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전설의 섬 ‘차귀도’를 찾아서

김창집 2011. 2. 1. 11:08

                                                                                                                    * 자구내 포구, 한치 말리는 풍경

▲ 자구내 포구


 차귀도(遮歸島)에 가기로 작정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가량 달려 먼저 도착한 곳은 자구내 포구. 한치 말리는 풍경이 이색적인 이곳은 언제와 봐도 정겹다. 이 한겨울 어디서 저렇게 많은 양의 한치가 잡히나 싶어 물어보니, 한치가 아니고 준치란다. 사전을 찾아보면 한치는 화살오징어과의 연체동물로 ‘화살오징어’가 본명이다. 한 치밖에 안 되는 짧은 다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오징어와 외형적인 차이는 지느러미가 마름모꼴이며 몸통이 가늘단다. 그런데 준치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썩어도 준치’라 하는 생선은 준칫과의 바닷물고기로 밴댕이와 비슷한데 몸의 길이는 50cm 정도로 납작하며, 등은 어두운 청색, 배는 은백색이다. 그러니, 여기서 준치는 한치 버금간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겠지.

 

 자구내 포구는 당산봉 아래 위치해 있다. 포구에 이어진 광활한 평야지대에는 우리나라 신석기 초기 문화를 대표하는 고산리 선사유적이 자리 잡았다. 사적 제412호인 이 유적은 1977년 경지정리사업 때 유물층이 교란된 상태로 경작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석기 9만9천여 점과 토기조각 1천여 점이 출토되었다. 일본, 시베리아, 연해주지방 등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초기 유물과 같은, 기원전 1만2천년에서 1만년 사이에 눌러떼기 수법으로 만든 석기와 섬유질 토기가 다량 출토되어 한반도에서도 구, 신석기시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음을 입증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구내 포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도댓불이다. 일제강점기 선착장과 방파제가 만들어질 때 세운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의 등대 역할을 해왔는데, 잘 다듬은 돌로 쌓고 시멘트로 틈을 메운 길쭉한 사다리꼴 형태로 높이는 285cm이다. 등명대(燈明臺), 관망대(觀望臺)로 불리며, 원형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 당산봉에서 바라본 차귀도 전경

 

                                                                                                                          * 처음 만나게 되는 와도

▲ 섬으로 가는 길


 정기적으로 차귀도를 오가는 배가 없어 낚싯배를 빌렸는데, l인당 왕복 1만원을 내고 동행인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7~10분이면 닿을 거리여서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으나 이 방법밖에 다른 수는 없으니, 감지덕지하고 기분을 띄운다.

 

 차귀도(遮歸島)는 제주에서 가장 큰 무인도로 한경면 고산리 산34번지 등에 위치하며 면적은 0.16km²이다. 출발하자마자 오른 쪽에 바로 와도(臥島)가 나타났다. 머리에 조그맣게 달려 있는 노두(露頭)가 당산봉의 퇴적층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당산봉의 일부분이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겨울 하늬바람 등살에 제 몸을 깎다 단단한 부분만 남겨 놓은 것이리라. 

 

                                                                                        * 남쪽에 자리한 지실이섬(매봉)

 섬을 넘어서자 본섬 차귀도 바위에 낚시꾼들이 자리 잡아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보인다. 차귀도는 자구내 포구에서 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동경 126° 9′, 북위 33° 18′ 30″에 위치한 제주특별자치도 최서단에 위치한 섬이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배는 조그만 선착장에 도착하여 일행을 내려놓는다.

 

 길이 나있는 쪽을 골라 오르니, 바로 샘이 나타난다. 한 때 사람이 살았을 때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나 오랫동안 방치해서 말라 있다. 뒤쪽에 돌과 시멘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집터가 덩그마니 남아 있다. 이 섬은 사유지와 국유지가 섞여 있으며, 1977년까지 2가구가 살았으나 1978년부터 무인도로 분류된다. 우선 서쪽 등대가 있는 곳으로부터 돌기로 하고 무성한 풀밭 사이로 난 길을 헤쳐 간다. 참억새를 제외하고는 온통 띠밭으로 덮여 있어 초가지붕을 일고 살 당시에는 많은 양의 ‘세(‘띠’의 제주어)’가 생산되었겠다.


                                                                                                        * 남쪽의 많은 여들

▲ 호종단과 오백장군 전설


 본섬인 차귀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우리가 2시간 동안 머물다 가기로 약속을 했으니 부지런히 다녀야 하겠다. 무인 등대 아래에서 잠시 차를 마시며 호종단의 전설을 돌이켜 본다. 인명사전의 호종단(胡宗旦)은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귀화한 술사(術士)로 되어 있으며, 제주 전설에서는 보통 고종달로 나온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지리서에는 제주의 풍수가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제주의 혈에서 쉴 새 없이 인걸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차단하기 위해 고종달에게 제주의 물 혈(穴)을 끊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고종달은 섬을 돌며 혈을 거의 끊어버리고 귀로에 오른다. 그가 탄 배가 비양도를 지날 무렵 참다못한 광양당신이 한 마리의 매로 변하여 배 위로 날아와 바람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켰다. 그래 고종달이 돌아가는 길을 막았다 하여 ‘차귀도(遮歸島)’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해변가를 걸어 남쪽으로 와보니, 매봉이란 이름의 여[嶼]가 있었다.

 

                                                                                                               * 장군 바위

 또 조금 떨어진 곳에 비바람에 깎이다 남아 우뚝 솟은 바위가 있었는데, 장군바위라 했다. 그렇다. 바로 오백장군의 막내아들인 셈이다.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 한 어머니(설문대할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가 아들 오백을 낳아 한라산 서쪽 기슭에 살고 있었는데, 식구가 많은 데다 집이 가난하고 마침 흉년까지 겹치니 끼니를 이어가기 힘들게 되었다. 어느 날 오백 형제가 양식을 구하러 나간 사이 어머니는 죽을 쑤었다. 큰 가마솥의 죽을 졌던 어머니는 잘못하여 그 속에 빠져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형제들은 돌아와 죽을 먹었는데, 여느 때보다 맛이 있었다. 맨 나중에 돌아온 막내는 죽을 뜨려다가 바닥에 남은 뼈를 발견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뼈라는 것을 안 막내는 죽을 먹은 형들과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어 통탄하며 이곳 차귀도로 들어와 울다가 바위가 되었고, 늦게야 그 사실을 안 형들도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해 오백장군이 되었단다.

   *차귀도의 장군바위는 2012년 1월13일 파력발전기 시험운행으로 훼손된 사실이 알려졌다. 이 글은 그 이전(2011년 2월1일)에 쓴 것임을 알려둔다.


                                                                                                                                                * 해녀콩

▲ 천연보호구역 제422호    

   

 남쪽 해변에는 드문드문 해녀콩이 보인다. 해녀콩은 콩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다. 7~8월에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붉은 자주색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로 11월에 익는다. 토끼섬과 비양도, 그리고 구좌읍 해변 등에 분포한 제주 특산종이다. 남쪽으로 뻗친 능선에는 대나무가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제주의 촌락에 많이 심는 이대인데, 제주어로 족대라고 부르며, 바구니 등을 짜는데 사용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의하면, 2000년 7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22호로 지정된 차귀도 천연보호구역은 제주도에서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지역으로,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이 매우 다양하며 아열대성이 가장 강한 지역으로 5∼10m 수심에는 수많은 홍조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홍조식물 중 아직 공식적으로 학계에 발표되지 않은 아열대지역 홍조류의 여러 종들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해조류의 분포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 했다.

 

 동물의 경우 해면동물 13종 중 3종이 한국 미기록종이고, 극피동물은 6종 중 1종·자포동물은 총 15종중에 산호충류 2종·대형동물은 8종 중 1종·이매패류는 12종 중 9종·갑각류는 17종 중 4종이 우리나라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종이다. 육상생물로는 곰솔·제주조릿대·순비기나무·사철나무·멍석딸기·억새·닭의장풀·쇠고비 등이 있으나 조금은 빈약하다.


                                                                                                                                      * 차귀도 식생 

▲ 돌아오는 배 위에서


 제한된 시간 때문에 허위허위 동쪽 자락을 돌아 나오는데, 배가 오는 것이 환히 보인다. 이처럼 지척에 있는 섬인데도 용수포구에 있는 절부암의 전설은 너무 아쉽다. 옛날 강사철(康士喆)과 그의 아내 고씨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 금슬 좋기로 이름났었다. 강사철은 이곳 차귀도에 와서 대나무를 베고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났고, 며칠 동안 기다리던 그의 아내는 남편을 따르기 위해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는데, 홀연히 그곳에 남편의 시체가 떠오르자 사람들은 ‘조아(曺娥)의 포시(抱屍)’에 견주었다 한다. 이에 판관 신재호가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겨 놓았는데, 지금도 남아 우리에게 애달픈 사연을 전한다.

 

 오늘 길 선착장 너머로 배가 몇 척 세워져 있었는데, 한 배에 해적선을 연출해 놓았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낚시꾼이나 유람선 여행객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시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낚시를 하면서 좀 더 섬을 느껴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기회가 된다면 여름에 한 번 더 찾아와 생물상을 돌아보고 싶다.

 

 남쪽으로는 이번에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수월봉이 보인다. 제주도에서 발간된 ‘제주의 오름’에는 수월봉과 차귀섬은 같은 오름의 외륜이고, 바다 가운데 분화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오름의 해안절벽 노두에서 응회암 퇴적층의 분출 방향 및 퇴적 양식의 연구로부터 얻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언뜻 절벽을 바라보니,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곳에 나있는 약초를 캐려다 떨어져 죽었다는 수월이와 노꼬 남매의 전설이 애처롭다.    제주 투데이(2011. 1. 31.) 게재

 

                                                                            * 차귀도 너머 수월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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