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입춘에 보내는 복수초

김창집 2014. 2. 4. 00:31

 

지난 일요일은 절기에 맞지 않게

무척 포근했지만,

비가 오려 함인지

안개가 걷히질 않아

해변에 가까운 오름을 올랐다.

 

애월읍 수산봉에 오르기 전 광대나물 꽃을 찍고

정상에서는 매화 몇 송이와 조우했다.

고내봉으로 진입하면서는

수많은 제주수선화를 만날 수 있어

제주엔 이미 봄이 와 있음을 느꼈다.

 

적당한 운동량을 채우고

오름 가꾸기 사업을 위해

고지대에 위치한 왕이메로 가는데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이

혹 복수초를 만나는 게 아닐까 하고 설레였다.

 

쓰레기를 주우며 오름을 한 바퀴 돌고

분화구로 내려가 양지녘을 본 순간,

아! 복수초가 여러 송이 피어 있었다.

그 옆에 변산바람꽃은 딱 한 송이만

피어 있었지만,

복수초 송이송이 때마침 비치는 봄볕에

온 몸을 한껏 맡기고 있었다.

 

오늘은 입춘일.

비록 기온이 뚝 떨어져

꽃샘바람이 불지만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 입춘 날에는 - 박종영

 

옛적 기억나는 데로 식은밥이

가난을 눈물 나게 하던 시절에도

슬기로운 얼굴 쳐다보며 봄이오는 들판

허리춤 부여잡고 달려가지 않았더냐

 

이제는 들을 수 있는가,

언 손 녹이며 우리와 함께하려는

청아한 바람의 소리 그 뒤에 신비로운 무게로

솟아오른 연둣빛 촉순의 발그레한 웃음끼,

우르르 피어나는 날이 예서 가까운지라

 

나무와 나무 사이 제각기 흩어져 살아온

추운 언어들이 하나 둘 숲으로 들어서

아쉬운 고개를 조아리고,

비로소 겨울잠을 깨고 어두운 날을 환하게 웃는

노란 복수초 너의 꿋꿋한 장래를 위하여

 

오늘은 한껏 더운 힘을 모아

추운 겨울 몰아내자 팔 걷어붙이는 입춘 날,

이 강산 꽃물들인 저녁상 앞에 놓고

너와 나 목청 다듬어 다정한 들꽃 이름

막힘없이 불러보자.  

 

 

♧ 입춘이야기 - 박얼서

 

잔설 속에 숨어

밤새껏 몸을 뒤척이던

동백이

복수초가

여기저기서

새봄맞이 길을 닦느라

재잘거리는

입춘이야기를 듣는다.

이젠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태동

어차피 잘려나갈 겨울 긴 꼬리

아직은 좀 이른 셈인데

꽃망울을 붙들고

서로 밀치고

잡아당기며

서리꽃 앞 다투어

지는 소리를 듣는다. 

 

 

♧ 입춘 추위 - 권오범

 

평년보다 유별나게 행세했던 동장군

제 기념일인 대한도 모른 채 한눈 팔아

꼬리를 사리나 싶더니

그러면 그렇지 제 성깔 남 주랴

 

정상적으로 오르내리던 온도계 혈압이

봄의 문턱에서

지하로 급격히 추락해

온기 사라진 살벌한 세상

 

계절도 시기가 만만찮아

호락호락한 봄에게

그렇게 쉽사리

자리 비켜주기가 싫은 게야

 

다짜고짜 다가와 주물러대는

뻔뻔스런 봄의 끄나풀 아양 못 이겨

제풀에 지쳐 스러지는 그날까지

또, 얼마나 발악을 할는지  

 

 

♧ 입춘(立春)에는 - 이영균

 

쩡 얼음장 터져오던 침묵의 강

허한 맘에 서릿발 날 세운 쪽문 밖

음지 어슴푸레 그의 엷은 속살

모퉁이 은빛 바람 힁하니 지나던 긴 겨울 밤

살아있다고 말하는 이 어디 있었나

언 계절엔 영혼조차 두려워

오금 저려 숨죽여 가던

달의 발그림자

 

이월엔 원망 사라지고

해동의 숨결 차츰 살아나

검은 밤 한켠씩 희게 벗어지기를

찬 설 날카롭던 비명

이젠 아물도록 미소 녹아들어

강물의 노래 다시 들려오고

온 천지 살 냄새가 땅에서부터 돌아와

한 발짝씩 차근차근

처마 끝 낙수 가슴 적셔온다.  

 

 

♧ 입춘대길(立春大吉) - 靑山 손병흥

 

기나긴 겨울날 기승부리던 추위마저

몰아치던 북풍한설조차 점차 누그러져

조금씩 찾아드는 봄 향긋한 유혹 전령사

달래 냉이 쑥 두릅 봄 미나리 미각 떠올려

봄이 시작됨을 자축하는 마음 가득하도록

한 해 무사태평 농사 풍년 다시금 기원하는

그래도 아직은 조금 쌀쌀하기만 하는 입춘 날

먹 갈아 정성스레 입춘첩 써서 대문에 붙여놓은 채

이제 새로이 입춘을 맞아 올 한해 크게 길할 것임과

온 집안 가득 따스한 기운 돌아 경사가 많을 것임을

24절기 중 첫 번째 새 기분으로 반가이 맞이하는 날

이내 터질 듯한 꽃망울 가득히 따스한 봄 향기 담아

한결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 온기 향기 가득해지도록

자연의 이치 순응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우리네 삶

버선발로 봄 마중 서두르기엔 좀 이른 봄이 오는 길목.  

 

 

♧ 입춘 - 유승희

 

봄 앞에서 선 날

좋은 날만 있어라

행복한 날만 있어라

건강한 날만 있어라

딱히,

꼭은 아니더라도

많이는 아니더라도

크게

욕심부리지 않을지니

 

새 봄에

우리 모두에게

그런 날들로 시작되는

날들이었으면 싶어라

 

매서운 추위 걷히고

밝은 햇살 가득 드리운

따스함으로

 

뾰족이 얼굴 내미는

새순처럼

삶의 희망이 꿈틀거리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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