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남의 꽃시들

김창집 2014. 7. 14. 00:10

 * 흰광대나물 

 

오늘 조금 시간이 나길래

김수남 시인의 산문집

‘섬, 바다의 꽃잎’을 폈다.

 

산문 곳곳에

꽃시들이 인용되어 있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중 다섯 편을 골라

꽃 사진을 곁들인다.

 

  * 칡꽃

 

♧ 산에 오면

 

산에 오면

아늑한 눈물 같은 것을 만난다.

어둠이 내리고

강물이 서러운 사람은

청춘의 간절한 기도를 듣는다.

나뭇잎에 스미는 바람

세계의 혼란을 적시며

핏빛으로 물든다.

산에 오면

젊은 날의 시 같은

눈빛이 있다.

 

  * 순비기꽃

 

♧ 솜방망이 꽃

 

집 줄로 동여맨

아담한 초가집 처마 밑으로

물동이 져 나르더니

 

보리밭 이랑마다

엉덩이 흙 마를 날 없이 살더니

 

누가

이만한 사랑을 거둘 수 있는지

이른 봄 날 마른 풀밭을

포시시 털어내고 있는

솜방망이 꽃

어머니 고운 웃음으로

피었습니다.

 

용눈이오름에 무릎 세워

멀리 일출봉 아랫도리 적시며

파도를 딛고서는 하얀 물보라도

솜방망이 꽃바람에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습니다.

  

 

♧ 절굿대

 

그대가 부르지 않아도

나는 그대에게로 간다

 

담벼락에 펄펄 뛰는 맥박이

순하게 바늘가시로 돋는

꽃송이를 위하여

다랑쉬 숨가쁜 언덕이나

족은드레왓, 허허로운 벌판 어디쯤

그대의 앵글 속에 갇히고 싶다

 

눈뜨고 바라보면 흔들리는 세상도

지그시 반쪽 눈 닫고 바라보면

어찌 알았으랴

어느 간이역과 마주친 온갖

실망과 분노와 멸시마저도

청보라 깊은 색칠로

단꿈 피워 얹어 놓을 줄을. 

 

 

 산비장이

 

다랑쉬 가파른 언덕 속살이

패도록 꼿꼿이 서서

해종일 종달리 바다만 바라본다.

빌레왓 고망으로

연기와 따발총이 고득 메와져 왐신디

코 막고 귀 막을 저를 이서시냐

넋 먼저 돌아나부렀주

오십여 년 만에

4.3 진상규명 운동하는 사람들

꽃상여 맹글아 보젠 호단

뼈마저 불 살라불곡

다랑쉬굴은 시멘트로 막아 불멍

희엇뜩한 정보분가. 경찰은

무싱거 경 모수와 하는지 모르켜

놈인 혼 번 죽어지기도 힘 드는데

우린 숨 못 쉬어 죽어신디

뼈 태우멍 또 죽은 거십주

춘봉이 어멍, 덕삼이 아방, 석삼이 삼춘,

예닐곱 먹은 그 꼬맹이 꺼정

어느 빌레왓딜 곱앙 뎅겸싱지?

이디 옆이 와 져시민 좋으켜 마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서

저 싸늘한 역사의 강을 깨고나와

두루 두루 안부를 묻는데

이제는, 아무도

비통해 하지 않는 꽃송이를 안고

이 가을 고삿길을

발그레 문지른다. 

 

 

♧ 금창초

 

애초에

머리 위 햇살이 무거웠네.

너무나 잘 나버려서

곱게 낮추기로 했을 뿐

이 땅의 숨소리는 결코

숨어 다니진 않는다네.

저 기록되지 않은 목숨들이

우리를 생생히 지키고 있는지

눈 크게 뜨고

이 푸르름이 깊어지는

빛깔의 무게를 보시게.