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가뭄 속에서도 숲은

김창집 2013. 8. 22. 00:14

 

내일이면 비 온다 하던가?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들은 것 같기도 한

비 소식.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제주,

암반 위에 흙이 약간 덮이거나

나무가 없는 메마른 땅은

정말 사막과 같은 모습이다.

 

그런 중에서도 깊은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청청하다.

그래서 가뭄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자연의 위대함도 알게 되느니…. 

 

 

♧ 가뭄 - 박인걸

 

당신을 향한 목마름에

숨을 헐떡이고

가뭄에 타들어간 가슴은

생기(生氣)를 잃었어요.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린이 되어 목을 빼들고

그대가 오시던 길목에서

매일 서성입니다.

 

기다림도 지치면

화산 같은 분노가 일고

뼈에 사무치면

원한이 된다던데

 

이제는 내 마음도

갈대처럼 흔들리니

밭고랑처럼 갈라진 가슴에

그대여 소낙비로 오소서.  

 

 

♧ 가뭄(酷旱) - 심지향(상순)

 

 

날카로운

금속성 길게 남긴 체

머리꼭대기 빨간 불을 켠 앰뷸런스가

산모롱이 뒤로 사라지고 난 자리

발 빠른 뽀얀 먼지가

달음질로 뒤를 따른다

도화지 위에 그려진 크레파스화처럼

정물이 된지 오랜 한낮

칠십 평생 이런 가뭄 처음이라고

마알간 하늘 질식해 버린 듯한

태양을 쳐다보며

헛구역질 해대던 늙은 할메

그토록 기다리던 비 찾아

멀리 구천으로 훨훨 떠났다

하얗게 빛 바랜 신작로 옆 질경이도

늙은 할메처럼 지친 얼굴에

뽀얀 먼지 이불 덮고 눈감다

힘없이 늘어진 대문 밖 누렁이가

돌아오지 않는 할메 찾아

슬픔에 잠긴 소리로

먼 산 메아리 불러본다 

 

 

♧ 가뭄 - 김정호(美石)

 

아스팔트가 뛰어 오른다

달리던 자동차가 멈추고 멀미를 한다

통곡으로 기절하는 나무 이파리

하얀 거품만 한없이 내뱉고 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에는

나락의 상여 메는 소리로 가득하고

풀벌레 날개짓도 멈추어 섰다

가난한 농부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빗소리의 환상

목마름으로 일렁거리는 대지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단내나는 팔월의 태양은

등에 달라붙은 바람을 풀어놓고서야

서산마루에 드러눕는다

어둠이 내려도

꿈을 꿀 수 없는 날이다

안되겠다, 내일은

저 이글거리는 태양 속을 열어 보아야지  

 

 

♧ 치유의 숲 - 강효수

 

마음이 바쁜 날에는

숲으로 가자

고요한 숲의 정맥

숲길을 걷다 보면

바쁜 심장은 무심으로 흐르고

바쁜 몸짓 바쁜 숨결

살포시 안아주리라

 

한 때

시린 가슴마저 하늘에 내어주었던

숲은

이해와 용서로 화해하며

상처를 보듬어 푸른 가슴 이루었다

세상이 안아줘야 행복한가

숲은 세상에서 버려져야 행복한데

 

삶이 헝클어지고

생각이 바쁜 날에는

숲으로 가자

숲의 정맥 따라 심장으로 들어가면

내 안에 나는 무념으로 흐르고

바쁜 눈길 바쁜 걸음

지그시 재워주리라

 

 

♧ 나의 숲이 너의 숲에게 - 이영춘

 

네 숲에서 살고 있던 별들이

나에게로 건너오는 길을 잃은 지 오래다

건너 마을 불빛들이 하나 둘

잠 속으로 잠겨들어갈 때

나는 환히 눈 뜬 짐승으로 너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다

가도가도 좀처럼 너에게로 가는 길 열리지 않고

기억의 환상에서 다시 길을 잃는다

또 다른 숲을 꿈꾸며

그 숲속에 두 발과 두 귀를 묻고

이 밤에도 깊이 잠들었을 네 별이

아득히 멀기만 하구나

나는 끝내 잠들지 못하는 한 마리 목어로

허공에 둥둥 떠

너에게로 가는 길을 묻는다 

 

 

♧ 그 숲에 가서야 알 수 있었네 - 조성심

 

숲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네.

 

그 길에

발자국 소리를 내며

내 힘겹던 날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네.

 

숲은

모든 것을 벗었어도 숲이었네.

모든 것을 털어놓았어도

여전히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네.

 

숲의

해탈을

오늘도 배우지 못하고

부끄러움만 알게 되었네.

 

숲은

어느새 내 손을 잡고

가르치기 시작했네.

 

사랑하라고

찬바람까지도

받아 안으라고

그리고

그 사랑의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타일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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