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산에 스치는 바람(소상호)

김창집 2014. 6. 28. 18:00

 

산이나 다름이 없는

해발 1,070m의 노로오름엘 다녀와서

후목 소상호 시인이 보내온

시가 있는 수필집 ‘산에 스치는 바람’을 폈다.

 

오늘은 왕복 3시간 동안

거의 짙푸른 숲길을 걸었는데,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

산의 모습은 담지 못했기로

지난 5월 중순에 다녀온

지리산 종주 때 찍은 사진 몇 컷을 골라

후목 시인의 글과 함께 올린다.  

 

 

△ 산, 산이 있어 좋다

 

쓴 맛의 깊이를 아는 삶

그 속에 석여있는 자애로움은 쓴 잔을 들이킨다

단맛이 싱거워 떠나는 애정의 깊이에서

헤엄쳐 나온 모습이다.

불빛을 향해 떠나는 덤덤한 맛이 싫어

쓴맛을 향해 다가가는 발걸음인지

무엇을 향한 반가움이며

무엇을 그리는 보고픔인지

시끄럽고 번잡한 차량들이 사는 도심보다

때 묻은 속옷을 던질 수 있는

풋풋한 냄새가 나고 비릿한 냄새 풍기는 곳이 더욱 좋다

 

 

이슬을 먹고 서리를 맞아도 아프지 않는

돌부리 같은 모습

그 위에 얹혀놓을 수 있는 곳

어데 있느냐

어데서 붙잡을까

고개를 둘러보아 생각에 물음을 주어도

깊은 생각이 지혜와 상의해도

그 곳은 산이다. 산일 것이다

자애로움을 키우는 산일 것이다

큰 자비가 숨을 쉬며 안길 수 있는 곳

그 곳은 어드메, 산일 것이다

 

 

그 곳에선 꿈이 식어도

애처로이 울어도, 괴롭힘을 당하며, 짓궂어도

안 된다.

그리고 꿈은 내일 피어서는 더욱 안 된다.

오늘이어야 한다.

내일이면 너무 서글프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 오후가 되어야 한다.

오늘 아침에는 꿈이 있는 곳

그 곳을 잡으러 떠난다.

자애로움이 사는 산으로 간다.

꿈을 대신하여 산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 곳은 아내의 손목보다 더 귀한 유혹을 가진

불러 뇌 속의 먼지를 날리며

바람을 맞게 한다.

그곳은 눈이 머무는 초록 칠판이 있는 곳이다.

느끼하지 않는 강바람 냄새를 맡으며

사치하지 않고 굵은 멋 풍기는 둥근 느티나무의 고향이 사는 곳이다

그 산에서 그러한 멋과 맛을 느낄 수 있기에 달려간다.

미친 듯이 달려간다.

 

 

당김의 넋에 코를 박고

가슴을 벌려 손목으로 잡아당기며 간다.

어느 때는 말하는 혀의 감촉이 너그러워 밖으로 뛰어 나온다

산의 유혹에 젖은 웅덩이에 뛰어 든다

뒹굴며, 비비고 아픈 정을 던진다.

억세게 큰 자애로움 속에서 땀을 흘린다.

가쁜 숨으로 마시며

흥얼거리며 노래한다.

산이 있어 좋다

산이 있어서 좋다

 

 

 

 

▲ 산의 기개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도읍지

보다 더 오래된 산

역사에 묻힌 수 많은 사람을 보내고

새로운 임자를 손으로 대할 때

말 한 마디 없이 돈바르지* 않게

묵묵히 맞이한다.

임자네 품에 기어오르며

떼를 써도 돌아 앉지 않는다,

정좌로 어느 때는 하얗고,

어느 때는 발갛고, 노랗고,

파란 옷으로 갈아입는다.

개구쟁이 모습 그리고 든든한 모습도

서리 내린 모습에 위해주는 따뜻한 사랑이 보인다.

그 사랑이 학같이 고고하며

송죽같이 꿋꿋한 기개로

누나의 가슴에 남아 있는지

 

---

*돈바르다 : 성격이 까탈스럽고 역정을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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