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왜포연대 이야기

김창집 2009. 5. 9. 00:00

* 이 글은 '제주교육소식' 5월호에 실었던 내용과 사진입니다.

 

                                                                                           * 조천읍 신흥리에 자리한 왜포연대

 

△  왜포연대 이야기 


 ‘물로나 뱅뱅 돌아진 섬….’ 옛날 제주 섬사람들은 왜구들에게 수 없이 노략질을 당했다. 그 때문에 우도와 가파도 같은 섬에는 사람이 살 수 없어 소나 말을 놓아기를 수밖에 없었고, 섬을 둘러 환해장성을 쌓았다. 조선시대에는 주요 거점에 9개의 진을 설치하고, 그들이 쳐들어올 만한 곳에는 38개의 연대(煙臺)를 두어 지키도록 했다. 제주의 연대는 보통 해변의 구릉에 직육면체로 돌을 쌓아올려 그 위에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인데,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소속된 진과 옆 연대에 신호를 보냈다.

 

 왜포(倭浦)연대는 고포(古浦)연대라고도 부르며, 조천읍 신흥리 784번지에 자리 잡은 조천진 소속의 연대로, 제주도 기념물 제23-13호이다. 동쪽으로 함덕연대, 서쪽으로 조천연대와 교신하였으며, 별장 6인, 봉군 12명이 배치되었었는데, 번갈아 망을 보면서 평상시에는 한 줄기, 이상한 배가 나타나면 두 줄기, 적선으로 간주되면 세 줄기, 상륙하려 하면 네 줄기, 교전 중에는 다섯 줄기를 피워 올렸고, 진에서 응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었다.

 

 내가 찾은 날, 독특한 타원형의 연대 안은 달래 향기 은은한 가운데, 유채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세찬 하늬바람이 귓불을 후려치는 혹한,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이 몰아온 무더위도 아랑곳 않던 조상들의 끈기가 돌담 속에 서려 있다. 조총을 쏘며 달려드는 무리들과 대항하다 부상당한 동료를 옆에 뉘어놓고, 이를 지키려 돌팔매로 버티던 저항정신을 왜포(倭浦)라는 이름에서 배운다.        

 

 긴 밤 이곳에서 번을 서던 봉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시에 한 줄기 횃불을 올리는 평온한 밤이면, 곤히 잠든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도 보고, 건강한 젊은이라면 장래를 설계하는 일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날이 밝아 썰물이 나면 출출한 입을 달래기 위해 비번 별장과 봉군들이 총출동하여 우럭, 졸락, 볼락, 어랭이, 맥진다리, 보들레기 같은 고기를 낚거나, 전복, 소라, 해삼, 문어, 보말, 깅이 등을 잡아다 잔치를 벌이고, 미역, 모자반, 톳, 청각 등도 뜯어 반찬 걱정을 덜었으리라.     

 

                                                                                * 사진, 글 - 김창집(작가, 제주중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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