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4. 3 연작소설 '섬에 태어난 죄'-우화 (2)

김창집 2002. 4. 12. 13:39


 

* 강요배  4.3 화집 '동백꽃 지다' 중 한라산 자락 백성

 

 

독수리 나라에서는 섬 토끼들을 몰래 엿보고 그것을 보고하는 독수리단을 데려다가 섬에 머물게 하는 한편, 불곰 주둔 지역에서 쫓겨 남쪽으로 넘어온 토끼들--토끼라기보다는 먹이를 잡는데 눈이 벌게진 사냥개라고 해야 알맞을 것이다--을 속속들이 섬으로 불려 들였습니다. 이들은 자주색만 봐도 코를 벌름거리면서 살갗을 보고 붉은 색이라고 우기며 트집잡아 못살게 구는 토끼들이었습니다. 이들 7백여 마리의 사냥 토끼들은 섬 곳곳에 떼를 지어 살면서 별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해 섬 토끼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이 사냥 토끼들은 뭍에서 들어온 검은 토끼들과 어울려 뇌물 주고받기, 공갈치기, 잘 봐주겠다며 돈이나 물건을 빼앗기를 예사로 하는 뻔뻔스러운 일을 밥 먹듯이 해댔습니다. 또, 자기네 말을 안 듣는 토끼가 있으면 데려다가 못 견디게 굴다가 죽어도 눈 하나 꿈쩍 않고 거짓말로 발뺌을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지 않은 섬 토끼들은 죄도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고, 너무 트집 잡으며 괴롭히기 때문에 그들이 왔다 하면 울던 어린 토끼들도 울음을 멈출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독수리단과 섬 토끼들의 사이는 갈수록 틈새가 벌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토끼 마을에서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사건건 간섭받기 싫어하던 이 마을 토끼들은 어린 토끼에게 망을 보게 하고 회의를 하다가 어린 토끼가 검은 토끼에게 들켜 매를 맞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순간적으로 발끈한 젊은 마을 토끼들은 3마리의 검은 토끼들을 에워싸고 이리저리 밀고 당겨 다그치며 꼼짝 못하게 묶어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검은 토끼단에서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면서 마을 토끼들을 줄줄이 엮어갔습니다. 자리를 피해 도망간 젊은 토끼들을 대신해서 주위 토끼들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뭍으로 도망가려는 젊은 토끼들과 숨어 있는 토끼들을 잡아다 심하게 다루고, 재판을 하여 가두고 벌금을 물렸습니다. 그 뒤로 이 마을 토끼들은 걸핏하면 잡혀가 많은 토끼들이 죽고 수난을 당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또 한 마을에서 생겨났습니다. 그 해 8월에 검은 토끼들이 순찰을 하다가 그 마을에서 삐라를 붙이고 있는 어린 토끼를 보게 되었습니다. 검은 토끼들은 이 어린 토끼를 뒤쫓으며 마구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무 죄도 없는 3마리의 토끼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자기 마을 토끼들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본 젊은 토끼들은 화가 나서 종을 울려 마을 토끼들을 모두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저런 짐승들을 그냥 놔둬서는 안됩니다."
"맞습니다. 저런 놈들은 이참에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 소리 않고 죽은 듯이 가만있으니까 자꾸 못살게 구는 겁니다."
"좋습니다. 우리도 이젠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저 놈들을 잡아라! 다들 도망간다."
"와! 와!"

마을 토끼들은 미쳐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한 검은 토끼 한 마리를 붙잡아 분풀이하고 나서, 검은 토끼집에 찾아가 따졌습니다. 이에 검은 토끼들은 기관총을 쏘면서 도망가게 한 뒤 하나둘 잡아다가 보복을 하였습니다. 이 마을 역시 그 뒤로 온전하지 남아나기 어려웠습니다. 나중에는 마을이 완전히 쑥밭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섬 형편이 이렇게 되자 그 동안 잠잠히 지켜보던 존경받는 토끼들이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중에는 뭍이나 이리 나라에 나가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온 토끼들도 있었고, 섬 토끼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나름대로 간파한 토끼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독수리 나라와 불곰 나라 사이가 나빠지면 섬 토끼들이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뭍에서 하는 대로 이런 저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의 지시를 받은 검은 토끼들은 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자기네 말을 듣지 않는 토끼들은 무조건 잡아 가두었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독수리의 지시를 받은 검은 토끼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자기들의 마음에 맞지 않은 토끼들을 무조건 붙잡아다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다가 죽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러자 섬 토끼들은 분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지긋지긋하던 이리떼들이 물러나 이제 섬 토끼들의 세상이 오는가 했는데, 아무리 독수리가 시켰다고 하지만 이건 어찌된 일인지 같은 토끼들에게 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분했습니다. 그런 토끼들 중에는 이리떼에 붙어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행패를 부리던 토끼들이 많아서 더욱 화가 났습니다.

섬에서 존경받는 토끼들이 섬 토끼를 살려야 한다고 앞장서자 이번엔 이 존경받는 토끼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존경받는 토끼들은 검은 토끼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집에 있다가 잡혀가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매한 가지라 생각하고 이왕이면 속 시원히 한 번 싸우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단의 시키는 대로 잡아가는 검은 토끼들의 행패는 그만 두고라도 불곰이 있는 곳에서 쫓겨온 미친 토끼들의 날뛰는 꼴은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간 토끼들은 훌륭한 토끼들을 중심으로 모여 의논을 합니다.
"우리 이렇게 올라왔으니 그들과 맞서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이곳에 올라왔던 토끼들은 내려가도 잡혀 죽을 것이니, 이왕에 죽는 거 끝까지 싸우다 죽읍시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섬 토끼들 모두가 죽습니다. 이 섬의 평화를 위해 싸웁시다."
"우선 우리를 잡지 못해 눈이 벌게진 검은 토끼들이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 섬 토끼들을 그들에게서 보호해야 합니다."

산에 오른 토끼들은 섬 토끼들의 평화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고 4월 3일을 기해 11개의 오름에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횃불을 올리는 것을 신호로 검은 토끼집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갖고 있는 무기와 싸움에 나선 토끼의 숫자로 보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습격을 당한 검은 토끼들은 자다가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우왕좌왕하다가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독수리단에서는 뭍에서 싸움 잘하는 1천7백 마리의 검은 토끼를 뽑아 섬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섬 토끼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배를 띄워 섬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이제는 산 속의 토끼들 잡을 차례입니다. 산에 있는 토끼들은 숫자도 부족하고 무기도 시원치 않아서 맞서 싸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숨어 있다가 밤중에 나타나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간 토끼들은 그들이 공격 대상인 독수리 편의 검은 토끼나 그들 밑에서 일하는 토끼, 그리고 불곰이 있는 곳에서 쫓겨 내려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토끼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검은 토끼들이여! 우리를 억누르면 싸울 수밖에 없다. 산에 오른 섬 토끼단은 우리 섬 토끼들을 지키고자 섬 토끼 편에 섰다. 양심 있는 검은 토끼들이여! 싸움을 원치 않으면 섬 토끼들 편에 서라. 양심적인 일꾼들이여! 하루빨리 우리를 도와 주어진 일을 해내고, 일터를 지키며 나쁜 토끼들과 끝까지 싸우라. 양심적인 검은 토끼, 북쪽에서 내려온 토끼들이여! 당신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같은 토끼 나라 토끼들이라면 우리 땅을 짓밟는 외적들을 물리쳐야 한다. 나라와 토끼들을 팔아먹고 애국자를 죽이는 나쁜 짐승들을 거꾸러뜨려라. 검은 토끼들이여! 총부리는 나쁜 놈들에게 돌리라. 당신의 부모형제들에게 돌리지 말라. 양심적인 검은 토끼, 젊은 토끼, 민주 토끼들이여! 어서 빨리 토끼의 편에 서라. 독수리를 몰아내고 나라를 찾는 싸움에 같이 일어서라."

그리고, 섬 토끼들에게도 이런 글을 보냈습니다.
"섬토끼들이여!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이여! ‘4. 3’ 오늘은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두 동강이 내려는 일을 죽음으로써 반대하고 토끼 나라의 통일과 완전한 토끼들의 자유를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요구하는 독수리단와 그들의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검은 토끼들에게 함부로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는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당신님들은 마지막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도와 우리와 함께 토끼 나라가 찾아야 할 길로 함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단에서는 생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산에 올라간 토끼들은 다른 곳의 나쁜 짐승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붉은 물이 가득 든 토끼들이라고 우기며, 한꺼번에 잡으러 들었습니다. 당시 섬에는 토끼 나라를 지키는 노랑 토끼단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독수리와 그 심부름꾼 토끼들이 하는 짓이 너무 괘씸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단에서는 이들 노랑 토끼단에 산에 오른 토끼들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노랑 토끼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랑 토끼단의 우두머리는 선뜻 나서기를 망설이면서 산에 오른 토끼의 우두머리에게 만나서 대화로 풀어보자는 말을 건넸습니다. '나라 땅을 지키고 외적과 싸우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같은 토끼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원하지 않습니다. 섬 토끼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평화롭게 풀어내려고 합니다. 내려오는 토끼는 안전하게 일터를 보장해 드립니다. 그러니, 요구할 것이 있다면 대화로서 풀어갑시다.'

독수리단에서는 자기네가 시키는 대로하지 않고 대화로만 풀려고 하는 노랑 토끼의 우두머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꾀기 시작했습니다. 산에 오른 토끼들을 모두 잡으면 많은 돈을 주어 자기네 독수리 나라에서 일생 동안 편안한 생활을 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독수리단에서는 토끼섬의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산의 우두머리도 노랑 토끼단의 우두머리가 좋게 나오자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나자마자 반가움에 노랑 토끼단의 우두머리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산에서 지내노라 먹고 입고 자는 일에 고생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낼 만 합니다."
"부상자도 많을 텐데, 우리가 약을 도와 줄 수도 있습니다. 병원이 없어 불편하시지요."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총에 맞아도 된장만 바르면 나으니까. 싸우다가 총에 맞는 것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난리를 일으켜 피를 나눈 동족끼리 피를 흘려야 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어디 이게 사는 겁니까? 자고 나면 독수리단의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르는 검은 토끼들이 와서 마구 잡아가고, 또 불곰이 있는 곳에서 쫓겨 내려온 짐승들이 마음에 든 것이 있으면 무조건 빼앗아 가고, 행패를 부리고. 그래 할 수 없이 우리 스스로 토끼섬을 지켜보자고 산에 올라온 것 아닙니까?"

"그럼 우리 노랑 토끼들이 당신들을 잡아가지 않은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노랑 토끼단이 우리가 일어선 이유와 뜻을 알아 우리가 하는 일을 좋게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래서 우두머리가 싸워서라도 다 잡아내라는 명령을 못 내리는 것이 아닙니까?"

"군인은 자신의 뜻에 관계없이 명령만 내리면 받들어 싸워야 합니다. 만일 오늘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하면 다음 번에는 당신과 싸움터에서 만나게 됩니다. 당신들이 검정개와 싸움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돌이 많은 섬이라서 돌담을 끼고 총싸움을 벌이면 한쪽에 피해가 많고 다 잡아내기 어려운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돌담이 많은 이 섬에서는 대포가 제일 좋은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위에다 요구했더니 대포 부대를 보낸다 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계속>



* 강요배 위 소개된 그림집 중 '흰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