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가을 추자도(楸子島) 기행

김창집 2008. 10. 13. 08:00

 * 상추자 대서항 정경 

 

▲ 올해 나에게 특별한 섬


 2008년 10월 12일 일요일 09:30. 제주항을 벗어난 250명 정원의 ‘핑크돌핀호’는 200명 내외의 여객을 싣고 추자도를 향해 달린다. 아무래도 가을 바다여서 마주 오는 하늬바람을 받고 선체가 들썩들썩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린다. 쾌속선이라 여기서 상추자 대서항까지는 55분에 주파한다고 되어 있지만 오늘 같아서는 한 20여분 더 걸릴 것 같다. 벌써 멀미 기운을 느낀 승객들은 얼굴색이 변하고 더러는 화장실을 찾아 달린다. 


 지난 7월 17일 제헌절. 사흘 뒤 탐문회 회원 90명의 답사를 위하여 예비 답사를 다녀왔는데, 태풍 ‘갈매기’ 때문에 10월 셋째 주로 미루었다. 이번엔 배 출항 시간이 달라져 다시 한 번 정확히 시간도 점검하고, 점심 문제도 해결해볼 요량으로 추자행을 결정했다. 마침 오름 모임에서 추자 기행을 가는 날이라 덩달아 묻어가는 김에 오름 해설사 2기 카페에 공지를 했더니, 회원과 가족 4분이 동행하게 되었다.

 

* 우리가 타고 간 핑크돌핀호


 올해는 정말 추자도와 인연이 깊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친목 모임에서 한 번 간 일이 있는 이 섬을 올해는 세 번이나 가게 되었으니까. 이번 주 일요일인 10월 19일 탐문회 회원 90여명을 인솔하고 갈 것이다. 하긴 금년은 ‘추자방문의 해’로 지정이 되어 제주도민은 편도 1만원의 배삯만 내면 된다. 게다가 추자도는 2008 휴양하기 좋은 섬 베스트 30에 뽑힌 조용하고 쾌적한 섬이 아니던가?

 

 아무리 같은 곳에 백번을 가드래도 언제나 여행은 새롭고 즐겁다. 특히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낭만을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생각 같아서는 미리 한치 같은 것을 준비해서 갑판에 술판을 벌이고, 한라산을 바라보며 한라산 소주 한 잔 했으면 원이 없겠지만, 보는 눈도 있고 술벗도 마땅치 않아 그만 두었다. 섬은 어느 곳이든 그만이 갖는 매력과 그에 어울리는 풍토와 특산물로 하여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한다. 개성이 있고 특히 바다의 갯내음과 갈매기로 하여 공감각적 분위기를 연출해내기에.   

 

 

▲ 추자도는 어떤 섬인가  


 큰 관탈섬이 멀리 보인다. 뒤에 앉은 일행이 배 타기 전에 멀미약을 먹고 귀밑에를 붙이는 것을 보았는데, 두 분이 멀미를 하는 모양이다. 그래 조금이라도 관심을 돌리려고 '저 관탈 섬이 왼쪽 옆구리를 지날 때쯤이면 추자가 바로 눈앞에 있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멀어져 가는 한라산을 찍으려 하였으나, 구름 배경이 너무 어둡고 산은 안개 때문에 거멓게 보일 뿐이어서 체념하고 자리에 눌러 앉아버렸다.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금바리를 제외한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며,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로  많은 낚시인들이 찾는다. 겨울에는 주로 감성돔과 학꽁치, 봄에서 가을까지는 황돔, 흑돔, 농어 등이 잘 잡힌다고 한다. 부속 섬들의 대부분은 동남쪽해안이 절벽을 이루는 반면, 서북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에 속하는데 풍속과 자연은 전라도와 유사하다. 예로부터 생필품과 어구를 마련하거나 잡은 고기를 내다 파는데, 역시 뭍으로 나들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일 생활권이 되어 말씨까지 닮은 것이다. 면소재지인 대서리에는 지방기념물 제11호인 최영 장군 사당이 있으며, 이웃마을 영흥리에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9호인 박처사각이 있다.  하추자도에는 ‘돈대산(燉臺山, 164m)’이 가운데 자리잡고, 산책로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올라가 섬을 조망하기에 알맞다.

 


▲ 섬사람들이 내세우는 ‘추자 10경’


 1) 우두일출(牛頭日出) - 우두도(속칭, 소머리섬)의 초여름 일출 광경이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2) 직구낙조(直龜落照) - 상추자의 서북방 최단에 거북 모양을 한 직구도가 있는데 저녁노을이 매우 아름답다.

 3) 신대어유(神臺魚遊) - 하추자 예초리와 신양리 사이의  신대에는 천혜의 황금어장이 형성되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4) 수덕낙안(水德落雁) - 하추자의 남쪽 끝에는 사자 형상의 수덕도가 위풍당당하게  떠 있는데, 각종 물새가 사자머리에 해당하는 섬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쫓아 바다로 쏜살같이 하강하는 광경을 말한다.

  5) 석두청산(石頭靑山) - 하추자도에 있는 청도라는 섬이 있는데, 마치 사람의 머리 같은 산꼭대기의 암반이 푸른빛을 띤다.

 

 

  6) 장작평사(長作平沙) - 신양 포구의 해변을 가리키는데, 폭 20여m에 길이 300m의 자갈 해변이다.

  7) 추포어화(秋浦漁火) - 추포도는 제주도에 딸린 유인도 중 가장 작으면서도 멸치 떼가 가장 많이 모이는 섬이다. 추자군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섬은, 어둠 속의 멸치잡이 불빛과 잘 어우러진다.

  8) 횡간귀범(橫干歸帆) - 횡간도는 제주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흰 돛을 단 범선들이 돌아오는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단다.

  9) 곽개창파(곽개蒼波) - 추자도와 제주 본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관탈섬의 또 다른 이름이 ‘곽개’이다. 과거 유배객들이 제주도로 들어 올 때에 이 섬 앞에 이르면 갓을 벗었다는 데에서 섬 이름이 유래되었다. 곽개섬 부근의 푸른 물결은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른다. 그래서인지 더욱 푸르게 느껴진다.

 10) 망도수향(望島守鄕) - 추자군도 섬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섬이 망도(속칭 보름섬)이다. 타향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먼 수평선에서 가물거리듯 망도가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추자군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 대서항에서 돈대산까지


 내가 예상한 대로 배는 15분 정도가 늦어진 10시 40분에 도착해 접안을 서두른다. 선우영아가 부르는 늘어진 가락의 ‘추자도 처녀’를 들으며, 제일 뒤에 내렸다. ‘출렁출렁 수평천리 물새는 날아드는데/ 쌓인 정만 남겨 놓고 안 오시는 이 야속해/ 굴 따고 소라 따서 누구에게 드리오리/ 바다멀리 그리운 님 기다리는 추자도 처녀/// 가물가물 하늘멀리 구름은 흘러가는데/ 그리움만 남겨놓고 안 오시는 님이 무정해/ 한라산 바라보며 님 소식을 물어 보리/ 바다 멀리 그리운 님 불러보는 추자도 처녀….’


 일행 중 한 분이 왕복 예약이 안 돼 있어 추가 예약을 하고 나머지도 확인을 했다. 제주항에서 왕복표를 안 팔기 때문에 이곳에 적어도 4시까지 와서 표를 사라고 한다. 일행 중 오름 팀은 산 3개를 오를 계획으로 버스를 타고 간 뒤, 우리는 시간을 체크해 보기 위해 답사 일정대로 걸어서 돈대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미리 물을 사두려고 했는데, 어떤 추자도 분이 물이 싸다고 하길래 가보았더니, 주민에게만 싸게 판다고 한다.

 


 막걸리와 안주, 물 등을 구입하고 부두를 출발한 것이 11시. 우리는 해안을 따라 난 길을 걸어 하추자로 향한다. 면사무소에서 왼쪽으로 돌아 굽이굽이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추자교 다리를 건널 때, 섬 풍경이 멋지게 드러났다. 전복 양식장과 묵리로 가는 삼거리를 막 벗어나자 오른쪽 길섶과 절벽에 해국(海菊)과 하얀구절초가 쑥부쟁이와 어울려 난만하게 피어 우리를 반긴다. 카메라에는 광각 렌즈가 끼어 있어 올 때 찍기로 하고, 다시 섬 쪽으로 앵글을 맞춘다.


 정수장을 막 지나고 고갯길 오지박에 이르렀을 때 오른쪽에 돈대산 산책로 입구가 나타난다. 이곳의 암석이나 토질은 한반도와 같고, 식생(植生)은 제주도와 비슷하다. 다만 제주도에는 고지대에 조금 분포한 구절초가 여기는 육지를 닮아 가는 곳마다 피어 있다. 넓은 저수지에는 물이 많이 줄어 있었다. 다시 산책로에 들어섰는데, 7월에 무성했던 풀을 이제는 말끔하게 베어 정비해 놓았다.

 

 * 해국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

 

 가볍게 경사진 길을  부지런히 걸어 고개에 이르자 묵리에서 올라 오는 산책로로 만난다. 그곳 돈대산 표지판을 보며 왼쪽 산의 정상을 향한다. 돈대산(燉臺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데 표고가 164m라 나와 있다. 제주의 작은 오름 하나 오르는 느낌이다. 이제야 추자도에 많이 분포한 섬오리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의 억새는 해풍 때문인지 억세고 대가 필요 이상으로 굵어진 채로 상처가 많아 그리 볼품은 없다.


 바위 능선에 오르자 반대편 바다가 나타나고 해풍이 시원하게 땀을 식혀준다. 상추자 섬이 한 눈에 들어오고 북쪽 섬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반긴다. 난 층층꽃이 원예종인 줄 알았는데, 이 산 곳곳에 산재해 막 꽃을 피우고 있다. 이곳도 하얀 구절초가 곳곳을 장식하고 오히려 쑥부쟁이가 아류로 보인다. 막 말라가는 부처손 군락을 뒤로 하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바위봉우리에 올라 이제는 사방을 조망하며, 능선을 따라 동쪽에 있는 팔각정으로 향한다.

 

  * 엄바위와 장승

 

 신양리 쪽 마을도 보이고, 우리가 왔던 코스를 따라 관탈섬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1시간 20분 걸려 팔각정에 이르렀을 때, 반대편에서 올라온 외국인 5~6명이 올라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팔각정 전망대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북동쪽을 바라보니 횡간도 바로 건너편의 보길도가 헤엄쳐 건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다. 하지만 한라산이 있는 곳은 구름 때문에 볼 수 없어 조금 섭섭하다. 정상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준비해간 간식을 나눈다.


▲ 엄바위 장승과 최영 장군 사당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1시쯤에 동쪽으로 하산하는데, 우리 오름 회원들과 조우했다. 산 하나를 오르고 두 번째로 올라온 것이다. 전망대에서 간식을 하고 다시 상추자의 산을 오른다길래 부두에서 만나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중학교가 있는 신양포구로 가는 갈림길에서 그냥 동쪽으로 내려 예초리로 가는 길과 마주쳤을 때, 200m쯤 들어 간 곳에 엄바위장승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어 다녀오기로 했다.

 

 * 최영 장군 사당


 엄바위장승은 글자 그대로 예초리 마을 서쪽 입구 속칭 ‘엄바위’ 밑에 나무로 만들어 세운 장승으로 일명 ‘억발장사’다. 추자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바위 절벽 아래 장승을 하나만 세워놓고 그 앞에 돌로 만든 조그만 제단을 마련해 놓았는데, 누가 놓았는지 밀감 두 알이 놓여 있다. 이곳 장승은 소나무로 만들며, 나무가 썩어 못 쓰게 되면 태워 버리고 다시 만들어 세운다. 그 때에도 특별한 제의를 갖추거나 날을 보지 않고, 그냥 이장이 술 한 잔 올리는 정도로 간단히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곳에 만들어 세운 간판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설이 적혀 있었다. ‘옛날 이 마을에 장사가 살고 있었는데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져 죽고 말았다. 예초리 포구에 장사꽁돌이라는 바위가 다섯 개 있어, 그 장사가 이 바위들을 공기돌 삼아 공기놀이를 했다고 한다. 장승은 이 장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장승에 대하여 제를 지내는데 마을 이장이 주관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마당 밟기를 한다. 걸궁패는 포수, 여장남자, 짝코, 선비, 악사 등으로 구성한다. 걸궁패가 집에 들어오면 집에서는 미리 준비해 둔 제물을 내놓는다. 제물은 쌀 1바가지, 콩 1바가지, 물, 돈 등이다. 포수가 그 제물을 받고 “고맙다”고 하면서 물을 지붕 위로 뿌리며 한해의 복을 기원해 준다.’ 

 


 우리는 거기서 해변 길을 걸어 돌아 왔다. 길을 만드노라 깎인 왼쪽 바위 절벽 곳곳에 쑥부쟁이, 구절초, 해국이 피어 있어 가끔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오는데, 산부추, 잔대꽃도 보인다. 길은 한적해서 가끔 차가 한 대씩 지날 뿐 오솔길처럼 마음놓고 걸을 수 있었다. 우리가 오른 돈대산 산책로 입구를 지나 예비군 사격훈련장 쪽 바닷가로 들어가 바다와 꽃을 구경하고 갯내음을 맡으며 오다가 중간 계단으로 길에 올라 다시 부두쪽으로 걸어간다.


 2시 50분.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골라 들어가 4만 원짜리 삼치회를 시키고 준비하는 사이에 최영 장군 사당을 들렀다. 최영 장군 사당(崔瑩將軍祠堂)은 시도기념물 11호로 대서리 155번지에 자리해 있는데, 추자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고려시대 명장 최영(1316∼1388) 장군의 사당이다. 장군이 목호를 치기 위해 제주도로 건너가다가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 세운 공로로 이곳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공민왕 때 제주도는 목민관이 죽음을 당하는 등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따라서 조정에서 공민왕 23년(1874)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최영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원정을 가는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며 추자도로 대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장군은 주민들에게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어로법을 알려주어 생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뒤부터 주민들은 장군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사당을 지어 해마다 음력 7월 15일과 음력 12월 말일에 풍어와 풍농을 빌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74년에 복원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겹처마 합각지붕이며 면적은 16㎡이며, 자연석으로 담장을 둘렀다. 사당 입구 남동쪽에는 '최영사당금표'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 앞면에는 '신묘금지비'라 음각되어 있다. 사당 안 감실을 열어보니,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 신위’를 새긴 나무판과 영정이 안치되어 있었다.


 

▲ 삼치회 먹고 굴비 사고


 식당에 들어와 보니, 이미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라산 소주 1병을 시키고 큼직하게 썬 소라를 안주로 술을 한 잔 하는데, 삼치회가 들어온다. 오늘 잡아온 건데 유난히 살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크게 썰었는데도 다섯 사람 누구 하나 물리거나 양보하려 들지 않았으니, 그 맛을 짐작할 것이다. 우리는 매운탕에 식사를 했는데 젓갈도 맛있었다. 다시 소주 1병을 더 시키면서 만 원짜리 소라 한 접시를 주문했다.


 배 시간이 다 되어 가자 추자 명물로 자리 잡은 굴비를 사러 갔다. 오름회 일행은 그제서야 최영 장군 사당을 들러 나오고 있었다. 추자도에 많이 나는 참조기를 어떻게 하면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에 착안하여 공장을 세우고 전남 신안군 팔금면의 천일염으로 간하고 엮어,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제값을 받게 되었다. 벌써 영광굴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고 명품을 만들어 낸다고 야단들이다. 추자도 참굴비 1상자씩을 사고 배를 기다린다.


 4시 25분. 진도를 거쳐 목포까지 갔다가 오후 2시에 이곳으로 출발한 핑크돌핀호가 다시 진도를 거쳐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이번 우리 좌석이 뒤편이어서 맥주 1캔을 마시며 출발하기를 기다려 2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마침 지는 해를 배경으로 섬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광각렌즈로 갈아 끼운 카메라를 신나게 돌리며 멀어져 가는 섬을 마구 찍고 들어와 자리에 않았는데, 깜빡 잠이 들어 깨고 보니 제주항에 도착해 있었다. 5시 40분.

 

 

♬ 추자도 처녀 - 선우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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