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백당나무와 겨울비

김창집 2011. 12. 2. 00:51

 

 

12월 첫날부터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창밖으로 앞 소공원 벚나무의 붉게 물든 잎이

떨어져 선명한 색을 드러낸 것을 보며 종일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이 방에서만 지냈다.

 

책상 위에 걸려 있는 대한항공의 카렌다에는

일본의 시라카와고의 설경이 새롭게 비친다.

한라산에도 이젠 눈이 내렸는데, 언제면

오름에도 눈이 와 눈밭을 뒹굴어 보나?

 

백당나무는 인동과(忍冬科)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키는 3m 정도이고, 잎은 마주나는데 3갈래로 나누어진

것도 있다. 잎가장자리에 톱니가 조금 있으며

흰색의 꽃은 5~6월에 줄기 끝에 산방꽃차례로 피는데,

꽃차례 가운데에는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갖춘꽃이 핀다.

열매는 9월경에 붉은색으로 익어 겨우내 매달려 있다.

절에서 흔히 심으며 내한성이 강하고 빨리 자란다.

 

  

 

♧ 겨울비 - 이훈식

 

오고 감이

가고 옴이

처음 일도 아닌데

만났다 헤어짐이

태어날 때부터

두손 꼭 쥐고 나온 울음인데

그게 삶인데

자꾸 자꾸 뒤돌아 보며

울먹거리더니

기여코 터졌구나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

길 떠나는 새벽

홍건히 젖은 발자국위로

밤새 앓던 소리만

찬바람으로 남겠구나

 

  

 

♧ 겨울비는 눈물처럼 나리는데 - 이복란

 

삭풍에 뿌리 뽑혀 웅크린 나무 뒤로

둥지 잃은 새의 비애가 클로즈업 되면서

삼류영화의 막은 이렇게 내려지고

부스러진 둥지 속으로

겨울비는 눈물처럼 고여드는데

정작,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마른 가슴에선 모래바람 서걱이는 소리

여전히 비는 듣고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푸르렀던 잎새의 애상이

파편처럼 박혀들어

괭한 눈빛에 가물대던 촛불도

하염없이

눈물만 똑똑 흘리던 날 밤

겨울비는 눈물처럼 고여드는데.......

 

  

 

♧ 겨울비 - 송문헌

    -- 바람의 칸타타 17

 

몸을 드러낸 채 미이라가 되어 젖고 있는

마로니에 가지, 가지마다 낡은

비올롱 소리 빗금치며 내어 걸리고

겨울비는 칸타타 종일 동숭동에

뼈 속 뼈 속 파고 든다

 

사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너

거리엔 낯선 이들만 가득 오가고

너의 쓸쓸하게 웃는 모습 홀연히

떠오른다 떠오른다

 

누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 했던가

기다리는 마음 오늘은 비 오는 저 어둠의 풍경을,

그 누가 젖은 창밖에 밤새도록 걸어두고 있는가

 

  

 

♧ 겨울비 내리는 날 - 권영민

 

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내린다

눈이 내리면 좋으련만

즈믄날 하냥 비가 내린다

서연히 비가 내리면

구름처럼 가만히 다가와서

바람처럼 말없이 떠나 가버린

그리운 그 사람 생각이 난다

사랑이여, 너는 어디 있는가

사랑이여, 너는 돌아올 수 없나

너의 뒷모습 바라보며

애타게 부르며 애원했건만

부르는 소리는 속절없이

허공을 배회하며 돌아오누나

겨울비 내리는 날

그리운 그 사랑을 돌아본다

그리운 그 사랑을 외쳐본다

겨울비 내리는 날

내가 울고 있다.

 

  

 

♧ 겨울비 - 강남주

 

차가운 벽을 두드리며

스스로 무너지는 화살 끝에서

四季사계가 흐느낀다.

젖은 낙엽이

움츠러진 추억으로

까마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만나지 못할 미련으로

광막한 공간을 금긋고 있다.

 

  

 

♧ 겨울비 그 외로움 - (宵火)고은영

 

나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으로부터의 단절을 원했든가

칠흑 같은 어둠에 겨울비 사방에 넘실댄다

범람하여 밀물로 가득한 그리움

믹서 되어 혼돈의 블랙홀로 흐르는

비의 얼굴, 얼굴들

 

어둠을 부유하며 밤새 시달린 그리움

빗물로 나부끼며 춤추는 동안 빛은

빗물에 몸 풀고 통과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흐느낀다

 

그대 보고파 속절없이 머무는 시간

버리지 못하는

지독한 고질병의 염병할 감수성

나는 버림받은 기분으로 세상을 보고

나를 보았고 또, 너를 보았다

  

일상에서도 다가설 수 없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이 예민한 내 안에

무수한 꽃은 피었다 시들어 가고

가슴엔 언제나 검푸른 네가 있었다

 

온몸을 적시며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저 빗물처럼

내 안엔 분신 같은 그리운 네가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일렁인다

 

우리가 등을 보이고 뒤돌아서

각자의 삶의 터전을 향하여 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그리움에 대한 회포도 풀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한마디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 겨울비는 아직도 - 장수남

 

갈색 숲

바늘 끝에 매달린 긴 슬픈 욕망을

꿰매는 젖은 새벽바람.

 

12월의 겨울비

너는 아직도 내리는가.

 

갈색그림자 한 잎 구겨진 얼굴 땅에

떨어뜨리고

이골목저골목 더듬더듬

버려진 세월을 모으고 있다.

    

두 눈 부릅뜨면

밟혀 찌그러진 종이상자

뒤적이며 얻은 연탄 몇 장 쌀 한 되.

 

리어카에 실린

조각조각 쌓인 무거운 세월들

독거노인의 빈주머니 채우기 전에

영혼이 먼저 끌고 가

허기진 배 채운다.

 

홀로비친

긴 태양은 하루를 접고

검은 숲에 걸린 지친별이

내뱉는 갈색 꿈

오늘도 너와 나는 갈색 그림자 따라

골목길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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