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 '서봉'
△ 다섯 번째 중국 나들이
2007년 8월 1일 수요일. 날씨 맑음.
오전 10시 30분. 제주국제공항 3층 아시아나 항공사 카운터 앞에는 (사)탐라문화보존회(회장 고시홍) 시안 답사팀이 짐을 부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아여행사 이범종 사장의 안내로 4박5일간 떠나는 답사반원은 회장 이하 35명이다. 이번에 해외나들이는 인천국제공항을 거치지 않고 중국의 원동항공을 이용하여 상해를 거쳐 오가게 되어 있어 싸고 편하면서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2월 중에 해외답사를 해왔는데, 시안은 그 때가 되면 춥고 산에 오르는 일도 녹녹치 못해 금년 2월 일본 오사카 지역을 다녀왔으면서도 할 수 없이 8월 중에 실시하고 대신 2월에 국내답사를 가기로 했다.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한반도의 44배나 되는 넓이로 한꺼번에 여행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한 번에 3박4일 정도로 나눠 지역별로 다니는 게 편하다.
* 중국 명필들이 쓴 비석을 모아놓은 '비림박물관'
1992년 7월말 중국과 수교직전에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아 10박 11일 동안 홍콩까지 돌았던 적이 있다. 인천에서 배로 웨이하이(威海)를 거쳐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장춘, 연변에서 백두산을 거쳐 다시 베이징으로 와서 고궁(古宮)과 만리장성 등을 돌보고 홍콩으로 가 대충 돌아보고 귀국했는데, 답사 반원 거의가 탈진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배 17시간을 비롯해 무려 10번 비행기를 갈아탔으니까.
그 다음 중국 나들이는 2001년 5월말에 이루어졌다. 마침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와 동아일보사가 공동으로 옛날 장보고가 활약했던 산둥성 지역을 돌아보며 그의 족적을 찾는 답사반을 전국의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모집하였는데, 거기에 합류하여 5박6일 동안 우리나라보다도 더 넓은 곳을 돌아다녔던 것. 다음엔 2003년 10월초에 대만, 2005년 2월말에 상해를 거쳐 쑤저우(蘇州)와 장가계를 돌아보는 식으로 주최도 다르고 지역도 달랐다.
*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의 자취 '화청지'
△ 상해 포동공항을 거쳐 시안으로
12시에 제주를 출발한 원동항공 소속 MU5036기는 동쪽 구좌읍과 남원읍을 돌아 서귀포 해안을 거쳐 상해로 향했다. 구름 속으로 얼핏 산방산과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를 배웅하고 우리보다 1시간 늦은 중국 시간으로 환산하여 12시 10분에 상해 포동공항에 도착했다. 포동공항은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실시하면서 새로 만든 엄청나게 넓은 공항이다. 그곳에서 입국 수속을 받고 짐을 부친 뒤 공항 안에서 점심을 먹고 3시 50분에야 시안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우리가 이번 답사할 곳은 전한(前漢), 수(隨), 당(唐)의 수도였던 옛 장안(長安)인 시안(西安). 이곳에는 천여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섬서성 박물관과 70만 명을 동원하여 36년도 더 걸려 완성했다는 진시황릉과 그 부속지구를 발굴한 병마용갱, 모든 서체의 원형을 볼 수 있는 비림(碑林) 등이 포함돼 있으며, 하루는 중국 5악의 하나로 알려진 화산(華山)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비경(秘境)을 돌아볼 예정이다.
* 오름과 같은 진시황릉을 오르는 계단
기차로 꼬박 9시간이 걸리는 상해에서 시안을 2시간 반 동안 걸려 오후 6시 20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 덥지 않은 서안 공항에는 이곳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와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가 있는 조선족 30대 주부인 가이드는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를 비롯 두 나라의 관계 등 많은 공부를 하고 열린 시각을 가지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우리가 계획하고 갔던 것과는 달리 주말에 날씨가 변할지 모른다면서 날씨가 좋았을 때 화산(華山) 먼저 다녀오자고 일정을 변경했다. 화산은 높이 2,000m가 넘는 바위산으로 비가 오면 미끄럽고 안개와 구름에 가려 등산이 곤란하다고 했다. 숙소로 가는 도중에 날은 이미 어두워 사방은 어둑했지만 관청이나 회사 또는 아파트에 불을 켜 놓아서 그런대로 야경이 볼만하다.
* 멀리서 진시황릉을 지켰던 병마용이 있는 박물관
△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
가이드는 숙소로 이동하면서 시안(西安)의 기본 역사를 들려준다. 중국 시안은 산시성(陝西省)의 성도(省都)로 우리가 보통 위하(渭河)라 하는 웨이허강의 황투(黃土) 고원에 있는데, 예로부터 여러 왕조의 수도였고 매매와 교역의 중심지이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그 옛날 BC.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커다란 도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전한(前漢)의 수도였던 장안성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BC. 202년 지금의 시안 바로 북서쪽에 세워졌다. 왕망(王莽)의 난(9~23)에 뒤이은 혼란의 와중에 장안성은 크게 파괴되어 23년에 세워진 후한(後漢)은 뤄양[洛陽]을 수도로 정하게 되었다. 서북 변방의 이민족들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이며, 6세기에 서위(西魏)와 북주(北周)가 단기간이나마 수도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안은 수세기에 걸쳐 쇠퇴했다.
* 진시황릉을 지키는 병마용들
그 후 수나라(隋 : 581~618)가 장안을 수도로 정하자 이곳은 다시 번성했다. 수에 이어 당(唐 : 618~907)의 수도가 된 장안은 크게 팽창 세 구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궁성(宮城)은 물론 관리들이 거처하면서 집무했던 황성(皇城), 장인(匠人)과 상인들의 활동무대였던 외곽성이 바로 그것으로, 장안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당이 몰락한 후 장안은 상업 중심지이며 중앙아시아와의 무역중개지로서 그 기능을 계속 유지했으나 점차 쇠락했다. 13세기에 중국에 왔던 마르코 폴로는 이 도시를 번창하는 교역 중심지라고 묘사했다. 현재 널리 통용되는 이름인 시안은 명대(明代 : 1368~1644) 이후에 정해졌다. 얼마 후 서경(西京)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1943년에 다시 시안으로 복귀되었다.
* 시안 도심의 상징인 시안성 '종루'의 야경
△ 진시황의 유적으로 관광지로 발돋움
20세기에 접어들어 1920년대부터 이 도시는 소련으로부터 공산주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주요 창구 역할을 했다. 또한 1936년 12월의 시안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으로 항일국공합작이 시작되어, 동남아시아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제국주의를 몰아내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의 서북지방이 지리적 특성으로 다른 지방에 비해 경제발전이 더디었다.
그러나, 실크로드를 통한 외부세력과의 교류는 불멸의 유산을 많이 남기게 된다. 시안에 있는 섬서역사박물관은 이곳 1190년 13왕조의 유물을 총집결한 곳으로 예전의 공자(孔子) 사당을 개조한 것이라 하며, 글씨가 새겨진 중국 역대 명필의 비석과 불상 등 중요한 유물들을 모아둔 베이린(碑林)도 유명하다. 양귀비와 현종이 겨울을 보내던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 화칭츠(華淸池) 역시 꼭 봐야 할 곳이다.
* 고도 시안 천년 역사의 흔적을 모은 섬서성역사박물관 입구
그리고 당대에 세워진 샤오옌탑(小雁塔), 다옌탑(大雁塔 : 높이 45m), 다츠언사(大慈恩寺), 명대에 건립된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원래는 742년에 세워졌으나 현재의 건물은 14세기에 지어진 거대한 이슬람교 사원, 보존상태가 양호한 14세기의 성문 3개 등 흥미 있는 유적들이 많다. 그리고, 내일 가기로 돼있는 중국 5악의 하나인 화산은 어떻고….
시안 북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진시황릉(秦始皇陵)이 있다. 이 능은 1974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전투대형으로 정렬되어 있는, 진흙으로 빚은 실물 크기의 전사(戰士) 토우(土偶)가 6,000여 점이나 발견되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진시황릉은 제주의 작은 오름과 같은 커다란 규모로 아직 발굴되지 않았으나 희한한 시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언제 그것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는지….
*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경문을 보관하고 있는 자은사 '대안탑'
♬ 첨밀밀 - 등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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