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신탐라순력도

신탐라순력도(29) 병담범주(屛潭泛舟)

김창집 2005. 1. 22. 23:08
♣ 이 글은 1월 17일자 '열린제주시정' 제179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 탐라순력도 중 '병담범주' 그림

 

 

▲ 다시 줄다리를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지난 토요일, 용연(龍淵)을 다시 찾았다. 위로 매립해 주차장과 도로로 사용하고 있는 한천(漢川) 하구(河口)의 주위환경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제2한천교로부터 열려있는 한천은 용연교(龍淵橋)를 거쳐 바로 용연으로 이어지는데, 동쪽에는 용담공원이 조성되어 천변(川邊)을 따라 산책로가 나 있다. 그리고, 서쪽은 천변을 따라 2차선도로를 빼어 서한두기 바닷가를 돌아 나오도록 했다.

 

 과거 줄다리가 있었던 곳에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8월 10일에 착공한 용연 구름다리 조성공사가 금년 2월 25일 완공 예정으로 한창 진행되고 있다. 구름다리는 단순 현수교인데 연장 52m, 폭 2.6m의 규모로 종전 것과 비슷하다. 이곳에 있던 줄다리는 1987년 노후시설물로 판정돼 철거되었다가, 이제 18년만에 다시 놓여져 공중에서 하천 풍경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용연에 다시 줄다리를 놓고 있는 모습

 

▲ 용연야범 행사

 

 용연야범(龍淵夜泛)은 영주12경에 들어가는 제주 풍광의 하나로 밝은 달밤에 이곳에 배를 띄우고 사방의 경치와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한라산 밑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소(沼)와 못을 만들면서 아라동, 오라동, 오등동 등을 흘러 용담1동과 용담2동 경계를 거쳐 바다로 흘러가는 제주시에서 가장 크고 긴 이곳 한천(漢川)의 물은 옛날에는 맑고 깨끗했었다.  

 

 제주시에서는 지난 1999년부터 음력 4월 보름날을 기해 이곳에서 해마다 용연야범을 재현하는 행사를 가져왔다. 막 푸르러지기 시작한 주변 풍경에 효과적인 조명을 비추며 배를 타고 행해지는 용연 선상음악회는 요소 요소에 합창단과 밴드를 배치하고 그 사이 사이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모여서 입체적인 음향을 즐기도록 진행한다.

 

 용담동 주민들은 이 행사를 더욱 뜻깊게 하기 위해 음악회 전날에 풍물패 공연과 한시 백일장, 시조 경창대회, 활쏘기, 용왕제 등의 행사를 펼친다. 음악회는 옛날 이곳에서 행해졌던 악(樂), 가(歌), 무(舞)의 전통을 살려 가야금 연주, 판소리 공연, 살풀이 공연, 무용과 가곡, 합창, 악기 연주 등이 행해진다.     

 

 

* 용연 상류쪽의 모습

 

▲ 용연(龍淵)은 지금

 

 계곡으로 내려가 주변을 살펴본다. 생활하수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옮겼기 때문에 물은 비교적 깨끗했으나 과거처럼 지속적으로 흐르지 않는 물은 자정작용이 되지 않아 그 맑음에 한계(限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순환시설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음에 눈에 띄는 것은 쓰레기 문제다. 직접 버린 것도 있지만 하천 범람시 떠내려온 것들과 해풍으로 바다에서 올라온 것 등 다양하다. 

 

 나무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곳곳에 팽나무, 멀구슬나무, 아카시아, 개옻나무, 천선과나무 등이 서 있고, 그 위로 상동나무, 보리밥나무, 찔레나무, 송악, 마삭줄 같은 덩굴식물이 덮여 있는 곳이 많다. 겨울철이어서 계요등, 하늘타리, 며느리밑씻게, 환삼덩굴 같은 덩굴이 말라붙어 황량한 느낌을 준다. 그 중에는 후박나무, 사철나무, 사스레피나무, 식나무, 광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의 상록수도 섞였다.       

 

 동쪽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신당(神堂)인 '고시락당'에 이르러 가슴 아픈 일을 목격하였다. 오솔길을 넓히면서 당을 거의 훼손시켜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당을 피해 동그랗게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으면 얼마나 보기가 좋았을까? 이 곳이 문화유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엄연히 당시 사람들이 믿고 따르던 곳이다. 동한두기 사람들의 뱃고사를 받아먹고 어부와 해녀들의 소망을 빌던 곳이 아닌가? 겨우 몸을 돌릴 만큼 남아 있는 터에 누가 다녀갔는지 촛농만 남아있다.        

 

 

* 용연 중간쯤 물이 나간 모습


▲ 재정비해야 살아나

 

 다리를 놓는 곳 조금 아래 서한두기 하천으로 음료수와 생활용수로 썼던 물통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그 아래에 또 다시 시멘트 구조물이 있어 들어가 보니, 제법 수량이 많은 샘물이 흐르고 있다. 포구는 없어지고 몇 척의 낡은 배만 매어져 있는데, 용담동에 주택이 그리 많지 않았던 1960년대만 해도 이곳에서 밤에 손전등을 켜고 잠수해 들어가 팔뚝 굵기의 장어를 잡았다는 전설을 다시 현실로 돌릴 수는 없을까?

 

 다리를 놓는 동쪽 천변에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50m 정도 되는 곳에 유일하게 용연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었다. 아직 썰물이어서 바위와 바닥으로 내려설 수 있었는데, 가운데 있는 바위에 서니 서편 병풍 바위 눈 높이에 시구(詩句)로 보이는 마애명(磨崖銘)이 두 군데 보인다. 또 이름이나 호를 새긴 것으로 보이는 마애명도 지워질 듯 보인다. 이런 곳을 이제까지 방치해두다니,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 용연 하류 바다쪽의 모습

 

▲ 취병담의 뱃놀이

 

 '병담범주(屛潭泛舟)'는 지금의 용연, 곧 취병담(翠屛潭)의 뱃놀이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멀리 한라산 아래로 어승생악, 장손악, 삼의양악 등이 펼쳐진 가운데, 대독포(大瀆浦)를 바다 사이에 두고 둥그렇게 된 못에 3척의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병풍처럼 두른 석벽 위로는 수양버들 같은 나뭇가지들이 축축 늘어져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동한두기의 몇 가구와 서한두기의 몇 가구를 위시해서 용두암과 수근연대의 위치도 잘 나타나 있다.

 

 뱃놀이는 밤이 아니라 낮에 이루어지는 행사인데, 앞 해변에 낚시하는 어선이 한 척 보이고 용두암 앞 해안에는 잠수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곳인 듯 차일(遮日)을 견고하게 쳐놓았다. 이 그림에 부기(附記)한 내용이 없어 그 계절을 짐작할 수 없으나 나무로 보아 겨울은 아닌 것 같다. 목사와 관리들이 벌이는 이런 잔치 뒤에 백성들을 힘겹게 했던 착취가 없었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