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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름에는 빛깔이 있다
2002년 1월16일 오후 6시. 제주문예회관 전시실은 온통 오름과 제주 풍광을 담은 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다. 전시장에 흩어져 시작 행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여기저기 탄성이 터진다. 수려한 제주도의 풍광도 그렇거니와 오름의 곡선과 오묘한 빛이 빚어내는 어울림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쥐어흔든다.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산과 바다의 풍경이 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일찍이 제주 오름을 찾아다니며 오름을 널리 알린 <오름나그네>의 저자 고 김종철(金鍾喆) 선생의 미망인이자 오름을 사랑하는 시인인 김순이(金順伊)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한번은 가을 따라비오름에 올랐는데, 들꽃이 밟힐까봐 까치발로 조심조심 걷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오름 예찬'을 보면, 얼마나 오름을 가까이 하고 있나를 잘 알 수 있다.
"오름에는 빛깔이 있다.
오름의 모습은 하나이되 결코 하나가 아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해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고 햇빛에 따라 다르고 바람에 따라 다르고 구름에 따라 다르고 안개에 따라 다르다.
오름은 대자연의 탤런트이다.
싸락눈이 왕소금처럼 얼얼하게 귀싸대기를 후려갈기는 그런 한겨울날 오름 위에 올라보라.
문득문득 찢어지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은 어찌 그리 푸르른가.
절망 속에서 움튼다는 희망의 빛깔이 그러하단 것일까.
녹작지근하게 무르익은 봄빛 속에서 높이높이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노래는 어찌 그리 맑은가.
우리의 무채색인 나날들, 상투적인 빛깔들이 문득 부끄럽게 돌아다 보인다.
아, 나는 무엇하며 살았나. 내 빛깔은 언제 적부터 길을 잃었나.
허심탄회하게 문을 열고 가라.
탁해진 마음의 눈빛을 밝혀주는 빛깔이 오름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 <김순이 '오름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 서현열 씨가 10년 동안 누볐던 제주 산하
서현열 씨는 26년전 고향인 전라남도에서 이곳 제주로 왔다. 섬이 좋아서 머물러 살다가 10년 전부터 이 아름다운 풍광을 곱게 담아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손에 든다. 같이 오름에 오르면 마흔여덟의 나이가 무색하게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가 꼭 필요할 때 나타나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어쩌다 사정을 모른 회원이 포즈를 잡고 서서 재촉하면, 다른 분 같으면 슬라이드 필름이라고 거북해 할 터이지만, 두 말 없이 찍어 현상까지 해서 사진을 쥐어준다. 그러면 그 사진은 십중팔구 주인공의 입을 헤벌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서현열 씨는 전시회와 함께 <내가 사랑한 제주>라는 사진집을 펴냈다. 수록 작품은 모두 96점인데 풍경 사진이 80점이고, 들꽃 사진이 16점이다.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제주생태사진연구회 회원 및 제주민속사진동우회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며, 도미술대전 우수상·특선, 제주도환경사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해병대 기동우회까지 모인 전시회 열림식은 성황이었다. 사회자가 작가를 소개하자 서현열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진집에 실린 후기를 읽어 내려간다.
"카메라와 함께 제주의 산과 들을 돌아다닌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동트는 여명(黎明) 속에서 움직거리는 자연의 신비로움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불러내곤 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 강산도 변했고 나도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하던 촬영이 지금은 마음 한 구석 늘 미흡합니다.
렌즈에는 분명히 잡혔던 신비한 '바로 그것'이
현상을 하고 보면 사라지고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진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주의 자연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속마음을 그리 호락호락 내어주지 않습니다.
피사체의 마음과 내 마음이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그리 쉽지 않기에
그 매력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병은 이미 골수에 깊어버렸고, 나는 오늘도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엔 어디로 갈까, 지금쯤 들녘엔 무슨 꽃이 피었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촬영 장비를 챙길 게 분명합니다.
이 사진첩을 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부끄러움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기에 스스로를 다짐하면서
여러분의 따뜻한 질책과 격려를 받고 싶습니다.
사진에 미쳐서 주말이 되어도 함께 해주지 못하는 아내와 두 아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 <전시회 기념 사진첩 '내가 사랑하는 제주' 후기>
△ 서현열 씨의 렌즈에 비친 제주의 오름
여러 동인에 참가하여 이들과 어울려, 아니면 혼자 돌아다니며 풍경 사진과 환경 사진을 주로 찍어온 서현열 씨는 제주도의 오름이면 오름, 바다면 바다, 섬이면 섬, 어느 한 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둑한 새벽이나 어스름 저녁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조우(遭遇)할 때도 있고, 새벽 별도봉 산책길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의 자연 풍광에 매료된 그의 렌즈 속에 그 주인공 오름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마음에 드는 곳이면 집요하게 파고들며 4계절의 변화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의 모습을 담는다. 일출봉만 해도 그렇다. 파랗게 돋아난 풀과 보랏빛 들무꽃을 배경으로 옅어져 가는 바다색과 허리에 구름을 감고 있는 봄의 일출봉, 붉은 색을 톤으로 하여 물안개에 싸여 머리만 내민 일출봉 오른쪽으로 해가 막 떠오르는 모습을 담은 여름의 일출봉, 보랏빛 여명에 쌓여 검게 윤곽만 드러낸 가을의 일출봉, 백사장까지 눈에 덮인 겨울의 일출봉이 그것이다.
한라산의 4계로는, 한라영실계곡 제주참꽃나무, 한라산 선작지왓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 신비에 싸인 여름의 백록담과 돌매화꽃, 여러 계곡의 폭포, 불타오르는 영실의 단풍, 눈의 모습이 꼭 바다 물결이 일렁대는 것 같은 윗세오름과 만세동산 일출, 유채꽃이 바탕이 된 섬 곳곳의 모습, 동쪽인 우도에서 바라본 해질녘의 한라산, 북쪽인 높은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서쪽 산방산에서 바라본 한라산, 화산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족이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오름의 4계로는, 아침 안개에 싸여 그 윤곽의 곡선이 벗은 여인처럼 부드러운 구좌읍 송당리 오름들, 노란 유채꽃과 파릇파릇이 돋아나는 잔디가 어울리는 좌보미 오름의 봄, 도리미오름 자락의 만개한 선홍빛 철쭉과 건너 밭의 노란 유채꽃, 그 뒤 진초록 목초 위로 아직도 누런빛을 띤 채 앉아 있는 개오름, 소와 말이 한가롭게 노는 벌판 너머 이달오름의 여름, 석양의 붉은 색을 주조로 깔고 있는 용눈이오름의 가을, 석양빛을 받으며 은빛으로 일렁이는 노꼬메오름의 억새 물결, 비양도·차귀도·형제섬과 바다와 구름과 햇빛의 조화를 꿈꾼 작품들…….
그런가 하면 그의 렌즈 속에 들꽃이 비치면 그 꽃은 어김없이 스타가 된다. 아직도 추운지 온몸에 솜털을 달고 수줍게 피어난 노루귀, 찬바람에 몸을 드러내 살며시 꽃잎을 열어보이는 변산바람꽃, 엉겅퀴 위에 수줍게 앉은 나비, 긴 여름날 햇빛을 온 몸에 뒤집어 쓴 등심붓꽃,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선정적인 빨간 잎을 연 바늘양귀비, 한 쌍의 나비를 연상시키는 닭의장풀, 봉우리 끝에 여치를 매달고 피어난 말나리, 연꽃봉오리에 살포시 앉은 잠자리, 그 밖의 물매화·한라돌쩌귀·물봉선·야고·어리연꽃·패랭이꽃…….
그의 이 제주 자연이 망라된 사진전은 1월 22일까지 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그의 렌즈 속에 비친 제주는 부드러움의 주조요, 거친 부분은 숨겨 놓았다. 그의 섬 사랑은 본토박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동료들과 같이 오름에 올라서도 그는 가만있지 못한다. 우리가 정상에서 한 잔의 음료수나 맥주를 즐기는 시간에도 그의 눈과 발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남다른 부지런함의 결과물이 오늘 저 사진집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사진> 위는 수줍게 추위를 참으며 피어나는 '노루귀'의 모습이고,
아래는 색의 대조가 뚜렷한 '도리미에서 본 개오름'입니다. <서현열 사진전에서>


△ 오름에는 빛깔이 있다
2002년 1월16일 오후 6시. 제주문예회관 전시실은 온통 오름과 제주 풍광을 담은 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다. 전시장에 흩어져 시작 행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여기저기 탄성이 터진다. 수려한 제주도의 풍광도 그렇거니와 오름의 곡선과 오묘한 빛이 빚어내는 어울림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쥐어흔든다.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산과 바다의 풍경이 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일찍이 제주 오름을 찾아다니며 오름을 널리 알린 <오름나그네>의 저자 고 김종철(金鍾喆) 선생의 미망인이자 오름을 사랑하는 시인인 김순이(金順伊)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한번은 가을 따라비오름에 올랐는데, 들꽃이 밟힐까봐 까치발로 조심조심 걷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오름 예찬'을 보면, 얼마나 오름을 가까이 하고 있나를 잘 알 수 있다.
"오름에는 빛깔이 있다.
오름의 모습은 하나이되 결코 하나가 아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해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고 햇빛에 따라 다르고 바람에 따라 다르고 구름에 따라 다르고 안개에 따라 다르다.
오름은 대자연의 탤런트이다.
싸락눈이 왕소금처럼 얼얼하게 귀싸대기를 후려갈기는 그런 한겨울날 오름 위에 올라보라.
문득문득 찢어지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은 어찌 그리 푸르른가.
절망 속에서 움튼다는 희망의 빛깔이 그러하단 것일까.
녹작지근하게 무르익은 봄빛 속에서 높이높이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노래는 어찌 그리 맑은가.
우리의 무채색인 나날들, 상투적인 빛깔들이 문득 부끄럽게 돌아다 보인다.
아, 나는 무엇하며 살았나. 내 빛깔은 언제 적부터 길을 잃었나.
허심탄회하게 문을 열고 가라.
탁해진 마음의 눈빛을 밝혀주는 빛깔이 오름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 <김순이 '오름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 서현열 씨가 10년 동안 누볐던 제주 산하
서현열 씨는 26년전 고향인 전라남도에서 이곳 제주로 왔다. 섬이 좋아서 머물러 살다가 10년 전부터 이 아름다운 풍광을 곱게 담아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손에 든다. 같이 오름에 오르면 마흔여덟의 나이가 무색하게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가 꼭 필요할 때 나타나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어쩌다 사정을 모른 회원이 포즈를 잡고 서서 재촉하면, 다른 분 같으면 슬라이드 필름이라고 거북해 할 터이지만, 두 말 없이 찍어 현상까지 해서 사진을 쥐어준다. 그러면 그 사진은 십중팔구 주인공의 입을 헤벌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서현열 씨는 전시회와 함께 <내가 사랑한 제주>라는 사진집을 펴냈다. 수록 작품은 모두 96점인데 풍경 사진이 80점이고, 들꽃 사진이 16점이다.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제주생태사진연구회 회원 및 제주민속사진동우회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며, 도미술대전 우수상·특선, 제주도환경사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해병대 기동우회까지 모인 전시회 열림식은 성황이었다. 사회자가 작가를 소개하자 서현열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진집에 실린 후기를 읽어 내려간다.
"카메라와 함께 제주의 산과 들을 돌아다닌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동트는 여명(黎明) 속에서 움직거리는 자연의 신비로움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불러내곤 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 강산도 변했고 나도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하던 촬영이 지금은 마음 한 구석 늘 미흡합니다.
렌즈에는 분명히 잡혔던 신비한 '바로 그것'이
현상을 하고 보면 사라지고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진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주의 자연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속마음을 그리 호락호락 내어주지 않습니다.
피사체의 마음과 내 마음이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그리 쉽지 않기에
그 매력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병은 이미 골수에 깊어버렸고, 나는 오늘도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엔 어디로 갈까, 지금쯤 들녘엔 무슨 꽃이 피었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촬영 장비를 챙길 게 분명합니다.
이 사진첩을 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부끄러움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기에 스스로를 다짐하면서
여러분의 따뜻한 질책과 격려를 받고 싶습니다.
사진에 미쳐서 주말이 되어도 함께 해주지 못하는 아내와 두 아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 <전시회 기념 사진첩 '내가 사랑하는 제주' 후기>
△ 서현열 씨의 렌즈에 비친 제주의 오름
여러 동인에 참가하여 이들과 어울려, 아니면 혼자 돌아다니며 풍경 사진과 환경 사진을 주로 찍어온 서현열 씨는 제주도의 오름이면 오름, 바다면 바다, 섬이면 섬, 어느 한 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둑한 새벽이나 어스름 저녁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조우(遭遇)할 때도 있고, 새벽 별도봉 산책길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의 자연 풍광에 매료된 그의 렌즈 속에 그 주인공 오름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마음에 드는 곳이면 집요하게 파고들며 4계절의 변화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의 모습을 담는다. 일출봉만 해도 그렇다. 파랗게 돋아난 풀과 보랏빛 들무꽃을 배경으로 옅어져 가는 바다색과 허리에 구름을 감고 있는 봄의 일출봉, 붉은 색을 톤으로 하여 물안개에 싸여 머리만 내민 일출봉 오른쪽으로 해가 막 떠오르는 모습을 담은 여름의 일출봉, 보랏빛 여명에 쌓여 검게 윤곽만 드러낸 가을의 일출봉, 백사장까지 눈에 덮인 겨울의 일출봉이 그것이다.
한라산의 4계로는, 한라영실계곡 제주참꽃나무, 한라산 선작지왓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 신비에 싸인 여름의 백록담과 돌매화꽃, 여러 계곡의 폭포, 불타오르는 영실의 단풍, 눈의 모습이 꼭 바다 물결이 일렁대는 것 같은 윗세오름과 만세동산 일출, 유채꽃이 바탕이 된 섬 곳곳의 모습, 동쪽인 우도에서 바라본 해질녘의 한라산, 북쪽인 높은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서쪽 산방산에서 바라본 한라산, 화산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족이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오름의 4계로는, 아침 안개에 싸여 그 윤곽의 곡선이 벗은 여인처럼 부드러운 구좌읍 송당리 오름들, 노란 유채꽃과 파릇파릇이 돋아나는 잔디가 어울리는 좌보미 오름의 봄, 도리미오름 자락의 만개한 선홍빛 철쭉과 건너 밭의 노란 유채꽃, 그 뒤 진초록 목초 위로 아직도 누런빛을 띤 채 앉아 있는 개오름, 소와 말이 한가롭게 노는 벌판 너머 이달오름의 여름, 석양의 붉은 색을 주조로 깔고 있는 용눈이오름의 가을, 석양빛을 받으며 은빛으로 일렁이는 노꼬메오름의 억새 물결, 비양도·차귀도·형제섬과 바다와 구름과 햇빛의 조화를 꿈꾼 작품들…….
그런가 하면 그의 렌즈 속에 들꽃이 비치면 그 꽃은 어김없이 스타가 된다. 아직도 추운지 온몸에 솜털을 달고 수줍게 피어난 노루귀, 찬바람에 몸을 드러내 살며시 꽃잎을 열어보이는 변산바람꽃, 엉겅퀴 위에 수줍게 앉은 나비, 긴 여름날 햇빛을 온 몸에 뒤집어 쓴 등심붓꽃,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선정적인 빨간 잎을 연 바늘양귀비, 한 쌍의 나비를 연상시키는 닭의장풀, 봉우리 끝에 여치를 매달고 피어난 말나리, 연꽃봉오리에 살포시 앉은 잠자리, 그 밖의 물매화·한라돌쩌귀·물봉선·야고·어리연꽃·패랭이꽃…….
그의 이 제주 자연이 망라된 사진전은 1월 22일까지 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그의 렌즈 속에 비친 제주는 부드러움의 주조요, 거친 부분은 숨겨 놓았다. 그의 섬 사랑은 본토박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동료들과 같이 오름에 올라서도 그는 가만있지 못한다. 우리가 정상에서 한 잔의 음료수나 맥주를 즐기는 시간에도 그의 눈과 발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남다른 부지런함의 결과물이 오늘 저 사진집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사진> 위는 수줍게 추위를 참으며 피어나는 '노루귀'의 모습이고,
아래는 색의 대조가 뚜렷한 '도리미에서 본 개오름'입니다. <서현열 사진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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