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팔손이와 팔자타령

김창집 2011. 11. 30. 13:18

 

하루 종일 원고와 씨름하다가 저녁이 되어

작가회의 올 마지막 이사회에 참가했다.

평소 술 마시고 필름이 안 끊기는 줄 알았었는데,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 가시가 되어

무척 후회가 되는 일을 경험했다.

앞으로는 어른스럽게 말도 줄이고

절제하며 술을 마셔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팔손이는 두릅나뭇과의 상록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2~3m이며,

잎은 어긋나나 가지 끝에서는 긴 잎자루 끝에 모여 나는데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다. 10~11월에 흰 꽃이 산형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장과(漿果)로 다음 해 5월에 익는다. 잎은 약용하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제주, 남해, 거제도와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걱정도 팔자 - 박유동

 

강물은 산을 칼로 쪼개고

바다의 파도는 산기슭을 핥고

바람은 산꼭대기를 깎고

때로는 망짝 같은 토네이도가 갈아붙이고

때로는 해일이 불도저처럼 밀어내고

아 수 억만년이 지나면

이 세상 높은 산봉은 다 깎아 없어지리라

 

그때는 이세상이 모두 수평이 되리니

물어보자 바다처럼 물로 수평이 되더냐

아득한 지평선 평야로 수평이 되더냐

그거야 깊은 바다물이 지구 땅의 5배이니

단연 깊은 물속으로 지구가 잠기리라

물속에 고기는 살아남지만

우리 육지의 생명은 다 죽어 멸종하리라

 

걱정도 팔잘세

그때까지 살지도 못하지만

그때 사람은 우주선 타고 별나라 가 살 것이고

설혹 물속에 산대도 용궁을 지어놓고 살리니

집집의 돼지우리에는 고래와 상어를 매달아 놓고

생각나면 소 돼지처럼 잡아먹으니 좋겠지만

남녀가 망측스레 발가벗고 산다니 어이 눈뜨고 보랴.

    

 

♧ 개 팔자 - 우공 이문조

 

오일장 가축시장

한켠

개 잡는 곳

 

가마솥엔

물이 펄펄 끓고

털 뽑는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간다

 

개 나라 저승사자 앞에

또 개 한 마리

끌려나왔다

 

 

아무리 성질 더러운 개라도

이들 앞에서는

꼬랑지 내린다

 

쇠 파이프 한 방이면

세상과의 이별이다

 

이 처참한 광경

바라보고

고개 돌리는 개 몇 마리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

팔자를 탓하기엔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 사주팔자 - 양전형

 

한국민속촌

조선시대 영감

컴퓨터로 사주팔자 보고 있었네

호기심에

계사년 이월 초이틀 자시(子時)

기계의 지시대로 입력했네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가슴에서 드르륵 드르륵 살피더니

종이 한 장 꺼내 주었네

평생 집 밖 생활이 많겠으며

그렇다고 집 안에만 있으면 병을 얻겠고

벌거나 갖는 일에 개의치 않겠으며

수명이 짧으리라는 것이었네

젠장, 내 인생이 바람과 같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네

 

  

 

♧ 팔자소관 - 권오범

 

시험 볼라치면 미끄러져

먹물도 먹지 못했다고

참기름 집에 태어난 걸 후회하며

말끝마다 싹수가 노랗다던 내 친구

집적대는 것마다 말아먹다, 먹다

참기름 효험이 뒤늦게 나타났는지

리모델링 왕초노릇 석 삼년에

지갑마저 카드로 인테리어 해버렸다

이 중생, 카드 닮은 것이라고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밖에 없어

그나마 언제 하늘구경 시켰는지

곰팡이가 살림 차렸을 것만 같다

고꾸라질 팔자도 패만 잘 지르면

독새풀처럼 일어나는 세상인 것을

첨부터 말아먹을 건더기도 없던 맹물

시와 허구한 날 티격태격, 진짜 싹수가 노랗다

 

  

 

♧ 사주팔자 - 변학규

 

내 사주는, 네 팔자는

밤이 되면 저마다 사주팔자가 꿈속을 훨훨 난다

꽃을 피운다

네 사주팔자에 피어나는 꽃

내 팔자에 내려앉는 학

밤은 꽃에서 꽃밭으로 이어진다

나무마다 산등마다 꽃이 웃네

유적에는 병정들의 영혼이

명승지에는 가인들의 넋이 춤을 추네

네 기둥에서 강물이 흐르고

여덟 등성에서 봉화가 흐르네

낮이면 일터에서 시름을 씹고

밤이면 저마다 꽃이 피네, 학이 나네

낮에는 어둠과 굴속에서 싸우고

끝내 캄캄한 겁겁의 밤 속에 묻히네

사주가 훨훨 나네

팔자가 훨훨 지네

캄캄한 꽃이, 밤이

문을 닫네.

 

  

 

♧ 八字打令 - 金光林

 

소시적

그러니까 식민지시대 말기

장롱 속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한문 붓글씨 책 한 권

꾀죄죄하게 손때 묻은

나의 四柱八字사주팔자에

뭣이 國祿국록 먹을 신수

라고

 

하긴 그래

공무원 노릇도 좀 해보고

목에 훈장도 걸쳤으니

豫言예언 적중이라

이게 壬午年에 접어들면서

슬며시 겁나기 시작

 

 

73세로

四柱가 끝나고

八字의 행방이

杳然묘연해졌기 때문

더더욱 노인성 피부염에 시달리면서

持病지병 보담야 낫다고 여기면서도

……끝내 갈 데까지 다 간 게 아닌가

고 넋두리하자

허겁지겁 占장이한테 달려간

외동딸

 

―6년 이상은 문제 없대요

 

듣고 보니

오오라 그럴싸 하이

婚事혼사 전 거리에서 본 占卦점괘가

이제사

슬슬 맞아들어 가는 모양

장가 두 번 갈 八字라는 말에

시무룩하던 신부감 아내되어

나보다 먼저 종적을 감춰버렸으니

 

느긋하게 건네온

그 말이

다시금 실감나기 시작하는

요즈음이올시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로오름에서 만난 이끼  (0) 2011.12.05
백당나무와 겨울비  (0) 2011.12.02
죽절초 열매가 익어간다  (0) 2011.11.29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고  (0) 2011.11.28
박주가리 씨앗 날개 달다  (0) 201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