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의귀 한남 수망 4.3 해원상생굿

김창집 2008. 4. 16. 10:56

  *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현장 울타리 안에 설치된 것 

 

  * 행사장 바깥 울타리를 장식한 설치미술 

 

  *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정문에 설치한 영신문(迎神門) 

 

 지난 4월 13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사무소 앞마당에서는 4.3때 불귀의 객이 된 의귀, 한남, 수망리 원혼을  위무하는 4.3 해원상생굿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지회장 허영선)에서 주관하는 4.3 60주년 ‘제15회 4.3문화예술축전’의 일환으로 주관하는 찾아가는 현장위령제의 굿판이었다.


 ‘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의 희생자 수는 의귀리 255명, 수망리 104명, 한남리 109명 등 도합 468명이다. 의귀리에선 1948년 12월 의귀교에 토벌대가 주둔하면서 희생이 컸다. 토벌대에 쫓기던 주민들은 산야를 헤매다 행방불명되거나 이듬해 봄 귀순공작 때 돌아왔다가 형무소에 끌려가 한국전쟁 직후 희생되기도 했다. 수망리의 경우 ‘사리물궤’와 물영아리오름 인근에 피신했다가 토벌대에 발각돼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 원혼들의 신위 명단을 붙여놓은 곳의 상차림과 앞에는 신을 위한 상차림, 그리고 무당과 소무들. 

 

 * 신들린 듯한 춤사위로 원혼을 위로하는 심방(무당)과 악공들 

 

 * 무당 앞에 보이는 열두문과 주요 내빈들


 ‘박힌 흙가슴, 뒤안길 꽃길 따라’를 주제로 2008 찾아가는 현장 위령제 - 의귀, 한남, 수망리 4.3 해원상생굿은 열두문, 흑백만장, 배향신위, 까마귀솟대 등을 설치해 놓고, 놀이패 한라산의 몸굿(영계모심)을 시작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집전하는 ‘위령굿’을 비롯해 본주 및 참배객이 참여하는 ‘참배분향 및 소지사룸’ 등으로 진행된다. 소지사룸은 거욱대를 중심으로 위패와 소지를 태우는 행위로 억울한 영혼이 원한을 풀고 편안한 저승길로 들어서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 ‘모시는 글’에서


 해마다 4월이 되면 제주섬은 눈물의 산을 이루며, 현대사의 뼈아픈 질곡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이와 함께 구천을 떠돌고 있는 ‘원혼(冤魂)’들이 피눈물도 한 줄기 역사의 바람 속에 슬픈 ‘곡’을 풀어내곤 한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오랫동안 어느 누구도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올바르게 알고 그 진상을 밝혀주지도 않았다. 역사의 질곡은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고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게 했다. ‘해원상생굿’은 이러한 상처의 치유를 통해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한 ‘원혼(冤魂)’들의 넋을 풀어내는 의례이다. 당시 죽임의 공간이었던 ‘땅’의 슬픈 역사도 아울러 치유하는 ‘날것’ 그대로의 굿판인 것이다.


  * 신위를 위한 상차림

 

  * 주민들이 소지와 지전을 올리는 사이, 쉬고 있는 심방과 다음을 준비하는 주민

 

 * 주요 내빈들이 잔을 올리고 있다.


▲ ‘기획 의도’에서


 왜 해원상생굿을 하는가?

 해원상생굿, 그것은 ‘예술의 쓸모 있음’에 대한 모색이면서 ‘예술의 쓸모 없음’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세속의 시간으로 내려온 인간의 시간 - 역사의 길을 연어처럼 거슬러 신을 울리고 영계를 울ㄹ릴 수 없음에 대한 지독한 독백이요, 절망에 대한 다름 몸부림이다.


 다시 굿을 얘기하는 것은 예술의 원초적인 인간의 영혼을 치유할 수 없으리라는 어떤 예감, 그 한계에 대한 나름의 처방전이다.


 예술은 보다 근원적인 느낌을 향하여 늘 질주하고자 하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해원상생굿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해원상생굿은 극이 아니다. 즉, 연출되지 않는다.

 해원상생굿의 미학은 ‘날것’의 미학이다. 잘 만들어진 공연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생한 느낌을 만나는 일이다.

 4.3당시에 죽임을 당한 제주의 주민들은 역사를 만났을 뿐이다.

 그 당혹감과 처참함은 인간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는 환경이며, 역사적인 공간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해원상생굿은 비극적 죽임을 당한 ‘학살의 터’를 찾아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장소, 즉 땅인 자연까지도 함께 치유하는 상생(相生)의 굿이다. 그러므로 이 굿은 인간과 자연이 동시에 치유되어야 할 대상임을 일깨우는 일이며, 죽음의 터전이 되어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치는 죽은 땅을 살리는 제의(祭儀)이기도 하다.


 해원상생굿은 예술가들이 미의식으로 역사적 비극을 치유하는 예술화 과정이다. 굿이라는 장르 분화 이전의 원초적 미의식과 전통적 의미의 춤, 소리, 시를 동원하는 것으로 역사(歷史), 사건(事件), 의례(儀禮)를 예술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이다. 또한 죽음의 공간에 각종 설치 상징을 통하여 공간과 의례의 조형화를 추구한다. 즉, 조형성과 연행성, 정치성과 예술성을 공히 추구하는 미적 전유의 과정이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의식의 재규정이다.

 

 * 망자를 위한 노자 지전으로 올리는 부민들 

 

 * 원혼을 위무하는 심방의 춤사위

 

  * 다음 마을 주민들이 자신과 가까운 원혼을 위하여 다라니와 지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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