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흐엉 강의 불빛

김창집 2013. 1. 28. 00:26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호치민시에서 반레 시인도 만나고

꽝아이성에서 탄타오 시인도 만나고

전쟁박물관에도 가 보고

빈호아에서 한국군 증오비에 참배도 했습니다.

 

 

중부지역은 우리 파월 장병들이

많이 갔던 곳이고

그곳에는 꽝아이성과 땀끼, 벤지앙, 호이안,

다낭, 후에가 있는 곳입니다.

후에에서의 마지막 밤에 우리는

배를 타고 흐엉강에서 맥주를 한 잔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했습니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우리도 다른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더군요.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곳까지 찾아가 민간인을

학살하고 와야만 했을까요.

    

 

♧ 낀박 - 반레

 

그 이름 어찌 그리 멀기만 하지

네 이름은 수평선 너머 아득히 멀고

나 옛 낀박을 애타게 그리네

그 또한 너를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일 뿐

 

나 그해 오후를 잊지 못하네

겨울바람은 꺼우강 줄기를 따라 날카롭게 불어오는데

너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와

서로를 배웅하네. 와들와들 떨면서

 

 

야윈 그대 바람을 피해 내 등에 웅크리고

푸른 처마도 가랑비에 흠뻑 젖어

젊은 육신에서 온기가 번져 와도

옷깃의 떨림까지 침묵시키진 못했네

 

나는 수많은 헛된 것들과 함께 기약도 없이 떠나 와

온몸이 마비되도록 그대 추웠던 밤들을 알지 못하고

꺼우강에 홀로 고독한 그대

하얗게 내리는 빗속에 나를 기다리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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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박 : 베트남 북부 지방의 지명

꺼우 강: 낀박 지방을 흐르는 강   

 

 

♧ 시인 김남주를 생각하며 - 반레

 

사람들이 당신은 돌산처럼 강하다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돌산도 석회처럼 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신은 강철이라 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강철도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신은 샘물이라 했다

나는 주저한다

자그마한 수맥이 역시 산을 무너트리기도 하고, 언덕을 기울게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물은 부드럽다

이것은 당신의 성격과 맞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정신이라고. 이상(理想)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나는 믿는다.

정신은 불이 붙어도 타지 않고

단단한 도끼날 앞에서도 휘어지지 않는다.

 

정신은 모든 가슴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희망을 환하게 밝히고

정신은 의지 굳은 사람을 도와준다

잔인한 폭력 앞에서.

 

정신은 사랑을 크게 키우고

동과 서 사이에서, 남과 북 사이에서!

정신은 언제나 불멸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정신이라 했다, 이상(理想)이라 했다.

그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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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5일 망월동 김남주 묘지 앞에서 

 

 

♧ 꼬마 수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다 - 반레

 

적들이 감옥 문을 잠시 연 날

두 살짜리 다섯 살짜리 수인들이 햇빛 속으로 엉금엉금 나왔다

담장 밖 풀을 뜯는 물소 한 마리

아이들이 서로 다툰다

저건 코끼리야

담장에 기대앉은 여자 수인들, 저마다 웃음이 터지는데

볼에는 눈물이 가득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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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는 미국과 베트남의 평화협정이 진행되면서 정치범들이 잠시 사동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볼 수 있었던 1973년에 썼다. 임신한 채 수감된 여죄수들은 감옥에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수인이었던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방 밖 햇빛 속에 나왔다. 물소를 보고 코끼리라고 다투는 어린 수인들을 감옥 담장에 기대앉아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웃음과 눈물을 그린 것이다.  

 

 

♧ 망루에서의 호소 - 탄타오

 

…이 아기가 내게 오는 총탄을 막아주었다

이른 아침 내가 손미에 다다르기 전에

이 아기가 그대의 총탄을 막아주었다

일평생 단 한번 그대의 기도 나를 지켜주소서

이 아기가 우리의 총탄을 막아주었다

이토록 여리고 마른 가슴팍으로

하여 우리 모두는 되살아났다 손미여

태양아래 영원히 서로의 손을 잡자

물결이 바다를 만나듯

우리 모두 벼 익는 황금빛 들판을 가로지르자

다함께 모든 사람의 풍요를 노래하자

이 공간에 새기자

볏잎처럼 가늘고 날카로운

수십 년 아직도 되돌아오는 이 음성들을

모래 마을 끊임없이 샘솟는 우물의 마음으로

밀물처럼 새기자

우리는 여전히 모두 살아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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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사시 ‘밀라이의 아이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