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구두리오름을 찾아가는 길
남조로변 해발 400m쯤 되는
경주마육성목장 옆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얼마 전만 해도 눈이 쌓여 있었을
목장 언덕이 벌써 저렇게
봄빛을 머금은 풀밭 빛이 짙어졌다.
모두들 안온한 고향의 푸른 언덕을 떠올리며
두툼한 등산복 앞섶을 풀어헤친다.
돌아오는 길,
70을 넘긴 남자의 품에서
갑자기 하모니카가 나와 ‘봄처녀’, ‘고향의 봄’,
‘동무 생각’을 풀어놓는다.
♧ 봄날을 기다리며 - (宵火)고은영
미치겠어
요즘 난, 미지의 시간에
까닭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
심장이 벌벌 떨리고
입버릇처럼 살고 싶지 않은 세상
심장병으로 쓰러져 죽는 건 그래도 싫거든
죽었다던 사람도
살아 돌아오는 세상인데
낸들 그리움이 없으려고....
악몽이 끝나면 불면으로 보내는
창백한 백야(白夜)의 시간 들
술이라도 마실 줄 알면 좋겠어
흠뻑 술에 취하면
존재가 이완되어
훨씬 가벼워 질 테고
내 검버섯 같은 고독에도
두둑한 배짱 하나쯤
돋아나는 일 아니겠어?
그럴 땐
허탈한 가슴으로 봄에 피는
녹색 새순을 떠올리지
봄의 언덕에 환한 미소
물먹은 이파리를 떠올리면
잠깐씩 행복해지기도 해
어떤 의욕도 사라진
멍한 허공을 끌어안고
눈빛만 축축해진 매무새에
돌아올 봄날만을 떠올리면
그래도 기분은 한결 나아져
♧ 봄날 우리 슬픔은 - 권도중
꽃 피는 슬픔,
천지 가득 꽃비 내리면
봄날 우리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
그립고 안타깝던 올해의 생각도 대지에 지고
지고 난 자리 씻기는
저 만리의 위안에
가지마다 돋을 푸른 일상을 가자
천지가 품었다 묻어 둔 그대, 슬픔이 아니다
♧ 그리움 피어나는 봄날에 - 김설하
양지바른 담장밑
엄동을 견딘 파릇한 풀잎이 돋고
잊었던 색채의 아름다운 마법에 걸린
생기로운 꽃들의 함박웃음에
까닭 없이 가슴 설레어
어디론가 자박되고픈 봄이다
물비늘 일으키며 몰려다니는
송사리떼 등짝에도 금빛 반짝이며
간지러운 햇살이 내리면
솜털 보송하게 부풀인
버들가지에도 촉촉한 수액이 흘러
뭇시선 유혹하는 화창한 봄이다
밤새 사르락 사르락
머리를 빗는 봄비 따라
설레는 마음 단장하면은
흘러 흘러 강물에 닿아
하브작 젖은 가슴으로
그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픈
눈물겹도록 그리움 빼곡한 봄이다
♧ 잔디는 언제나 청춘이다 - 정영자
연초록빛 새순은 아름답다.
차가운 겨울 속에 이쁘게 고마운 생명,
뜨거운 기다림으로
하늘을 향해 올리는 그의 환희,
싱그러운 생명이기에 더욱 감사하다.
마른 잔디 밑뿌리에
초록잎은 고개 내밀어
짓밟히고 짓밟혀도
잔디는 언제나 청춘이다.
한세월 돌아보면
살고 사랑하는 법,
길이 조금 보인다.
법이나 질서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
상식을 찾아 걸어온 혼란의 시대,
지금은
막막한 사람들의 등불이 되고,
외로운 사람들의 힘이 되었기에
부르튼 지구에도 새 잎은 푸르다.
♧ 봄날, 오후의 서정 1 - 김윤자
오랜 산통 끝에
겨울이 낳은 아가, 봄.
뽀얀 눈 뜨고 기어 나와
빈 들을 헤적이니
무지개 꿈꾸던 풀잎들
한 폭의 수채화로 피어오른다.
걸음마 배워 산으로 올라간
개구쟁이, 봄.
마른 나무 사이 헤집고
산마당에 궁그르니
나목의 청구슬 웃음소리
한편의 오페라로 막이 열린다.
봄 아가의 예쁜 짓에
한눈 팔다가
발 한번 헛디뎌 넘어져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봄날 오후, 병아리 햇살이
구겨진 영혼을 다림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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