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신탐라순력도

신탐라순력도(27) 귤림풍악(橘林風樂)

김창집 2005. 1. 28. 23:17

                         ♣ 이 글은 '열린제주시정' 제177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 탐라순력도 중 귤림풍악

 

▲ 새로 조성한 북과원(北果園)

 

 시가지를 벗어난 곳 온 들판에서 밀감을 수확하느라 바쁜 11월 8일 오후,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맑은 가을 햇살이 쏟아진다. 문득, 이런 시기 이런 날씨면 충분히 귤림(橘林)에서 풍악(風樂)을 즐길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재작년에 복원한 목관아로 차를 몰았다. 관람객을 위해 마련한 서북쪽의 주차장은 주민들의 차로 만원을 이루고 있어 북초등학교 정문 옆에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 간다고 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새로 조성한 과원(果園)에는 어수선한 가운데 노랗게 익은 귤들이 들어선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가만히 살펴보니, 제각기 명찰이 달려 있는데, 구하기 힘든 병귤·감자·빈귤·홍귤·동정귤 같은 묘목은 커다란 감귤나무에다 접붙였기 때문에 새순에서 나온 가지에 감귤이 다닥다닥 열려 누렇게 익었다. 내용을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와서 본다면 이 또한 신기한 볼거리겠다. 


 산귤은 원래의 묘목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여러 그루에 열매가 많이 달려 노랗게 익는 중이다. 그러나 동쪽에 심어놓은 나이가 많은 당유자와 유자는 활착이 늦었음인지 아직 열매가 정상적으로 달리지 못했다. 복원하기 전 그 자리에 있던 팽나무, 느티나무가 그대로 서있는데 새로 심은 귤나무와 어울리지 않아, 복원 차원에서 다른 쪽으로 옮김이 어떨는지?

 

 


* 새로 지은 귤림당

 

△ 다시 지은 귤림당(橘林堂) 

 

 탐라순력도의 그림이 왜 중요한지 증명해주는 건물 중 하나가 귤림당이다. 귤림풍악에 나오는 그림이 아니었다면 저렇게 지붕의 상머리 부분을 멋스럽게 장식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발굴조사가 철저하다고 할지라도 저렇게 아름답게 살려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시 복원을 위해 힘쓰고 있는 망경루(望京樓)가 들어선다면 어울려 더욱 빛날 것이다.  


 

 귤림당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거문고를 타기도 하고, 바둑을 두거나, 시(詩)를 지으며 술도 마시는 휴식처로 사용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제주땅 어딜 가나 널려 있는 것이 노랗게 익은 귤밭이지만 본토에서 건너와 이곳에서 귤림추색(橘林秋色)을 음미하던 목사들이야말로 선택받은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그림을 그린 후 140년 뒤에 부임했던 이원조(李源祚) 목사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를 보면, 국과원(國果園)은 모두 36곳이며 귤림당만 연희각(延曦閣) 가까이에 있어, 입추 이후가 되면 귤이 노랗게 익어 공무를 보는 틈틈이 산책하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에 열매 가득한 나무들을 쳐다볼 때는 심신이 상쾌해진다고 했다. 


 

 귤림당의 창건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743년(영조19)에 안경운(安慶運) 목사가 개건하였고, 1769년에 다시 중수한 뒤 건물이 노후하여 이원조 목사가 1842년(헌종8)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 전해진다. 2002년에 다시 지은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 공포는 초익공 홑처마에 사모지붕으로 면적은 9㎡(2.72평)이다. 옛 정취를 살려 대나무를 조금 심어 놓았는데 그림처럼 잘 어울렸고, 때맞춰 만개한 털머위의 노란빛이 눈부시다.  

  

 


* 새로 조성한 귤원에 달린 귤들

 

▲ 옛 귤의 종류

 

 그림에 덧붙여진 글에 의하면 당시 진상했던 귤은 당금귤, 유자, 금귤, 유감, 동정귤, 산귤, 청귤, 유자, 당유자, 등자귤, 우금귤, 지각, 지실로 나와 있다. 이형상 목사의 '남환박물'에 소개된 귤에 대한 내용 중 지금은 없어진 귤은 당금귤과 금감, 유감, 석금귤, 등자귤인데 그에 대한 설명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당금귤은 크기가 달걀 같은데 9월에 가장 먼저 익는 귤로 북과원에 두 그루밖에 없다. 금귤은 당금귤과 크기가 같으나 늦게 익고 조금 시다. 유감(乳柑)은 유자와 같으나 조금 작은데, 껍질이 얇고 촉감이 좋을뿐더러 달고 신맛이 거의 없다. 석금귤은 우금귤으로도 불리는데 크기는 비둘기알 만하고 11월에 익는다. 등자귤은 열매가 작고 시어 진상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뒤뜰에는 산귤나무와 당유자나무가 있었다. 산귤은 '산물'이라 하여 작은 열매가 달리는데, 노랗게 익으면 신맛이 덜해 즐겨 따먹었다. 껍질을 약재로 쓰기 때문에 껍데기를 벗겨 여물만 팔기도 했다. 당유자는 크고 껍질이 두꺼운 북댕우지와 작고 껍질이 얇은  댕유지가 있었다. 주로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실과(實果)로 썼다.    


 

 몇 년 전 애월읍 광령리에 지방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는 동정귤(洞庭橘)로 보이는 ' 진귤'을 먹어 보았는데, 병귤(甁橘)보다 조금 작고 더 달았다. 지금도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방문화재 제32호 지정되었던 제주시 이도2동 속칭 동광양의 청귤나무이다. 봄이 되어 떨어져 있는 것을 먹어보았더니 그런 대로 먹을만하였는데, 관리 소홀로 고사되어 동네 이름만 청귤로(靑橘路)로 남았다.

 

 


* 새로 조성된 귤원의 산귤

 

△ 귤나무 아래서 풍류를 즐기는 그림

 

 귤림풍악은 망경루 후원(後園)인 북과원 귤림(橘林)에서 풍악(風樂)을 즐기는 그림이다. 당시 제주읍성에는 동·서·남·북·중과원(中果園)과 별과원(別果園) 등 6개의 과원이 있었다. 이곳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이르는 동안 상진무청(上鎭撫廳)과 부진무청(副鎭撫廳)이 있었던 곳이다. 행사 날짜는 기록이 없어 나타나 있지 않으나 과원 가운데 자리를 깔고 앉은 목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벼슬아치들이, 오른쪽으로는 기녀와 악공들이 모여 앉아 풍악을 즐기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 해 삼읍에 열린 귤의 총결실수(摠結實數)를 덧붙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당금귤 1,050개, 유자 48,947개, 금귤 10,831개, 유감 4,785개, 동정귤 3,364개, 산귤 188,455개, 청귤 70,438개, 유자 22,041개, 당유자 9,533개, 등자귤(橙子橘) 4,369개, 우금귤(右金橘) 1,021개, 치자 17,900개, 지각(枳殼) 16,034개, 지실(枳實) 2,225개 등이다.


 


*요즘에 열리는 감귤 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