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아름다운 베트남 산하

김창집 2013. 1. 30. 09:13

 

사흘째 되는 날

중부지역에 가기 위해 호치민시 탄손너트 공항에서

땀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오랜만에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더디긴 하지만 비교적 낮게 떠가서

창가에 창가에 앉은 나는 구름 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아름다운 산하에서

그런 피비린내를 풍겼단 말인가?

그리고 저 숲을 다 말려 없애려고

고엽제를 마구 뿌렸단 말인가?

 

전쟁은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입장을 바꾸어 내 목숨이 죽어야

전쟁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게 자명해진다. 

 

 

♧ 전쟁에 승리란 없다 - 오정방

   - 미국의 테러응징 전쟁선포를 지켜보며

 

전쟁에 승리는 없다

어떤 무력 전쟁도

그 결과는 이긴 쪽이 없다는 것이다

때리고 터트리고 파괴하고

찢고 죽이고 죽어야 하는 전쟁은

설사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패전일 뿐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쪽이

더 큰 패전국이요

좀 덜 상처를 입은 쪽이

조금 덜한 패전국일 뿐이다

 

테러응징을 위한

미국의 전쟁준비는 모두 끝났다

아니 이미 전쟁은 피폭 당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승리의 깃발은 미리 준비하지 마라

피 발린 훈장은 아직 상상도 하지마라

승전의 축배는 아예 꿈도 꾸지마라

 

전면전쟁의 첫 시작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발사된 총알은 되돌아오지 않나니

군사행동 개시의 최종판단자여,

총공격명령의 최후 결정권자여,

떨리는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기 전에

반드시 기도하라

당신의 머리는 냉정해야 하고

당신의 가슴은 뜨거워야 하나니

다시 한 번 더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헤아리라, 헤아리라   

 

 

♧ 전쟁은 아직, - 송문헌

 

‘분명 여기 어디였는데,

그해 여름 피 묻은 시신을 묻어야했던 거기가...’

산을 헤집고 다니다가 문득 멈춘 그곳

 

(수풀 우거진 화전민 집터를 찾아낸 K씨, 유해발굴에 나선

후배 전우들과 산을 파헤친지 얼마 후 얼기설기 구부려 누

운 채 드러나는 일곱 유골들, 정성을 다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린다. )

 

54년만의 만남!

 

뼈마디 곳곳에 총알이 박히고 군화도 벗지 못한 채 춥고

습기찬 곳에 누워 뼈인지 낙엽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들,

 

잊혀져 까맣게 소홀했던 너무나 소홀하였던 우리들 우리는

무엇이며 조국은 그들에게 무엇인가 땅속에서 나온 그날의

전우들이 절규한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 전쟁戰爭 - 김학철

 

내 관절엔 전쟁이 지나간다

총기들이 부딪치는 소음과

육중한 포신이 일렁이는 소리에

나는 온밤을 깨어 있어야 한다.

 

절망하는 마음

가슴에 묻어나는 파편을

우울한 파편을 손에 쥐며

쓰러진 심장을 닦아내야 한다.

 

위엄있게 돌아오고 싶었다

지치지 않는 힘을 모아

구겨진 얼굴을 손질하고

얼마 동안의

목숨을 경쾌하게 표현하며

마지막 분배된

사랑을

황폐한 사랑을 포옹하고 싶었다.

무너지는 기억을 지탱하며

때묻은 상의를 정돈해 놓던 습성.

보아라

 

포복하는 신경을

이 끝없는 대오의 어느 쪽에

수천의 애정이 교미하고 있는가를.

 

두려워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두려워하며

내 눈은 깊은 달빛 속에 있다

신기한 동의를 구하며

예지의 하늘을 밀려 다닌다.

 

온몸으로 두들기며

반복하는 아픔에 기진하여

피어 오르는 신열

내 관절엔

전쟁이 지나간다.   

 

 

♧ 베트남에서 - 아현 유인순

 

산을 돌아가라

산을 낀 개울물 따라

오지의 산하

전쟁의 잔해 주으러 가라

 

어느 세월인가

역사의 터널을 건너 메라리쳐 오는

녹슨 철로를 따라 가랴

 

아낙은 삶의 어떤 숨결로도 가꿀

노동의 땀을 흘리면서

오지의 산하를 가꾸고

삶을 가꾸고

베트남의 미래를 가꾸는데

나는 이 열대의 숲을 헤쳐 가랴

 

산이 있어 산돌아 산길을 가다

문득 시선 안으로 접힌

전쟁비 하나를 본다

총칼에 죽어간 피는 강을 이루는

문구를 본다

전쟁의 어떤 비극을 주랴 

 

 

♧ 살아남은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 동청 임효림

   -베트남의 항미(抗美) 전사 반레 시인에게

 

살아남은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전쟁은 끝나고

승전의 깃발이 하늘높이 휘날릴 때도

세상은 결코 살아남은 자에게

관용과 영광만을 베풀지 않는다.

 

그대 아직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전진하라

갈 곳이 있어도 전진하고

갈 곳이 없어도 전진하라

살아남은 자가 다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니

 

그대 슬픈 전사여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고독을

누가 알아주겠느냐

 

전쟁은 매우 단순한 세계

적과 아군의 구별이 분명하고

선과 악이 선명하다

    

 

하지만 이제 전쟁이 끝나고

민족의 번영을 꿈꾸어야 하는 지금

모두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지 않느냐

 

살아남아서 더욱 슬픈 전사여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이 있는 곳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쟁 아니냐.

 

갈등과 모순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것에 적응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굴욕과 비애를 겪어야 하는가.

다시 전진하라

승전의 깃발은 동지의 무덤위에 꽂아두고

전사하는 그날까지 전진하라   

 

 

♧ 판티에트에서 - 휴틴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풀잎 하나도

언덕은 넓지만, 자그만 땅 한 조각도,

하지만 내 형은 판티에트의 대지와 하늘의 것.

 

여기서 그는 최초로 바다를 보았다.

벙커 틈 구멍을 통해

입산의 날들 이후 -

광양한 대양, 그토록 좁은 벙커

조금만 움직여도 모래 소나기가 그의 어깨를 하얗게 깔았다.

 

그곳에 코를 찌르는 화약과 땀 냄새,

통제를 벗어나 쿵쾅대는 심장 박동,

강렬한 습기 찬 바람,

바다는 출항하려는 선박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깊은 밤 빛나는 별들이

바다 쪽으로 흔적을 자르고,

군인들은 그해 겨울 그 별빛으로 언덕을 더듬고,

그들 사이 내 형도,

대양은 앞으로 철썩여나가고, 모두를 포옹하고,

그리고 바다를 사랑 했기에 그들은 마음을 놓았다 -

그는 죽었다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바다 바로 곁에서

 

여기 있구나 형, 나는

다른 곳을 찾아다녔는데, 혹시나 하여 산등성이

탄칸,

사타이,

다크페트,

다크토 산등성이를 찾아다녔건만.

 

형이 알았던 열병을 나도 앓았다,

형이 흠뻑 젖었던 정글비에 나도 똑같이 젖었다,

그러나 상상하지 못했다 판티에트의 어느 날 오후

내가 차 뒤에 홀로 서 울음 울리라는 것을.  

 

 

정글은 여전하다, 격전지도 그대로 있고.

몇 발짝만 걸으면 1번 국도다.

몇 발짝만 걸으면,

그렇지만

아무도 바꿀 수없다 지금의 상태를 일어난 일들을.

바다는 형이 쓰러지던 그때처럼 깊고 푸르다.

 

나는 그 언덕의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알고 있다 형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는 것을

경계 태세가 풀린 지 오래인 것도 모르고,

집에서 온 소식도, 동생의 얼굴도 의식하지 못하고.

 

묘지에 눕지 않고,

형은 언덕과 산다, 풀밭으로 푸르러지며,

풀잎은 우리 가족의 선향(線香)이 되고,

그리고 이 언덕 또한 우리 어머니의 아이다.

 

나는 다른 가족들의 온갖 걱정들을 감당해야 했나니.

 

판티에트의 밤은 깊어 가는데 자동차 경적 소리 요란하다.

도시의 빛들이 고깃꾼의 길을 비춘다.

형은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고깃꾼은 잠들지 않는다 -

둘 다 바다와 밤마다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판티에트는 내 형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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