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 답사기 (2)
* 북봉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의 모습
△ 눈에 익은 나무들을 보며
중국 화산은 시안에서 120km떨어진 화음현(華陰縣) 남쪽에 위치해 있는 돌산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일행은 관광버스를 타고 시안시내를 벗어나 화산을 향해 달렸다. 가끔 도로공사 관계로 막혀 지체되는 길을 가면서 가이드의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한 얘기와 시안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가고 있는 화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창 밖에는 호두나무와 석류나무가 많이 심어진 과수원과 눈에 익은 가로수, 꽃이 피어있는 무궁화도 있다.
산은 거의 보이지 않은 이곳은 중국의 전형적인 평야지대여서 크고 작은 강줄기가 자주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강수량이 적어서 논농사는 잘 안되고 밭농사를 하고 있는데, 앞서 말한 과수원들과 때마침 여름이어서 옥수수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비단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는데 뽕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목화밭도 보인다.
* 표를 사기 위해 들른 현관의 커다란 나무조각 화산의 모습, 기를 든 분이 우리 가이드
우리는 지금 동쪽으로 가고 있지만 본래 시안은 실크로드(비단길)의 관문이다. 비단길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로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견가도(絹街道)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시초이며, 이 길을 통해 고대 중국의 특산인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한(漢)나라 시대에 타림분지 연변의 오아시스 도시를 지나서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국과 서방을 연결하고 있던 길이다.
비단길을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서남아시아에서는 이미 BC 6세기에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가 동쪽은 서투르키스탄에서 서쪽은 소아시아반도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하였고, BC 4세기 무렵에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지중해 동부에서 인더스강까지 지배하는 등 일찍부터 정치적 통일과 함께 서남아시아세계라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서남아시아 문화권과 중국 문화권을 처음으로 연결했던 길이 비단길인 것이다.
* 케이블카 타는 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를 압도했던 봉우리
▲ 오악의 하나인 화산
오악(五岳)은 중국의 옛 신앙에 보이는 5개의 산(山)을 말한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다른 나라보다 유별나게 산악신앙이 강했는데, 전국시대 이후 오행사상(五行思想)의 영향을 받아 5악의 관념도 생겼다. 동악(東岳)은 산동성의 태산(泰山, 타이산), 서악(西岳)은 섬서성의 화산(華山, 후아산), 중악(中岳)은 하남성의 숭산(崇山, 쏭산), 남악(南岳)은 호남성의 형산(衡山, 헝산), 북악(北岳)은 산서성의 항산(恒山, 헝산)이 그것이다.
화산(華山)은 옛날에는 서악(西岳) 또는 태화산(太華山)이라 불렀다. 섬서성 화음시(華陰市)에 위치해 있으면서, 서북에서 중원으로 나드는 문호이다. 화산이란 이름은 산봉우리의 자연배열이 꽃 모양 같아서 얻어진 것이다. 화산은 북으로 황하, 남으로 진령(秦嶺)에 의지해 화산여립(華山如立)이라 불린다. 전반 산체의 능선이 매끈하고 깎아지른 듯한 모습에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두드러져 웅장하고 장관이다.
* 북봉으로 오르는 문
화산의 기이함은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옹근 화강암으로 구성된 데 있다. ‘산해경’에 ‘태화산은 사방에 솟고 그 높이 5000길에 이르며 10리에 뻗어있다.’고 나와 있다. 화산은 5개의 주봉(主峰)이 있는데, 그 중 동, 서, 남 세 봉우리가 그 중 높다. 남쪽봉우리 ‘낙안(落雁)’은 태화산의 정상으로 해발 2160.5m이다. ‘낙안’과 서쪽봉우리 ‘연화(蓮花)’, 동쪽봉우리 ‘조양(朝陽)’이 세면에 우뚝 솟아 기세가 흰구름 위에 솟고, 그 그림자 황하 물에 비껴 천외삼봉(天外三峰)으로 불린다. 운대봉(雲臺峰), 옥녀봉(玉女峰)이 그 곁에, 그리고 36개의 작은 봉우리가 그 곳곳에 솟아 천만 가지 기상을 자랑한다.
화산은 무척 험준해 그 능선이 창공에 난 오솔길 같고 세면이 하늘에 닿을 듯 우뚝하고 절벽에 난 천척동(千尺洞), 백척협(百尺峽), 노군리(老君犁) 골짜기, 하늘다리(上天梯), 창룡령(蒼龍嶺) 모두가 더없이 험준한 모습들이다. 자고로 화산은 외길이라고 했다. 과연 산중에는 남북으로 난 한 갈래 길밖에 없다. 10km 되는 이 길은 암석을 따라 꼬불꼬불 나있고, 험난하다. 가끔가다 한 사람이 막아서면 한 사람이 지날 수 없는 비좁고 가파른 길목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 케이블카에서 내려 북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독특한 지붕의 기념정
한편으로 보면, 화산은 중화민족문화 발상지의 하나이다. 청나라 유명 학자 장태염(章太炎)선생의 고증에 따르면 ‘중화(中華), 화하(華夏)’라는 이름은 화산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라 한다. ‘상서(尙書)’, ‘사기(史記)’에도 화산에 관한 기록이 있다. 화산은 도교의 성지로 제4동천(第四洞天)이다. 옛날 주(周)나라 말기부터 도교신자들이 찾아들어 운대관(雲臺觀)에 도장(道場)을 설치했고 금나라, 원나라 때에 이르러 도교 전진파(全眞派)의 발상지 도장(道場)으로 되었다.
화산에는 동굴 72개, 도관(道觀) 20여 개가 있다. 그중 옥천원(玉泉院), 동도원(東道院), 진악궁(鎭岳宮)은 중국의 중점 보호 도교 장소로 되고 있다. 진한(秦漢) 이후 도교와 화산의 신화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내려오는 것이 200여 편인데 그중 ‘거령경산(巨靈擎山)’(거대한 산신령이 산을 떠받들다), ‘벽산구모(劈山救母)’(산을 갈라 어머니를 구하다), ‘취소인봉(吹簫引鳳)’(퉁소불어 봉황 불러오다)이 유명하다. 이런 신화전설들은 화산의 품위를 한결 더해주고 있다.
* 북봉으로 오르는 도중 통과하게 된 산장
▲ 김종순 시인이 쓴 ‘화산(華山)’
한 시간 정도 지나 드디어 오른쪽으로 천산산맥의 돌산이 나타나서 계속 이어진다. 날씨가 어중간해지더니 잔뜩 찌푸리고 있다. 나는 ‘중국 백배 즐기기’란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 설명해주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일단 1,600m 정도는 올라가는 것이므로 그곳에서 산을 즐기며 자신이 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오르다가 시간을 보며 돌아올 것을 강조하고, 오기 전에 읽었던 김종순 시인이 쓴 ‘화산(華山)’이란 시를 읽어주며 분위기를 살리려 노력했다.
중국서안 동쪽 300리
해발 2,100미터에
우뚝 솟은 다섯 봉우리
한 송이 꽃 모양을 한
대륙의 외딴 바위섬,
활화산(活火山)
꽃그늘 드리워진 계곡마다
소스라쳐 몸이 떨리는
오리관(五里門) 험준한 지세에
옥천원(玉泉院) 산문(山門)은
신비경이 선연하다
천년을 하루 같이
맑디맑은 물 흘러
수 천길 벼랑 끝으로 밀려가고
꽃 물 같은 석양 아래
틈 비집고 솟아 오른 봉우리
눈 꽃 같아
안개구름 사이 춤추는
먼 땅 의 분계선에
천년 약속 묶어 놓은
사랑의 자물통들
천적장 돌계단
무진한 경사를 쫓아
천 꼴 만 색으로 발아래 헤이고,
천하제일의 화산(華山)에
내 마음을 몰아넣는다
* 북봉의 화산논검비, 뒤로 보이는 것은 일월애
▲ 북봉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드디어 화산 관리사무소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진다. 많이 오지 말고 소나기성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지고 간 여행용 우산과 1회용 비옷을 챙긴 후, 책 같은 것은 차에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내려 매표소로 들어가 보니 현관 바닥에 화산의 지형을 그려놓아 기다리는 시간에 한번 돌아보도록 해놓았다. 나는 우리말로 된 안내서가 없어 그냥 한 장으로 된 풍경사진이 있는 작은 지도를 하나 샀다.
거기서 다시 케이블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미니버스에 나눠 타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창문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의 규모는 도저히 디카의 렌즈로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장가계에 갔을 때와는 돌이 질이 다르다. 그리고 장가계에서는 위험스럽게 바위 옆구리를 깎아 위태위태하게 갔는데 여기서는 구불구불하기는 해도 위험성은 없다. 한 30여분 달려 산의 입구에 다다랐다.
* 북봉에 매달려 있는 자물통과 붉은 천
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커다란 암석이 막아섰는데 올려다보니 깎은 듯 험준한 봉우리다. 멀리 공중에 점점이 매달린 케이블카가 아찔해 보인다. 도시락을 챙기고 구불구불하게 줄 서는 곳으로 들어갔다. 15분 정도 기다리다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1996년에 시설했다는 줄에 매달린 조그만 케이블카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북봉(北峯)인 운대봉까지 10분이 소요되며 이용 요금은 편도 60위안, 왕복 100위안, 입산요금은 70위안이다.
‘덜컹’하더니 차는 어느덧 공중에 매달려 위로 올라간다.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좋아져 있었다. 줄줄이 매달려 오가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기분 좋게 차에서 내려 바위틈으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북봉 입구 휴게소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은 등산객은 옥천원(玉泉院)에서 출발하여 4시간 동안 걸어야 이곳까지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일행이 다 오기를 기다려 먼저 북봉으로 향했다.
* 북봉으로 오르는 곳에 위치한 기이한 바위
▲ 북봉 언저리에서 도시락 점심
점심밥을 먹고 곧 산행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3시간 반의 시간을 주고 점심을 먹은 뒤 등산하다가 시간에 맞춰 돌아오라고 했다. 사방이 깎아지른 듯 험한 1,600m 고지 바위 위. 사방을 돌아보면 보이는 곳마다 절경이어서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더욱이 사진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 풍경을 담느라 더 부산하다.
북봉 끝에 매달아놓은 자물통에 묶어놓은 붉은 천이 자연을 어지럽히면서도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은 묘한 색의 대조 때문일 것이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은 단란한 가족의 단합을 과시하기 위하여, 연인끼리는 두 사람의 영원한 약속이 깨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굵직한 자물통을 채워놓고 그 열쇠를 천장만장이나 되는 절벽 밑으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언제부터 생긴 풍습인진 몰라도 좀 거시기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 북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문 너머로 보이는 일월애
내국인들도 이곳 바위 사이로 난 길 좁은 틈 나무그늘을 찾아 도시락을 꺼내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아무려면 어쩌랴 싶어 그늘은 없어도 조금 넓은 바위를 찾아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마침 가지고 온 휴대한 1홉짜리 한라산 소주를 꺼내어 한 잔 부어들고 화산의 신(神)을 향해 정중하게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바위산을 기어오르려면 힘이 들 것이기에.
다시 차(茶)와 자물통을 팔고 있는 휴게소로 돌아와 시간을 꼭 지킬 것과 무리하지 말고 능력이 닿는 데까지만 갔다가 내려올 것을 다짐한 후, 정상 공격조를 짜고 몇이서 바위틈을 기어오른다. 어떤 곳은 그냥 자연스런 바위고 어떤 곳은 바위 옆을 깎아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오로지 이 길만이 북봉을 떠나 나머지 네 봉우리를 돌아올 수 있는 코스인 것이다. 가능한 곳은 왕복로가 구분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외길 수순이다.
* 북봉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길목 내려오는 길에 있는 등산객들과 찰이애에 새겨진 글들
♬ 운하(雲河) - 등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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