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10. 13. 일요일. 쾌청
아침 9시반. 우리를 태운 정기여객선 핑크돌핀호가 제주항을 뒤로 하면서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예정대로라면 1시간 10분 후인 10시 40분에 상추자항에 우리를 내려줄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도의 전모를 찍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아침은 그늘이 져서 옅은 안개와 함께 실루엣 차원밖에 안 된다.
배가 쾌속정이고 근래 배에서 사고가 있어, 당국에서 단속을 심히 한다는 이유로 항해 중에는 선실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답답하다.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아 빈자리를 찾아다니다 2층 뒤편 좌석을 차지할 수 있어 넓게 앉아 쉬면서 가기로 한다. 안전을 위해 유리창을 플라스틱 제품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긁혀버려 제대로 바깥 구경은 물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무료하던 차에 총무인 한 선생이 와서 오징어라도 한 마리 씹으며 무료를 달래라고 하기에 일행의 배낭을 뒤져 달콤한 복분자주를 나누며 환담하다 보니, 어느덧 창문 너머로 추자섬들이 보인다. 우리 오름오름회 모임에서는 작년에 이곳에 안 다녀갔기에 2년 만에 가는 셈이다. 가서 구절초도 보고 시원한 바람도 쏘이자는 게 오늘 건너가는 취지인데, 그보다는 가을 들면서 한참 맛이 오른 삼치회의 달콤함을 있지 못해 가는 건 아닐는지.
△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하는 추자도
추자도는 42개 도서로 형성되어 있는 행정적으로 제주에 속하는 다도해라 할 수 있다. 추자면사무소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어족과 풍부한 어장을 갖춘 해양자원의 보고이면서, 청정한 해양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바다낚시의 천국’이라 자랑하고 있다. 추자면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서기 662년 신라의 문무왕 때와 백제시대에 탐라가 예속되어 조공이 있었던 점을 미뤄 제주에서 육지를 왕래하던 선박들이 해상의 중간지점인 추자도를 후풍지점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조선조 성종 때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제주목’편에 추자도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에 추자는 제주목의 북쪽 바다에 있고, 주위가 30리이며 수참(水站)의 옛터가 있다고 했다.
그로 미루어 이섬에는 그 시대 이전에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가 있으며, 같은 기록에 고려 원종(元宗)11년 삼별초(三別抄)가 진도를 거쳐 탐라로 돌아온후 고려장수 김방경과 몽고의 흔도(炘都)가 이들을 치러올 때인 1273년 추자도에서 바람을 피해 머물렀는데, 후에 탐라인들의 그 공을 생각하여 이 섬의 이름을 후풍도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조선조 인조때 사람 김상헌(1570~1652)이 어사의 명을 띠고 주로 제주지방을 순행하면서 쓴 기행문인 ‘남사록’에는 제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며 바람을 만나 추자도의 당포(堂浦) 즉 대서리포구에서 3일간이나 후풍했던 기록 및 추자도 지명에 대해 자세히 적어놓고 있다.
▲ 추자도는 어떤 섬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금바리를 제외한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며,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로 많은 낚시인들이 찾는다. 겨울에는 주로 감성돔과 학꽁치, 봄에서 가을까지는 황돔, 흑돔, 농어 등이 잘 잡힌다고 한다. 부속 섬들의 대부분은 동남쪽해안이 절벽을 이루는 반면, 서북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에 속하는데 풍속과 자연은 전라도와 유사하다. 예로부터 생필품과 어구를 마련하거나 잡은 고기를 내다 파는데, 역시 뭍으로 나들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일 생활권이 되어 말씨까지 닮은 것이다. 면소재지인 대서리에는 지방기념물 제11호인 최영 장군 사당이 있으며, 이웃마을 영흥리에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9호인 박처사각이 있다. 하추자도에는 ‘돈대산(燉臺山, 164m)’이 가운데 자리잡고, 올레 산책로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올라가 섬을 조망하기에 알맞다.
* 하추자 신양리 포구
▲ 섬사람들이 내세우는 ‘추자 10경’
1) 우두일출(牛頭日出) - 우두도(속칭, 소머리섬)의 초여름 일출 광경이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2) 직구낙조(直龜落照) - 상추자의 서북방 최단에 거북 모양을 한 직구도가 있는데 저녁노을이 매우 아름답다.
3) 신대어유(神臺魚遊) - 하추자 예초리와 신양리 사이의 신대에는 천혜의 황금어장이 형성되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4) 수덕낙안(水德落雁) - 하추자의 남쪽 끝에는 사자 형상의 수덕도가 위풍당당하게 떠 있는데, 각종 물새가 사자머리에 해당하는 섬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쫓아 바다로 쏜살같이 하강하는 광경을 말한다.
5) 석두청산(石頭靑山) - 하추자도에 있는 청도라는 섬이 있는데, 마치 사람의 머리 같은 산꼭대기의 암반이 푸른빛을 띤다.
6) 장작평사(長作平沙) - 신양 포구의 해변을 가리키는데, 폭 20여m에 길이 300m의 자갈 해변이다.
7) 추포어화(秋浦漁火) - 추포도는 제주도에 딸린 유인도 중 가장 작으면서도 멸치 떼가 가장 많이 모이는 섬이다. 추자군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섬은, 어둠 속의 멸치잡이 불빛과 잘 어우러진다.
8) 횡간귀범(橫干歸帆) - 횡간도는 제주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흰 돛을 단 범선들이 돌아오는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단다.
9) 곽개창파(곽개蒼波) - 추자도와 제주 본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관탈섬의 또 다른 이름이 ‘곽개’이다. 과거 유배객들이 제주도로 들어 올 때에 이 섬 앞에 이르면 갓을 벗었다는 데에서 섬 이름이 유래되었다. 곽개섬 부근의 푸른 물결은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른다. 그래서인지 더욱 푸르게 느껴진다.
10) 망도수향(望島守鄕) - 추자군도 섬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섬이 망도(속칭 보름섬)이다. 타향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먼 수평선에서 가물거리듯 망도가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추자군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 버스를 타고 돈대산 입구에서 내려
우리는 몇 차례 다녀갔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하추자로 이어지는 추자교를 건너 묵리와 신양리를 거쳐 돈대산 입구에서 내리기로 하고 차에 올랐다. 차는 11시에 하추자항을 출발하여 하추자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다. 차가 출발하는데 묵직한 제주어를 쓰는 할머니 세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 투박한 말투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의 언어는 전라방언권에 속해 있어 주민들의 말을 들으면 전라도에 온 착각을 일으키는 곳인데, 본섬 시골서 온 것이 분명하다. 이분들의 얘기를 들어본 즉 죽기 전에 추자도를 한번 보러 왔다는 얘기다. 못해도 80세 전후의 연세들이신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서 왔노라 했다. 전에는 영업 택시가 있어 얼마 안줘도 관광을 시켜주었는데, 버스 기사 말씀이 요즘은 없어졌다니, 차를 타고 한 바퀴 돈 다음에 부두에서 내리라는 수밖에 없다. 굴비와 멸치 젓갈을 파는 곳을 묻길래 부두에서 내려 그곳 공판장에 가서 사고 맛있는 걸 사먹고 가시라고 말씀해 드렸다.
뭐하다 이제 여행길에 나섰는진 몰라도 조금만 더 젊은 때 왔으면 좋을 거라고 하자, 그래도 자식들이 육지건 외국이건 다 보내줘서 많은 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하긴 젊었을 때는 농사일에 치어 언제 허리를 펼 수 있었으랴 싶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이 나서 인솔하고 다녀야지, 노인네들만 보낸 것이 너무 하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벗해서 한 번 가보자고 과감히 나선 용기가 대단하다. 그보다 나이가 덜한 할배 네 사람은 다 밑의 사람이 심부름 해주고 다녀도 불편하다 엄살인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정말 대단하다.
* 상추자도 쪽
▲ 지금 추자도는 꽃 세상
돈대산에 오르는데, 맨 먼저 층꽃나무가 꽃을 피워 우리를 맞는다. 이건 작긴 하지만 분명히 목본식물이다. 그 작은 키에 짙은 보랏빛 꽃이 층층이 피어 있는 모습이 퍽이나 앙증스럽다. 다음에 만난 것은 노란 빛의 이고들빼기인데, 이 꽃은 섬 전체에 고루 퍼져 꽃 세상을 이룬다. 아직 산국이 피기 전이라, 그게 필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 섬을 장식할 것이다.
쑥부쟁이가 있는 위치에 따라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정상에 이를 무렵해서 구절초가 나타나 이제 피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음을 알게 한다. 정상 능선에는 미국쑥부쟁이가 상륙하여 자리를 잡고 있다. 기름나물과 해국(海菊)은 바다쪽에 자리하고 있어 나중에 오다가 찍었다, 특히 해국은 바다를 배경을 찍야 한다고 해서 찍으려는데,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버려 꽃은 그늘에 있고 바다는 햇빛이 밝아 찍기가 수월치 않다.
* 섬 뒤로 보이는 사자섬, 관탈, 뒤에 한라산
▲ 진짜로 멋있게 보이는 한라산
정상에서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남해안 특히 남해도 금산이나 땅끝, 그리고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 섬의 높은 지대에서 맑은 날 한라산이 보인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오늘 드디어 그 사실을 목격한 것이다. 육중하게 앉아 있는 한라산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다.
더욱이 아래쪽은 해무가 감싸고 있어 신비감마저 든다. 청도와 사자섬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셔터를 눌렀으나 사람의 얼굴은 역광이라 아쉽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인가? 우리는 정상 정자 위에 앉아 한라산을 우러르며 부두에서 사온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눴다. 토질이나 바위, 그리고 언어는 전라도와 같다고 느끼는 바지만 오늘처럼 지척에 한라산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추자도가 제주특별자치도의 한 지역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 층꽃나무(위)와 이고들빼기(아래)
▲ 베지근한 삼치회와 갯무
우리는 담수장으로 내려 올레코스 18-1의 나머지 코스를 걷다가 해안가로 내려가서 해국을 찍고 올라왔다. 그곳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여 추자교에 이르러 굴비 모형 앞에서 기념 촬영을 끝내고 다리를 건너 상추자항으로 돌아왔다. 곳곳 해안선 너머로 바라보는 섬 풍경은 우리를 다시 나그네로 만들었고, 수차례 왔던 기억으로 하여 고향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 최영 장군 사당은 거르기로 하고 바로 제일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 때 예약해 두었더니 벌써 상이 차려져 있다. 사장이자 주방장인 주인 아저씨가 삼치회 쟁반을 들고 들어와 회 먹는 방법을 일러준다. 먼저 김에 밥을 한 숟갈 떠놓고, 그 위에 양념장을 찍은 회를 살포시 올려놓은 다음, 구미에 맞게 김치나 마늘을 올려놓고 먹으라는 것이다. 가을 삼치가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입에서 아주 살살 녹는다. 길을 걷다 캐어온 야생 갯무를 곁들이니, 그 또한 일미가 아닐 수 없다.
* 쑥부쟁이(위)와 바위 위의 구절초(아래)
▲ 시도 기념물 최영 장군 사당
최영 장군 사당(崔瑩將軍祠堂)은 시도기념물 11호로 대서리 155번지에 자리해 있는데, 추자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고려시대 명장 최영(1316∼1388) 장군의 사당이다. 장군이 목호를 치기 위해 제주도로 건너가다가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은공을 잊지 못해 이곳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공민왕 때 제주도는 목민관이 죽음을 당하는 등 목호들의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따라서 조정에서 공민왕 23년(1874)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최영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원정을 가는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며 추자도로 대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장군은 주민들에게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어로법을 알려주어 생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뒤부터 주민들은 장군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사당을 지어 해마다 음력 7월 15일과 음력 12월 말일에 풍어와 풍농을 빌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74년에 복원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겹처마 합각지붕으로 면적은 16㎡이며, 자연석으로 담장을 둘렀다. 사당 입구 남동쪽에는 ‘최영사당금표’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 앞면에는 ‘신묘금지비’라 음각되어 있다. 사당 안 감실에는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 신위’를 새긴 나무판과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 해국 핀 해안가
▲ 추자항을 떠나며
우리는 다시 표를 사서 목포에 다녀오는 배를 기다렸다. 원래 핑크 돌핀호는 아침 9시30분에 제주항을 출발하여 상추자(10:40) → 진도 벽파항( 11:45) → 목포 도착(12:40) - 목포 출항(14:00) → 진도 벽파항(14:45) → 상추자(16:00도착, 16:25 출발) → 제주항(17:20)을 오가는 배이다.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거의 쓴 상태라 잠깐 공판장에 들렀으나 주로 굴비 위주인데 너무 비싸서 부두로 나와 삼치 잡아온 배가 하역하는 것을 보다가 배를 탔다. 토요일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손님들로 배안은 거의 찼다. 외항으로 나와 제주바다로 들어서자 배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앞에 아줌마 한 분이 넘무 심하게 멀미를 한다. 엄청난 크기의 카페리호와는 달리 작은 쾌속선이기 때문에 맞바람을 맞으면 심하게 흔들린다. 다행히 우리 팀은 멀미 하는 사람이 없어 무사히 추자 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끝)
* 삼치 나르는 아저씨들
'향토문화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홉굿마을 '낙천리' (0) | 2014.07.11 |
---|---|
제주칠머리당굿 송별대제 (0) | 2014.03.15 |
탐라국 입춘굿놀이로의 초대 (0) | 2011.02.12 |
전설의 섬 ‘차귀도’를 찾아서 (0) | 2011.02.01 |
내 고향 곽지 마을 (1) | 201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