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단편> 어떤 하산(下山) <2>

김창집 2001. 10. 23. 22:31


 

* 한라산

 


 입구까지 차를 불러들여서 그런지, 길은 제법 번듯하였고 등산객 수도 많이 불어나 있었다. 길섶엔 봄의 전령사 박새가 흰 꽃을 떨구어 가벼운 열매들을 달고 서 있다. 큰앵초도 이미 다 진 뒤라 손바닥을 펴들고 잎만 반긴다. 여기쯤 해서 물이 있겠다 싶어 냇가로 들어가니 물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주위에 널려 있는 쓰레기도 그렇거니와 물에서 냄새까지 난다. 이건 분명히 어디 오염원이 있을 것 같다. 옛날에는 이 길 어디에서든 냇가에 들어서기만 하면 엎드려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촬촬 흐르지 않았던가.

 냇가를 따라 올라간다. 지금 냇물이 저 지경이 된 것을 보면서 우리 형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이 흐려졌으면 차근차근 근원을 찾아 올라가 오염원을 찾아 근본 문제부터 고쳐 나가려 하지 않고,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려버리든지 임시방편으로 약을 써서 소독을 하고 있다. 어떤 관리자는 한 술 더 떠서 그 물을 못 먹게 막아버리든지 아예 하수구로 흘러보내게 한다. 사실이지 편견을 버리고 오염원을 찾으면, 그것을 시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게 윗물을 맑게 해놓으면 자정작용으로 아랫물도 자연히 맑게 되는 것이 이치다. 흐르는 물을 한꺼번에 막아버리면 물은 썩고 비가 오면 둑이 터져 홍수가 나게 마련이다.

 오염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절벽 조금 아래 사방이 나무로 둘러쳐진 곳에 커다란 표주박처럼 생긴 제법 넓은 웅덩이가 있었다. 그 샘은 수량이 많지 않아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 둘이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 기름까지 번지는 것을 보다 못해,

 "아니, 아줌마! 여기서 이렇게 그릇을 씻어도 되는 겁니까?"
하고 나무랐더니, 별 주저하는 빛도 없이 대답한다.

 "왜, 왜요, 여기서 씻으면 안됩니까?"
 "여기는 수원지 아닙니까. 저 아래쪽에서도 물을 마셔야 하고요."
 "거기 물을 어떻게 마십니까. 우리도 거기 오염되어 있어서 이쪽으로 왔는데…."
 "이쪽으로 왔으면, 깨끗하게 사용해야 될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다 씻는데, 우리라고 못 씻습니까? 이것 보세요. 이 밥알들, 저거 보세요. 다른 사람은 삼겹살 구워먹던 것도 그냥 버리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걸 버린 사람도 나쁜 사람입니다. 알만한 사람이 남이 한다고 그렇게 하면 안되죠."

 이렇게 다투고 있는데, 숲 속에서 웬 젊은이가 팬티 차림으로 뛰어나온다. 계곡에 발을 담갔던 모양으로 젖은 발에다 슬리퍼를 끌고 색안경을 썼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사타구니께가 출렁거린다. 힘 자랑하듯이 어깨를 피며 고개를 양쪽으로 뻗어보고 나서 시비조로 말을 건다.

 "아니, 당신이 뭔데, 남 노는 데 와서 귀찮게 구는 거요?"
 "나? 지나가는 사람이오만 저분들이 여기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에 얘기 좀 하고 있었소."
 "아, 그릇 닦는 거? 다른 사람도 다하는데, 별 것 가지고 다 그러셔. 당신이 누군데 그럴 자격이나 있어."
 "이 젊은이 보게나. 잘못을 지적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해요."
 "나, 여긔 공원관리사무소 사람들 잘 아요. 그냥 조용히 돌아가시시오. 이러다 다치요이."
뒷골목 건달들 하는 식으로 젊은이가 가슴을 들이댄다. 나는 이걸 그냥 놔뒀다가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타일렀다.
 "당신, 여기 있는 공무원 양반들 불쌍하지도 않소. 잘 안다면,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오히려 질서를 잘 지켜줘야지. 봐줄 것을 전제로 이렇게 해서 씁니까?"
 "아까부터 우리가 무슨 큰 죄인이나 된 것처럼 몰아세우는데, 우리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형법 몇 조 몇 항에 위배됐수까?"
 "당신은 법만 지킬 걸로 알고 질서는 뭉개어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그러면 곤란하지."
 "보자보자 하니, 이 양반이 정말 삐딱하게 노는데, 진짜 말로는 안되겠네. 이걸 그냥."

하는 말과 동시에 젊은이가 나의 목덜미를 잡고 조인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거 곱게 놔.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거?"

하고 나서, 놔주려는 기색이 없기에 나도 잽싸게 달려들어 젊은이의 티셔츠와 조끼를 한데 모아 쥐고 바짝 조였다. 내 나이 비록 60을 넘겼지만 이 정도 녀석에게 힘으로 지고 싶지 않아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뚝심으로 버텼다. 정말 나보고 노인이라고 교단에 설 힘이 없다고 정년을 앞당긴 책상물림의 젊은 관리들과 수장을 생각하며 더 힘껏 조였다.

 턱 밑으로 땀을 닥닥 흘리던 젊은이가 더 견딜 수 없었는지 슬그머니 손을 놓는 바람에 몸 중심을 잃고 뒤로 나가떨어지고 만다. 졸지에 일어난 어이없는 일이었다. 정식으로 못 들어오고 울타리를 넘어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지 우리 민주주의는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전통적인 권위주의가 개입되고 철저히 방관적 기질이 드러난다. 다른 나라의 통치하에 받아들여서 그런지 권력에 약하고 눈치보기를 잘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도 아전인수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동네 형편도 이런 특징들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럴진대 그런 정책 아래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바르게 행동할 리 있겠는가. 죄송하다고 술이나 한잔하고 가라는 걸 거절하고, 간단히 타이른 후 자리를 떴다.

 붉은오름·눈오름·족은오름 3형제로 이루어진 윗세오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반갑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700m급 오름들이지만 앉은키는 70m를 오르내릴 뿐이다. 품위 있는 어른들과 항상 같이 있다보면 자연히 그 사람의 품위도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높은 자리에 있어 모든 오름들이 발 밑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교만하게 서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 온후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품위와는 달리 어리목 산장 주변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어수선한 주변 풍경,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자기네 노래 부르는 사람들, 여기 저기에서 사발면 후르륵거리는 소리, 아이들을 모으기 위한 호루루기 소리, 서로 찾으며 부르는 소리…. 일요일이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영락없이 오일장을 옮겨놓은 것 같다.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뜨겁게 부서지는 8월 한낮의 햇빛을 받아 싱싱하게 파닥거린다.

 나는 정상에 갖다오는 데는 시간적으로 별로 어려움이 없겠다 싶으면서도 오랜만에 백록담을 보고 싶어 서북벽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입산금지'라는 커다란 글씨가 앞길을 막는다. 낭패였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의 식생(植生)이 너무 파괴되어 당분간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회복되게 한다는 것이었다. '안식년(安息年)'이라고 하던가 '휴식년(休息年)'이라고 하던가 뭐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나서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덩달아 비판적인 얘기들이 쏟아진다.

 "너무 안이한 발상이야, 불편하지만 길을 고치는 것처럼 사람도 다니게 하면서 근본적으로 치료할 생각은 않고, 막으면 저절로 회복될 것이라는 어이없는 계획 아냐. 3년 동안 열심히 막았다가 길을 터 봐라. 일주일도 못 가 다시 그 모양이 될 테니."
 "자연이라는 것이 잠시 출입을 안 한다고 해서 복원되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세계 유명한 산을 돌아 보라. 통행을 금지함으로써 그곳이 복원되는 것을 기다리는 곳이 있는가를."

 세계 명산이라고 해서 한라산을 오르려 어렵게 계획하여 외국에서 모처럼 왔는데, 정상에 오르지 못해 낭패라면서 외국인을 모시고 온 한 안내인은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쳤다고 뭐라고 설명하면 좋겠느냐고 난감해 한다. 자신은 몇 년 동안 세계적인 산은 다 찾아다녔는데도 이런 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어쩔 수 없어 하면서도 이렇게 항변하고 있다고 어렵게 설명한다.

 "산이 저기 있어 내가 가는데 왜 길을 막느냐. 실로 산이란 곳은 자신이 힘이 다하거나 자연이 막아서 못 가는 법이지, 인위적으로 못 가게 하는 법은 없다. 휴식년? 어디 산이 심한 노동이라도 하다 기력이 쇠하여져서 쉬시겠단 말인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길은 막아놓았을 때 이미 기능을 상실한다. 남들이 안 갔던 길을 가고 싶은 것이 등산가의 욕심이자 목표요, 정점이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이었다. 등산객에게 호소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고 스스로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래 고작 생각하는 것이 케이불카나 놓아 자연을 보호한다는 발상이나 하고. 그 속에는 돈을 벌어보겠다는 속셈이지마는 셈법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내가 서 있는 1650m 고지에서 지금 남아 있는 300m를 오른다는 것은 진짜 식은 죽 먹기다. 지금까지 산을 오르내린 노하우와 젊은이 못지 않은 정열이면 아직도 1000m는 더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공권력이라는 힘 앞에는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 등정을 포기하고 돌아선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


 

* 한라산 영실 코스 시냇가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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