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개혁과 개방, 어디까지 (1)

김창집 2005. 3. 3. 23:57

--- 상해·소주·장가계 답사기(2005. 2. 25.∼3. 1.)

 


 

* 상해 개발의 상징인 명주탑과 그 주변 건물들

 

♣ 상해(上海)에서 소주(蘇州)까지

 

 '개발 독재(開發獨裁)'란 말이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은 쿠데타 등의 방법으로 탄생한 정권이 일반적으로 강권통치로 독재정치를 하는데,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이 그 특징이다. 여기서 '개발(開發)'이란 경제개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개발이 경제발전이고 경제발전이 곧 국가번영'이라는 등식에 따라 '경제개발 우선'의 논리 아래 인권유린, 권리제한,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 정적(政敵)에 대한 테러, 노동착취 등을 행하고 빈부의 격차가 커 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1961년부터 1979년까지가 그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절대적 빈곤에서 탈출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기는 했으나, 그것은 인권, 민주주의, 사회복지 등 다른 모든 사회적 발전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13년만에 들른 상해(上海)를 지나 소주(蘇州)까지 가면서 중국이 개혁과 개방이라는 명분 아래 실시되고 있는 급속한 발전이 과연 어디까지 갈까 하는 화두(話頭)가 떠올랐다.

 


 

* 상해 옛 조차지의 어느 은행 건물 


 조선족 길라잡이들의 설명이 아니라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당(黨)이 결정하면 인민들은 따라 하기 때문에 토지 수용부터 사업의 계획과 진행까지 아무 장애 없이 일사천리로 달려갈 수 있었기에 10여 년만에 이렇게 변모될 수 있었으리라. 지금도 덜 정리되어 낙후된 채로 있는 곳이 가끔 보이지만 당시에는 새로 짓기 시작한 건물들과 묵은 건물들이 뒤범벅된 정말 볼품이 없는 도시였다.


 황포강(黃浦江)을 중심으로 나눈 포동(浦東) 지구든 포서(浦西) 지구든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서양의 어느 도시 못지 않은 건물들을 보며 도시를 벗어나자 곧 새로 조성되는 공업단지 지역이 나타난다. 상해와 소주간 100㎞, 자동차로 약 1시간 반이 걸린다는 길 주변에는 산 하나 볼 수 없는데, 이 지역이 새로 조성되는 공업단지라 한다. 간혹 길을 넓히거나 집을 짓는 모습, 그리고 공터나 집 앞 텃밭에 배추를 비롯한 시금치, 무, 유채 등의 채소가 보인다. 

 



* 사수동좌헌(寫誰同坐軒)의 작은 탑

 

△ 이곳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반도체

 

 오다가 상해에서 독특한 모양의 삼성 빌딩을 보았는데, 1994년 중국과 싱가포르 정부가 합작해 조성한 2,100만평 규모의 이 공업단지에 삼성전자가 외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입주했다 한다. 삼성전자는 이 단지에 반도체, LCD, 가전 제품, 노트북 등 네 개의 생산법인과 반도체연구소를 두고 있다. 고용하는 인력만 해도 8천명에 이르는데, LCD법인이 라인 증설을 하면서 1천명을 더 고용하게 되어 이곳에서 삼성전자가 고용하는 인원은 1만명 선에 이르고 있다.

 

 쑤저우 반도체 법인은 2003년에 세 라인이 준공되어 매달 4천만 개 이상의 반도체를 조립 생산하고 있다. 또, 2003년 7월부터 가동한 LCD법인은 월 100만대의 모듈 생산을 목표로, 삼성전자가 만들어내는 반도체의 20%, LCD의 30% 가량을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곳을 생산기지로 택한 데에는 풍부하고 값싼 인력, 파격적인 세금 우대, 모든 조건을 갖춘 인프라와 점점 커지는 중국 시장 등이 감안됐다.


 


 

* 유통(幽通)이라는 후문

 

 이곳 삼성전자 주재원들에 따르면 기업을 고객으로 여기는 공무원들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아주 좋아 호감이 간다고 했다. 우리로서도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삼성전자 쑤저우 반도체 공장은 국내에서 생산된 반제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공정을 맡고 있는데, 4조 3교대, 24시간 작업을 해야하는 만큼 원활한 물류가 관건이다. 그러나 공단 안에 자체 세관이 있어 시간이 급할 때는 휴일이든 한밤중이든 언제나 요청하는 족족 나와 업무를 봐주기 때문에 공항에서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공무원들의 서비스가 결국 더 많은 공장을 유치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법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삼성전자 LCD 법인은 총 3만평 규모인데, 이 공장의 토지 사용료는 50만 달러(6억 원)로 평당 2만원 꼴이 되며, 인근 상업용지의 60분의 1 수준이라 한다. 그것도 50년간 쓸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매매가나 다름없다. 다만 첨단사업에 필요한 고급인력 부족이 제일 심각한 문제라 했다.

 

 이곳에서는 공무원들의 서비스로만 투자 유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외국인들이 불편 없이 일할 수 있게 부대 시설도 철저히 갖춰 놓았다. 외국 투자기업의 주재원들을 위한 거주용 아파트, 호텔, 백화점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을 위한 국제학교인 싱가포르 학교 등도 갖추어져 있다. 이런 노력으로 쑤저우 공업단지에는 삼성전자 외에도 현재 1천3백여 개의 외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세계 500대 기업 중 91개가 이 곳에 공장을 갖고 있어 해마다 2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 나를 반겨준 홍매(紅梅)

 

▲ 동양의 베니스 쑤저우(蘇州, 소주) 

 

 쑤저우는 장쑤성(江蘇省, 강소성) 남동부 타이후호(太湖, 태호) 동쪽 기슭에 있는 도시로 8,488㎢의 면적에 약 600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에 오(吳)나라의 국도(國都)로 발전하였고, 그 뒤 역대에 걸쳐 주변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중시되어 온 역사 깊은 도시다. 수(隋)나라 때 대운하가 개통되자 강남미의 수송지로 활기를 띠면서 항저우(杭州, 항주)와 더불어 '천상천당 지하소항(天上天堂 地下蘇杭)' 즉,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하였다. 

 

 한낱 시골 어촌 마을이었던 상하이(上海)가 개항하기 전까지는 우쑹강(吳淞江, 오송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한 외국 무역도 활발하였다. 전통적인 견직물과 자수 제품이 유명하고, 명(明)나라 이후부터 면포의 생산도 많아졌다. 비단으로 유명하며 '비단의 장사 왕 서방'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방적, 기계, 제강, 화학, 시멘트 등 근대공업도 발달하였다. 

 


 

* 원향당(遠香堂)의 어느 건물

 

 주변지역의 풍부한 농업 생산과 대운하, 우쑹강, 상하이와 난징(南京)을 연결하는 후닝 철도 등 편리한 수륙 교통에 힘입어 전통적인 상업 활동도 활발하다. 시가지는 둘레 23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성 안쪽과 그 바깥의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시내에 운하망(運河網)이 발달되어 '물의 도시'로 불린다. 옛 관료와 지주들이 꾸민 정원들이 많아 '정원의 도시'라고도 부르는데, 4대 명원(名園)으로 꼽히는 창랑정(滄浪亭), 쓰즈림(獅子林), 줘정원(拙政園, 졸정원), 류위안원(留園, 류원) 외에 한산사(寒山寺) 등 명승고적이 많다. 

 

 기온은 온난(溫暖) 습윤(濕潤)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다. 소주는 역사 문화 도시의 하나로 기원 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되었으며, 현재까지 2,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정원의 도시)' 등으로 불리었다. 

 


 

* 앉아서 산을 본다는 견산루(見山樓)

 

 송대에 이르러서 더욱더 번성하여, 비단의 생산지로도 명성을 날렸다. 이때에 소주에 탑을 많이 세워 지금도 송대의 탑이 많이 남아 있고, 소주의 자랑인 정원들도 이때부터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도 그 명성이 덜하지 않았고,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을 활성화시켜 부유한 상업 도시로서 그 명목을 계속 유지해 왔다.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정원도 유명해져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소주의 정원은 정교함이 특징으로 중국 남방 고전 원림 건축예술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송대부터 이어진 정원은 200가구에 이르렀고, 지금은 10군데 정도가 복원되어 외부에 개방되고 있다. 그 중 송대의 창랑정(滄浪亭), 원대의 사자림(獅子林), 명대의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이 대표적인 강남의 원림으로 꼽히고 있다.

 


 

* 숲 속의 2층 정자 천천정(天泉亭)

 

△ 길 잃을 정도인 주오정위안(拙政園, 졸정원)

 

 소주는 고풍(古風)이 있으면서도 주변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 어수선한 도시였다. 북경까지 이어졌다는 대운하를 지나 처음 도착한 곳은 졸정원이었다. 입구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표지판이 자주색 꽃양배추에 둘러 있고 괴상한 모양의 태호석이 서 있다. 유통(幽通)이라는 후문을 들어서자마자 널리 펼쳐진 정원과 전체 넓이의 60%가 된다는 못의 일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찬찬히 살피니, 매화나무들이 때마침 꽃을 피워 흰색과 분홍빛으로 우리를 맞는다.      

 

 동원(東園), 중원(中園), 서원(西園)의 3구획으로 이루어진 졸정원은 크고 아름다워 도시를 대표할 만한 정원으로서 중국의 4대 명원에 들어가며 면적이 4ha로 명원 중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명나라 때 왕헌신(王獻臣)이 고향에 칩거하며 만든 것으로 1522년에 조성된 정원이다. 진나라 때 시의 한 구절 '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 즉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연못이나 수로 주변으로 누각과 정자, 그리고 전시공간으로 이용되는 건물들이 나무와 잘 어울린다.

 


 

* 금잔옥대(金盞玉臺) 수선화가 심어져 있는 화분

 

 작지만 아름다운 수기정(수綺亭)을 돌아 봄빛이 푸르러지는 수양버들 아래로 가 찔레나무 넝쿨과 등나무를 구경하고 나서 돌다리를 건너 조그만 문을 지나니, 앞으로 물이 펼쳐지고 멀리로 탑이 하나 보인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탑이 아니지만 충분히 이곳에서 멋진 경치를 이루며 제구실을 하고 있었다. 정원을 지을 때는 이렇게 먼 산이나 바다를 끌어드려 경치를 이루게 해야 한다는데, 저 탑은 명대에 세워진 북사탑(北寺塔)이라고 한다.  

 

 부용사(芙蓉사), 천천정(天泉亭), 함청정(涵靑亭), 방안정(放眼亭), 견산루(見山樓), 부취각(浮翠閣) 등등 많은 누정들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잎조차 다 져버렸지만 연꽃의 향기가 넘치고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배경이 된 대관원의 모델이라는 원향당(遠香堂)을 지나 진달래와 철쭉, 소나무, 모과나무 같은 많은 분재를 본 후 수선화를 깎아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 전시한 원양정에 들렀다 나와 원앙을 보고 나서, 책 판매대로 가서 졸정원에 대한 책을 한 권 샀다.    

 


 

* 오동나무 대나무와 함께 그윽한 곳에 산다는 오죽유거(梧竹幽居)

♬ 등려군(Teresa Teng)- 첨밀밀(甛蜜蜜, 달콤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