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제주詩사랑회(회장 김장명)에서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 후원하는
‘4.3 유적지 순례 시낭송’ 행사가
‘검은 성담 위엔 송악덩굴만 푸르러라’라는 주제로
선흘 낙선동 4.3성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있었다
제주詩사랑회는
시낭송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알리고,
각박한 현실에서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시의 전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많은 문인과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장소를 이동하며 낭송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앞서 공연한 김영미 무용가의
질치기 ‘살풀이 춤’ 모습과
낭독된 시를 같이 올린다.
♧ 질치기 - 문무병(문선희 낭송)
설운 님 오시는 길은
봄밤 새풀 돋아난 바람길이어라
비비둥둥 살장고 치며
혼 씌워 오는 밤에
하올하올 날아서 오는
나비 다리어라
테우리 마소 모는 소리 유연하고,
질토래비는 자왈곶[荊棘] 헤쳐가는데
어둔 밤 참호의 비명도 이어지는
어욱꽃 뉘엿뉘엿 눈부신 한라산,
님이 오시는 길은
바람길 구름길이어라
청원한 소리 안개 속에 흐르는
저승길 대나무 상가지
백지 나부끼는 자왈곶[荊棘] 지나,
저승문 문직대장에 인정 걸고,
저승길 무명천 밟으며 상마을 도올라
아, 님이 오시는 길 열려 맞자
자손은 조상 그려
조상은 자손 그려
비새[悲鳥]같이 울음 우는 봄밤
님이 오시는 길,
칭원하고 원통한 저승길 열두 구비
열려 맞자
♧ 이제 오는가 그대 오는가 - 허영선(김장선, 이혜정 낭송)
먼저 온 꽃은 져서 바다로 가고
오월 아그배 꽃잎 풍화하는 낱알처럼
흙바람으로 헤살짓는데
이제 오는가 그대 오는가
떨어진 단추하나 붉은 도장하나로
까르르 운동장 굴리던 저 햇살지더니
캄캄 절벽 어둠처럼 끝내 망막이 지더니
썩지 않는 활주로,
푸른 이빨로만 살아나는가
저벅저벅 귀 열던 세월 가고
영영 잊은 줄 알았네
영영 홀로인 줄 알았네
인정도 없이 부유하던 가마우지처럼
날아드는 돌소리, 윙윙 쇳소리 귀 막고 눈 막고
끝내는 이만큼 접고도 싶을 적에
에린 심장에서 툭 튀어나와
한낮 나비로 팔랑대며 떨어지대
흙도 살도 꽃몸 될 적에
폴폴 흩뿌려지던 검붉은 꽃잎들
종국엔 푸른 숨 끅끅 죽이던 흙살꽃 대지
사라져버린 자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제 오는가 그대 오는가
조릿대 서걱이던 참혹한 눈물로도
삼촌도 이모도 고모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사람
그대 오는가 이제 오는가
♧ 진혼곡鎭魂曲 - 김광렬 시(김장명 낭송)
슬퍼하지 마라
누구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느니
찢긴 저 풀잎도 제 상처 보듬어 안고 살아갈 것이니
별빛 치렁치렁한 밤 캄캄한 흙더미 속에서
잉잉 울고 있는 원혼들아
원통하다 원통하다고
삭은 뼈 긁으며 괴로워하지 마라
이 지상의 불꽃이었던 것들은 모두 재가 될 것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 물이 되어 흐를 것이니
때 이른 승냥이 같은 바람이 할퀴고 갔을 뿐이니
바람칼 맞아 뚝뚝 떨어지는 꽃잎이었을 뿐이니
그러므로 그대들,
막 동터오는 아침햇살 한 자락씩 베어 물며
찬란한 이슬길 걸어 극락정토로 잘 가라
가서, 아름다운 넋으로 다시 살아나라
♧ 곶자왈에서 길을 잃다 - 오영호(회원 낭송)
4월 햇살 아래 때때로 장끼가 우는
푸른 치마 깔고 앉은 선흘리 알밤오름 자락
덤불속 살진 고사리 고갤 숙이고 묵념중이다.
무자년, 소식 없이 가신 삼촌 때문일까.
동백꽃 떨어진 자리 앉았다 바로 떠나는
동박새, 벤뱅듸굴 쪽으로 포르르 날아간다.
굴속 습한 냉기에 잔기침을 하는 잡목 숲
살기 위해 산으로 간 것이 죄인 아닌 죄인 되어
곶자왈, 길 찾아 헤매는 몸부림이 처절하다.
♧ 잃어버린 마을 - 강덕환(회원 낭송)
수목원 나무 그늘 평상에 누웠다가, 하, 글쎄 시끄러운
매미 탓에 자리를 옮기는데, 나무 밑둥에 살그랑이 남아
있는 매미의 둥지를 보았지요 떠나버린 집터만 옹송그
리고 있었던 거지요 멀리 떠난 매미는 기억하고 있을까,
돌아올 수 있을까
적꼬치로 쓰던 뒤란의 대나무 숲은 서걱이는데, 풋감 즙
을 내어 갈옷에 물들이던 감나무의 노동은 시퍼렇게 살
아 있는데, 어쩌자고 무자년의 흔적 지우지 못하고 버
팅겨 선 팽나무 너는
떠난 게 아니라 밀려난 거지요 잊은 게 아니라 꽁꽁 저
며 두고 있던 거지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빼앗긴 거지요
쉽게 으스러지는 탈피의 잔해를 엉거주춤 밟고 선 나는 다만,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빌 뿐
♧ 한라산 뻐꾸기 - 고정국(관객 낭송)
한라산 잡목 숲엔 텃새 한 마리 숨어 산다
외가댁 대물림에 늙어서도 목청이 고운
4.3 때 청상이 됐던 올해 칠순 이모가 산다.
산이 산을 막고 무심이 무심을 불러
해마다 뻐꾸기 소리 제 삼자처럼 듣고 있지만
이모님 원통한 숲엔 오뉴월 서리도 내렸으리.
반백 년 나앉은 산은 등신처럼 말이 없고
꺼꾹 꺼꾹 꺼꾹 꺼꾹 숨어 우는 우리 이모
간곡히 제주 사투리로 되려 나를 타이르네.
♧ 더덕밭 너머 - 오승철(관객 낭송)
아무튼,
다랑쉬오름 바듯 건넌 꿩소리가
송당마을 더덕밭 그 너머 올레 긴 집
간간이 흘러 들어와 연둣빛 물들인다
“계란 삽서 계라안”,
“독새기 삽서 독새기”
4.3 소개령 같은 먼 동네 확성기 소리
할머니 치매기 아쓱 밥상머리 도져난다
세월이야 이승에 두고
사람이 가는 거다
무덤은 또 한 생의 징검다리 같은 거
세상에
잠시 왔다가
한 눈 팔린
이 봄날
♧ 무명천 푸는 사월 - 장영춘(관객 낭송)
교래리 가는 길에
허옇게 뼈대만 남은
산 번지 머물고 있는
시간들을 깨우는 바람
아득히
골짜기 너머
메아리로 번지고,
허공에 머리 풀고
흔들릴 수만은 없어
하얗게 밤을 지샌
억새들을 보아라!
꼿꼿이
바람에 맛서
등 곧추 세우는,
저마다 키 낮추며
털갈이도 바쁜
육십 년
등성이에도
새순들이 돋는 사월
턱에서
무명천을 푸는
오름들이 보인다.
♧ 섬에 길을 묻다 - 강영환(관객 낭송)
밤이면 비워지는 바다
거대한 동굴이 입을 닫고 살아 왔다
그때는 바다가 막다른 벽이었다
그래서 산으로 든 사람들이
산사람이 되어
갑년이 지났어도 내려오질 못했다
그때 기억이 되살아난 바다는
자꾸만 산으로 가서
곡을 했다
그때는 산이 막다른 벽이었다
밤이 아니라도 울먹이는 바다
끝내 입을 닫고 살았다
♧ 통점 - 이종형(관객 낭송)
햇살이 쟁쟁한 8월 한낮
조천읍 선흘리 산 26번지 목시물굴에 들었다가
한 사나흘 족히 앓았습니다
들짐승조차도 제 몸을 뒤집어야 할 만큼
좁디좁은 입구
키를 낮추고 목을 비틀며
낮은 포복으로 엉금엉금 기어간 탓에 생긴
온몸이 욱신거리는 통점 때문만을 아니었습니다
이가 빠진 그릇 몇 점
녹슨 뚜껑들과
철모르는 아이의 발에서 벗겨진 하얀 고무신이
그해 겨을
좁은 굴속의 한기寒氣보다 더 차가운 공포에
시퍼렇게 질리다
끝내 윤기 잃고 시들어간, 거기
그 서늘한 증거 앞에서라면
당신도 아마
오랫동안
숨이 막혔을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처럼
사나흘 족히 앓아누웠을 것입니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둥근잎유홍초와 10월 (0) | 2012.10.08 |
---|---|
절국대에 얽힌 전설 (0) | 2012.10.06 |
푸른 하늘과 흰구름 (0) | 2012.10.03 |
달아 노피곰 도드샤 (0) | 2012.10.02 |
강아지풀이 흔들릴 때 (0) | 2012.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