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중국 오악의 하나인 화산(華山) - 2

김창집 2007. 10. 24. 00:34

   --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 답사기 (3)

 

   * 창룡령에서 바라본 북봉과 오르는 모습 

 

▲ 짐꾼들과 피리 부는 노인


 지금처럼 자연의 보호와 보전에 신경을 쓰지 않던 그 옛날 수많은 석공(石工)을 동원해서 정(釘)으로 쪼아 등산로를 만들었다는데, 1~2km마다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다실(茶室)도 있다. 다실은 그 시설이 낡고 제멋대로 생긴 것이어서 자연에 어울리지 않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이어서 없앨 수도 없어 이용하는 사람들은 편안하고 정부에서는 장사를 할 수 있어 좋겠다. 또 곳곳에 쓰레기통을 설치해 놓아 마구 버리는 것은 막을 수 있게 해놓았다.

 

 산 밑에 바로 10개의 호텔과 초대소가 있는데 모두 숙식이 가능한 것도 관광으로 인민을 먹여 살리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계단을 오르는 중에도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이 교차되어 어떤 곳에서는 한쪽이 바짝 붙어서 있어야 했고, 어떤 곳은 교차가 가능하다. 게다가 가끔씩 짐꾼들이 있어 땀 흘리며 오르는 모습을 보면 자연히 피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 짐을 지고 가면서 피리를 부는 노인 

 

 짐꾼들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짐을 보니, 유리까지 끼운 스텐 문틀 몇 개를 겹쳐 나르는 사람도 있다. 그 밖에 곳곳에 있는 집을 유지 보수할 건자재라든가 가계나 음식점의 재료와 상품 등 여러 가지다. 한 곳에 이르렀을 때 특유한 음률의 피리 소리가 들리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웬 노인 짐꾼이다. 평생을 이 길에서 늙었을 이 노인은 이제 모든 것을 초월해서 짐을 지고 위험한 길을 가면서도 한껏 자유로워 보였다.


 와우대(臥牛臺)를 시작으로 취선대를 바라보며 천제(天梯)를 지나 일월애(日月崖)를 지나는 것이 처음부터 걸어오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온 우리들에게는 첫 관문이었고, 다음 다가온 창용령(蒼龍嶺)이 두 번째 관문이었다. 북봉에서는 이 외길을 지나야 비로소 네 봉우리로 갈 수 있는데, 그 길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며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이 창룡령(蒼龍嶺)인 것이다.

 

 

   * 여러 가지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 


▲ 한유가 투서한 곳, 창룡령


 이 창룡령의 길이는 약 1,500m, 넓이가 1m정도인 24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산등성이의 경사는 약 40° 정도인데, 이곳을 지나가려면 고공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아예 눈을 옆으로 돌릴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고갯길이 다 끝난 곳의 바위에는 ‘韓退之投書處(한유가 투서한 곳)’이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퇴지(退之)’는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이며 유학자인 한유(韓愈)의 자(字)인데 그가 이곳 화산에 올라 높이 솟은 산과 양쪽의 깊은 계곡을 보는데 안개가 일고 구름이 가득했다. 이를 본 한유는 너무 놀라 떨며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한참동안 울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절명서(絶命書,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기는 유서)와 구원의 편지를 써서 산 아래로 던졌다.

 

 이 편지를 마침 산 아래를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올라와 그들 구했다고 한다. 바로 이 밑에서 글을 써서 던진 곳이라는 얘기다. 지금이야 길이 어느 정도 안전시설이 되어 있고 사람도 많이 다녀서 무서움이 덜하겠지만 당시 인적이 없는 이곳에서 혼자 있어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전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글이 새겨진 바위 조금 못 미친 곳에 답사반 일행 중 포기해 주저앉아 있는 분이 앉아 있었다.

 

 

    * 오르면서 본 이곳 저곳의 풍경들 

 

▲ 금쇄관 지나면서부터 갈래길


 쉬엄쉬엄 오르시든지 자신없으면 내려가라고 당부를 하고 여섯 글자를 뒤로 하여 커브를 도니 오운봉(五雲峯)이 나타나고, 뒤이어 음식점 건물이 보인다. 그 속을 통과해야 하는데 시간을 아끼려고 옆길로 걸어 문을 나서니 물건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금쇄관(金鎖關)이었다. 시간은 벌써 2시간이 넘어 있어 우선 오른쪽으로 난 길로 서봉을 향했다. 그늘에 하얀 도라지모싯대가 피어 우리를 반긴다.    

 

 잘 생긴 소나무들의 바위와 잘 어울려 바위위에 서 있고 그 너머로 서봉이 보인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여 조금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코스로 서봉을 향했다. 내려가면 폭포라는데 시간 관계상 어쩔 도리가 없이 그냥 지나쳐 나무 그늘에서 그곳 산의 식물들과 교감하며 바로 눈앞에 서봉이 보이는 능선에 올랐다. 그 너머로는 끝없이 산맥이 펼쳐져 있어 사진을 찍기에 좋은 위치다.

 

 

   * 이쪽과 저쪽에서 바라본 서봉의 모습


▲ 바위가 연꽃을 닮아 연화봉(서봉)


 나는 서둘러 도교사원이 있는 서봉을 향해 심한 바위 비탈길을 올라 도교 사원인 취운궁(翠云宮)을 거쳐 정상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 중 모녀 팀을 만났다. 쉬지 않고 올라와 이곳 정상에서는 아무도 못 만났다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곳저곳 절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빠른 속도로 촬영을 하고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끼면서 정상을 통과했다.


 정상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틈을 주지 않은 사람들이 미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분수 모르고 정보도 없이 너무 빡빡한 시간을 배정한 가이드를 탓할 수밖에. 사이 길로 내려 도교사원을 나오는데, 이제야 오르는 일행에게 뭐 특별한 것이 없으니 하산하자고 꾀어 1천원씩 주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서 갈증을 풀고 내려온다.

   

 

     * 서봉 정상의 도교사원과 정상에 세운 비

 

 서봉(西峰)은 연화봉(蓮花峰)이라고 부르는데 2,038m 정상 취운궁(翠云宮) 앞쪽에 있는 거석의 모양이 마치 연꽃과 같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옆쪽에 긴 모양의 거석이 있는 거석에 갈라진 금이 있는데 마치 도끼로 팬 모양과 같다. 전설에 의하면 심향이 산을 허물어 어머니를 구한 곳이라고 한다. 고대 서생 유안창이 북경으로 가는 길에 화산을 지나게 되었는데 화산에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아들을 낳아 심향이라 하였다 한다. 그 여인은 옥황상제의 딸이었는데 여인의 형제인 나쁜 신이 동생이 평범한 인간이 되어 신선의 몸을 잃었다고 여겨 여인을 서쪽 큰 돌 속에 넣었다고 한다. 심향이 성인된 후 어렵게 학문과 무예를 익혀 마침내 그 나쁜 신을 물리치고 도끼로 화산을 내리쳐 어머니를 구해냈다는 내용이다.

 

 

   * 서봉 남쪽 정상에 보이는 사람들과 정상에 있는 비 

 

▲ 허위허위 최고봉 남봉을 오르다


 내려오며 시계를 보니, 그렇게 빨리 움직였는데도 30분밖에 안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같으면야 휴대폰으로 한 30분 늦어지겠다는 통보를 한 뒤에 양해를 얻고 행동에 옮겼겠지만, 눈앞에 바로 정상이 보이고 언제 다시 이곳에 다시 올지 기약이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일행의 대표로 정상에 갔다 와야 한다고 결정하여 6명이서 최종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남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진 않았는데 볼 것은 많았다. 효자봉(孝子峯)을 거쳐 정상인 남봉 2,160m의 낙안봉(落雁峰)에 올랐는데, 분이기가 영 썰렁하다. 서봉에서는 나무라든지 바위가 시원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제일 높은 곳에 자물쇠와 기념품에 글씨를 새기기 위한 조그만 가판대 같은 시설이 있어 그곳에 전기를 대느라고 줄까지 흘려놓았다.

 

 내려다보는 경치는 좋았지만 안개가 연봉에 희미한 안개가 스며 있어 사진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겠다. 촌각을 다투었지만 기념사진은 찍고 가자는 제안에 얼른 포즈를 취하고 내려온다. 조금 내려왔을 때 반대편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남천문에서 방향을 틀어 바위 밑으로 기어 나오니 눈앞에 동봉인 2,100m 조양봉(朝陽峰)과 중봉인 2,042m 옥녀봉(玉女峯)이 나타난다.

 

 

   * 남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곳에서 바라본 경치  


▲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


 동봉(東峰)은 조양봉(朝陽峰, 차오양평)이라고도 하는데 멋진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안내서를 보았더니, 이곳 산 아래 여러 곳에 호텔과 산장이 있어 한 이틀 묵으면서 날씨가 좋으면 밤에 야영을 했다가 일출을 감상하며 천천히 다섯 봉우리를 감상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곳만 등산할 사람을 모아 꼭 오리라 다짐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중봉(中峰)은 옥녀봉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 삼봉이 모두 통하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춘추시대 소사(蕭史)라 하는 옥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진목공의 딸인 농옥이 그를 사모해 궁궐의 생활을 버리고 이곳에서 소사와 함께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옥녀봉이라고도 불린다. 초여름 햇빛과 운무로 덮인 옥녀봉은 일곱 빛깔의 광채를 내며 기이한 모습을 나타내 화산의 불광(佛光)이라고 한다.

 

 

   * 내려오다 본 소나무와 갑자기 구름이 덮이려할 때 

 

 뛰듯이 걸어 내려와 금쇄관을 막 나서는데 갑자기 안개가 주위를 감싸며 컴컴해지더니 비가 올 것 같다. 순간적이었다. 양쪽은 낭떠러지인데 짙은 구름 때문에 안온한 산속에 있는 것 같다. 일행 6명은 산의 맛을 다 본다면서 걸음을 재촉했는데, 창룡령에 이르렀을 때 서서히 안개가 걷힌다. 그런 까닭에 내려오면서 앞으로 바라보는 북봉과 그 주변은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아직도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는 중국인들을 보았다. 이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산의 정기를 즐기면서 가고 싶은 곳까지 올라가다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서봉에서 바로 바로 내려온 총무이사의 제보로 30분 늦은 우리들을 기다리면서도 걱정을 안했고, 일부는 벌써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 쇼핑을 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시안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발 마사지를 받았지만 6명 중 일부는 발에 물집이 생겼고, 오는 날까지 다리를 절지 않으면 안 되었다.


 

    * 내려오다 본 경치  


♬ 겨울의 연정 - 등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