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대부분의 학교가 졸업생을 내보낸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도 48회째로 391명의 학생들을 졸업시켰다. 사회라고 해봐야 거의가 다 대학으로 진학하는 거지만, 어쨌든 이제 성인(成人)이 되어 교문을 나서는 셈이다. 졸업식장의 두드러진 특성은 졸업생들의 머리가 울긋불긋 물든 학생들이 많았고, 식을 지내는 순간에도 삼삼오오 얘기를 나눈다든가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폰 통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과거 엄숙하던 졸업식장과는 달리 세태를 반영하듯 한껏 자유로워졌다. 가족 위주의 하객은 연인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복장은 패션쇼장을 연상시켰다. 5~6년 전 후배들이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던 악습은 사라지고, 꽃다발을 안은 졸업생들이 많아졌다. 꽃다발 중에는 조화(造花)도 꽤 보인다. 다음 글은 밀가루와 계란 세례가 난무하던 시절 모 신문에 투고했던 글이다. 지금은 자유분방한 것도 그런대로 좋다고 생각되지만, 그 때는 꽤 염려되었던 모양이다.
♣ 일그러진 졸업식장
지금 40대 후반에 들어선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아스라한 기억 저 편에 있는 국민학교 졸업식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일제 잔재(殘滓)로 남아 있던 권위적이고 다분히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거행되는 의식 분위기 때문에 그랬던 점도 있지만 졸업식만큼은 그런 대로 엄숙한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그랬다. 분명히 빛나는 졸업장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민학교에 못 가는 사람도 많았다. 더욱이 해방 뒤 우리 제주를 강타했던 4.3의 회오리는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자신의 입을 건사하기 바쁜 우리들이었기에 집안 일 때문에 결석이 태반이었고, 그래서 이 빛나는 졸업장은 액자에 넣어 자랑스레 걸어 놓았던 것이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졸업생 답가가 끝날 즈음이면, 둘째 소절에서부터 훌쩍이던 코맹녕이 소리는 아예 울음판으로 변했다. 재학생, 졸업생이 함께 부르는 3절은 아예 재학생들만의 몫이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달래기 바쁘다. ‘바보처럼 절대 울지 말아야지.’ 하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건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장래는 더욱 숙연해지게 마련이었다.
적어도 그 때는 그랬다. 195~60년대 시골 국민학교 졸업 학생 중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더 공부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고, 집안을 도와 평생 동안 지긋지긋한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시집갈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도외로 물질을 떠나든지 방직 공장으로 가야 한다. 심한 경우, ‘도살이(식모)’가 되어 어린 나이에 자존심을 죽이고, 눈칫밥 얻어먹는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렇듯 ‘졸업(卒業)’이란 한 과정의 마지막 단계이자, 또 하나 새로운 과정의 시작이다. 그 어원(commencement)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게 된 오늘날에 와서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별 이변이 없는 한 중학교에 진학하고, 대개는 고등학교에 가게 되어 있다. 특히, 근래 몇 년 사이에 일반 대학과 전문대학이 늘어나고 취업문이 좁아지면서부터 인문계 고등학교든 실업계 고등학교든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3분의 2를 상회한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졸업식장 풍경이 일그러지고 있다. 과거 식장의 분위기가 갖고 있던, ‘엄숙(嚴肅)’이나 ‘숙연(肅然)’은 간 곳 없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식장 주변은 온통 꽃밭이 되고, 하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수상하러 나간 학생은 탤런트 같은 차림으로 꾸미고 장내를 향하여 번쩍 손을 든다. 그야 말로 최우수 주연상을 받은 배우처럼 연기도 훌륭하다. V자를 그린 손가락을 포착하느라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진다. 조그만 실수나 엉뚱한 행동은 식장을 온통 웃음바다로 만든다.
여기까지는 좋다. 새로운 풍속이니까. 그리고 대과없이 학업을 마친 주인공들을 축하해 주는 자리니까. 그러나 낭패는 식이 끝나자마자 곧 다가 온다.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계란과 밀가루 세례가 퍼부어 지는 것이다. 교복이든 신사복이든 머리까지 밀가루를 허옇게 뒤집어쓰고 계란이 뚝뚝 흐르는 상태로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가족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민망스럽다. 과거 너나없이 검정 교복을 입었을 때, 가끔 있던 밀가루 뿌리기가 교복 자율화로 당분간 사라졌었는데, 이제 교복이 다시 부활되면서 계란까지 곁들여 재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재미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신중한 것을 모른다. 되는 대로 말하고 웃기는 TV 오락 프로그램의 영향도 크다. 그래서 별 희한한 사건들이 다 일어나는지 모른다. 이들에게 신중함을 가르쳐야 한다. 자유스러움도 좋고, 밝은 사회도 좋지만, 엄숙할 때는 엄숙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긴장도 필요하다. 졸업 식장만큼은 적어도 그래야 될 것 같다.
-- 제주교육박물관 특별전 해설집에 실었던 글
♣ 동아일보에 난 독특한 졸업식 기사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8일 오전 9시 50분경 인천 남구 주안동 인천고등학교(교장 김실) 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장. 졸업생과 학부모, 교사 등 700여명이 손에 촛불을 들고 졸업식장으로 입장했다. 이들은 이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석별(惜別)의 정을 아쉬워했다.
이처럼 인천고의 올해 졸업식은 기존의 졸업식 방식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형식으로 시작됐다. 올해 101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인천고는 우수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5명 안팎의 내빈이 긴 시간 축사와 격려사를 하는 기존 졸업식 방식을 바꿔 ‘졸업생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의 한마당을 만들었다.
댄싱 팀의 박진감 넘치는 공연에 이어 2개 반씩 졸업장을 수여할 때는 대형 스크린에 졸업생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비춰졌다. 마지막으로 보컬밴드의 축하공연이 졸업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졸업생 이해균 군(18)은 “떠나는 아쉬움과 보내는 섭섭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축제였다”며 “모교 사랑의 마음을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졸업식이었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졸업생이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졸업식을 2년 전부터 준비했다”며 “이번 졸업축제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졸업 문화로 발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졸업식이 달라졌네> 2002년 2월 9일자
☞ 올 2월에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장미꽃을 보내며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
* 천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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