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 답사기 (완)
* 상해 야경(황포강에서 본 명주탑 주변과 외탄거리 쪽)
♣ 상해의 밤을 효과적으로
상해에는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서둘러 마치고 오랜만에 서커스를 본 후 야경을 보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차 있는 곳까지 걸었다. 차를 타고 간 곳은 상해에서도 유명한 샹하이마시청(上海馬戱城)이었다. 인파가 너무 몰려 차를 세워놓을 곳이 마뜩치 않아 끝나는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가이드의 뒤를 따라 입장했다.
우리가 서커스라 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잡기(雜技)라 하는데, 북경, 사천, 상해 등 중국 여러 지방마다 각각 그 특색이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서도 상해의 잡기가 그 예술성이나 세기(細技)에 있어 제일로 친다. 이곳 샹하이마시청은 중국 최대규모의 서커스단으로 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적으로 많은 국제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 신기에 가까운 재주는 아무래도 소질이 많은 사람들을 뽑아 오랫동안 연마한 결과의 산물이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연출한 프로그램과 다양한 레퍼토리로 꾸며졌다.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은 장르여서 많이 끌렸는데, 중간에 보기가 힘들어져 TV 영상으로나 접하다가 재작년에 금강산에 가서 모란봉기예단의 공연을 보았는데,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멋진 장면들을 디카로 플래시 없이 찍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제대로 찍히질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 효과 음향이나 배경음악, 조명까지 하나가 되어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도 예외 없이 오토바이 쇼가 마지막을 장식했는데, 커다란 철제 공 안에서 오토바이를 타는데 보통은 가로, 세로 두 대를 가지고 타는데 비해 3대에서 4대, 4대에서 차례로 8대까지 위, 아래, 가로, 세로로 돌아 정신이 없었다.
* 상해 서커스
♣ 황포공원의 야경
1992년 여름에 처음 상해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대나무로 받치면서 슬러브를 치고 있던데, 15년 사이에 급속도로 달라져서 이렇게 휘황찬란한 모습이 되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다. 3년 전 장가계에 다녀오면서 올라가 보았던 명주탑에서의 야경과 반대로 이번에는 황포공원에서 강 건너 명주탑 부근의 야경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서커스를 본 후이기 때문에 밤 10시만 넘으면 소등(消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외탄(外灘)은 생략하고 막 바로 황포공원 강가로 나아갔다. 한여름이어서 인파가 들끓고 있어 휴대품 조심과 길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강가로 나아갔다. 낮같으면 뿌연 물빛이 신통치 않겠지만 밤이어서 까맣게 짙은 물빛 속에 또 다른 야경이 잠겨 빛을 발하고 있다.
외탄(外灘)은 황푸(黃浦)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상하이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약 1.5km 길이의 서양식 건물 단지인데, 과거 해외 열강들에게 침략당한 샹하이의 아픈 근대사를 보여주는 서양식 건축물이 대부분이며, 지금은 도서관, 세관, 은행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은 1842년 영국과 중국간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난징조약에서 5개 항구를 개항하면서부터다.
당시 상하이도 개항되었으며 그 후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조계(租界)를 만들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외탄 지역이다. 조계(租界)는 19세기 후반에 영국, 미국, 일본 등 8개국이 중국 침략의 근거지로 삼았던 개항도시의 외국인 거주지를 말한다. 조계 내에서는 외국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였으며, 한 때는 상하이에 28개의 조계 지구가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폐지되었다.
* 상해 루쉰공원(쿵후를 즐기는 사람들, 글씨 쓰는 아저씨, 연못)
♣ 윤봉길 의사의 의거현장, 루쉰공원
2007년 8월 5일 일요일. 맑음. 4성급 호텔 상해 금영국제대주점에서 하룻밤을 머문 일행은 가방을 챙겨들고 루쉰공원으로 향했다. 11시55분에 비행기 탈 때까지 시간에 될 수 있으면 효과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로 하고 의견을 물었더니, 3분의 2정도가 상해에 처음 왔다고 하여 그들을 위해 윤봉길 의사의 의거현장인 루신공원을 가기로 했다.
원래 이름은 홍구공원(虹口公園)이었으나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을 기념하여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나라에 소설 ‘아Q정전’의 작가로 잘 알려진 루쉰(魯迅, 1881~1936)은 사오싱 출신의 문학가이자 혁명가로 현실에 기반을 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며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휴일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모여 쿵푸를 즐기든가 그룹을 이루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번에 왔을 때는 커다란 빗자루에 물을 적셔 길바닥에 글을 쓰는 아저씨 한 명이 있던데, 이 번엔 병에 물을 담고 스펀지로 막아 글을 쓰는 아저씨도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희들끼리 즐거운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의거 현장비를 본 뒤 한쪽에 자리한 2층 누각인 매정(梅亭)을 찾았다.
잘 아시다시피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일본 천황의 생일과 전승 기념을 위해 치러질 기념식을 목표로 거사를 계획했다. 폭탄을 도시락에 넣어 일본 수뇌부들이 앉아 있는 식장에 던져 그들의 간담을 써늘케 하며 거사를 치른 후, 현장에서 체포된 후 일본으로 압송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고 순국했다. 1946년 일본에 있던 유골을 모셔다 국민장을 지내며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는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총통이었던 장제스가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인 한 사람이 해냈다.”고 칭송할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윤봉길 이사의 거사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계에 널리 알려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한옥 형식의 누각으로 지어진 매정(梅亭) 2층에서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아쉬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 루쉰공원의 윤봉길 의거 현장비
* 상해 루쉰공원의 윤봉길 의사 기념관 매정
* 매정 안에 있는 윤봉길 의사 흉상
* 매정 2층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설명하는 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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