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 얘기는 벌써 듣고 있었지만
어제야 4시간 눈밭을 걸어 사라오름 설경을 보고 왔다.
눈발은 날리지 않았으나 오랜만에 밟는 눈의 감촉으로
기분은 극에 달했으나 아이젠을 준비 못해서 자꾸
미끄러지면서도 1100고지 위에서부터는 나무에 눈꽃이
피어 있어 좋았는데, 오르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라오름(紗羅岳)은 올 10월 13일 명승 제83호로 지정된
곳으로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다녀간 후 갑자기 유명해졌다.
소재지는 한라산국립공원 지역 내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번지 일대로 표고 1,324.7m, 비고 150m, 둘레 2,481m의
오름이다. 한라산 고지대 백록담 동록, 성판악 등반 코스 남쪽에
산정화구호(山頂火口湖)를 갖고 있는 오름이다.
화구호는 접시 모양으로 그리 깊지는 않으나 둘레는 약 250m,
화구륜(火口輪)은 약 1.2㎞가 된다. 이 산정화구호 주변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손꼽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오름 중 어승생악에 이어 두 번째로
2010년 11월 1일에 개방된 오름이다.
사라오름에서는 서귀포 일원과 한라산 정상을 조망할 수 있으며,
겨울과 여름의 경치가 좋고, 왕복 약 4시간 코스여서
먼 길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갈 수 있다.
식생은 자연림의 울창한 숲을 이루며, 꽝꽝나무, 청미래덩굴, 주목,
서어나무, 졸참나무, 꽝꽝나무, 때죽나무, 솔비나무, 진달래 등이 있다.
5.16도로변 성판악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출발하여
오름 옆까지는 한라산 성판악 등반로를 이용하며, 정상과
그 둘레에 등반로가 개설되어 있다. 성판악 사무소에서 출발하면
4.1km 지점에 화장실이 있고, 다시 1.1km 지점에 샘터, 그곳에서
600m 걸으면 사라오름 입구,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600m, 도합
6.4km 거리이다.
♧ 설경(雪景) - 명위식
온 산야 펼쳐 놓은 은세계
눈이 시리도록 …
먼 산허리를 아련히 감싸고 있는
뽀오얀 안개구름 위로
두둥실 떠 있는 백설의 산
나무들은 어깨마다
지구의 무게를 느낀다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생활의 살점들
세상은 평화 속에 잠이 들고
모든 걸 덮어 버렸다
미움도 불신도
추하고 더러운 것도
무수한 세상의 욕망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하얗게 펼쳐 놓은
화선지 위로
작은 새 한 마리
포르르 선을 긋는다.
♧ 눈밭에 서서 - 이향아
벌판에는 지금 눈이 내리고
눈은 여간해서 그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흐느낌으로 세상을 파묻는다
우리도 나중에는 하얗게 될 것이다
하얗게 되어서 서늘히 식을 것이다
불길이 꽃밭처럼 이글거리다가
그을린 삭정이 검푸른 연기까지
끝내는 흰 재로 삭아내리 듯이
우리도 나중에는 하얗게 될 것이다
햇발 아래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과
이별을 흔들던 진아사 손수건
항복을 알리는 창백한 깃발과
핏기 없이 죽어가는 마지막 얼굴
눈은 자꾸만 오고
세상은 자꾸만 파묻히고 있다
지금은 찬연하여도
희게 희게 바래서 몰라보게 되면
비로소 끝이라는 걸 믿어도 될까
눈 덮힌 벌판을 바라보면
이미 심판이 끝난 것들이
눈발되어 차분히 내린다는 것을
황홀한 꿈에 잠긴 영혼들의 세상을
아주 가까이서 엿볼 수가 있다
♧ 저 눈밭에 그리움을 묻고 - (宵火)고은영
어제의 꽃은 시들고
밤이면 불빛 따라 흐르지 못하는 어둠을 끌어안고
불구의 영혼으로 부르던 묵언의 외침들
패색 짙은 선로에 서면 허무만 팔랑대고.........
삶의 한계를 절감하는 날은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인생이 더욱 아프다
아무리 울어도 외로움이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고독은 면할 수 없다
저 눈밭에 그리움을 묻자
저 눈밭에 진저리치는 나의 상처를 묻자
저 눈밭에 어두운 나의 과거를 묻고
아픔을 묻고 나의 슬픈 눈물을 묻자
쉬지 않고 하루종일 내리는 눈
곁가지로 나풀대던 등 피로
영혼이 흔들리는 추위에 서서도
살아감은 욕망과 필요를 줄이며
그것들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 싸늘한 눈밭 사슴처럼 걸어와서 - 서지월
한번 들어보게나
바람이 불 때 말이지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즐거운 비명 지르면서
놓아버린 새를 그리워할 때
봄은 오고
새잎 피워낸다는 사실을
거기 새론 음악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 뜨거운 피 데워지고
다시 잔을 들면 피어나는 꽃송이들 탐스럽지 않겠는가
햇빛 나고 달빛 나고 별빛 더해주지만
더러는 먹장구름 몰려 와 비 퍼부면서
너 가만 있거라 너 가만 있거라
물고문 은총 내리지만
그게 어디 사는 재미인가
진실로 우리가 우리 마음의
담도 뭉게고 감시와 철조망을 철거할 때
한껏 푸른 종소리 울려오겠지만
이웃간의 담이 높아질 때
찾아드는 겨울은 살벌하고
이처럼 우리가
싸늘한 눈밭 사슴처럼 걸어와서 시린 발도
시리지 않게 포근한 금잔디 노란 민들레의
어머니같은 그리움 갖자는 것이야
더러는 개개인 이익을 위해
외투 꺼내입고 혼자 포근한 척 하지만
생명이, 세상에 버려진 몸뚱아리가
가고 없으면 남는 것은
빈 집 뿐일세
콩깍지같이 단단한 쓸데없는 과욕일랑
헌신짝처럼 버리고
너 옷 벗으면 내 옷 벗듯
마음의 화장을 걷고 흥분하지 말고
천국을 향한 하나씩의 계단
아름답게 밟고 가는 잠깬 목동의
피리소리를 듣자는 것이야
♧ 하얀 눈밭에 - 하영순
시골길
하얗게 쌓인 눈밭에
강아지처럼 뒹굴고 싶어
자동차를 세워놓고
마음은 뒹굴고
나는 걸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옥양목 갚은 눈밭
뽀드득 뽀드득
들리는 소리
눈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한참을 걷다
돌아오면서 그 말뜻을 알았다
이 형광등
네 발자국을 보라는 말이었구나.
눈밭에
그대로 흘려 놓은 내 마음
살며시 지켜보는 저 햇살
에구
부끄러워라!
♧ 저녁 눈밭 - 권경업
소설(小雪) 지나 하늘 흐려지면
자작나무 몇 둥거리 더 삼키는 구들목
눈밭 성긴 저녁은 일찍 저물었다
묵정밭 끝머리 새재 오름길
하얗게 지워졌을까
간간이 풍문 지고 넘던 등산객 발길 끊겨
겨울이 조개골 깊숙히
칼 가는 소리를 내면
알몸의 상수리숲 온 밤을 떨었다
♧ 설경 - 주경림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하늘
소복 입은 여인의 모습으로 눈부신 산봉우리
치맛자락 펄럭일 때마다 비늘로 흩어지는
뿌리 내리지 못한 영혼의 춤
꽃순보다 뜨거운 열정 못 이겨
뚝뚝 마디를 끓어내고 하얀 무덤 되는 겨울나무
갈비뼈 드러냈던 마른 들판
조용한 겨울잠에 묻혀버리네
날아갈 때를 놓친 철새 한 마리
깃털 뽑히는 아픔으로 목청을 돋구어
막막한 그리움으로 하얀 무덤을 조금씩 흔들어보네
발목 끊어내고 멀리 갈 줄 알았던 연 꼬리
곤두박질 쳐서 비석으로 꽂혀있다
눈물 글썽이던 하늘 저 편에는
칼날처럼 차갑게 웃는 햇살 받아
지상은 살아있는 것들의 무덤으로 빛난다
하늘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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