멋진 정원으로 유명한 코묘지(光明寺),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梵鐘)을 보관하고 있는 칸제온지(觀世音寺) 정도가 남아 있다.
* 덴만구 안 우거진 나무 밑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깜빡 잊고 메모리 스틱을 디지털 카메라에 장착한 16MB짜리 밖에 안 갖고 와 어제 축제 장면을 찍느라 다 소비해 버린 나는 다시 스틱을 사야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호텔 매장을 기웃거리는가 하면 달리는 차창 너머로 줄곧 살폈으나 보이지 않아, 시내에서 식사를 할 때나 틈을 내어 전자 제품 매장엘 가야 하는 딱한 형편에 놓여 있었다. 덴만구 주차장에 내려 혹시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의 눈에 들어온 조그만 2층 가게, 친절하게도 한글로 '면세점'이라고 쓰여 있다.
덴만구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어 누구에게 말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들어가 곧바로 전자제품을 파는 곳으로 갔더니, 한국 청년이 친절하게 맞아줘 126MB 짜리를 비교적 싼값인 7,000엔에 살 수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새 스틱으로 얼른 갈아 낀 나는 나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갔다. 이곳에서부터 덴만구 입구에 이르는 골목길 양쪽은 기념품과 찰떡을 파는 가게와 간단한 먹거리 집이 이어져 있다.
* 녹나무 등이 우거진 못
△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받드는 덴만구(天滿宮)
일본에서 수많은 신사(神社) 중 신궁(神宮)으로 일컬어지는 곳은 몇 안 된다. 8월에 올린 도쿄 여행기에 돌아가 보면 도쿄 답사기 중에 신사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생략하거니와 이 신궁은 천황이나 장군을 받드는 곳이 아니라는데 그 특색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지사라 할 수 있는 신궁을 1만2천 곳이나 거느리고 있다. 학문의 신이라 일컬어지면서 빌면 시험에 효험이 있다는 주인공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벌써 1,100여년 전 사람이다.
서기 845년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벌써 일본시조를 짓고, 11살 때 한시를 지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젊어서부터 관직에 들어 55세 때는 우대신(右大臣)에 이르렀는데, 백성들을 잘 보살펴 인기가 있었다. 그럴수록 주위의 질시가 심해 결국 정치적 음모에 휘말렸고, 901년에는 이곳 다자이후로 좌천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2년 후에 죽음을 맞이했고, 장지로 가는 도중 이곳에 이르러 우마차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다.
* 입구 옆에 세워놓은 상상의 동물 기린
* 수레를 멈추게 했다는 소(여러 개 있었음)
이에 그를 흠모해 따라온 제자가 이곳에 안라꾸지(安樂寺)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 뒤부터 그를 모함했던 신하들이 이유 없이 하나씩 죽는 한편 각종 재난이 교토에서 뒤따랐다. 조정에서는 그가 저승에서 내린 형벌이라 생각하고 그를 기리는 신사를 세우라고 지시한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시험 합격의 소원에 영험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곳을 신사(神社)에서 신궁(神宮)으로 승격시켰다.
전후 일본이 한국전쟁 등으로 경기가 회복되자 교육열이 불붙기 시작했고, 입시철만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전국에서 모여들기에는 너무 멀고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그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전국 곳곳에 이 신궁의 지사뻘 되는 덴만구(天滿宮)를 짓기 시작하여 그 수가 1만2천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도 여기저기 합격을 기원하는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나무와 새끼줄에 꽂혀 있다.
* 1951년에 세웠다는 본전 건물
* 천왕문 역할을 하는 건물
▲ 한 사람의 힘이 위대함
나는 새 메모리 스틱을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의기 양양하게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처음으로 눈에 띈 것, 그것은 조그만 꽃집의 화분에 심어 꽃을 피운 해오라비난이었다. 비록 화분에 심어 놓은 것이지만 살아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행운으로 메모리 스틱을 얻은 뒤 첫 개시가 아닌가. 그만하면 귀국할 때까지 충분히 찍을 수 있는 수백 장 몫의 용량을 얻은 후였기에 마음놓고 서너 컷 찍을 수 있었다.
도리이(신사로 들어가는 곳에 세워놓은 나무 문)도 우리 나라 같으면 일주문을 세웠을 자리와 천왕문을 세웠을 법한 정문 가까운 곳, 두 군데 세워놓았다. 마침 일요일을 맞아 인파가 들끓고 있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늙은 녹나무가 몸체에 파초일엽을 두르고 꾸부정하게 맞는다. 흐르는 물이 못으로 이어지는 3곳에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다.
* 천년이 넘었다고 알려진 고목
* 못에서 노는 비단잉어들
일본의 이름난 절이나 신사에 가보면 불상과 석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속물들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도 그 영험에 힘입으려는지 석등(石燈), 기린(麒麟), 수레를 멈추었다는 소, 우물, 하다 못해 나무까지도 다 시주로 심어, 공양주 이름까지 번듯하게 새겼다. 이것저것 둘러보며 본전(本殿)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에 세워졌다는 본전 건물은 볼수록 고풍스럽고 아담하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1,100주년 기념 전시회도 열리고, 제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약식으로 치르고 있다. 북쪽으로 난 문 화장실 옆에는 창건 당시에 심어졌을 늙은 나무가 속을 비운 채로 표찰을 달았다. 마당에 심어놓은 매화와는 사뭇 다른 나무다. 이곳의 매화나무 한 그루는 미치자네의 교토 집에 있던 매화나무가 그를 그리워해 이 곳까지 날아왔다고 한다. 어쨌든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 같이 경제가 좋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는 것을 보면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겠다.
* 어느 신도에 의해 기증된 못
* 입구 어느 가게에 진열해 놓은 마스코트 인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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